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or God? 무엇이 선인가
존 비비어 지음, 유정희 옮김 / 두란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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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에서 'O' 하나를 빼면 GOD이 되네요. 재치 있는 워드 플레이로 시작한 제목입니다.

무엇이 선인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된 계기는 세계적인 자선사업을 벌이는 젊은 여성 정치가의 갑작스런 교통사고 사망 소식입니다.

한참을 충격에 속에서 하나님께 분노가 일어났다. 어떻게 이럴수 있나요?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창세기 3장에 나타난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기전의 상황을 보여 주셨다.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이라는 단어와 함께

'나에게 속하지 않은 선도 있다. 그녀는 내게 복종하지 않는다.'는 음성이 들렸다.

그렇다. 우리 눈에는 선하고 옳아 보이지만 선악의 판단 기준은 하나님 한 분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한 동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멀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나는 지속적으로 성경을 읽는가? 내 삶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를 찾는 시간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하와처럼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능력 주심이라는 걸 모른채 자기 힘으로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쓴다.

이것이 바로 좌절과 패바로 이어진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우리에게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과 능력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능력 주심에 관하여, 은혜의 선물은 구원의 순간에 한 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필요한 것이다.

은혜는 우리 연료탱크에 필요한 연료다.​

 진짜 선한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올바른 경외심을 통해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아가야 한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으로 한다.

 여러 유명하신 분들의 추천사만큼 좋은 책입니다.

하지만 너무 장황한 설명에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자꾸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점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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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다니엘처럼 - 개정판, 세상에서 승리하는 크리스천의 7가지 직업 영성
원용일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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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과 지은이를 보고 책 내용에 대해 어떤 내용일지 감이 왔습니다.

목사가 직장인에 대해 믿음 과 신앙의 이야기라......... 뻔한 이야기일지 아니면 좀 색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지만 내용은 실망입니다.

목사님도 자기가 직장생활을 해 보지 않아 자세히 모르지만 직장 신우회에 나가 설교하며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예화로 들어 글을 이어 나갑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볼 것은 남 앞에서 간증 아닌 간증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반대로 실패한 사람들이 과연 '나 실패했습니다' ​라고 떠 벌리고 다닐까?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괜히 남들 앞에 신앙인으로 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다 실패한 경험으로 더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사자 굴에서 구원 받은 다니엘의 경우와 콜로세움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자의 밥이 되어 죽어 간 사람들을 비교한다면 이들은 믿음이 없는 것일까요?  ​

또한 직장 상사는 옛 왕들과 같아서 자신을 거스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역린'​과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진행될 때는 문제 없다가도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는 그 때 그 일로 인해 큰 화를 당할 때가 많이 있답니다.

그들 앞에서 죽을 각오로 그들의 잘못과 자신의 신앙의 올바름을 주장해 봐야 이런 역린을 만드는 상황이 아닐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거기에 신우회가 있는 직장이라면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대기업 수준의 회사인데 과연 중소기업의 직장인의 삶을 경험해 보긴 하셨는지 되묻고 싶네요.

몸으로 힘들게 일하며 고단한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한 잔의 술로 시름을 달래는 그들에게 과연 목사님이 말하는 직장인의 모습이 적용이 될지.......​

 나의 경우 대학교 시절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기독교 동아리에 다니며 학교 친구들과는 멀리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4년의 대학 생활 동안 2년 동안은 같은 과친구 한 명도 없이, 학교에서 왕따 아닌 왕따의 생활을 보내야 했다.

또한 직장생활을 하며 과장 타이틀을 달고 '나는​ 기독교인이니 앞으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공표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듯 하였지만, 아예 회식이나 술자리에는 부르지 않았으며 회사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이야기에도 끼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나중에는 직장에서도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며 과연 이게 정말 옳은 일인가? 다시 생각해 봐야하는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에도 나오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죄인인 세리와 창녀, 문둥병자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그들을 정죄하지 않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교회가 과연 이런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만을 고수하고 나머지 인습과 관습을 철폐한다면 오늘날의 기독교의 쇄락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술, 담배, 고사, 절, 과연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지킨다면 바울이 말하는 믿음을 생명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늘날의 기독교 현실이 과연 옳은 일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기독교의 형식과 허식이 살아 있는 복음을 땅 속에 묻쳐 굳어진 화석으로 만들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니 들이 게 맛을 알아?' cf 문구처럼 남들에게서 들은 내용이 아닌 직접 경험해 보고 책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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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탄생 - 의정부에서 도화서까지 관청으로 읽는 오백년 조선사 서울장소인문학 총서 1
서울학연구소 엮음 / 글항아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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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조선의 수도이자 대한민국의 수도로 600년간 한반도의 중심에 서 있는 도시입니다.

수도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해 궁궐과 육조 건물이 즐비한 광화문 거리, 그 부속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는 신생도시.

특이한 점은 이런 관청의 신설을 통해 한양을 재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왕릉과 종묘제례를 담당한 '봉상시'​라는 기관에 눈길이 갑니다.

​제사 대상은 신이다. 신은 혼과 백이니, 혼은 양, 백은 음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 그런 까닭에 시체를 체백이라 한다.

그리고 혼을 모시는 곳은 사당이요, 백을 모시는 곳은 무덤이 된다.

제사를 지낼 때 향을 사르는 행위는 천혼을 모시는 것이요, 술을 땅에 따르는 행위는 지백을 모시는 것이다.

천혼과 지백이 합쳐져 신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 조상들이 육체와 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외국어를 해석하거나 통역하는 '사역원' 이라는​ 관청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학, 몽학, 왜학, 여진학 등 당시의 강대국에 해당하는 언어를 익혔다는 점이지요.

 책에서는 옛 문서와 지도를 통해 각 기관의 위치와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각 기관들 하지만 철저한 계급사회이다보니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천재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양반이 뭐라구......  이 당시에도 개천에서 용나기는 어려운 시대였음을 새삼 느끼며 참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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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박물관 : 옛길편 - 길 위의 역사, 고개의 문화, 2014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선정 스토리텔링도록 옛길박물관
옛길박물관 지음 / 대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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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혈맥에 해당하는 옛길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지리 인식에 기초한 산줄기를 표현하는 말로 흔히 '1대간 1정맥 13정맥' 또는 '1대간 2정간 12정맥' 이라 말한다.

대간, 정간, 정맥 같은 옛 단어들도 생경하지만 숫자들도 들쭉날쭉하여 여간 헛갈리는 게 아니다.

우선 다른 것은 제쳐놓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줄기가 모두 15개라는 것만 먼저 기억하기로 하자.

그 15개 산줄기 가운데 딱히 하나의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부르는 까닭은 나머지 14개의 산줄기가 강과 강을 나누는 산줄기인 데 비해 동해와 서해, 즉​ 바다와 바다를 나누는 산줄기이기 때문이다. '백두대'을 가장 쉽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며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동해와 서해로 갈라 주는 산줄기' 이다.

백두대간을 제외한 나머지 14개 산줄기는 우리나라 10대 강들의 경계선을 이루는 산줄기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도로망은 어떻게 되어 있었을까?

조선시대에도 '모든 길은 한양으로'라는 목적 아래 조선 팔도에서 X자형 도로 교통망을 설치하였다.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개통되자 공식적인 조선의 해외 체험 길이 생겼다. 의주대로는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연행사 길이며, 영남대로는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 길로 유명하다.

조선의 관도 표지로는 일정한 거리마다 돌무지를 쌓고 장승을 세워 사방으로 통하는 길의 거리와 지명을 기록했고, 고개와 강을 경계로 지역을 구분하였다.

주요 도로에는 얇은 돌판을 깔거나 작은 돌, 모래, 황토 등으로 포장했다. 그리고 조선의 대동맥을 따라 수많은 역과 원, 점, 주막과 객주가 조성되었다.

`'증보문헌비고'를 통해 본 조선의 도라망`

제 1로  서울 ~ 의주 연행로,  제 2로 서울 ~ 서수라(경흥) 관북로,  제 3로 서울 ~ 평해 관동로, 제 4로 서울 ~ 부산 좌로, 중로, 제 5로 서울 ~ 통영 중로

제 6로 서울 ~ 통영, 제 7로 서울 ~ 제주 우로, 제 9로 서울 ~충청 수영, 제 10로 서울 ~ 강화 ​

책을 통해 옛 길을 걸었던 선조들의 발 자취와 여행 품목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길에 대한 선조들의 삶과 인생을 돌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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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양희송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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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넘어 유일하게 신자가 줄어드는 종교, 기독교 중 개신교.

성경에도 없는 술 먹지마라!, 담배 피지 마라​!, 혼전 성관계 안 된다! 온통 안 된다고 주장하며,

목사 자신은 퇴직금 10억이 작다는 둥, 신자를 성폭행 했다는 둥, 목사끼리 칼부림 했다는 둥 기타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작태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예전에는 학력이 부족 해서 목사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절대 순종이었지만,

이젠 성경을 읽고 개인적으로 생각과 판단을 할수 있고, 책을 통해 부족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현실에서 이성적 비판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목사의 권위나 목사의 설교에만 의지하여 교회에 다니는 시절은 지났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맹목적인 신앙, 목사 위주의 독재적 집단, ​현실의 삶에 적용이 안 되는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구요. "더 이상 이건 아니야"​라고 느끼고 있지만 아직 대안이 없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교회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할까요?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무시하고 있는 걸까요?

교회를 떠나면 절대 구원이 없다는 무시무시한 저주를 퍼 부으며, 목사 욕을 하면 사탄의 자식이라느니 지옥에 떨어질 거라느니......

이젠 정말 지겹습니다. 그러는 당신들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있다구요?

그 확신이 자기 확신인가요​. 아니면 하나님께 구원 받았다는 증표를 받아 두셨나요?

솔직히 말하지만 이건 하나님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당신들은 하나님의 권리에 대한 월권을 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의 타락과 비현실적 교리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통계를 바탕으로 오늘의 현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지에 대해 알아 보고, 그 이유가 낙심이 아닌 교회가 답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종교 다원주의나 통합주의로 빠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현실의 대안을 생각해보며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방안을 제시해 봅니다.

앞 뒤가 꽉 막힌 교회와 목사들에게 던 지는 화두가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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