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 작품 세계에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 소설 '황야의 이리'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소설의 주인공 하리 할러는 공격적이고 야생적인 이리의 영혼과 교양을 갖춘 지식인의 영혼이라는 두 영혼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인데, 그만큼 분열적이고 예민하고 민감한 천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시민적인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독하게 세상을 떠도는 사람인데, 그 사회는 제2차세계대전 전의 미쳐돌아가는 시민사회이고, 그는 그 사회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데미안'에서처럼 자신과 통하는 타인과의 만남과 모험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이는 삶과의 화해이고 자아정체성의 회복이다.
나는 이 소설을 거대한 우의로 읽었고, 어쩌면 이 소설이 '데미안'보다 더 위대한 소설이지 않나 생각한다. 나로서는 헤세 자신이 제1차 세계대전 패배 후의 독일 사회에 대한 내면의 고민을 거장답게 정말 훌륭한 소설로 승화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헤르만 헤세에게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야말로 대작. '데미안'과는 다른 관점에서 헤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