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카와 사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허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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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달되어 좋은 점은, 과거같으면 기록을 남길 수 없었을 사람들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거다. 그리하여, 우리가 과거에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을 소설들이 탄생하게 된다. 바로 이 소설처럼.

이 소설의 저자 이치가와 사오는 중증장애인이다. 하지만 기술의 도움으로 소설을 쓸 수 있었고, 마이너장르를 위한 웹소설을 쓰며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장르적 한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장애 생애를 바탕으로 이 '헌치백'을 썼고, 이 소설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다.

'헌치백'은 그야말로 충격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샤카는 중증 척추 장애인으로 부모님의 유산 덕분에 돌봄을 받는 삶을 산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숨겨진 직업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야한 웹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녀는 제대로 외출도 할 수 없는 몸으로,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괴물이라 칭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임신을 해보고 싶고, 출산은 불가능하니 중절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녀의 비밀을 남성 간병인에게 들키게 된다.

일단 이 소설은 주인공이 마이너장르 웹소설가임에 따라, 소설 시작부터 인터넷 밈과 은어가 난무하며 적나라한 성적 묘사가 등장하지만, 읽다보면 작가가 그야말로 자신의 몸으로 써냈다는 것이 느껴진다. 중증장애인의 복잡한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중증장애인 또한 한 사람의 온전한 개인임이 너무나 잘 나타난다.

이 소설은 정말 작가가 중증장애인이었기에 쓸 수 있는, 일반인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의 소설이고, 나는 오래간만에 머리가 띵한 울림을 느낀 소설이다.

힘든 삶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내준 작가 이치가와 사오에게도 감사하지만, 또 그녀와 같은 사람들도 이렇게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게 해준 현대의 기술발전도 감사하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이렇게 글로써 느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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