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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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마다 소설가들은 훌륭한 작품들을 써내지만, 소설가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는 한다. 하지만 후세의 소설가는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고 과거의 고전을 소재로 새로운 창조물을 완성하게 되고, 그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새로움과 관점을 안겨주곤 한다. 바로 이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처럼.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출발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이다. 우리는 여주인공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의 사랑에 주목하지만, 진 리스는 소설에서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로체스터의 첫 부인 '버사'에 주목한다.

'제인 에어'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버사는 서인도제도 출신이며, 로체스터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와 형의 농간에 걸려 서인도제도까지 가서 버사와 결혼한다. 하지만 로체스터에게 버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부터 광기를 물려받은 미친 여성일 뿐이다. 로체스터에게 버사는 책임감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후세의 소설가 진 리스는 그런 버사에게 주목했다. 진 리스 또한 서인도제도 출신 여성이었고, 그러하기에 서인도제도에서 살고 있는 크리올 여인들이 가지는 미묘한 사회적 위치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진 리스는 '제인 에어'에서 쓰여진 버사의 서사에 격분했고, 결국 버사의 이야기를 다룬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완성해냈다.

이 소설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인종에 따른 여성들의 계급관계다. 샬롯 브론테 또한 '제인 에어'에서 19세기 가부장사회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매력적인 여성을 그려내지만, 제인 에어는 결국 백인 여성이며, 그녀는 버사라는 크리올 여성에 대한 경멸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즉 그 당시에 깨어있는 여성이라 할 수 있는 샬롯 브론테에게도 식민지의 혼혈 여성에 대해서는 조금의 이해력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식민지는 단지 수탈의 대상이었고, 식민지 사회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샬롯 브론테에게도 당연한 사고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같은 여성임에도 제국의 여성과 식민지 혼혈 여성간에도 계급이 존재했던 것이다.

진 리스는 이것을 파악했고, 버사를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불행한 삶을 살다 간 매력적인 여성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녀는 결코 제인 에어에 꿀리지 않는 강인한 여성이었으나, 제인 에어와는 달리 가부장제와 제국주의에 의해 희생되어 버리고 만다.

솔직히 기존 소설을 다시 해석해 새로 써내는 소설들을 몇 번 만나봤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소설은 본 적 없었다. 정말 창의적인 재해석이 어떠한 것인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대단한 소설이다. 나도 이런 날카로운 시선을 갖고 싶은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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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5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정말 압도적이죠. 저도 이 소설 읽으면서 너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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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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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는 주로 역사의 인물들에서 영감을 얻는가 보다. 내가 김훈 작가를 알게 된 계기인 '칼의 노래'에서부터해서 여러 작품들이 실존 인물들을 소재로 쓰여졌고, 이 책 '흑산'또한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정약전이라 해서 그에 대해서만 쓴 것은 아니다. 정씨 삼형제는 모두 천주교와 얽혀 있었고, 그리햐여 이 책은 한국 천주교 초기의 신유박해가 주요 시대배경이 된다. 특히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이야말로 정약전,정약용 형제의 조카사위 아니었던가.

즉 이 소설에서는 왜 조선인들이 천주교에 이끌릴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어떻게 박해를 받게 되었는지가 자세히 나온다. 특히 정약전이 유배가는 과정에서나 흑산에서의 삶에서나 부정부패가 관료사회에 뿌리깊이 퍼져 있고, 정부는 제대로 된 통치를 하지 못하는, 그리하여 백성들이 혹독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잘 나타나 있어, 결국 정치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천주교를 새로운 이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정약용도 마찬가지였거니와, 정약전도 절망에 주저앉지 않는다. 그는 결국 흑산에서 새 삶의 소명을 찾고 마침내 '자산어보'를 세상에 남길 의지를 가진다. 풍파가 몰아치는 세속사에서도 그는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것이다.

'흑산' 또한 김훈의 작품이며, 그리하여 역사속에서 자신의 몫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김훈답게 생생하게 그려낸다. 최근작에서는 안중근을 살려냈는데, 그 다음에 그릴 인물은 또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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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비너스 펭귄클래식 61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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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이 소설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이 책을 읽었음을 밝힌다. 나는 단지 알라딘중고서점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구입한 죄밖에 없다.

내가 이 사실을 먼저 밝히는 이유는, 바로 이 소설에서 '마조히즘'이라는 단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성 '자허마조흐'에서 마조이즘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즉, 이 소설은 마조히즘에 대한 이야기다ㅡㅡ;;;

뭐, 사랑의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고, 새디즘이 존재하니 마조히즘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겠다. 다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주인공 제베린이 변태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ㅡㅡ;;; 특히 여주인공 반다가 주인공을 존중해줌에도 굳이 반다에게 자신을 학대(?)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반감마저 느껴졌다. 즉 제베린은 반다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반다에게 투영된 자신의 환상을 사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결론 : 읽은 후의 느낌이 참으로 찝찝하다. 나는 절대로 새디스트나 마조히스트는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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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03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이름은 들었는데 타 출판사에서 90년대에 나온 후 절판된 줄 알았는데 펭귄에서 재 출간했네요.님 말마따니 변태스러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펭귄에서 출간할 정도면 서구에선 클래식한 책으로 취급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