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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2 : 정종·태종 - 피와 눈물로 세운 나라의 기틀 ㅣ 조선왕조실록 2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조선왕조를 망친 유학자들의 딜레마를 소개한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중원의 명나라와 청나라를 상국으로 보고 사대했지만,
명나라나 청나라에게 조선은 그저 귀찮은 동이족 국가의 하나였다."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조선의 유학자들은 알기는 했을까?
이들이 일방적으로 떠받드는 상국을 향한 짝사랑이 조선을 망치게 하지는 않았을까?
§ 왕이었지만 왕의 대접을 받지 못한 정종
태조에 이어 대위를 물려받은 정종.
그는 자신의 힘으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기에 태종과 세종 그리고 유학자들은 그를 기생한 임금으로 평가했다.
임금이 세상을 떠나면 3년 국상을 치러야 하는데, 정종의 경우는 하루를 한 달로 대체하는 역월제를 시행했다.
또 세종은 한 달을 하루로 계산해 13일 만에 소상을 치르고 길복(상을 마치고 갈아입는 보통 옷)으로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정종 사후에 실록도 편찬하지 않았다. 태종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종실록을 편찬했다.
거기에 정종에게는 시호도 내려지지 않아 '공정왕실록'이라 이름 붙였고, 묘호도 정해지지 않아 종묘에 신위를 모시지도 않았다.
세종은 왕통의 정당성을 알리는 용비어천가에서도 정종은 건너뛰고 바로 태종으로 넘어갔다.
묘호가 정해진 것은 정종이 세상을 떠난 지 무려 50여 년 뒤인 성종 6년 때의 일이다.
하지만 정종은 이렇게 무력한 임금은 아니었다. 백성들의 고통에 가슴 깊이 아파한 애민 군주였고, 무역의 군주였다.
어진 임금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정종이 태종을 대신해 왕으로 남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의 경계는 철령~공험진까지이다.
고려 북방 강역 중 동쪽의 경계는 공험진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으로 688리 떨어진 지점으로, 통상
두만강 북쪽 700리라고 말한다. 두만강 북쪽부터 공험진까지 고려 강역은 한때 원나라에 빼앗겼다가 99년 만인 공민왕 재위 5년의 북강회수운동 때 다시 되찾았다. 이후 고려에서는 압록강~두만강 북쪽 지역에 지방관을 파견해서 관할했다.
태종 이방원은 비록 명나라에 사대주의 외교를 자행했지만 압록강~두만강 이북 영토를 명나라에 양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태종 재위 4년(1404) 5월 19일, 예문관제학 김첨과 왕가인을 명나라 수도 남경에 보내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선을 획정할 것을 요구했다. 태종은 이 지역을 계속 조선령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지역에 사는 여진족 문제였다. 이 지역에는 삼산(북청) 천호 이역리불화 등 여진족 10처 인원이 살고 있었다. 이화영이란 조선 이름도 갖고 있는 이역리불화는 조선 개국 1등공신이자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의 아들이기도 하다. 태종은 이들이 조선에서 벼슬하고 있으며, 부역도 바치는 조선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철령과 공험진까지 모두 조선 강역이라는 연혁을 담은 국서와 지역의 지형을 그린 지도까지 가지고 남경으로 가게 했다. 명나라 수도 남경에 갔던 김첨이 돌아온 것은 다섯 달 정도 지난 태종 4년 10월 1일이다.
"상주하여 말한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을 살펴보고 청하는 것을 윤허한다. 그래서 칙유한다."
이로써 조선과 명나라는 철령과 공험진을 국경으로 결정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조선 초기 국경선이 압록강~원산만까지였는데, 세종이 4군 6진을 개척함으로써 압록강~두만강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내용이다.
태종은 대명 사대외교로 평화 체제를 구축하고, 전쟁 없이 조선의 강역을 철령~공험진까지로 확대하는 실리 외교의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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