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에게 준 단 하나의 선물, 재능. 하지만 이게 사람을 죽이는 재능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신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신부에게 말이다. 착하게만 살아온 신부는 사람을 저주하고 악의를 품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강간범이란 누명을 쓰고 자살하자 그 상대방인 외숙모를 죽이겠다는 앙심을 품었다.
그때부터 발현된 그의 재능. 웹툰 데스노트처럼 그가 살의를 품은 대상은 어떤 사고를 당해 하나같이 죽어나간다.
어린 소녀를 성폭행한 범죄자, 뱀 술을 담가 팔던 집주인, 은둔형 유튜버의 죽음 등 그가 살의를 품은 사람이 죽어가자 그는 그의 능력을 알게 된다.
착하디착한 신부는 자신이 살의를 품었기 때문에 그들이 죽어 나갔다 자책하며 자살하려 시도하지만 이도 쉽지 않다.
자신의 재능을 저주하며 신부로서의 길을 포기한 채 평범한 삶을 살아가리라 작정하지만 이마저도 사이비 종교의 마수에 걸려들게 된다.
사도라 불리는 사이비 종교의 책임자는 신부의 이런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스카우트한다.
그의 출현에 위기감을 느낀 사이비 종교의 목사는 주인공을 제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낸다.
그의 출생의 비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여서 감옥에 갔고 외숙모를 강간한 파렴치한 사실을 들추어냈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신부는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와 안면이 있는 절에 귀의하며 세상과의 인연을 끊는다.
만약 나에게 이 같은 재능이 주어졌다면, 세상의 악을 심판하는 구원자가 된 듯 착각하며 세상을 살았을 것 같다.
하긴 소설이니까 이런 재능이 주어졌다는 가정이 성립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세상과 인연을 끊은 주인공에게 손길을 내민 건 다름 아닌 그를 적으로 생각하던 목사다.
사도의 사랑이 주인공에게 쏠리자 그를 아예 없애기 위해 그가 피신해 있는 절을 찾아 나섰다.
우연히 산 아래 있는 호숫가에서 자신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 사도를 원망하던 목사는 말도 안 되게 호수에 빠져 죽게 된다.
이 부분은 조금은 어설프고 작가의 의도가 눈에 띄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억울한 중생의 죽음을 애도하도록 부주지 스님과 행자인 신부가 독경을 하러 갔다가 사이비 종교의 지방 교구장에게 들키게 된다.
목사의 죽음에 분개한 교구장은 산에 불을 질러 주인공을 살해하려 하는데...
산불 속에서 동자승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은 불속으로 뛰어들게 되고 간신히 목숨을 구하게 된다.
어떡하든 종교를 배반한 이단자를 처단하기 위해 사이비 종교는 그를 납치하게 된다.
잔혹한 고문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되살리던 주인공은 사도의 손에 이끌려 구원을 얻게 된다.
생명의 은인이자 구원자인 사도, 그는 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복수를 위해 그의 삶을 이어오고 있었다.
사이비 종교를 통해 자신의 세력을 넓혀 왔지만 자신의 뜻을 펴기엔 힘이 부족했다.
남북한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통해 재단의 자금을 확보한 사도는 비밀리에 북한의 지도자를 남한으로 초대하게 된다.
이때 그를 죽여 남북한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리길 바랐기에 주인공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주인공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저주함으로써 간단히 죽여버리길 희망했지만 주인공은 이를 거부했다.
세상에 어떤 희망도 그렇다고 믿고 의지할 데도 없는 사람이 이런 감정을 품을 수 있을까?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고, 직업을 주고, 삶의 의미를 갖게 해 준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있을까?
소설을 끝맺기 위해 사도의 거친 폭행과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려 죽음을 택하는 주인공의 행동으로 마무리한다.
주인공은 쉽게 죽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롯데 타워에서 떨어진 주인공은 폭우에 휩쓸려 석촌호수에 떨어져 삶을 이어간다.
신념만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어떤 이들은 신념을 위해 죽지만, 어떤 이들은 그 신념에 의해 죽기도 한다.
이렇듯 자살이란, 자신이 선택하는 것만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 의해 주어지기도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계속 살아가는 것, 버티는 것에 대한 선택도 주어진다.
불교엔 이런 말이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굳이 버티며 한곳에 묶여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가족, 회사, 군대, 종교, 그리고... 신. 그것은 모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만둘 수도 있고, 다른 곳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것 또한 내 선택이다.
천주교, 사이비 종교, 불교,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조금은 이해하기 쉬운 소설이지만 친절한 설명에 쉽게 이해 간다.
소설은 있을 법한 이야기를 허구를 통해 이끌어가지만 이 소설은 웹툰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여러 이야기가 겹치며 읽는 내내 박진감과 재미를 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