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큐레이터 - 뮤지엄에서 마주한 고요와 아우성의 시간들 일하는 사람 8
남애리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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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큐레이터들은 전시실에서 우아하게 걸어 다니는 시간보다 책상에 앉아서 전시와 관련된 서류를 처리하고 정산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소위 '노가다'라고 불리는 전시 설치 작업에 직접 뛰어들기도 하고, 작가와 만나거나 유물에 대해서 조사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멋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목덜미가 간질간질해질 정도로 어색한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p.91


 '이 책은 진짜 '큐레이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밝히기 위해 쓴 책이다!!!'

라고 한 마디로 이 책을 말하고 싶다. 우아하게 물 위를 지나가는 모습과 달리 힘겹고도 바쁘게 발장구를 치는 물 밑 백조의 발을 보는 느낌이랄까?

큐레이터가 뭐 하시는지 궁금하시다고? 이 책! 큐레이터의 찐 실상을 보여준다.


먼저 이 책은 각 출판사에 있는 시리즈(민음사의 고전문학,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 세 출판사 콜라보 '아무튼 시리즈' 등)처럼 '일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모은 책들 중 하나로 보인다. 바로 그중 8번째 책! 미술 관련 전시를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큐레이터'란 직업은 동경의 대상이면서도 궁금한 세계이기도 하다. 관람객은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 속 직업을 책으로 다뤄주니 관람객이면서 독자로 굉장히 반갑고 환영할만할 책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의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이 싫어서 도피처럼 지금의 박물관으로 오며 큐레이터 일을 한 지 10년이 되었다고 했다. 어떤 삶이 작가님을 그렇게 선택하게끔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라는 메시지 아래 살았던 나한테는 작가님이 선택한 (서울 아닌) 지방의 삶이 적지 않게 인상적 이어 보였다.


 정장이 아닌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전시를 준비하는, 정장 스커트를 입고 사다리를 타는, 어린이들이 왔을 때 뽀뽀뽀의 뽀미 언니처럼 오버스러운 말투와 몸짓으로 도슨트 하는 큐레이터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미술,전시품에 덕질 가득 애정을 품는 모습, 지방 예술인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알고 대안을 생각해 보는 모습, 코로나19에도 자신의 직업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예술을 너무 사랑해서 큐레이터란 직업을 선택했어요!'라는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발언보다 더 인간적이고, 정감이 간다. 자신의 직업과 예술을 대하는 큐레이터로 진정성이 가득 느껴진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유행 이후 다른 기관들을 따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유투브를 시작하고 비대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솔직히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전시를 왜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모든 사람이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나는 '고작 전시 따위'를 만들면서 호들갑만 떠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유행은 내가 이 일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문화생활이 병을 낫게 해주지는 않는다.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고 먹을 것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일을 한다. 내 일을 통해 기쁨을 느낄 누군가가 있을 테니까. 나는 장애인 기관 담당자가 보낸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며, 오늘도 또 다른 전시를 준비한다. p.150


 또, 큐레이터라는 모습과 함께 예술품과 유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내용이 진지하고 농담하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이 책을 읽고 환상(?)이 깨졌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님의 표정과 모션이 그려진다. 주변의 모습들 또한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사다리에서 넘어지는 모습, 뽀미 언니를 따라 도슨트 하는 작가님을 바라보는 주변의 눈빛, 어린이들이 작품을 혹여나 훼손할까 봐 긴장하는 조마조마한 모습, 큐레이터들 간에 자기들끼리 쏟아내는 이야기, 한국전쟁 파견된 미군의 편지를 읽으며 흥미진진해 하는 작가(큐레이터) 님의 표정, TMI 큐레이터님의 설명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관람객들의 눈빛까지.. 아무튼 재미있게 읽힌다. 스리슬쩍 고백하건대 내 취향!!


 엄마가 생각나서 암 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일, 한국전쟁에 파견된 미군 뉴튼의 이야기는 큐레이터 직업이기에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로 울컥하면서도 읽는 이의 마음 또한 부드럽게 풀어지는 내용이었다.


 에세이로써 도입과 마무리의 내용도 참 좋았다. 앞으로 작가님이 큐레이터 일을 더 하시다가 작품에 대해서 혹은 여행하시면서 보는 전시작에 대해서 다른 책을 내주셔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큐레이터의 찐 모습을 본 게 그래도 제일 좋았다. 이제는 전시의 제목, 전시에 대한 설명, 작품의 전시 구성과 순서, 배치들을 눈여겨볼 것 같다. 그리고 하나의 전시를 만들기 위해 발로 뛰었던 큐레이터와 그 외의 숨은 이들의 노고를 한 번쯤 더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세계를 맛보고 더 깊이 알게 된 듯해서 이 책 참 맘에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세이

#소소하게,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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