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산다
이유미 지음 / MY(흐름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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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서 직장맘으로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삶일까?
전통 유교사회의 인습에 따른 며느리, 엄마, 여자의 삶에 현대의 경제인으로써의 책임까지 감당해야 하는 직장맘. 내가 누군지 모르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해 주는 밥을 먹으며 하루만이라도 보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는 직장맘들.
이런 버거운 현실을 버텨내고 있는 직장맘들은 과연 행복할까?
자신이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면 누가 뭐라하든 내 맘대로 살아보는건 어떨까?
남의 시선을 무시하고 한번 저질러보자!

 

누군가 그랬다, 사회생활이 재미있고 즐거우면 돈을 줘야지 왜 돈을 받겠냐고. P.80

맞는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우리의 노동력과 시간을 저당 잡히고, 이에 합당한? 아무튼 돈을 받는다.
이 월급이 족쇄가 되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을 살아간다.
이것이 인생이란 것을 깨달은 사람은 쳇바퀴에서 뛰어내려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고,
죽을 때까지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을 자신을 속인채 살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해 가식과 허세를 벗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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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2 : 정종·태종 - 피와 눈물로 세운 나라의 기틀 조선왕조실록 2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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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를 망친 유학자들의 딜레마를 소개한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중원의 명나라와 청나라를 상국으로 보고 사대했지만,
명나라나 청나라에게 조선은 그저 귀찮은 동이족 국가의 하나였다."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조선의 유학자들은 알기는 했을까?
이들이 일방적으로 떠받드는 상국을 향한 짝사랑이 조선을 망치게 하지는 않았을까?

§ 왕이었지만 왕의 대접을 받지 못한 정종
태조에 이어 대위를 물려받은 정종. 
그는 자신의 힘으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기에 태종과 세종 그리고 유학자들은 그를 기생한 임금으로 평가했다.
임금이 세상을 떠나면 3년 국상을 치러야 하는데, 정종의 경우는 하루를 한 달로 대체하는 역월제를 시행했다.
세종은 한 달을 하루로 계산해 13일 만에 소상을 치르고 길복(상을 마치고 갈아입는 보통 옷)으로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정종 사후에 실록도 편찬하지 않았다. 태종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종실록을 편찬했다.
거기에 정종에게는 시호도 내려지지 않아 '공정왕실록'이라 이름 붙였고, 묘호도 정해지지 않아 종묘에 신위를 모시지도 않았다. 
세종은 왕통의 정당성을 알리는 용비어천가에서도 정종은 건너뛰고 바로 태종으로 넘어갔다.
묘호가 정해진 것은 정종이 세상을 떠난 지 무려 50여 년 뒤인 성종 6년 때의 일이다.
하지만 정종은 이렇게 무력한 임금은 아니었다. 백성들의 고통에 가슴 깊이 아파한 애민 군주였고, 무역의 군주였다.
어진 임금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정종이 태종을 대신해 왕으로 남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의 경계는 철령~공험진까지이다.
고려 북방 강역 중 동쪽의 경계는 공험진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으로 688리 떨어진 지점으로, 통상
두만강 북쪽 700리라고 말한다. 두만강 북쪽부터 공험진까지 고려 강역은 한때 원나라에 빼앗겼다가 99년 만인 공민왕 재위 5년의 북강회수운동 때 다시 되찾았다. 이후 고려에서는 압록강~두만강 북쪽 지역에 지방관을 파견해서 관할했다.
태종 이방원은 비록 명나라에 사대주의 외교를 자행했지만 압록강~두만강 이북 영토를 명나라에 양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태종 재위 4년(1404) 5월 19일, 예문관제학 김첨과 왕가인을 명나라 수도 남경에 보내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선을 획정할 것을 요구했다. 태종은 이 지역을 계속 조선령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지역에 사는 여진족 문제였다. 이 지역에는 삼산(북청) 천호 이역리불화 등 여진족 10처 인원이 살고 있었다. 이화영이란 조선 이름도 갖고 있는 이역리불화는 조선 개국 1등공신이자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의 아들이기도 하다. 태종은 이들이 조선에서 벼슬하고 있으며, 부역도 바치는 조선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철령과 공험진까지 모두 조선 강역이라는 연혁을 담은 국서와 지역의 지형을 그린 지도까지 가지고 남경으로 가게 했다. 명나라 수도 남경에 갔던 김첨이 돌아온 것은 다섯 달 정도 지난 태종 4년 10월 1일이다. 
"상주하여 말한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을 살펴보고 청하는 것을 윤허한다. 그래서 칙유한다."
이로써 조선과 명나라는 철령과 공험진을 국경으로 결정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조선 초기 국경선이 압록강~원산만까지였는데, 세종이 4군 6진을 개척함으로써 압록강~두만강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내용이다.
태종은 대명 사대외교로 평화 체제를 구축하고, 전쟁 없이 조선의 강역을 철령~공험진까지로 확대하는 실리 외교의 성과를 거두었다.

500여 년을 이어온 조선왕조. 개국에서 나라의 기틀을 세운 태종까지 실록을 읽었습니다.
중원을 꿈꿨던 태조 이성계. 하지만 그릇된 자식 사랑으로 그 꿈이 깨져 악귀로 변한 그의 노후.
아버지를 따라 무수한 전장을 누비며 민초의 생활을 깨달은 애민 군주 정종.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이룬 왕위가 아니기에......
정몽주, 정도전을 척살하고, 이복형제뿐 아니라 친형도 제거하고, 마지막으로 개국 군주인 아버지도 제거한 태종 이방원.
그는 왕위를 얻었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의 저주가 그의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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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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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왕조.
'태-정-태-세-문-단-세' 그 이후로는 외울 수 없지만,  태조 이성계하면 위화도 회군을 통해 조선을 건국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명나라 정벌을 꿈꿨다는 새로운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고려말 조선초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책으로 만나볼까요?

태조 왕건 이후 400여 년이 지나며 고려의 사회 기반인 토지와 군사제도가 무너졌다.
고려의 마지막 중흥군주 공민왕은 승려 신돈을 통해 부원파를 척결하며 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원나라 세력을 등에 업은 공신들은 사전을 확장하며 백성들의 토지를 몰수하기 시작했다.
또 삼남지방에는 왜구들이 들끓고, 평양 이북에는 여진 말갈족들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
백성들은 고려 조정에 대한 어떤 희망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각자도생!!
이런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며 토지 개혁을 요청하는 상소가 접수되었다.
그 상소를 작성한 사람은 유학자도 문신도 아닌 무장 이성계.
그가 이런 상소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만백성의 존경을 받는 무장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떠도는 지식인을 스승으로 모시는 섬김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생국인 명나라와 조선은 서로를 향해 불안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원나라와 같은 동이족으로 언제든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조선, 
원나라를 중원에서 쫓아냈지만 여러 봉건 제후들의 반란으로 잠잠할 날이 없던 명나라.
명나라는 조선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의 책사인 정도전의 압송을 요청하며 무리한 요구를 한다.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과 이성계는 재위 3년을 넘기며 본격적인 중원 진출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의 꿈은 세자를 책봉을 시작으로 균열이 생긴다.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제거되고, 건국 시조인 이성계는 상왕으로 물러난다.
만약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도전이 죽던 해인 1398년 4월 명나라 신하들이 주원장에게 조선 정벌을 청했다.
그러나 일흔을 넘긴 주원장은 조선 정벌을 묵살했다. 그 직후 주원장은 병석에 누워 다음 달인 윤 5월 10일 주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손자 주윤문이 22살의 나이로 황제에 올랐지만, 나이 많은 숙부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1399년 7월 왕위 쟁탈전이 시작되며 북경에서 남방까지 내전에 휩싸였다.
고구려의 옛 땅 회복을 꿈꾸던 조선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정도전이 살아 있어서 조선군을 북상시켰다면, 거기에 여진과 몽골족과 연합하였더라면....
왕자의 난을 통한 방원의 반역은 이성계의 대륙 황제의 꿈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이로 인한 이성계의 분노는 그 아들 방원이라 할지라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후사는 증오하지만 자신이 세운 왕조 자체는 부인할 수 없었던 개국시조의 비애였다. 

변방의 무장에서 새 왕조를 개창한 이성계.
그의 인생은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했지만, 생전 처음 당한 패배가 바로 자식에 의한 것이었다.
사랑하던 아들들의 죽음과 대륙 황제의 꿈이 무너지며 그의 말년도 사그러 들었다.
한 인간의 희로애락을 '조선왕조실록 1권'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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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 완벽해 보이지만 모든 것이 불안한 그녀의 인생 새로고침
숀다 라임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부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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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여자, 숀다 라임스. 이름만 들어도 모두 알 만한 TV 드라마 작가다. 어린 시절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쳐 이야기를 지어 내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아이비리그에 속한 다트머스 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방송 아카데미에 입학해 그녀의 적성을 살려 드라마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녀가 쓴 드라마 대본이 대박을 치며, '숀다 랜드'라는 회사를 이끌고 있다.

숀다는 드라마 작가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은 죽을 만큼 싫어한다. 그 이유는 남들 앞에 서면 단기 기억 상실증과 같이 머릿속이 하얘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포감 때문에 그녀는 외부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기 위해 홍보 담당자를 채용할 정도였다. 

그녀는 남들 앞에서 유명 인사로부터 파티 초대를 받았다는 둥, 유명 토크쇼에서 초대를 받았다는 등 조금 과장해 떠벌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추수감사절 음식을 장만하며 큰언니에게 허풍을 늘어놓다가 정적을 깨는 깨우침을 얻는다.
"너는 뭐든 좋다고 하는 법이 없지" 
남들은 기회가 없어 하지 못하는 것들을 나는 왜 거절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좋다고 했을 때 책임져야 하는 결과가 두렵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겁쟁이로 살지 않기 위해 숀다는 앞으로 1년 동안 모든 일에 '좋아'라고 말하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녀의 첫 번째 도전은 다트머스대학교 졸업 축사이다.
축사가 뭐 대단하다고 도전이라고 할까 생각하지만 무대 공포증과 축사만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앱이 있다면 도전하고 싶을까?
6개월이란 시간은 훌쩍 지나 드디어 축사 전날. 하지만 원고가 준비되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하얬고, 하늘이 무너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과연 그녀는 무대 공포증을 넘어 성공했을까? 

드라마 작가로 승승장구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커졌다.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먹는 양이 늘어났다. 이젠 너무 뚱뚱해서 일등석 안전벨트를 맬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뚱뚱한 몸의 문제는 뚱뚱함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는 나였다. 나는 뚱뚱하게 살 건지 아니면 날씬해질 건지 선택해야 했다. 그녀는 1년 동안 거의 45kg을 감량했다. 그 비결은?
전문의를 찾아가 그들의 지시를 100% 따랐다.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 운동 대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 꾸준히 했다. 그리고 매일 2리터 물을 마시고,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마음껏 먹었다. 흠..... 과연 나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줄줄이 적힌 원칙 같은 건 없다.
원칙이 있다면 딱 한 가지.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면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살면 행복해진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 왔다가 한 번은 죽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이목에 신경을 쓰다 보면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즐겁게 보내자.

하쿠나마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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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확실한 공부법 - 똑같이 공부하고 더 많이 인정받는 어른의 공부 전략
가바사와 시온 지음, 정지영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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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자마자 아내가 하는 말, 그 나이에 다시 공부하려고?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다시 공부하려는 건 아닌데...라는 변명이 입안을 맴돌다 사라진다.
왠지 뭔가 잘못을 저지르다 엄마한테 딱 걸려 혼나는 기분이랄까?

공부는 곧 현실을 바꾸는 일이다.

대학 때까지 하는 공부와 사회인이 된 후에 공부는 전혀 다르다. 사회인이 된 순간 과거의 성적은 전부 제로로 초기화된다.
성적이 초기화된다는 것은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도 우리는 사회인이 되고 나면 공부를 멀리한다.
학창 시절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공부하는 건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평생 해야 하는 것이 공부다.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공부법을 배우고 시작한다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어른을 위한 공부 전략

어른의 공부법의 첫 관문은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를 확실히 해두는 것이다. 
아이는 장점을 살리는 일부터 해야 하지만, 어른은 단점을 극복하는 일을 먼저 하는 편이 자기 성장과 업무상의 성과로 연결된다. 
공부할 때는 타깃, 즉 목적과 목표를 상세하게 정해서 원하는 모습을 명확히 그려야 한다. 
목표를 알아야 공부법도 정해진다. 

어른의 공부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인간의 뇌는 10분만 지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무엇인가 깨달았다고 느끼는 순간 즉시 메모를 해야 한다. 
메모의 핵심은 중요한 부분, 새롭게 배운 것, 그리고 깨달음을 간단명료하게 적는 것이다.
이렇게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보자.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족한 지식을 채워야 하며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뇌는 저장된 많은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어 나만의 지식으로 자리할 것이다.

공부는 평생을 하는 것이다.
하루 한 가지라도 깨달은 것을 기록하며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 한다면,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는 전문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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