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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현실에 만족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세대론보다 모든 생물의 특징인 '적응'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결국 변한 건 세대라기보다 시대다.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하에서 행복을 추구한다.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 행복 전략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고, 인간이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소소하지만 다양한 행복을 추구하며 타인과의 비교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현명한 방법이다. 문제는 그것이 지속 가능한가다.
p.118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
p.119
...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도출하는 것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과격한 목소리들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반대 의견을 가진 집단의 반발과 결속만 강하게 만들어 의견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한 진영 내부에 생기는 작은 균열에서 변화의 지점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균열을 만드는 것은 같은 진영 내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고 부드러운 '다른'목소리들이다. 작은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선거와 같은 큰 세력 다툼의 시기를 전후하여 집단 내부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기보다 슬쩍 다른 길로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거창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만 고집하지 않고 당장 개선 가능한 작은 방법들을 바로 적용했고, 작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켰다. 영웅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p.162-163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감히 대단한 명답을 제시해 분쟁을 해결했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사람이 멍석만 깔아주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얻기는 아주 어렵고, 잃기는 아주 쉽다. 오직 진심만이 그 신뢰를 얻는 열쇠일 것이다. 조정 달인의 비결은 아마도 이것이었던 것 같다.
p.174
한국 사회의 윤리관이 현대 민주 사회의 시민의식보다는 유교적 가족공동체의 인륜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는 가족 윤리를 국가와 사회의 기본 윤리로 삼았다. 아비가 극악무도한 죄인일지라도 그것을 고발한 자식이 더 큰 죄인이 된다. 군사부일체라 하여 지도자, 스승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윗사람의 허물을 들춰내는 건 그 허물보다 더 큰 잘못이 되고 패륜으로 지탄을 받는다. 가족의 잘못은 감싸고 숨겨주는 것이 옳은 일이 된다. 전통 농경사회의 이러한 윤리관이 아직도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필요로 한다. 잘못을 은폐하는 문화는 투명성도 효율성도 침해할 뿐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치료가 가능했던 초기 단계의 작은 종양이 말기 암으로 진행되어 조직을 썩게 만든다. 파렴치한 성추행 교수들이 수십 년째 어린 여제자들을 건드리며 자리를 보전하곤 한다.
p.211
누가 당신에게 이익을 주고 누가 당신에게 손해를 끼치는지 정신 차리고 보아야 한다. 내부고발자가 시민 이익의 대변자로 보호받고 보상받아야 권력자들이 긴장한다. 발각될 리스크를 고려에 넣도록 만들어야 대범한 도둑질을 못한다. 조심이라도 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감시다. 눈먼 의리가 아니다.
p.213
북유럽 사회의 그림자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수입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내는 데다 물건 가격에 붙는 부가세 같은 간접세도 높아 결국 모두가 비슷비슷 검소하게 살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대박이나 야심, 화려한 성취 같은 것이 어려운 협동조합 사회에 가깝다는 점이다. 보컬 그룹 아바, 이케아 창업자같이 자기 재능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개인들이 세금 때문에 국적을 바꿀 정도다. 하물며 이 징글징글하게 경쟁적이고 지기 싫어하며 물질 만능주의적인 다이내믹 코리안들이 답답해서 견딜 수 있을까.
p.255
북유럽 전역에서 관습법처럼 통용되는 '얀테의 법'이라는 것도 있다. 1933년 산데모제라는 노르웨이 작가가 이를 정리하여 소설 속 가상의 덴마크 마을 얀테의 관습법으로 발표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지 마라, 남보다 더 낫다고 남보다 더 많이 안다고 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을 비웃지 마라'다....
p.260
선진사회를 참조하는 일은 실제로 사회가 더 낫게 바뀌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에 관한 케이스 스터디일 뿐, 좋아 보인다고 3D 프린터로 뽑아내듯 바로 복제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참고할 만한 모델사회에 관해 고민하기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의 밑그림 자체에 해당하는 나라들이다. 우선, 중국의 부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의 지정학적 환경 탓에 좋든 싫든 우리는 중국의 영향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에는 인류의 미래 자체를 바꾸는 엔진 역할을 하는 나라가 있다. 여전히, 미국이다.
p.262
... 과연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은 어떻게 배양되는가.
보통은 '사회 지도층,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거나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등등의 답이 나올 듯하다. 내 의견은 '작은 책임부터 부담 없이 맡을 수 있어야 한다'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한 집단주의 문화의 사회다. 나서는 걸 죄악시하고 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누가 뭘 잘했을 때의 칭찬보다 그가 뭐 한 가지 잘못했을 때 그러면 그렇지 하고 달려들어 돌팔매질하는 광기가 훨씬 뜨겁다. 당연히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책임을 맡지 말아야 한다.
p.267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Dare to be an optimist.
p.268
우리 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물론 이런 가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현실에서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자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런 문화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책임자를 결정 장애와 도피 심리를 몰아넣는 측면이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영미식의 실용주의 가치관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전제 아래 해야 할 의무를 다 이행했다면 과감하게 면책한다. 결과가 제아무리 중대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게 하는 사회의 비결인지도 모른다.
p.269
낯선 것에 대한 공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사회가 보여준 것은 과학적 판단을 존중하는 합리주의, 어떠한 여론의 비난을 받더라도 합리적 근거와 소신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들,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함부로 책임자와 대응 방식을 바꾸지 않는 뚝심 있는 시스템, 그리고 단 한 명의 자국민도 버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연대감을 표시하며 국민을 안심시킨 리더십이다.
한 사회의 성숙함은 위기 속에서 비로소 분명히 모습을 드러낸다.
p.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