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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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책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나온 책이었다.

처음 듣는 이름의 작가인데, <어서오세요... >에선 모녀이야기를 하며 함께 이 책을 등장시켰다.

나도 엄마의 딸이었지만, 아들만 둘인지라 이 책이 과연 내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궁금했다.

또, 왜 이 책을 거론(소개)했을까 궁금했다.


미혼모로 에이미를 홀로 키우는 이저벨은 졸업식에 축사를 발표할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임신으로 딸을 낳고, 엄마찬스를 쓰며 겨우 대학을 다녔다. 그러다 엄마까지 돌아가시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새로운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지금까지 이저벨은 운동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의 딸은 제법 여성미가 느껴질 정도로 성장했고, 여러가지 몸의 변화와 새로운 자극들을 느끼고 있었다. 이 책은 가장 깊숙하게 그리고 서로의 민낯을 발견할 수 밖에 없는 사춘기 시기의 딸과 엄마의 관계를 그리고 그녀들의 성장을 세심하고 예리한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1. 엄마와 딸, 무엇이 그녀들을 방황하게 했나?

처음에 내 눈에 띄었던 모녀의 모습은 이랬다. 엄마 이저벨은 딸을 늘 주시하고 있었고, 딸 에이미는 늘 그런 엄마를 의식했다. 나는 이저벨이 왜 저렇게까지 딸에 대해 불안해 하고, 통제하려들까 궁금했고, 딸 에이미는 무엇때문에 엄마에게 주눅들어있는지 궁금했다.

그런 모녀의 삶은 모녀가 생물학적으로 닮 듯,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 엄마의 눈치를 살폈고, 현재는 각자 한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것도 유부남을. 또, 그녀들은 자기들의 엄마를 의식했지만, 엄마를 판단했고 엄마를 자신과 구별지으려 했다. "엄마는 세상을 몰라요."

아마 그것 때문에 이저벨과 에이미는 엄마와는 다른 삶을 꿈꾸었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썼지만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사랑이었고, 방황이었다. 그들이 믿어왔던 사랑에 참인 진실을 마주하기까지 그들은 환상을 가졌고, 좋게 해석하며 믿으려 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2.에이미와 이저벨, 나는 누구에게 더 마음이 가나?

그나마 현재 내가 이저벨과 비슷한 나이기 때문에 이저벨의 삶이 많이 공감이 됐다.

만약 나도 미혼모라면, 나도 남편이 없는 상황이라면...

저런 마음을 가졌을 수 있겠고, 저런 불안함에 떨었을 거라 확신(?)까지도 할 수 있었다. 이저벨의 소심하고 나약한데다가 마음 속 깊은 자존심과 교만함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흡사해 보였다. 나는 특별하다고 믿고 싶고, 지금의 비참함을 벗어던지고, 나와 다른 허망한 꿈을 꾸는 것. 그게 가능할지라도 현재로썬 착각이고, 현재 내 자신을 부정하고 수용할 수 없는 이저벨의 마음 하나하나를 작가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마음깊이 느꼈다.

특히 이저벨이 현실을 직시한 후 제 자신을 찾았을 때도, 작가는 이저벨의 관성처럼 유지되는 습관들(유부남 에이버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등)을 무시하지 않고 너그러이 다뤄줬다. 그 점이 내겐 참 좋았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니까. 카드 뒤집 듯 한번에 바꿀 수 없는 게 우리라는 사람이니까.

조금 쓸데없어도 덧붙이자면, 내가 이저벨이었다면.

저렇게 고상하게 에이미를 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미안해 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딸내미 머리 자르는 건 기본이고 딸을 향해 고래고래 정신차리라고 욕사포를 쏟아내겠다. 그 선생이란 작자도 다시는 교계 발도 못 붙이게 경찰 고발은 물론 뉴스 제보까지 할 것 같다.


3.좋았던 장면? 기억에 남는 장면?

회사 사람들과 담을 쌓고, 자기는 다르다 여기며 함부로 회사동료를 판단했던 이저벨이었다. 토티, 베브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여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좋았다. 사람은 '구별지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존재들'이라는 것.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찌나 이렇게 바람을 많이들 피시는지. 결혼 생활에 가졌던 환상마져 깨질 것 같다.

그리고 이저벨의 미혼모는 참 힘들었는데, 에이미 친구 스테이시의 미혼모의 삶은 세상의 이상한 시선도 없고 풍족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점은 조금 이상한 듯 의외다 싶었다.

곳곳에 남은 꾸며지지 않은 섬세한 심리묘사가 좋았다. '사랑하고 서로 위로가 되어도' 각자 자기만의 비밀과 삶을 품고 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 그러기에 우리 모두 인생에서 홀로임을,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며 기억했다.


4.왜 에이미와 이저벨인가?

왜 모녀관계를 이렇게 미혼모인 엄마와 딸의 관계여야 할까 생각했다.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있어도 충분히 '엄마와 딸'의 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녀들 둘만 있었기에 '모녀'사이를 더욱 깊이 주목할 수 있었다. '여자'로써의 사회적인 위치의 한계와 딸을 가장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엄마의 모성'이 있어서 '여성'의 삶을 더 깊이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딸의 삶을 알았다. 딸과 같은 삶을 살았고, 같은 실패를 겪으며 함께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에이미와 이저벨만이 한 집에 살고 그들의 삶이 집중될 수 있었다.


5.이 책을 읽는다면, or 이책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섬세하고 흔들리는 인간의 섬세한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에이미와 이저벨의 삶에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 여름과 아주 짧게 가을.

모녀관계에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나도 저랬지)이 가거나 자식의 미래를 생각해볼 만한 책.

차분한 전개 속 충격적인 일이 있기도 하다.

처음보는 작가님이지만 다른 책도 기대하게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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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마지막 대통령, 5년의 외교 비하인드 - JTBC 국제외교안보팀 정제윤, 신진 기자가 취재한 생생한 외교의 순간
정제윤.신진 지음 / 율리시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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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참 잘 지었다. 청와대의 마지막이 뭉클한 게 확 와닿는달까?

그는 정말로 청와대에선 마지막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대통령 임기 중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지난 정부 5년 중 그리고 지금까지, 청와대 출입과 외교통일 관련한 취재를 했던 두 명의 기자가 기록한 취재수첩을 바탕으로 한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평창올림픽과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그 밖의 중일 외교뿐 아니라 코로나19까지 다사다난했던 5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됐다. 단편적이고 편중되어 있는 시각이 달린 기사, 정제될 수밖에 없는 기사와는 확연히 다른 이야기들이다.


사실 뉴스를 일일이 찾아서 보는 편이 아니다. 핸드폰이나 pc에 펼쳐진 뉴스에서 보이는 기사를 보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내가 굳이?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을 갖은 이유는 별거 없다. 단순한 궁. 금. 증?

청와대 대통령으론 마지막인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때, 깜짝 놀랄만하면서 이슈가 될만한 일이, 스펙터클한 일이 많았다. 또 대외적으로는 '김정은'이나 '트럼프'나 굉장히 이슈를 일으키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비하인드라니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했다. 사진의 웃는 모습이 실제는 어떤 모습일까? 그들의 행동에 숨겨진 속내는 뭘까? TV 속에만 있는 그들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면모는 있을까?


역시나 김정은은 어떤 생각으로 북미회담과 남북정상회담에 임했는지, 트럼프가 갖고 있는 사업적인 기지를 외교와 정치에서 어떻게 발휘했는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외교를 펼쳐야 했는지, 그리고 국가 간의 이익과 실무진들의 사이는 어떻게 달랐는지, 코로나19에 관한 아프간 (외교 관련) 현지인 탈출 이야기, 현재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지난 5년부터 얼마 전까지의 외교전쟁(?)을 제대로 훑어보는 듯하다. 이런 말은 조심스럽지만 재미있게 읽혔다. 그 밖에도 세세하게는 영변이 어떤 곳이며, 종전선언의 의미, 지소미아, 일제시기에 강제 동원된 이들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 문제, 일본의 유네스코 위치와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파워까지도 알 수 있어서 나같은 외교 지식 초보자들에겐 도움이 됐다.


미국과 중국이 우리 외교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우리는 더더욱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어느 한 편을 드는 것이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부에선 무조건 한 편을 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하지만 실제 외교 현장에선 그렇게 무 자르듯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미국의 동맹국이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 보호받는 국가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다가는 경제적으로 중국과 얽혀 있는 기업들도 많은데 결국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엮인 부분을 미국이 대신 채워주거나 다른 국가들로 대체하는 것도 말처럼 쉽진 않다. p.184



기사를 보고 단순히 답답해만 했던 일들이 왜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던 건지 이 책을 읽으니 이해가 됐다. 구두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과 문서로 합의된 부분이 다를 수도 있고, 각자 자국의 실리에 따라 동상이몽이 될 수 있는 게 외교였다. 그리고, 자칫 작은 모션에도 상상치도 못할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교는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운 분야였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미중러일 사이에서 분단까지 된 상황이라면 그 까다로움이 배가된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섣부르게 결정하면 안 되며, 여러 가지 상황에 명민한 분석과 파악이 필요한 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전 정부에 대해 칭찬할 만한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단 한 가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배출 수에 대해 우리 정부 관계자가 갖는 인식은 충격적이긴 했다. 대외적으론 일본에는 설득당하고, 국내에선 여론을 수습하기에 바쁜 언행불일치한 모습이 사실이라면 정말 실망스럽다. 이 부분은 바뀐 정부의 대처도 딱히 다르지 않을 테니(다르지 않거나 더할지도) 답답할 따름이다.


지난 정부의 대처와 상황들을 살펴보니, 윤석열 정부가 새롭게 시작된 이 시점에서 또 어떤 외교 실무를 펼칠지 궁금하다. 물론 이미 일어난 일도 있지만 말이다. 세계의 흐름과 더불어 우리와 근접한 외교관계가 어떠한지 알게 된 게 의미 있었고, 앞으로의 외교 사건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참 좋은 책이었다. 오픈된 기사 외에 외교에 상당히 근접하면서도 세심하고 의미 있는 타기록이 이렇게 남겨졌다는 점이 다행이다 싶었다. 또한 외교 안보 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 준 책으로 누구나도 이 책을 통해 최근 외교 이슈에 다가갈 수 있다. 기획자의 의도를 충족시킨 것 같다. 전 이 책 추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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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큐레이터 - 뮤지엄에서 마주한 고요와 아우성의 시간들 일하는 사람 8
남애리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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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라는 직업 자체로도 흥미로운데 글까지 재밌어서 좋았습니다. 이 시리즈 다른 직업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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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큐레이터 - 뮤지엄에서 마주한 고요와 아우성의 시간들 일하는 사람 8
남애리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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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큐레이터들은 전시실에서 우아하게 걸어 다니는 시간보다 책상에 앉아서 전시와 관련된 서류를 처리하고 정산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소위 '노가다'라고 불리는 전시 설치 작업에 직접 뛰어들기도 하고, 작가와 만나거나 유물에 대해서 조사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멋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목덜미가 간질간질해질 정도로 어색한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p.91


 '이 책은 진짜 '큐레이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밝히기 위해 쓴 책이다!!!'

라고 한 마디로 이 책을 말하고 싶다. 우아하게 물 위를 지나가는 모습과 달리 힘겹고도 바쁘게 발장구를 치는 물 밑 백조의 발을 보는 느낌이랄까?

큐레이터가 뭐 하시는지 궁금하시다고? 이 책! 큐레이터의 찐 실상을 보여준다.


먼저 이 책은 각 출판사에 있는 시리즈(민음사의 고전문학,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 세 출판사 콜라보 '아무튼 시리즈' 등)처럼 '일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모은 책들 중 하나로 보인다. 바로 그중 8번째 책! 미술 관련 전시를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큐레이터'란 직업은 동경의 대상이면서도 궁금한 세계이기도 하다. 관람객은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 속 직업을 책으로 다뤄주니 관람객이면서 독자로 굉장히 반갑고 환영할만할 책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의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이 싫어서 도피처럼 지금의 박물관으로 오며 큐레이터 일을 한 지 10년이 되었다고 했다. 어떤 삶이 작가님을 그렇게 선택하게끔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라는 메시지 아래 살았던 나한테는 작가님이 선택한 (서울 아닌) 지방의 삶이 적지 않게 인상적 이어 보였다.


 정장이 아닌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전시를 준비하는, 정장 스커트를 입고 사다리를 타는, 어린이들이 왔을 때 뽀뽀뽀의 뽀미 언니처럼 오버스러운 말투와 몸짓으로 도슨트 하는 큐레이터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미술,전시품에 덕질 가득 애정을 품는 모습, 지방 예술인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알고 대안을 생각해 보는 모습, 코로나19에도 자신의 직업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예술을 너무 사랑해서 큐레이터란 직업을 선택했어요!'라는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발언보다 더 인간적이고, 정감이 간다. 자신의 직업과 예술을 대하는 큐레이터로 진정성이 가득 느껴진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유행 이후 다른 기관들을 따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유투브를 시작하고 비대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솔직히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전시를 왜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모든 사람이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나는 '고작 전시 따위'를 만들면서 호들갑만 떠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유행은 내가 이 일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문화생활이 병을 낫게 해주지는 않는다.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고 먹을 것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일을 한다. 내 일을 통해 기쁨을 느낄 누군가가 있을 테니까. 나는 장애인 기관 담당자가 보낸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며, 오늘도 또 다른 전시를 준비한다. p.150


 또, 큐레이터라는 모습과 함께 예술품과 유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내용이 진지하고 농담하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이 책을 읽고 환상(?)이 깨졌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님의 표정과 모션이 그려진다. 주변의 모습들 또한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사다리에서 넘어지는 모습, 뽀미 언니를 따라 도슨트 하는 작가님을 바라보는 주변의 눈빛, 어린이들이 작품을 혹여나 훼손할까 봐 긴장하는 조마조마한 모습, 큐레이터들 간에 자기들끼리 쏟아내는 이야기, 한국전쟁 파견된 미군의 편지를 읽으며 흥미진진해 하는 작가(큐레이터) 님의 표정, TMI 큐레이터님의 설명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관람객들의 눈빛까지.. 아무튼 재미있게 읽힌다. 스리슬쩍 고백하건대 내 취향!!


 엄마가 생각나서 암 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일, 한국전쟁에 파견된 미군 뉴튼의 이야기는 큐레이터 직업이기에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로 울컥하면서도 읽는 이의 마음 또한 부드럽게 풀어지는 내용이었다.


 에세이로써 도입과 마무리의 내용도 참 좋았다. 앞으로 작가님이 큐레이터 일을 더 하시다가 작품에 대해서 혹은 여행하시면서 보는 전시작에 대해서 다른 책을 내주셔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큐레이터의 찐 모습을 본 게 그래도 제일 좋았다. 이제는 전시의 제목, 전시에 대한 설명, 작품의 전시 구성과 순서, 배치들을 눈여겨볼 것 같다. 그리고 하나의 전시를 만들기 위해 발로 뛰었던 큐레이터와 그 외의 숨은 이들의 노고를 한 번쯤 더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세계를 맛보고 더 깊이 알게 된 듯해서 이 책 참 맘에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세이

#소소하게,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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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여름 에디션)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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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그것도 편안한 소설이 읽고 싶었다.

책이 너무 안 읽혀서, 머리를 엄청 쓰고 싶지 않아서, 책 속에서 쉬고 싶어서 말이다.

무엇 때문인지 책이 읽어지지 않긴 했다.

잘 읽힌다는 이 책 또한 나는 잘 읽히지 않았다.

그래도 읽었다.


이 책은 내게 쉼을 주기도 했지만, 이 책에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내 생각과도 맞았고, 내 지금의 삶의 태도와도 비슷했다.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이 떠올랐다. <섬에 있는 서점>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이.


소박하면서도 진실성을 갖춘 사람이 주인인 서점이 있다. 이 서점으로 사람이 모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또 함께 감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이 책 또한 서점이 사람을 모으고 서점에 사람이 모인다.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은 내가 생각한 책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 속엔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찰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관계 그리고 개인 자신에 대한 힘겹지만 외면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타인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개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담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피로하고 분주한 삶에 지쳐있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테고, 자신을 찾아가는 용기와 격려를 주었을 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 또한 지난 시기 내내 남과 비교하고, 주변에서 '이건 해야 해!'라고 말하는 상식과 정상의 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써왔던 숨 가쁜 시간들이 보였다. 그리고 나이 40이 지나서야 보게 된 아등바등 일어나려 애써왔던 과거가 이 책에 프리즘 되어 다시 보였다. 꼭 그러지만은 않아도 좋았을 텐데. 그냥 나대로 살 게 내버려 둘걸. 아쉬움과 안쓰러움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느껴졌다. 그리고 인물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읽으며 동시에 홀가분해졌다.


이 책은 주인공 영주가 읽은 책 중 엄마와 딸의 관계에 관련한 책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 책들이 소개된 것처럼 영주와 엄마의 관계도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갈등이 해소되려나 생각했는데 그 부분은 예상이 빗나갔다.


역시나 이 책에서 거론하는 책들은 모두 책 광고를 본 듯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특히 이 책에서는 한국소설들이 많이 나와서 친숙했는데, 박완서 작가님 책(저녁의 해후), 김금희 작가님 책(너무 한낮의 연애), 최은영 작가님 책(쇼코의 미소) 등. 그 외에도 <그리스인 조르바>, <일하지 않을 권리>,<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어미 이와 이자벨>, <미카엘라> 등(그 밖에도 더 있음) 읽지 않은 책들은 도서관 예약 혹 구입을 부를만큼 호기심이 발동한다. 책을 알려주는 책 좋다!^^


마지막으로 '행복과 일(직업)'의 관계를 나타낸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나처럼 뭔가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을 못 찾은 사람은, 잘하는 일이 직업이 된 경우가 무조건 '행복'으로 직결될 거란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조금 더 생각해봤고, 이해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다 행복하진 않아. 좋아하는 일을 좋은 환경에서 하면 모를까. 어쩌면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좋아하는 일도 포기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리거든. 그러니 우선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그럼 무조건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말은 누구에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너무 순진한 말이기도 하고."p.273


...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불행을 책임 지진 않는다. p.274


그만큼 삶이란 복잡하고, 여러 요소가 합쳐진 복합적인 것일텐데 그런 면은 잊어버리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어떤 것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행복할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도 아닌데, 소소한 것들로 행복할 때가 많다. 가끔은 못 찾은 것이 불행하지만은 않은데, '내가 행복하다'라는 사실이 과연 맞긴 할까 의심한 적도 있다. 삶이 가끔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려고 할 때 나는 불행을 끄집어 내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 찾아서라는 이유를 갖다 대곤 했다. 이 책을 읽으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행복은 그리고 삶은 단순하지 않다.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다.

또 내가 행복이란 걸 느꼈다면 느낀 게 맞는 거다.


... 지난 제 경험이 가르쳐준 건 이 정도예요. '나는 남을 위해 일을 하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해야 한다. 나를 위해 일을 하니 대충대충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민준 씨는 휴남동 서점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혹시, 민준 씨를 잃어버린 채 일하고 있지는 않나요? 나는 이게 조금 걱정이에요. p.343


조금은 인본주의적인,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발언일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러울 수 없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떠한 의미도 찾지 못한다면 그 삶은 다시 돌이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나' 자신만 위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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