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스트 걸 -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의 전쟁, 폭력 그리고 여성 이야기
나디아 무라드 지음, 제나 크라제스키 엮음, 공경희 옮김, 아말 클루니 서문 / 북트리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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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폭력의 마지막 희생자이길 바란다."

이 책의 제목이 이 문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카메라가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며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 그녀의 얼굴은 자연스럽지만은 않다. 사진 전체가 회색이다. 그녀의 삶이 표지의 회색과 같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그녀는 IS라는 단체로 성 노예로 살았다고 주장했다. IS는 무장단체로 2001년에는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폭발하면서 IS란 단어는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2019년 현재 와해되었다고 하며(프롤로그 각주 참조), 우리 기억 속에서도 예전 같은 강렬한 두려움을 주지 않은지 오래여서 이라크에서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해왔다 사실에 놀랐다. 전 세계적으로는 여성의 인권이 점차 신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는 동등한 인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나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디아는 이라크 코초지방에서 살았다. 야지디라는 종교 공동체로 그 영향과 테두리 안에서 살았다. 사실 여기서도 그들의 문화라지만, 여성의 인권이 딱히 나은 편은 아니다. 일단 여성은 피임할 수 없었다. 개종을 해서도 받아서도 안되는 폐쇄되고 한정적인 종교인구 상황에서 여성은 출산의 도구였다. 출산 후 바로 농사일에 종사해야 했다. 여성이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다. 남편에 따라서 자신의 경제력이 좌지우지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진 나디아 가족 야지디 공동체는 그들만의 문화와 풍습을 유지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았다. IS가 고초를 점령하면서 그들의 공동체는 재앙을 맞는다. 남자들은 집단학살 당하고, 여자들은 성적으로 IS 남자들의 본능을 채워주는 성적인 도구로 살아야 했다.

 

전쟁은 참혹하다.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건 다반사이고, 일궈왔던 소유와 일상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데 총력을 다하느라 여념 없었던 것 같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도망가는 야지디 사람들이 심정이 어떠했을지 글로나만 짐작할 뿐이지만 끔찍했다. 지켜줄 줄 알았던 부대는 배신하고, 자신을 가르쳤던 교사마저 나디아와 가족을 모른 체했다. 사담 후세인을 처형했던 미국은 더 이상 그들의 내란에 관심 갖지 않았다. 야지디 자신들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IS가 지시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지 않으리라 희망을 품었지만, 결국 그들은 IS로부터 자신들의 가족과 거주지, 그리고 전통을 잃었다. IS 단체는 그야말로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토라를 자신의 구색에 맞게 하여 어겼으며, 자신의 본성과 폭력성에 충실하여 다른 이들을 대했다. 이유 없이 폭행을 가하며, 감금하고 상대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는 걸 당연시 여긴다. 2019년 현재를 사는 나로선 이런 행동들을 정상적으로 볼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 일본군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렇게 당했고, 이런 심정이셨겠구나 싶어 많이 생각이 났다. 야지디 여성 또한 자신이 당한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자신들은 성폭행을 당했고, 개종을 당했음에도 종교적인 규율에 따라 사회적으로 실제로 죽임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과 이별을 하고, 죽음을 목격하는 일들이 읽으면서도 안타까웠다. 굶주림과 가난, 그리고 IS 점령 이후 모든 것이 사라져버려 무기력해져 버린 야지디 공동체의 상황이 낙담스러웠다. 죄 하나 없는 주민들이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지, 이슬람과 다른 종교라고 해서 노예 대우를 받으며, 살해되어야 하는지 그 비참함을 이 책을 통해 목격했다. 이 책을 읽을 당시는 북한에서 단거리 발사체를 쏘아서 한반도에는 다시 한번 공포감이 감돌았다. 그래서 그들의 상황이 마냥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이라크 및 야지디가 내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야지디 공동체와 그들 종교의 모습을 처음 알 수 있었다. 뉴스에서만 부분적으로 봤던 이라크의 상황이 정리되었다. 저자는 세부적이고 정확하게 지명, 인물, 상황을 표현했다. 그 정신없는 순간들을 어떻게 저렇게 상세하게 기억하며, 기록할 수 있었을까 싶다. 문장도 짧은 편이어서 읽기 좋다.

 

전쟁의 상처와 이후 상황은 되돌릴 수 없다. 지속해 오던 문화와 전통 또한 전쟁의 총 부림 앞에 회복은 어렵다. 상황을 이전처럼 복구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의 희생과 상실을 막을 수 있다. 아마 저자도 그러한 희망을 갖고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자신을 지켜줄 나라도, 공동체도 없음에도 올바르지 않은 행위와 불합리한 인권 현실을 고발하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나디아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제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이 그리고 전 세계인들이 판단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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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마침내 독서 독립 - 0세부터 시작하는, 스스로 책 읽는 아이로 키우는 바른 독서법
조지희 지음 / 책밥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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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유행이 아니다. 한 번 반짝했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달동안 100권의 그림책을 몰아서 읽어주고 나서 시

들해지는 것보다는 매일 한 권이라도 꾸준히 읽어주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남들이 책을 많이 읽어준다고 하니, 나도 해야지.'가 아니라, '남들은 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일까?'를 고민해 봐야 한다. 고전 읽기, 미디어 독서 등 유행하는 독서 방법이 있다면, 내 아이에게 적용하기 전에 우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그다음에 수용하기를 권한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도 마찬가지다. ... 내 아이에 맞는 독서법을 찾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을 참고하되, 가장 우선적으로 아이가 즐거워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p.16

책을 읽으며 떠오른 궁금증을 주로 묻는 아빠의 질문은 아이가 문제 해결을 위한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반면 아빠보다 학구적인 엄마의 질문은 아이가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배경지식을 쌓는 데 도움을 준다.

p.27

책 선택의 주도권은 가정에서는 아이가, 밖에서는 부모가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집 안에 있는 책들은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한번 선별된 책들이기 때문에 아이가 자유롭게 선택하게 한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는 유아의 경우 어린이 서적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책을 볼 수 있도록 지도한다.

p.37

어떤 책을 언제까지 읽어줘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바로 아이에게 있다. 아이가 원할 때까지 읽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며, 아이가 원하는 책을 우선적으로 읽어주는 것이 유아기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독서 방법이다.

....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든 결과적으로는 책 읽어주는 부모와 책 읽은 아이가 남는다. 단, 조건은 읽어준 내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p.38

... 부모는 책을 선택할 때만큼은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보길 바란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글 대신 그림만 감상해보자. 그림만으로도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그 책은 아이들도 즐겨볼 수 있는 확률이 높다.

p.49

한글을 뗀 아이는 스스로 책을 읽는 시간도 필요하다. 처음에는 문장에 대한 이해 없이 글자를 읽는 것에만 급급해 할 수도 있다. 음독을 하는 것이 스스로 읽는 연습을 통해서 문해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 단, 너무 많은 양을 음독하게 하기보다는 한 페이지에 있는 글의 양에 따라서 1-4페이지를 소리 내어 읽게 한다. 이 과정에서는 다 읽고 난 다음에 어떤 내용이었는지 가볍게 물어보되, 잘못 읽은 단어를 지적하는 것은 삼가자. 읽었으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에는 읽는 양을 줄여서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도록 한다.

p.142

아이가 책을 골랐따면, 왜 이 책이 읽고 싶은지 이유를 물어보자. 그 책을 반복적으로 많이 봤던 책이라 하더라도 왜 보고 싶은지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단순히 "재미있어서요."와 같은 대답이라고 하더라도 책 읽어주기를 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선택한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독서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책 선택에 있어서는 그 누구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나의 관심사, 나의 생각이 선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p.151

유아에게 배경지식을 넓혀주는 책 읽기를 지도하려고 한다면 세 가지를 기억하자.

첫째, 직접 경험이 가능하다면, 시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그리고 경험한 내용과 책의 내용을 비교해본다.

둘째, 주제와 관련된 영상물을 활용한다. 다큐멘터리와 같은 전문성 있는 프로그램도 좋다.

셋째, 책을 읽은 후 새로 알게 된 점과 느낀 점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p.175

많은 부모들이 독후 활동이라고 하면 학습적으로 다가가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보다는 책을 읽고 난 후의 생각과 느낌이다. 이 또한 아이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내향적인 성격이라 어색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부모가 먼저 예시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아이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선정한다면 대부분 해결되는 문제다.

p.194

....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전에 "책을 읽고 난 다음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알려줘"라고 했을 때와 미리 질문을 주지 않고, 책을 읽어주자마자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어떻게 다를까요?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하고 책을 보는 것과 그냥 책을 보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책을 읽어주기 전에 이 책 내용에서 소개한 '독서 전 활동'을 해본다면 아이가 생각과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p.197

처음 음독할 때는 아이가 좋아하는 책부터 선택하여 읽도록 하고, 점차 새로운 책들도 바로 음독해보는 연습을 하도록 하자. 이 과정에서 가장 독이 되는 것은 부모의 지적이다. 반대로 아이가 잘 해냈을 때, 잊지 말고 칭찬을 꼭 해주자. 특히 정확하게 읽었다는 결과보다는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한 태도를 칭찬해준다면, 음독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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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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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현실에 만족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세대론보다 모든 생물의 특징인 '적응'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결국 변한 건 세대라기보다 시대다.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하에서 행복을 추구한다.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 행복 전략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고, 인간이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소소하지만 다양한 행복을 추구하며 타인과의 비교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현명한 방법이다. 문제는 그것이 지속 가능한가다.

p.118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

p.119

...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도출하는 것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과격한 목소리들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반대 의견을 가진 집단의 반발과 결속만 강하게 만들어 의견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한 진영 내부에 생기는 작은 균열에서 변화의 지점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균열을 만드는 것은 같은 진영 내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고 부드러운 '다른'목소리들이다. 작은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선거와 같은 큰 세력 다툼의 시기를 전후하여 집단 내부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기보다 슬쩍 다른 길로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거창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만 고집하지 않고 당장 개선 가능한 작은 방법들을 바로 적용했고, 작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켰다. 영웅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p.162-163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감히 대단한 명답을 제시해 분쟁을 해결했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사람이 멍석만 깔아주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얻기는 아주 어렵고, 잃기는 아주 쉽다. 오직 진심만이 그 신뢰를 얻는 열쇠일 것이다. 조정 달인의 비결은 아마도 이것이었던 것 같다.

p.174

한국 사회의 윤리관이 현대 민주 사회의 시민의식보다는 유교적 가족공동체의 인륜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는 가족 윤리를 국가와 사회의 기본 윤리로 삼았다. 아비가 극악무도한 죄인일지라도 그것을 고발한 자식이 더 큰 죄인이 된다. 군사부일체라 하여 지도자, 스승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윗사람의 허물을 들춰내는 건 그 허물보다 더 큰 잘못이 되고 패륜으로 지탄을 받는다. 가족의 잘못은 감싸고 숨겨주는 것이 옳은 일이 된다. 전통 농경사회의 이러한 윤리관이 아직도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필요로 한다. 잘못을 은폐하는 문화는 투명성도 효율성도 침해할 뿐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치료가 가능했던 초기 단계의 작은 종양이 말기 암으로 진행되어 조직을 썩게 만든다. 파렴치한 성추행 교수들이 수십 년째 어린 여제자들을 건드리며 자리를 보전하곤 한다.

p.211

누가 당신에게 이익을 주고 누가 당신에게 손해를 끼치는지 정신 차리고 보아야 한다. 내부고발자가 시민 이익의 대변자로 보호받고 보상받아야 권력자들이 긴장한다. 발각될 리스크를 고려에 넣도록 만들어야 대범한 도둑질을 못한다. 조심이라도 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감시다. 눈먼 의리가 아니다.

p.213

북유럽 사회의 그림자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수입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내는 데다 물건 가격에 붙는 부가세 같은 간접세도 높아 결국 모두가 비슷비슷 검소하게 살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대박이나 야심, 화려한 성취 같은 것이 어려운 협동조합 사회에 가깝다는 점이다. 보컬 그룹 아바, 이케아 창업자같이 자기 재능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개인들이 세금 때문에 국적을 바꿀 정도다. 하물며 이 징글징글하게 경쟁적이고 지기 싫어하며 물질 만능주의적인 다이내믹 코리안들이 답답해서 견딜 수 있을까.

p.255

북유럽 전역에서 관습법처럼 통용되는 '얀테의 법'이라는 것도 있다. 1933년 산데모제라는 노르웨이 작가가 이를 정리하여 소설 속 가상의 덴마크 마을 얀테의 관습법으로 발표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지 마라, 남보다 더 낫다고 남보다 더 많이 안다고 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을 비웃지 마라'다....

p.260

선진사회를 참조하는 일은 실제로 사회가 더 낫게 바뀌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에 관한 케이스 스터디일 뿐, 좋아 보인다고 3D 프린터로 뽑아내듯 바로 복제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참고할 만한 모델사회에 관해 고민하기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의 밑그림 자체에 해당하는 나라들이다. 우선, 중국의 부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의 지정학적 환경 탓에 좋든 싫든 우리는 중국의 영향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에는 인류의 미래 자체를 바꾸는 엔진 역할을 하는 나라가 있다. 여전히, 미국이다.

p.262

... 과연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은 어떻게 배양되는가.

보통은 '사회 지도층,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거나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등등의 답이 나올 듯하다. 내 의견은 '작은 책임부터 부담 없이 맡을 수 있어야 한다'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한 집단주의 문화의 사회다. 나서는 걸 죄악시하고 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누가 뭘 잘했을 때의 칭찬보다 그가 뭐 한 가지 잘못했을 때 그러면 그렇지 하고 달려들어 돌팔매질하는 광기가 훨씬 뜨겁다. 당연히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책임을 맡지 말아야 한다.

p.267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Dare to be an optimist.

p.268

우리 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물론 이런 가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현실에서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자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런 문화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책임자를 결정 장애와 도피 심리를 몰아넣는 측면이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영미식의 실용주의 가치관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전제 아래 해야 할 의무를 다 이행했다면 과감하게 면책한다. 결과가 제아무리 중대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게 하는 사회의 비결인지도 모른다.

p.269

낯선 것에 대한 공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사회가 보여준 것은 과학적 판단을 존중하는 합리주의, 어떠한 여론의 비난을 받더라도 합리적 근거와 소신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들,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함부로 책임자와 대응 방식을 바꾸지 않는 뚝심 있는 시스템, 그리고 단 한 명의 자국민도 버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연대감을 표시하며 국민을 안심시킨 리더십이다.

한 사회의 성숙함은 위기 속에서 비로소 분명히 모습을 드러낸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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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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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잘 쓰는 법'을 다룬 이 책을 읽고 이 리뷰를 쓴다는 게 괜히 부담스러워진다. 저자가 생각하라고 하는 '누가 읽었으면 좋겠나?'를 생각하는데 나는 그조차 어렵다. 그냥 대강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 이 읽어주시길.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없다고 저자는 제목에서부터 말한다. 그렇다 해도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많고, 나는 너무 못 쓴다'라는 결론은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써봐야지 써보자! 쓰자!라고 손에 힘을 주어 쓰고 또 쓴다. 아직은 생각도 없고, 주의하며 썼다가 또 내 고집과 습관으로 망작으로 완성할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2000년부터 씨네 21 기자로 일하고 있다. 팟캐스트와 라디오에 출연하며 여러 책을 소개해 왔다. 다수의 책도 썼다. 난 저자를 라디오에서 처음 알았다. 그녀의 명확하며 진솔한 말, 깊이 있는 내용을 난 좋아한다. 이 책도 그래서 읽었다. 잘 쓰는 법도 알고 싶지만, 저자의 글과 말을 더 좋아한다.

실제적이다. 글 쓸 때 바로 적용하기 좋겠다. 무엇을 염두에 둘지? 왜 쓰는지? 어떤 점에 주목할지?

나같이 무작정 쓰기만 하는 사람은 여기서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잘 쓰려는 욕심에서 반복하고, 부사 수동태 남발했던 글들이 그녀의 칼에 휘둘려 나가떨어질 것이다. 퇴고, 구성 손보기까지 이를 토대로 내 글을 다시 읽으며 직면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한다.

글의 앞문단을 제거하라는 파격적 제안도 불사한 저자의 퇴고 방법은 제 살을 깎아내는 잠깐의 고통을 주되 보다 나은 글을 선사한다. 내 글 중 하나를 그렇게 해 봤더니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글 쓰는 사람들과 공유했는데 오히려 없앤 면이 낫다고 했다.

나는 이 책이 글을 잘 쓰는 방법만 있지 않아 좋다. 내겐 그랬다. 다양한 책 인용이 있어서 좋았다. 그만의 독특한 시각, 솔직한 표현을 통해 시야가 한층 넓어진 기분이다. 출판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지적도 기자의 시각과 방식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Q&A는 꼭 보시길! 마지막이라고 대충 보기엔 아깝다. 글쓰기에 온갖 궁금할만한 질문을 제대로 뽑아냈다. 이조차 기자다운 섬세함과 예리함이지 않을까? 내용은 읽으며 참고하세요~

생각하고 염두에 두며 계속 쓰는 건 내 몫이다. 이 책을 읽고 바로 적용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이 리뷰부터 남의 시선으로 읽어봐야 할 것 같고, 당장 누구를 상대로 글을 쓸지 막막해진다. 그녀가 깔아준 노하우와 기밀(맞나?) 앞에서 난 여전히 모르겠다고 투덜대며 쓰고 또 쓴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 내 눈으로 볼 수 있게 시각화하는 작업이 글쓰기다. 같은 경험을 해도 그런 사고 과정을 거쳐 글을 쓰면 더 깊어진다. 일회적으로 스쳐 지나갔을 수 있는 일이 더 오랜 생명을 얻는다. 옛날 일기를 읽을 때의 묘한 기분, 기억과 다른 기록.

p.24

프로페셔널조차 자신에 대한 비판은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작품에 대한 비판을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니 당신의 글이 알뜰살뜰 씹힐 가능성은 글을 쓸 때 어렴풋하게라도 염두에 둘 일이다. 아마도 글을 내놓기 두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겠지만 말이다.

p.58

그 책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한다.

1.나는 왜 이 책을 끝까지 읽었을까/ 읽지 못했을까?

2.나는 왜 이 책을 대여/구입했을까?

3.이 책을 대여/구입할 때 내가 기대한 것과 이 책이 채워준/채워주지 못한 것들은 무엇인가?

4.(책의 완독 여부와 무관하게) 이 책이 내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

5.(책의 완독여부와 무관하게) 이 책이 나의 흥미를 끈 부분은 무엇인가?

p.65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파악하기가 쉬워지면, 그 뒤에는 관심사 깊게 파기와 관심사 넓히기를 양립할 수 있는 책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넓히기' 위한 '깊게 파기'의 방식으로 좋은 일은 역시 읽은 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다.

p.66

.. 글을 읽을 때 '왜 이 리뷰를 쓰는지' 알 수 없는 글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러기 위해, 리뷰 쓸 때 대상의 '첫인상'을 소중히 하면 좋다. 검색을 먼저 하지 말고, 그 작품이나 대상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를 먼저 적어둔다. 핸드폰 메모장도 좋고, 메일의 '내게 쓰기'를 활용해도 좋다.

p.81

유난히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 작품이 있을 때, 리뷰를 쓰며 그 감정을 끝까지 파보기를 권한다. 일기를 쓰며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는 방법을 쓰기 괴로울 때, 리뷰 쓰기는 꽤 효과 좋은 우회로가 된다. 좋아하는 등장인물의 희노애락에 함께 젖어보거나 경멸하는 캐릭터를 강도 높게 비판하다 보면, 그것은 나 자신을 비우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자기 성찰적인 글쓰기로서 리뷰를 쓸 때는 캐릭터에 집중해 글을 이어가면 좋다. 타인을 비평하는 일이 쉽고도 재미있기 때문에, 가끔은 거울을 보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p.94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을 통해 원하는 삶을 기획하기, 언제나 책과 여행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읽기와 경험하기, 쓰기는 내가 나 자신을 탐색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들이었다. 간접경험과 직접경험, 그리고 그 모두에 존재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기. 글쓰기, 나 자신이 되겠다는, 가장 강력한 행동.

p.127

새로운 도전을 성공에 가깝게 하는 비법 중 하나는 바로 글쓰기다. 새로 뭘 배울 때 일기를 써보시라. 수영일기, 글쓰기 일기, 금연일기, 산책일기, 새로 마음 먹은 것에 대해서는 일기를 쓰자. 기록을 하면서 경험을 되새기게 되고, 조금씩이라도 발전하는 느낌을 받게 되면 꾸준해지며, 일상의 다른 부분과 유사한 패턴을 발견하면서부터는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가 된다. 목표를 세웠으면 그 목표에 대한 일기장을 만들자. 나는 그렇게 처음 다섯 페이지만 쓴 새 노트를 여러 권 갖고 있다. 중간에 실패하지 않은 도전은 한 권의 책이 된다.

p.139

글쓰기, 그중에서도 사적인 산문 쓰기는 애처로운 데가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처음 시작하는 에세이스트는 대체로 실패하기 때문이다. 잃은 것을 글을 통해 되찾고, 되살리고, 복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산문 쓰기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쓸수록 당신은 그것을 잃었음을 체득할 뿐이다. 잃어버린 것들이 문자가 되어 눈앞에 겹겹이 쌓여간다.

p.152

상처에 대해 쓸 수 있다는 말은 상처를 잊었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도저히 글로 옮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언젠가 되면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서두르지 말자. 이것은 이기고 지는 배틀이 아니다.

p.157

퇴고를 할 때는 '남의 시선으로 읽기'가 중요하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알고 있는 소재에 대해 쓰고 있으므로, 행간에 생략한 내용도 자동으로 내적 재생해가며 읽는다. 그렇게 본인 글을 본인의 마음으로 읽으면 백번 읽어도 수정이 어렵다. 심지어 맞춤법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 특정한 오타만 반복해 쓰는 경우도 있다. 글에도 습관이 있다.

p.163

... 당신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글쓰기를 할 때는 이렇게 쓰라. 당신이 책임을 요구할 때 상대가 주어 없이 피동형 신공을 쓴다면 주어를 요구하라.

p.187

퇴고할 때, 특히 글 양이 넘친다면, 나는 첫 문단을 지워보라고 권한다. 나 자신의 글을 퇴고할 때도 그렇게 한다. 첫 문단을 지운 뒤에 두 번째 문단을 다소 수정하는 정도로 도입부가 충분히 단단한 인상으로 변하곤 한다.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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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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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명 이상 모인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주로 남의 말을 듣는 편인데다 내향형인 나 같은 사람은 그 자리가 괴롭다. 그리고 나 자신이 사라진 투명 인간 같아 외로워진다. 남의 이야기를 듣다가 성의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맞장구쳐 주며 듣다 보면 내 에너지는 이미 소진되어버린다. 또 내가 들어주는 사람들은 내게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만나서 기나긴 침묵을 견디다 못해 나는 또다시 먼저 질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만다. 그리고 내 고갈된 에너지를 발견한 나는 후회한다. '왜들 자기밖에 모르지?'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그러다 읽은 이 책에서 상대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의 답을 찾았다.

단말기 확대, SNS의 사용으로 우린 서로에 대해 피상적인 단면만을 확인한다. 그리고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좌절은 우리의 내면을 갉아먹는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너무나도 분주한 하루하루를 지내며 우리는 관계를 확대할 수는 있었으나 깊어지는 건 어려워졌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 증명'을 위해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내가 말할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남의 말이 끝나길 기다린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비난을 쏟아붓거나, 어마어마한 인명피해를 감행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와 달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돌파구를 찾기 어렵거나 존재를 잃어버린 상황에서는 어떨까? 희망을 찾기를 실패한 이들은 우울함과 무기력에 빠진다. 한 개인으로 살다가 '엄마'로 위치가 달라진 출산 직후 엄마의 산후우울증이 그렇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산 가장의 인생에 남은 것이라곤 고독과 가난뿐인 어르신들의 우울함이 그렇다. 그런 감정을 아이를 낳고 나도 경험했다. 아이가 크고 나니 자연스레 회복은 됐다. '시간이 약!' 그 말은 맞았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약이 되기도 전에 극단적인 결론에 치달을 수도 있다. 그때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일도 아니고, 내게는 아직 오지 않은 그 깊은 우울과 무기력에 대해, 겪는 이들에게 냉담해진다. 혹은 가까운 사이에선 뻔하디 뻔한 '괜찮아질 거야!'라는 위선의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스스로가 이겨내야지 어쩌겠나?' 싶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에게 저자는 우울과 무기력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병이 아니라 삶의 그 자체다!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수용해야 할 삶의 중요한 감정이다. 그와 함께 '우울증'이란 테두리에 가두고 명명하는 사회에 일침을 놓는다. 일방적이고 일반적으로 '우울증'으로 몰아붙이는 약 처방으로 자신의 의무는 다했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지니는 현대 정신 의학계에 쓴소리를 내뱉는다. 너무 안일한 시각으로 '우울증'자체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단정 지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나 자신 또한 우울함을 갖고 있던 것을 무작정 떨쳐버리려고만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울증을 의미 있는 대화와 생각으로 이끌어 줌으로 개인과 자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알 수 있는 메시지로 본 저자의 시각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위와 같이 개인의 감정과 존중을 깊게 바라보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시선이 간다. 바로 '자녀'에게다. 훈계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체벌하던 모습을 나는 정당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런 행동이 훈육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내 존재 확인 욕구가 반영된게 아닐까 돌아보았다. 아이 양육의 최선은 바른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의 행동만 지적하기에 급급했다. "엄마 미워!", "엄마는 내 이야기도 안 듣고!"라며 부르짖던 둘째의 얼굴이 떠오르며 아이의 감정은 바라봐 주지 않고, 그에 대한 지지조차 보내주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양육서를 보면서 참고해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안도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무너졌다. 내게는 몸에 밴 습관처럼 기존의 방식을 바꾸기 힘들지만, 이 책에서 다룬 것들이 아이를 대할 때마다 떠올라 내 행동을 다잡곤 한다.

 

'당신의 감정은 옳아요.라고 토닥이는 한 마디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필요한가? 온전한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신이 혹은 내 자녀가 그럴만했다는 공감이 우리에게 얼마나 힘이 될까? 어르신들이 왜 태극기를 흔들기 위해 광장으로 나갔는지? 일베 사이트에서 누군가는 비상식적인 글을 올렸는지? 그는 그 많은 탑승객들을 죽음으로 몰았는지? 그들의 감정이 이 책을 읽으니 이해가 된다. 개인에게 어떠한 논리나 지식이 도움이 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누구나 감정은 옳고, 공감 받아야 마땅하다. 개개인이, 한 존재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 책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저자의 말처럼) 그들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을 이야기함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개인에게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깊이 알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지지하고 공감하며 끊임없이 받아줄 여유가 어느 정도일까? 가족이나 마음을 놓을 친구가 없는 이들에게 이 사실은 꼭 이와 같지 않을까? 내가 배가 고파서 빵을 먹으면 된다는 걸 아는데, 돈이 없는 것과 같은 상황말이다. 그래서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한 채 이 책을 덮었다. 내용이 너무 좋고 도움이 되었음에도 뭔가 마냥 좋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자기성(自己性)이 소거된 채 부모의 기대나 사회적 역할, 가치 등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가던 사람은 절대적 의존 대상이던 그 부모나 배우자와 이별하거나 절대적인 내 역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일이 없어지거나 그 가치가 빛을 잃을 때 광활 발작을 경험할 수 있다. 예견된 수순이다.

p.40

 

젊든 늙든 우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이젠 알 것 같다.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p.47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p.59

 

... 그런 감정들을 떠올리고 얘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존재 자체에 대한 얘기다.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나’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p.105

 

언제나 나를 놓쳐선 안 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그게 공감의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공감하는 일은 응급실 당직 의사처럼 상대에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의무가 되면 결국 내가 먼저 나가떨어진다.

너를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공감하는 일이다. 대개는 여기서 걸려 넘어져 공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람 구하는 일에 결정적으로 실패한다. 상대에게 더 집중하려고 자기감정은 누르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감정 노동에 시달리다가 결국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p.120

 

감정과 정서가 개입된 주제에서 논쟁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설득시켜 내 관점이나 의견을 수용하게 만들긴 어렵다. 그건 고속도로 운전법의 논리다. 여긴 포장도로다. 논쟁과 설득으로 사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서 토론이나 논쟁은 오히려 상대방이 자기 마음을 더 강하게 닫게 만들 뿐이다.

p.134

 

공감은 누군가의 불어난 재산, 올라간 직급, 새로 딴 학위나 상장처럼 그의 외형적 변화에 대한 인정이나 언급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 사람 자체, 그의 애쓴 시간이나 마음 씀에 대한 반응이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인정받고 보상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 사람은 그런 외형에 덜 휘둘리며 살 수 있게 된다. 공감은 쓰러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 만큼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힘은 그가 고요하게 가만히 있어도,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으로도 초조하지 않을 수 있는 차돌 같은 안정감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공감의 힘은 그렇게 입체적이다.

p.143

 

어떤 이의 생각, 판단, 행동이 아무리 잘못됐어도 그의 마음에 대해 누군가 묻고 궁금해한다면 복잡하게 꼬인 상황이 놀랄 만큼 쉽게 풀린다. 자기 마음이 공감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나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기꺼이 진다. 자기 마음이 온전히 수용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억울함이 풀려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

p.161-162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p.167

 

공감은 상대를 공감 '해주는'일이 아니다. 내 상처가 공감 받는 것에 예민하지 못하면 공감하는 일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다. 나와 너, 양방을 공감하지 못하면 어느 일방의 공감도 불가능한 것이 공감의 오묘한 팩트다. 그래서 공감은 너도 살리고 나도 구한다. 그래서 공감은 치유의 온전한 결정체다. 이 온전함의 토대는 오로지 자기 보호에 대한 감각에서 시작되고 유지되면 자기 보호는 자기 경계에 대한 민감성에서 시작된다.

p.187

 

우리 모두는 자기 보호를 잘해야만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처 입은 존재들이다. 예외가 없다. 공감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기준을 내게 묻는다면 단연코 자기 보호에 대한 민감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기간 동안, 어떤 특정 맥락과 상황 속에서는 내가 참고 견딜 수 있지만 나는 항상 그래야 하는 존재,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자기에 대한 감각이 살아 이어야 공감자가 될 수 있다. 나와 너를 동시에 공감하는 일은 양립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와 너 모두에 대한 공감'의 줄임말이 '공감'이다.

p.191-192

 

관계에서의 상처는 경계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얘는 딱 자기 아빠야, 얘는 딱 어릴 적 나야, 얘는 나랑 정반대야"와 같은 말들은 내 아이를 부모와의 연결 속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나와 '내가 아닌 너'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의 언어다. 자식을 바라보는 게으른 시선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이런 게으른 시각은 큰 둑의 작은 구멍이다. 결국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

p.198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기쁨과 즐거움이거나 배움과 성숙, 성찰의 기회일 때다.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다. 끊임없는 자기학대와 자기혐오로 채워진 관계에서 배움과 성숙은 불가능하다.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끊어야 한다.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 끊어야만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관계들이 의외로 많다. 관계를 끊으면 그때서야 상대방도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가 만들어진다. 그런 계기로 삼지 못해서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되어도 그건 그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p.204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 건 좋은 일인가. 좋을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얼마든지 있다. 때론 위험하기도 하다. 긍정적 감정은 자기 합리화와 기만이 만들어내는 결과일 때도 있고 자기 성찰의 부재를 뜻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성찰이 깊고 스스로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 불안하고 흔들리게 된다. 상황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보는 과정에서 만나는 불안은 불가피한 것이다. 깊은 성찰은 여러 갈래의 길과 전망을 보여준다. 복잡한 갈래 길들을 바라보며 인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은 불안을 전제로 진행되는 것이다.

p.217

 

감정은 판단과 평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내 존재의 상태에 대한 자연스러운 신호다. 좋은 감정이든 부정적 감정이든 내 감정은 항상 옳다.

p.219

 

사람은 옳은 말로 인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 자기모순을 안고 씨름하며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와 너그러움, 공감력 그 자체가 스스로를 돕고 결국 자기를 구한다.

p.239

 

'우리'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구두 위에서 간지러운 발가락을 긁는 행위다. 내 마음, 내 느낌 등 고유하고 개별적인 존재로서 내 육성에 접근해 가는 것이 제대로 된 관계의 시작점이고 그게 바로 공감이다. 다양하게 깎인 수많은 입체적인 면면들 때문에 빛이 드는 방향에 따라 빛깔과 분위기가 달라지는 예각의 크리스탈 조각 같은 존재가 사람이다. 그런 존재를 집단적 정체성이라는 둔각으로 뭉개는 일은 자신에 대한 폭력인 동시에 자기 은폐나 억압,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무지다.

p.249

 

...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다. 그 상태가 되면 상대방 감정결에 바짝 다가가서 그 느낌을 더 잘 알고 끄덕이게 된다. 상대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상관없다.

p.268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 자신이 공감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일은 감정 노동이든 공감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를 공감하는 일은 시늉할 수 없다. 남들은 몰라도 자기를 속일 방법은 없다.

p.274

 

'나는 아이가 여섯 살일 때도, 열일곱 살일 때도 애가 힘든 얘기를 하면 옳고 그름을 먼저 가리고 그다음에 다른 사람 입장을 말해주고 난 후 아이에게 "왜 그런 일이 있었니?"라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타이밍이 다 지난 다음에 아이 마음을 물었던 거다. 아이는 참다 참다 어렵게 엄마한테 말을 꺼낸 건데도 그랬다.

내가 엄마라서 나에게 SOS를 보낸 건데, 다정한 엄마면 족한 건데 나는 결과만 가지고 '그러면 안 되고 바르게 커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부터 챙겼다.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나는 훈육이 교육이라고 알고 살았다. 다른 사람들한테 욕 안 먹고, 잘 키우려는 마음이 늘 먼저였다. 타이밍이 있는 건데, 그 타이밍을 놓치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살아준 게 되게 고맙다. 다음 일은 다음에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p.303

 

나만 여러 생각과 걱정을 한다고 여긴다면 아이를 한 개별적 존재로 바라보지 않아서다. 나도 생각하고 아이도 생각한다. 아이도 나와 같은 한 개별적 존재다. 남편에게 하는 하얀 거짓말은 그닥 염려를 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겐 강박적으로 거짓말을 절제하는 건 아이를 가르침의 대상으로만 여겨서다. 아이는 내가 가르치지 않으면 모른다고 믿고 있어서다.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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