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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
공지희 지음, 김지안 그림 / 글로연 / 201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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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연 |
2012.0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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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 |
시댁이 청주라 한번쯤 인쇄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금속활자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일반 박물관과의 차이점이나 인상들이 별반 다르지 않아 세부적으로 보지 않고 대충 훑어 본 정도였다. 의궤가 어떤 책인지는 박병선 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작년 11월 23일 날 작고한 고 박병선님의 인터뷰를 모아서 글로 만들 책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이란 책을 읽고 감동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고 박병선 선생님을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우공이산이란 한자성어가 떠오른다.
병약하던 선생님은 꿈속에 나타난 성모마리아의 은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셔서 삶에 대한 태도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나고 독실한 가톨릭 신도로서의 성령체험은 자신의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병인양요 때 빼앗긴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달라는 교수님의 개인적인 부탁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잡고 결혼도 안하고 어떻게 평생을 매달리 수 있을까? 선생님의 우직함과 집요함을 배운다.
박병선 선생님을 통해 [직지심체요절]이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검증하여 유네스코 유산에 등록될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 국사시간에 이미 배워서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지식이 사실은 박병선님이 개인적으로 5년에 걸쳐 실험을 통해 재료별 활자본의 특징을 연구하여 눈물겹게 알아낸 일임을 알게 된다. 그녀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직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잠자고 있거나 구텐베르크 성서요약본이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고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배운 한 줄의 지식이 누군가의 피땀으로 밝혀진 사실이라 것에서 항상 보이지 않게 도움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더구나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한 당시에는 폐기처분을 기다리면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었다.
그 가치도 모른 채 말이다. 도서관 직원의 실수로 훼손까지 당하고 훼손이 밝혀질까 봐 직장에서 해고되기도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프랑스공무원들도 공무원들이라 관료적인 모습들이 잘 들어난다. 특히 그녀의 연구를 방해하기 위해 한때는 동료였음에도 몇 개월 기다리게 하고 의궤 열람을 못하게 훼방을 놓기도 하는 모습에서 분노를 금치 못했다.
여기서도 박병선 선생님은 너무 우직하다 못해 미련해 보인다. 박병선 선생님의 우직한 모습은 장점이면서도 단점일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프랑스에서 학위를 배운 사람이면 자신의 부당함을 밖으로 적절하게 표출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우직함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감동적이면서도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선생님의 우직함이 지나쳐 답답함은 곳곳에 보이기에 안타까움도 많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남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냈던 시절이 많아서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하려는 부분이 너무 안타깝다. 박병선 선생님 개인으로 볼 때는 정말 탁월한 언어적인 재능과 근기를 가졌고 훌륭하지만 책 속에는 그녀 혼자서만 외롭게 투쟁한다.
[직지심체요절]을 홀로 고증하고 세상에 내놓을 때도 그 공로를 국내 서지학회 사람들이 가로채기도 하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남의 결과물을 탐내기나 하는 서지학회 연구원들이 참으로 한심스럽지만 그들의 지식을 활용해 내지 못한 박병선 선생님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우리 나라 최고 학부인 서울대 출신이고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네트워크를 조직할 파워를 가진 사람인데 인적 자원을 활용한 내용이 하나도 언급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부당하게 해고되었을 때도 부당함에 대한 적극적 시위나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방대한 의궤를 해제할 때도 프랑스 대학이나 대사관 혹은 서울대에 프로젝트비용을 딸 수도 있을 텐데 혼자서 개인적으로 해결한다. 의궤 해제 작업을 할 때는 굶기를 다반사로 하여 주변의 동정을 사는 정도가 고작이기에 참으로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중요하다면 의궤 해제의 중요성을 국내에 알려서 프로젝트비용을 딸 수 있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공동 프로젝트로 했다면 좀 더 빠른 시간에 해제작업을 마쳐서 세상에 내놓았을 테고 그 중요성도 널리 알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외규장각 의궤가 대여가 아닌 [소유]가 되지 않았을까?
학회를 조직하여 공동연구와 후학을 마련해 놓았다면 그녀가 다 이루지 못해도 누군가가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내용들이 보이지 않아서 안타깝다.
그녀가 묵묵히 걸어온 일은 귀하고 가치 있으며 훌륭하지만 혼자서 짐을 짊어진 부분이 너무도 안타깝다.
이 책엔 감동적인 선생님의 말씀들이 많이 나온다. 그분의 삶과 일치하는 말씀들이기에 더욱 감동을 주나 보다.
선생님이 말씀 하신 주옥 같은 어록을 인용해본다.
“무엇을 하든 인내와 끈기를 가지세요.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아이들한테 들려준 대로 그렇게 평생을 사신 분이기에 그분의 말씀이 더욱 고귀하게 들려온다. 모든지 쉽게 주어지고 부모가 대신 해주는 세대들에게 부족한 점이 바로 인내와 끈기인데 박병선 선생님의 인내와 끈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된다.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에 있고 [외규장각 의궤]는 현재 대여이기에 반드시 우리나라의 소유로 반환해서 선생님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