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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 기억
아니 에르노 지음, 백수린 옮김 / 레모 / 2022년 11월
평점 :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아니 에르노에게 적지않게 놀랐다. 어쩌면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를 깊숙하게 끄집어낼 수 있었을까?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은 소설로 쓰지 않는다 하였다. 즉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일게다.
주인공은 십대 후반 아르바이트 삼아 캠프에 조교로 참석하였다가 지도교사에게 성폭행당한다. 하지만 그녀는 지도교사가 자기를 좋아해서 자기와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하지만 캠프가 끝난 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대상으로 추락했던 상태에서 점차 주체의 자리를 회복해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저자는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나의 20대 초반이 너무나 기억났다. 아이와 어른 사이의 혼란스러운 시기, 여러가지 일들이 나에게 닥쳤고 그 상황에서 나는 내 현실을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아니 제대로 된 판단이 안되었었다. 저자 또한 부당한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자신이 대상으로 추락한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싶어 했었다.
내가 놀라운 건 이 사건은 저자에게 너무나도 수치스러웠을 것인데 이를 깊숙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 고통스러움과 수치심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용기이고 그녀가 계속해서 성장해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년의 저자가 18세의 자신에 대해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건이 그녀에게 고통스러웠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나 또한 10대 후반~20대 초반에 이런 혼란스러움을 겪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여자아이들에게는 이런 시기들이 닥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다. 저자가 여자를 대상으로 보는 가부장적 사회의 압박 속에서 자신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나 또한 사회적인 기준에 내 자신을 맞추기 위해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었다. 즉 여자아이들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기준이 사회적으로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일 게다.
따라서 10대 후반의 여자아이들에게 이것은 여성선배의 자기극복기이며, 또한 응원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저자가 자기 주체의 자리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설령 현재 무시무시한 수치감에 빠져있을 지라도 열심히 자신을 성장시켜나가다보면 언젠가는 스스로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아니 에르노는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