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략의 한비 지혜의 노자 - <한비자>로 나를 세우고 <도덕경>으로 세상을 깨치다
상화 지음, 고예지 옮김 / 생각정거장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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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른때 같으면 200페이지 책은 이틀 출퇴근하는 시간에 완독하는데, 이 책은 무려 4일이 걸렸습니다.

책 내용도 잘 이해가 안되고, 중국의 여러 인명도 나오고, 당최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원인은 고등학교 윤리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중간, 기말 고사에 나오는 유가 사상의 선현들의 이야기를 뜻도 모른채 무조건 외우던 악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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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가와 법가를 대표하는 한비자, 지혜와 진리를 연구한 노자. 

이 위대한 두 사상가의 명언과 고사를 통해 오늘의 지혜를 찾아 봅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제갈량의 뛰어난 지혜와 혜안에 본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비자는 제갈량의 최대 단점은 남에게 권한을 부여할 줄 몰랐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촉나라 재상이었던 제갈량은 강력한 권력의 지도자였지만 그는 재상으로써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려 했던 그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개인적인 면에서는 심각한 체력 소모와 피로로 단명했다. 나라 측면에서는 ​후진양성이 되지 않았고, 다른 인재들이 천거되거나 발탁될 수 없었다.

단적으로 그가 죽고 나서 촉나라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람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그 사람을 검증하는 일이다.

앞으로 가능성이 있는지, 등용한다면 크게 쓸 수 있는 인물인지는 물론 어떤 자리에 쓸 것인지 등까지도 모두 그에 대한 이해와 파악을 기초로 해야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쓰는 것은 사람을 확실히 분별해 낸다는 점을 전재로 해야 한다.

 포상이 크면 용기 있는 자가 반드시 나오고, 형벌이 엄하면 겁쟁이가 절대 생기지 않는다.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상벌의 엄격한 구분'과​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원칙으로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이는 집정자가 성공을 거두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윤택하게 하고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자신은 오히려 만물과 높고 낮음을 다투지 않고

길고 짧음을 따지지 않는다. 물은 항상 아무런 미련 없이 만물이 모두 싫어하고 낮고 습한 곳에 있길 자처한다. 이는 진정한 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나는 세우고 남을 다스리는 것은 법을 지키고 사리사욕을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 더해 도를 깨달아 행동한다면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누리지 않을까?

​오늘날 문명시대와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고전과 유학의 진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깨달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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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고령화 위기인가 기회인가
폴 어빙 지음, 김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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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붐 시대가 은퇴를 맞으며  노후 파산등 갖가지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노후화 되는 몸과 장기, 그로 인한 의료비용의 과다 지출, 가진 거라고는 달랑 집 한채. 

뉴스에서도 저출산으로 인해 2030년이 지나면 젊은 인구 1명이 노인 3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끔찍한 뉴스도 흘러나오네요.

이들에게 국민연금이 과연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

고령화에 대한 위기의 목소리가 대세를 이루는 현실에서 이 책은 조심스럽게 고령화가 기회라고 주장합니다.

노년기의 은퇴를 앞두고 갭 이어(GAP YEAR)를 잘 활용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지 준비하라고 합니다.

이 시기를 잘 준비하여 앙코르 커리어를 통해 남은 생애를 희망적으로 보내도록 돕는다.

또한 고령화에 따른 질병은 나날이 발전하는 의학기술을 통해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베이비 붐 세대는 농업사회와 산업화를 거쳐 현재의 테크노 시대까지 두루 섭렵하며 살아왔다.

이들의 지식과 경험을 과소평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령자들을 재취업을 통해 이들의 노하우를 현장에 접목시켜 나간다면 기술과 지혜의 융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천년 이후 출생자들은 아마도 100세를 기본으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정년 60세는 너무 짧지 않을까?

솔직히 고령화에 대한 기회보다는 위기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은퇴 후 긴 여생을 허비하지 않도록 잘 준비 해야겠고 다짐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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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치매를 막는 아침에 주스 한 잔 - 100세 시대 건강을 위한 채소.과일 주스 101
사라사와 다쿠지, 다니엘라 시가 지음, 이지현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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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스 한 잔이 몸에 좋다는 상식은 누구나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출근길, 등교길에 팔자 좋게 주스를 만들어 먹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의문을 먼저 가져봅니다.

책 마지막에 지은이 저작 동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을 읽고 작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일본에 온 지 20년이 되어간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 루마니아로 돌아갔다 ​같은 민족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일본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끔찍한 원전사고로 건강을 위협받는 일본인들에게 루마니아에서 배운 것을 일본인에게 도움을 주려 책을 펴 냈다고 합니다.

 


 채소와 과일이 어떻게 치매나 암 예방에 도움이 될까?

채소나 과일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항산화 작용을 한다.

뿐만 아니라 폴리페놀 등 피토케미텰이 풍부한데, 이 피토케미털이 치매와 암을 예방한다.​


 이 피토케미컬을 간단하게 섭취할 수 잇는 방법이 바로 주스다.

피토케미컬은 주로 껍질이나 줄기 등에 많이 있는데, 이를 그냥 먹었을 때 보다 더 항산화 물질을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 주스이다.

주스를 만들면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데 만드는 방법은 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


​ 

 

 한 입 크기로 재료를 준비하고 부드러운 재료부터 믹서기에 넣고 물이나 우유 등을 넣고 믹서기를 돌리면 된다.

책에서는 다양한 주스 만드는 방법을 사진과 함께 같이 보여 줍니다.

2016년 4개월을 지나며 몸무게가 3kg이나 늘어 다이어트가 필요해 저녁을 책에서 소개해 준 주스로 대신해 볼까 합니다.

냉장고에 있는 블루베리와 망고를 이용해 블루베리 망고 주스를 만들어 사진 첨부해 보겠습니다.

기대하시라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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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건으로 배우는 한국 근대사
김명교 엮음 / 은금나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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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시작으로 고등학교까지 6년간 역사 수업은 고조선을 시작으로 조선시대까지는 입시를 대비해 무조건 외우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그리고 군사 쿠테타와 민주화항쟁까지 한국 근현대사는 그냥 건너 뛰는 시간이라 딱히 공부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짧은 기간동안 너무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다 보니 이 시대는 외우기를 포기하기도 했었죠.

이 책을 통해 그 많은 사건들에 대해 간략히 요약하여 공부해 보기로 합니다.

 비운의 왕이자 무능한 군주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조선의 강력한 자주를 꿈꾸었고, 조선의 힘을 위해 개화된 문명을 열망했으며, 청의 압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개화파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힘과 일본 공사의 무력까지 등에 업은 개화파는 3일 천하로 끝날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하지만 제대로된 군대도 자금도 실력도 없었던 이들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하락 하지 않았다. 무력으로 일본과 개화파를 몰아낸 청나라 세력은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라는 직책의 위안스카이를 보내 조선의 내정 간섭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를 장악해 나간다.

청나라에 조선을 빼앗긴 일본은 우선 조선에서 쌀과 금, 소가죽 등을 매점하는 형태로​ 이권을 장악해 나간다. 더 이상 빼앗길 것조차 남지 않은 조선의 민중에게는 사느냐 죽느냐만 남았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민란. 드디어 1894년​ 동학 농민 전쟁의 봉화가 올랐다.

전주성까지 점령한 농민군에 대항해 중앙군대가 나서지만 결국 동학군을 토벌할 자신이 없으니 청군에 원병을 요청하라는 상소문이 올라온다.

청군의 파병은 일본의 파병도 이어졌다. 갑신정변때 적은 군사력으로 조선을 잃은 일본에게는 절취부심의 기회였다.

하지만 전주 화약으로 동학 농민 항쟁이 가라앉앗으나, 이를 빌미로 조선 땅에 상륙한 청군과 일본군 사이에는 전우만 짙어갔다.

일본은 조선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조선 임금을 손에 넣고 조선이 '자주국'임을 천명토록해 청나라를 쫓아내려는 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기습으로 청나라 군대를 공격한다.

또한 대원군을 앞세워 청나라에 기대는 민비세력을 제거하고 친일내각을 세워 갑오경장이라는 개혁을 단행한다.

그 개혁은 중국에 대한 조공 중단, 과거 폐지, 노비제도 타파, 일본인 고문관과 군사교관 초빙, 일본 화폐의 국내 통용 및 화폐 제도 도입등을 1차 개혁으로 한다.

청일전쟁 승리 후 제2차 개혁에서는 근대적 상비군의 조직, 경찰제도 확립, 내각 중심 입헌군주제 정부 수립을 꾀하였다.

하지만 민비세력이 러시아 세력에 기대 정치에 복귀하며 배일 정책을 펼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 나라의 왕비를 시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

 일본은 시해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시해 6일 만에 새 왕후를 간택하여 경복궁으로 입궐시킨다. 이를 호위하기 위해 동별영 군사 800여 명이 경복궁에 도달할 즈음​ 뜻밖의 말이 전해 진다.

"입궐하여 나를 구출하라!는 대군주 폐하의 밀조가 있었다." 경복궁 동쪽 협문인 춘생문을 사이에 두고 공격군과 궁궐 수비군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지만 끝내 춘생문을 돌파하지 못했다. ​

이를 계기로 친일 내각은 태양력과 단발령을 강제로 도입하고 독립국가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연호도 제정하였다.

을미사변과 외세의 경제 침탈 그리고 조선의 민족혼이 담긴 전통을 일시에 제거하는 일련의 사태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300여년 만에 의병이 부활한다.

의병의 뒤를 봐주는 세력은 고종과 근왕파 세력이다. 또한 고종은 이이제이 정책으로 일본 세력을 견재할 만한 러시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기 위해 경기도와 황해도 의병을 지원하며 서울 진공작전을 계획하지만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무력이 여자가 타는 가마를 타고, 아니면 경복궁의 후원에 지하 갱도를 이용하여 러시아공사관으로 무사히 피신하게 된다.

아관파천의 계기로 일본이 차지했던 경제적 이권 독점은 러시아, 미국, 독일, 영국 등 열강들의 먹이감으로 전락되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을 지내고 경운궁으로 환궁한 지 8개월만에 연호를 광무로 한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이는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 안에서 이루고 있는 팽팽한 세력 균형 덕분이었다.  ​

하지만 부동항구를 원하는 러시아는 느닷없이 청나라로부터 여순과 대련을 조차하여 점거하게 된다. 러시아는 신속한 점거하기 위해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는 것으로 일본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 이 전략적 제휴는 오래가지 못하고 일본의 여순항 기습 공격으로 러일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일본은 영국과 동맹관계를 맺음으로써 러시아의 강력한 발틱함대가 석탄을 공급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위용을 무력하게 만들어 해상에서 이들을 섬멸하며 러일전쟁의 승전국이 되었다. 러시아와 일본을 중재하기 위한 미국의 도움으로 포츠머스 회담이 열리고 이 회담에서 조선을 일본에 넘긴다는 명시적인 조약에 상호 승인하게 된다. 이후 일본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며 대한제국의 국체를 철저하게 무너뜨려 식민지로 전락시킨다.

 새로운 근대 국가를 꿈꾸던 개화당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지 20년. 외세를 빌려서라도 새로운 나라를 세워보려 했던 젊은 꿈은 그러나 냉혹한 이해가 엇갈리는 19세기 말 열강의 각축 속에 발 디딜 곳 없이 한낱 이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1884년부터 1904년. 그 운명으 ㅣ20년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냉혹한 국제 정세에 대한 대비와 비전 없이, 그리고 경제력을 뒷받침한 리더십이 없는 상태에서 단 하나의 동맹도 없이, 강대국 사이에서 철저히 소외된 조선의 운명은 망국의 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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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을 보다 - 100년 만에 드러난 새 얼굴 다큐북 시리즈 1
황병훈 지음 / 해피스토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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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책을 읽으며, 안중근 의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안중근평전을 빌리려다 이 책을 먼저 선택해 봅니다.

"모두 똑똑히 들으시오. 조선의 국모를 죽인 이토는 무죄. 국가의 원수를 죽인 나는 유죄. 일본법은 왜 이리 엉망이란 말이오?"

 32살의 죽음을 앞둔 조선의 선비이자 의병장인 젊은이의 당당함과 정의로움이 느껴지는 발언입니다. 그것도 일본 법정에서 울려퍼진 그의 음성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저술한 동양평화론, 한국,중국,일본 3개국이 하나로 뭉처 하나의 경제연합체를 이룰 것을 주장한 미래학자.

1993년에 탄생한 EU 보다 무려 90여년 앞선 생각입니다.

​"오늘 내가 당하는 이 일이 생시인가, 꿈속인가, 나는 당당한 한국 국민인데 왜 오늘 일본 감옥에 갇혀 있는 건가. 더욱이 일본 법률의 재판을 받는 까닭이 무엇인가. 내가 언제 일본에 귀화한 사람인가. 이것이 꿈속 세계냐. 만일 꿈이라면 어서 깨고, 확실히 깨려무나."

 ​

 한국 변호인과 외국인 변호인을 변호사로 채택할 수 없도록 만든 일본 법정,

그러나 일본인 국선변호인까지 안중근의 재판에 대한 무죄 항변하지만 이미 일본은 졸렬하게 재판전에 이미 사형을 선언해 놓았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소. 하지만 이번 거사는 동양의 평화를 위한 일이었음을 꼭 알아 주길 바라오."

피고 안중근을 사형에 처한다. 탕, 탕, 탕!

​"이보다 더 극심한 형벌은 없느냐!"

 이 날의 재판 광경을 취재한 영국의 <더 그래픽>에서는 그날의 풍경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30세 젊은 청년 안중근이 그 시대 제국주의의 가장 실세인 이토 히로부미를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시키고,

청년 안중근은 재판의 승리자가 되어 월꼐관을 쓰고 당당히 법정을 나섰다."​ ​- 1910년 4월 16일, 찰스 모리머 기자의 "안중근 공판 참관기"

 그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 분의 뜻과 정신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를 배우고 가리키지 않으면 그의 목숨 값으로 물려 받은 이 땅을 우리는 지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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