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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질병 ㅣ 이후 오퍼스 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일단 나는 수전 손택이 이렇게 심하게 아팠는지는 몰랐다. 나름 독서인으로서 수전 손택의 이름이야 들어봤지만, 그리고 '수전 손택의 말'이라는 책도 읽어봤지만, 이 책을 통해 그녀가 4기 유방암과 자궁암을 앓았고, 결국은 백혈병으로 사망한, 그야말로 질병이라는 것에 대해 직접 몸으로 겪었고, 질병으로 인한 고통도 익히 아는, 그런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두 파트로 나뉘어지는데, 1부인 '은유로서의 질병'은 암환자로서 자신이 겪은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2부인 '에이즈와 그 은유'는 1부에서의 문제의식을 보다 확장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유방암을 앓았을 당시 사람들은 암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하여 선뜻 이야기하지 못하는, 즉 은유로서 그 병을 다루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과거 역사에서 우리가 나병이나 페스트, 매독, 결핵과 같이 일종의 편견이자 어쩌면 신의 처벌로 생각하는 사고로 이어져 그 병을 앓는 환자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했다. 이것은 특히 2부에서 다룬 에이즈에 대한 시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나는 수전 손택과는 다른 세대이기에 암에 대한 편견은 경험한 적 없으나, 1980~1990년대를 휩쓴 에이즈 환자에 대한 공포와 경멸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는 대단한 사회적 현상으로, 톰 행크스가 주연한 '필라델피아(1994년작)'에서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다. 아니, 2020년 코로나 사태 때 공중방역을 어긴 자들에 대한 강한 분노와 경멸이 우리 사회에 팽배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앓고 있는 정신과적 질환으로 인해 직장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객관적으로 나의 근무 환경이 대단히 열악하고 부당하였음에도 결국은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 된 것이 아마 이 책의 사례와도 연결되지 싶다. 분명 직장 근무 환경이 문제가 있음에도 내가 원래 병이 있다는 이유로 공무상 병가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내가 처음 병을 앓게 된 이유도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통 사람이 견딜 수 없는 힘든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수전 손택이 이야기하였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질병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은유를 덧붙이고, 그 은유들은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점차 다른 질병으로 그 은유의 대상을 바꾸고 있다.
수전 손택은 이 책을 통해 질병은 질병일 뿐이며, 그 투명성을 가리는 이미지를 걷어내야 함을 말하고, 그러한 이미지를 양산해낸 사회를 비판한다. 나로서는 자신이 겪은 질병에서 이러한 사고를 엮어내는 수전 손택의 지성이 대단히 부러울 따름이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