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전략 - 불황에도 잘나가는 회사들의 27가지 비책
강성호 지음 / 페가수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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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돈 많이 버는 꿈을 가지고 창업을 시작한다. 
이를 반영하듯 
통계청과 중소기업청의 통계에 의하면 2000년 이후, 창업기업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4년에는 8만 개를 넘은 신생기업이 2015년에는 9만 개를 넘어섰다. 
창업의 열기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생존 기업률은 얼마나 될까?
2015년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1,500여 곳으로 2009년 금융위기 속에 895개의 법정관리 기업보다 약 1.5배 증가한 숫자이다. 또한 대마불사라 믿어왔던 
국내의 굵직한 대기업인 STX, 웅진, 동양 같은 큰 기업도 법정관리를 받는 현실이다.
2013년 현대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에는, 신생기업의 17.3%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58.6%가 3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창업기업으로 10년 이상 사업을 지속하는 경우는 불과 8.2%라고 한다.
이렇 현실 속에서 경영자들은 뭐 새로운 것 없을까? 어떤 사업을 해야 돈이 될까? 경쟁자를 따돌리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한다.

그렇다면 혁신 제품을 개발하면 이런 경쟁에서 자유로울까?
 거빌이 2006년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시장에 출시된 신제품의 실제 가치를 3으로 가정할 경우, 제품 개발한 회사는 이 제품의 가치를 9로 인식한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는 실제 가치의 삼분의 일 정도인 1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개발자와 실제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 인식의 차이는 무려 9배나 된다는 것이다.
결론은 혁신 제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하면 시장을 정복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회사의 차별화된 가치 창출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기는 전략이란 바로 실천하는 행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이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여 유통의 혁신, 협업, 신기술 도입으로 차별화된 전략으로 소비자들을 감동하게 하라고 한다.
미국 및 유럽의 기업들은 자본주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와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단기간 급성장을 한 탓에 기업문화나 전략이 특히 부족하다.
이런 제약조건을 한탄하지 말고,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성장전략인 선두 기업을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잘 활용하여, 우리만의 독특한 차별화를 통해 생존을 넘어 승리하는 기업으로 이름을 날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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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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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아이들과 도보관광으로 양화진 외국인 묘역을 다녀왔습니다.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 중에 왠지 기억에 남았던 헐버트 묘비였습니다.
왠지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 이름만은 뇌리에 명확히 남았습니다.
2017년 설 연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러 서가를 옮겨 가는 도중 '파란 눈의 한국 혼, 헐버트'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라는 부제목에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의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기획전시를 관람하며 34번째 
민족지도자라는 뜻을 다시 깨우치며 헐버트는 어떤 일을 했는지 책으로 만나봅니다.

갑신정변 이후 민족의 교육혼을 깨우기 위해 미국에서 3명의 교사를 초빙합니다.
'육영공원"이라는 근대식 학교를 세우고 고관과 양반 자녀를 특별히 입학시켜 미국인 교사 3명에게 교육을 받게 합니다. 최초의 학교라는 명분으로 고종이 직접 시험을 주관하며 궁궐에서 시험도 치르게 됩니다. 이때 3명의 교사 중 한 명으로 조선에 온 헐버트.
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낀 고종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불침번 속에서 기나긴 밤을 보냅니다. 
3인 1조로 불침번을 당번으로 궁궐을 지킨 헐버트.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루스벨트를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외국인.
그는 미국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모른 채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상원의원, 미국 정부, 대통령을 쫓아다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 3인을 헤이그 특사로 알고 있지만, 4번째 특사인 헐버트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고종의 친서와 특사증을 가지고 제일 늦게 한국을 떠난 헐버트. 
일제는 헐버트가 특사 자격을 가지고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그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합니다.
그 때문에 이준 열사는 일제의 눈을 피해 한국을 빠져나갑니다.
만국평화회의장에서 일제의 방해로 회의장에 입국하지 못한 3명의 특사를 대신해, 언론을 통해 대한제국의 억울함을 폭로합니다. 
이 때문에 고종이 강제 폐위되고 특사 3명에 대한 일제의 궐석 재판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이 선고됩니다.
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일제의 만행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강연을 통해 세계에 알립니다.
또한 언론을 통해 루즈벨트의 만행을 폭로하며 조국보다 더 대한제국을 사랑한 그.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한국 땅을 밟은 헐버트.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를 피해 을사늑약 당시 참정대신이었던 한규설을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취재를 합니다.
또한 비밀리에 고종이 중국 상하이 독일계 덕화은행에 예치한 내탕금 $200,000을 찾아달라는 특사 자격을 위임받습니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위된 고종은 그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헐버트를 통해 인출을 원했습니다.
헐버트가 상하이에 도착하여 예금을 인출할 당시, 그 돈은 이미 조선통감부에 지급된 후였다.
예금의 인출은 고종에게만 지급하겠다던 독일 은행장의 사인과 예치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헐버트는 미국으로 건너가 변호사를 선임하여 이들과 소송을 진행했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시간만 흘러갔다.
1945년 해방을 맞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헐버트는 그가 특사로 위임받아 소지하고 있던 증거들을 이승만에게 인계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교섭으로 내탕금의 존재를 알렸지만, 신생 정부의 미숙 때문인지 유야무야되었다.

1949년 7월 29일, 86세의 노인이 된 헐버트는 이승만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습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마치 유언처럼 자식들에게 말했던 헐버트.
그 말이 현실이 되어 한국 땅에 밟은지 8일 만인 1949년 8월 5일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순국하였습니다.
그의 묘는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과 3부 요인이 참여한 가운데 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헐버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구절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묘비 중앙에 '헐버트 박사의 묘'로 한글로 새긴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이승만 대통령이 새길 예정이었지만 한국전쟁과 하야로 인해 새기지 못하고 빈 공간으로 놓여있다가, 
사연을 알게 된 김대중 대통령이 친필로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조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 고종을 도와 조선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한 헤이그 특사, 헐버트.
그분의 뜻을 기리고 나라를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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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 3 - 불안한 평화
구종서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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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이었던 4대 최씨 일가 무신정권이 끝이 나고, 왕정복고의 희망이 살아났습니다.
항몽이냐 화친이냐, 무권이냐 왕권이냐, 무신이냐 문신이냐, 자주냐 항복이냐의 지긋한 논리 싸움.
이것은 누가 참이고 거짓이냐를 논할 수 없는 이념 논쟁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처참한 도륙과 생산체계의 붕괴로 인한 나라로서의 시스템이 붕괴된 고려.

최씨 정권을 붕괴시킨, 김준. 
그 역시도 무인이라 항몽정책을 유지합니다.
절대권력 앞에서 왕정복고의 당면성은 사라지고 최 씨 일가의 횡포를 고스란히 이어받습니다.
이런 김준을 축출한 임연 역시 절대권력의 꿀을 빨며 왕권에 대항합니다.
결국 임연은 원종을 폐위하고 다른 왕세자를 왕으로 추대합니다.

세자 시절 몽골에 항복하기 위해 갔던 원종은 그곳에서 왕세제인 쿠빌라이를 만나 인연을 만듭니다.
후에 몽골의 다칸이 된 쿠빌라이는 원종이 폐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려에 군사행동을 개시합니다.
몽골의 무력시위에 놀란 임연은 다시 원종을 복위 시키고, 원종은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몽골행을 택합니다.
쿠빌라이에게 1만의 군사를 빌린 그는 강도에 남아 항몽 세력을 이끄는 무신 세력을 축출합니다.

결국 이들은 백성을 위한다는 전제하에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대방과 이념 및 전쟁을 일으킵니다.
어디에도 백성을 위하는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는 아이러니 속에, 과연 백성이 주인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오늘의 민주주의 역시 백성이 주인이라고 하지만 역시 공허한 울림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나라도 정치도 권력도 모두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지금, 우리 백성은 어떻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할까요?
그냥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개 돼지처럼 하루를 살아야 할지, 아니면 이상향을 찾아 떠나야 할지요?
개인의 삶과 목숨을 위해서는 국가라는 큰 힘에 기댈 수밖에 없지만, 그 국가의 횡포에 개인이 맞설 수 있을까요?
인생이라는 아이러니 속에 쏜살같이 흘러가는 인생을 과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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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치유의 길 - 언제까지 질병으로 고통받을 것인가?
앤서니 윌리엄 지음, 박용준 옮김 / 진성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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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여러 기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심장은 뛰고, 폐는 부풀어 올랐다 움츠러들며 공기를 흡입하고, 마구마구 음식을 먹어도 이를 다 소화해 주는 내장기관까지 하나하나 소중한 우리의 몸입니다. 이렇게 불평 없이 자기 일을 꾸준히 해 온 우리 몸 덕분에 오늘까지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런 소중한 몸을 우리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요?

코르크로 만든 뒷굽의 신발을 선택하기 위해 X-선 상자인 슈핏팅-형광 투시경에 발을 넣고 사진을 찍어 방사선에 노출되고,
안정적인 살충제라는 검증되지 않은 DDT에 목욕하고, 채소에 뿌려 먹는 웃지 못할 잘못을 저질러 오지 않았나요?
1900년 초까지 수은이 질병을 치료한다고 믿어 병원에 가면 제일 먼저 수은수를 한 잔 마신 건 어땠을까요?
아직도 알루미늄 캔과 납 캔에 음식물을 담은 통조림이 유통되고, 유전자 변형된 GMO 식품들이 우리 식탁에 오르지 않나요?

이런 잘못된 상식과 섭생을 통해 우리 몸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아픈데 병원에서 종합검진으로도 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난치병 치유의 길의 저자인 앤서니 윌리엄은 의사가 아닙니다. 
4살 때 영의 이끌림을 받아 주위 사람들의 병을 투시하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가 말하는 난치병의 원인은 중금속,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 감염을 들 수 있습니다.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 처음 들어보시죠? 저 역시 처음 들어 이런 게 있었나 싶었습니다.
미국 정체 인구 3억 2천만 명 중 약 70%가 감염된 바이러스로 1964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감염되어 잠복기를 거치다가 우리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점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런 면에서 대상포진과 유사하지만, 혈액을 타고 다니며 여러 장기에 손상을 끼칩니다.
지금까지는 이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 여부를 확진할 수 있는 검진 장비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알지 못해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어떻게 할까요?
영을 통해 계시 받은 앤서니는 28일 치유 정화 식단을 제시합니다.
셀러리, 오이, 사과 주스를 추천한다. 또한 독소 제거를 위해 야생 블루베리와 고수 잎도 추천합니다.
이런 치유 식단이 우리 몸에 좋다는 건 알겠지만, 쉽게 시도하기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의학적으로 규명이 안 된 질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적용해 봄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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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 2 - 참혹한 산하
구종서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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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로 인해 대통령이 탄핵된 오늘, 몽골에 대항한 고려에도 4대에 걸쳐 권력을 세습한 최 씨 세력이 있었으니.....
최 씨 권력의 유지가 중요한가 아니면 처참하게 죽어가는 백성이 중요한가?
강화도에서 나와 몽골 황제에게 고려왕이 직접 항복하라는 몽골의 요청을 번번이 묵살하며 고려는 끔찍한 침략을 당합니다. 
이 과정에서 최충헌으로 시작된 무인정권은 아들 최우를 거쳐 손자 최항에 이어 증손자 최의에까지 이어집니다.
고려의 조정에서는 계속되는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화친할 것인가 아니면 항전할 것인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당연히 최 씨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전을 선택하며 고려 백성들의 삶은 파탄이 납니다.
몽골이 쳐들어 올 때마다 논밭을 불사르고, 식량을 모조리 싸 들고 산성으로 입보하는 청야 전략.
하지만 산성을 포위 당한 채 성 안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게 됩니다.
참 다 못해 목숨을 위해 성문을 열면 몽골군의 처참한 살육에 또 죽어가는 고려의 백성들.


이들 역시 우리의 먼 조상들이었을 텐데, 그들은 이 국난을 어떻게 버텼을까요?
목숨을 건 처절한 항전과 목숨을 살리기 위해 몽골에 귀순하는 것, 과연 어떤 것이 옳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백성을 저버린 고려의 최 씨 정권과 허수아비인 고려의 고종 임금.
비선 실세 최 씨와 그를 비호하고 나선 허수아비 대통령.
과연 그들의 눈에는 굶어 죽어가는 칼에 죽어가는 백성이 보이기나 할까요?

백성이 주인인 세상은 고려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입니다.
과연 백성을 위한 정치와 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그리고 저 북쪽에 있는 김 씨의 세습도 아마 4대까지는 가지 못 할 것으로 보이네요.
역사는 이래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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