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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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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아이들과 도보관광으로 양화진 외국인 묘역을 다녀왔습니다.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 중에 왠지 기억에 남았던 헐버트 묘비였습니다.
왠지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 이름만은 뇌리에 명확히 남았습니다.
2017년 설 연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러 서가를 옮겨 가는 도중 '파란 눈의 한국 혼, 헐버트'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라는 부제목에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의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기획전시를 관람하며 34번째
민족지도자라는 뜻을 다시 깨우치며 헐버트는 어떤 일을 했는지 책으로 만나봅니다.
갑신정변 이후 민족의 교육혼을 깨우기 위해 미국에서 3명의 교사를 초빙합니다.
'육영공원"이라는 근대식 학교를 세우고 고관과 양반 자녀를 특별히 입학시켜 미국인 교사 3명에게 교육을 받게 합니다. 최초의 학교라는 명분으로 고종이 직접 시험을 주관하며 궁궐에서 시험도 치르게 됩니다. 이때 3명의 교사 중 한 명으로 조선에 온 헐버트.
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낀 고종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불침번 속에서 기나긴 밤을 보냅니다.
3인 1조로 불침번을 당번으로 궁궐을 지킨 헐버트.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루스벨트를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외국인.
그는 미국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모른 채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상원의원, 미국 정부, 대통령을 쫓아다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 3인을 헤이그 특사로 알고 있지만, 4번째 특사인 헐버트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고종의 친서와 특사증을 가지고 제일 늦게 한국을 떠난 헐버트.
일제는 헐버트가 특사 자격을 가지고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그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합니다.
그 때문에 이준 열사는 일제의 눈을 피해 한국을 빠져나갑니다.
만국평화회의장에서 일제의 방해로 회의장에 입국하지 못한 3명의 특사를 대신해, 언론을 통해 대한제국의 억울함을 폭로합니다.
이 때문에 고종이 강제 폐위되고 특사 3명에 대한 일제의 궐석 재판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이 선고됩니다.
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일제의 만행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강연을 통해 세계에 알립니다.
또한 언론을 통해 루즈벨트의 만행을 폭로하며 조국보다 더 대한제국을 사랑한 그.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한국 땅을 밟은 헐버트.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를 피해 을사늑약 당시 참정대신이었던 한규설을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취재를 합니다.
또한 비밀리에 고종이 중국 상하이 독일계 덕화은행에 예치한 내탕금 $200,000을 찾아달라는 특사 자격을 위임받습니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위된 고종은 그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헐버트를 통해 인출을 원했습니다.
헐버트가 상하이에 도착하여 예금을 인출할 당시, 그 돈은 이미 조선통감부에 지급된 후였다.
예금의 인출은 고종에게만 지급하겠다던 독일 은행장의 사인과 예치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헐버트는 미국으로 건너가 변호사를 선임하여 이들과 소송을 진행했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시간만 흘러갔다.
1945년 해방을 맞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헐버트는 그가 특사로 위임받아 소지하고 있던 증거들을 이승만에게 인계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교섭으로 내탕금의 존재를 알렸지만, 신생 정부의 미숙 때문인지 유야무야되었다.
1949년 7월 29일, 86세의 노인이 된 헐버트는 이승만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습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마치 유언처럼 자식들에게 말했던 헐버트.
그 말이 현실이 되어 한국 땅에 밟은지 8일 만인 1949년 8월 5일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순국하였습니다.
그의 묘는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과 3부 요인이 참여한 가운데 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헐버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구절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묘비 중앙에 '헐버트 박사의 묘'로 한글로 새긴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이승만 대통령이 새길 예정이었지만 한국전쟁과 하야로 인해 새기지 못하고 빈 공간으로 놓여있다가, 사연을 알게 된 김대중 대통령이 친필로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조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 고종을 도와 조선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한 헤이그 특사, 헐버트.
그분의 뜻을 기리고 나라를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