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세계기독교고전 20
찰스 쉘던 지음, 유성덕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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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두가지의 삶을 살고 있다.

하나는 육으로 사는 세상,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영으로 사는 세상...

현재는 육신이 사는 세상에 살면서도 영적인 존재이기에 양쪽에 발을 담근 것마냥 살아가고 있다.

두 세상은 절대 같지 않아서 그리스도인 마음에서는 두 세상의 가치가 늘상 충돌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보다 영생을 향한 기독교가치관을 따라 가고자 거스르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답은 정해져 있다.(비록 그 답대로 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바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다.


이 책의 제목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그 질문을 우리의 삶 속에 던진다.

그 질문은 우리 안에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져있고, 고뇌가 담겨져있다. 그리고 먼저 말한대로 질문형식이지만 우리에게 답은 이미 알려 주었다.


이 책은 레이먼드 시의 제일교회에서 한 무명 실직자가 죽고, 한 교회내에서 목사를 중심으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운동이 전개된 이야기다. 자신의 삶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 안에서 고민하며 찾아낸 결정으로 예수님의 인도하심 받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이는 레이먼드 시를 비롯하여 나사렛 애비뉴 교회와 전미에 기독교적인 새로운 각성 운동이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역사가 교회와 개인의 곳곳에서 일어난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깊은 임재를 경험한 그들은 먼저 사치와 욕심, 쾌락, 그리스도로부터 오지 않은 안정감을 자연스럽게 여겨왔던 자신을 본다. 또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았고, 불의하고 부패한 사회를 바라보았다. '예수님'의 눈으로 본 그들은 삶에서 하나하나 결단하고 행동하기에 이른다. '예수님이시라면?'이란 질문은 그들의 삶의 방향에 결정이 되고 방향지시등이 되었다. 자신의 우선순위를 '예수님'께 두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살아온 삶을 거스르는 것들이더라도 확고하게 주어진 그들의 길을 간다. 그들에게 성령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시고, 강력하게 그들에게 임하셨기에 그들은 나아갈 수 있었다. 돌이킬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들의 행동이 제 3자가 보기엔 그다지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것이 세상의 환대를 받을리도 없고, 성공할리도 없다. 승리하는게 쉽지 않고, 핍박과 협박, 폭력에 시달리는 사태도 일어난다. 하지만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고, 성령의 권능이 임하였기 때문에 담대하게 굳건히 나아간다. 또한 초대교회와 같이 그들의 소유를 기꺼이 나눈다. 함께 기도하며, 위로하며 격려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내가 그분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를 수 있을까?"p.222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저 질문이 내 마음에도 다가왔다.

책의 인물들처럼 기꺼이 내 시간, 소유, 열정을 그 어떤 것이라도 내어놓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 내 소유, 내게 안정감을 주는 것들, 내가 의지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또한, 내가 무엇보다 포기하기 싫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가족, 깨끗한 주거공간, 편리한 차, 향긋한 커피, 김치,,,, 바퀴벌레는 너무 싫고, 더러운 화장실도 싫고, 불쾌한 냄새는 더욱 싫고,,,,


이렇게 마음 속으로 저울질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허울뿐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했고, 어느 정도 지식은 깨우치고 있다. 기독교 문화는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내 일부이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그의 발자취를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아니 따라가고 있는걸까?


랙탱글의 음주지역, 문화는 영혼을 썩게 했고,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했다. 거기서 구원을 하려고 애쓰는 자들이 있고, 그 지역으로부터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권력자들이 있다. 그들은 쉽게 그들의 권리를 내어놓지 않는다. 그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이들을 협박하고, 결국은 정치적으로 권한을 확보한다.

 나는 정치와 법, 사회에 우리가 무지하고 무관심으로 충분히 부패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끼치도록 놀라움을 느꼈다. 기독교적으로는 영적인 싸움이다. 이 책은 주목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부분에 통감하며 우리 사회에 적용하여 정치와 법으로 오히려 더욱 부패의 길을 가는 현상황을 생각하며 안타깝고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19세기 쓰여진 책으로 우리의 현재 상황에 비해서 다소 보수적이고 융통성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레이첼이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오페라단을 포기하는 것을 보면서, '오페라단을 하면서 교회 봉사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을 한다.

각종 자극적인 기사와 범죄사건을 심중히 다루는 기사를 제한하는 신문사의 노먼사장을 보면서 그 기준은 어디이며, 범죄사건을 다루는 것이 범죄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파워스 씨가 자신의 철도회사의 불의를 보고 결국은 사표를 쓰는 것을 보면서, 기존에 파워스씨가 직원들을 위한 공간을 꾸미며 그들을 복음에 가까워지게 하려고 했던 노력은 퇴사후에 어찌할 것인가? 그건 하나님이 주신 그의 사명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의 말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시대보다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자격 기준이 훨씬 낮아졌다는 말인가?'⁠라는 문장을 보면서 회유하려고 하고, 타협하려고 하며, 세상의 이득을 최대한 누려보고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욕심을 지적받는 듯 해서 소스치게 놀랐다.

저들은 그들의 기도와 고뇌끝에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저와 같은 결정을 했다. 그러한 것에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또한, 워낙 책의 시대 정황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수시로 자연스레 등장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월히 여기고, 타락하고 저급한 사람을 더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 혹은 남녀차별적인 글들이 요즘에는 소화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결론은 이것이다.

 오늘날의 교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라 행하면서

기쁘게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는 정신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p210


예수님이라면? 을 늘 고민하며 그분의 길, 모습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잇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길을 갔을 때 어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성하여 회개하는 판타스틱한 결론으로 전개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은 알지 못하는 성령의 운동하심을, 그리고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또한, 고통 중에도 예수님을 의식하는 자들에게는 그것들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갖게 되며 또한 고통조차 기쁨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이야기 한다.

다소 무언가 세상의 관점으로 성공과 반전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는 다르기 때문에 당연하다.


이 책을 기회로 '예수님이라면...?'이라는 운동을 통해 제자도를 점검해본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돌이키며 질문하고 고뇌함으로 진정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천국가는 날까지 지속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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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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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평창올림픽,...


이 책을 읽는 내내 사건이며 장면들이 내용과 함께 오버랩되면서 씁쓸함과 애통함, 분노, 한탄 등이 감정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스포츠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지역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 안에 가족의 이야기인...

<베어타운>이란 이 책 한권에 담아냄으로 저자는 무엇이 말하고 싶었던걸까?


처음에 제목과 표지를 보면서 '곰'이란 동물이름이 들어간 지역에 은은히 펼쳐진 자연 그림을 보며 곰과 자연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얼핏 봤나보다. 나중에 다시봤는데, 하키채와 헬멧이 있는 게 한참 후에서야 보인다.

아름답고 드넓은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된 지역, 베어타운은 그 지역만의 고집스러운 특색을 가지고 있다. 하키를 사랑하며,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잘 하지 않는 투박함을 가진 사람들의 지역, 라모나의 말대로 옳고 그름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는 있어도 선과 악은 제대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는 지역... 

 그 지역에서 하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베어타운스러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탕-탕-탕-탕-탕'을 비롯 여러 번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전환할 때 쓰인 이 단어를 보며 '곰'이란 단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총'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부러 총소리로 오해하게끔 작가의 의도가 있었는지, 번역자의 단어 선택으로인해 내가 오해한건지 모르겠다. 어쨋든 이 소리는 바로 하키에 쓰이는 '퍽'이 부딪히는 소리다. 하키는 베어타운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희망의 스포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겐 익숙한 소리이고 당연한 소리이며 꿈의 소리다. 무언가 익숙할 것 같으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는 소리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무언가 압박이 느껴지기도 하는 소리다.

 

 하키는 베어타운의 희망이었다. 그들은 하키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로인한 혜택들을 골고루 누리고 싶었다.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이 단합한다. 권력자(?), 선수단, 그리고 가족들이다. 이를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며 하키는 굳건한 그들의 문화가 된다. 그리고 달려가야 할 바로 그 목표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런 목표를 대함에 있어서 페테르는 문제제기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른으로써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것들을 전수하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게 삶이며 그게 바로 인생이라며 대답하는 라모나의 말에서 단지 우리의 인생의 단면을 볼 때 극단적으로 그 자체를 판단할 수는 없음을 생각해본다.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게 뭘까요, 라모나?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 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둘 사이에 자리 잡은 정적이 고스란히 머문다. 페테르가 빈 잔을 카운터 너머로 밀어서 건네고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에야 노년의 미망인이 잔을 비우고 으르렁거리듯 얘기한다.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 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p.153


그러는 중에 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되어 한 목표를 향해 달리던 베어타운이 다른 위기를 맞이한다.

베어타운이 한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던 모습에서 불안하게 쌓아올린 블럭과 같은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승승장구하여 목표에 도달할 것 같지만, 철저히 목표중심적이고, 그 안에 권력과 이목이 쏠려있는 온전하지 못한 공동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던 중에 한 사건으로 견고하지 못한 블럭이 끝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공동체의 와해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질문하는 듯하다.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토론을 벌이다보면 거의 항상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생물 선생님이 설명하기에도 쉽지 않은 주제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똘똘 뭉치고 서로 협력한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자가 약자의 희생을 딛고 번영을 구가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쯤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 항상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 이기적이어도 될 것인가. 얼마나 서로를 챙겨야 하는가. p.391


나도 순간은 그렇게 생각했다.

왜 마야와 가족들은 경기 바로 직전에 그 일을 터뜨려야만 했냐고...!

어쩌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지도 않았겠냐고!!

순전히 베어타운의 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 것이다. 그동안 달려왔던 목표를 분해시켜버린 마야의 가족들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희망이 영원히 휴지조각이 되어버린건 아닐까? 라는 절망감도 들 것이다.

그러다가 마야의 입장이 되었다. 그녀의 가족의 입장이 되었다.

'삶은 정지되었다.'


서로의 이익과 목표에 하나가 되었지만 불완전했던 상황에서 한 개인에게 쏟아내는 분노와 절망은 무시무시하다. 알지도 하려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진실은 묻어버린 채, 한 사람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공동체의 힘은 생각보다 크고 위력적이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철저히 개인적이게 되고, 이기적이게 되나보다.  개인의 이익에 따라 판단도 생각도 편파적이 될 수 있는 우리는 그것이 인간의 한 생존본능을 인정하게 된다.

자신이 처하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알기 힘든, 이해할 수 없는 게 타인의 인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려운 문제, 단순한 해답. 공동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들의 총합이다. p.426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미투(me too)운동이 확산되며 저마다 그동안 받아온 피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어타운>에서 나타난 사건과 그 사건을 대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으로 피해자로써 인정과 격려를 받으며 가해자는 그에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드러난 모습이고 공인이 아닌 일반인, 한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같은 문제라도 일반 개인은 쉽게 지지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베어타운>에서 피해자인 마야가 그렇게 가족이나 친구외에 지지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받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개인은 기자회견이나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상황을 주장하는 공인처럼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 일일히 자신의 피해를 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른 사람들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줄만한 여유가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는 피해상황은 피해자의 옷차림에 대한 판단과 유난스러움을 지적받으며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훨씬 권력에서 앞설 때는 더없이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 할까? 피해자가 그 일에 대해 스스로 치료받으며 애써 극복하는 것만으로 되는 걸까?

그런 면에서 마야의 용기와 결단, 의지는 우리에게 다른 도전을 준다.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음에도 복수로 자신의 삶을 버리지 않고 새롭게 세우고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은 현명하며 바른 처사였다고 본다. 단단하고 만만치 않게 가해자를 대면하는 모습은 또 그야말로 통쾌하다.  


나의 경우 '부모'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부모의 관점으로 이 책을 볼 수도 있었다.

특히 자신의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지지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아이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표현한 페테르 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아이와 관련된 상황에서 내 안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따라갈 것인지, 철저히 내 아이의 말을 믿어주고 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할 것인지 내 안에서 충돌하고 결론짓던 한 선택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어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어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어 p.373


이 말은 내가 내 아이들한테 미안해하며 되내이며 했던 말이기도 하고, 4년하고도 며칠 전에 일어난 세월호 아이들에게 중얼거리며 하는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섬세하고 울림있는 글들에서 지난 하나하나의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정신없이 보내는 그 소소한 하루가 단 한순간으로 인해 그리워하고 꿈꿀 수 있는 하루일 수도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다잡기도 하고, 무능하고 게으른 부모이며 어른으로써의 나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배크만 특유의 상황 묘사는 그의 소설만의 매력이다.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라 그의 생각을 담고, 비교와 대조와 은유 등 온갖걸 쏟아내어 그가 보여주려고 하는 현실은 더 애절하게도 더 깊게도 더욱 간절하게도 느껴진다. 그의 철저하고 끈기있는 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과 더불어 그가 짚어낸 인간의 감정에 대해 섬세하고도 밀도있는 깊이가 보이는 책이었다. 또한 말했다시피 우리 현실에 적합한 내용이어서 함께 삶의 반향을 일으킬만한 책이란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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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 - 성교육 전문가 엄마가 들려주는 43가지 아들 교육법
손경이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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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된 아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남자와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갑자기 설명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어서 생각나는대로 아이에게 설명했다.

"ㅇㅇ 같이 고추가 있으면 남자야, 그리고 없으면 여자인거지."

그랬더니 "엄마는 남자에요? 여자에요?"라고 묻는다.

"엄마는 여자야!!"

"아~ 그럼 고추가 있나 없나 엄마 만져봐도 되요?"

아이의 돌발적이나 순수한 말에 빵터져 웃기도 하면서도 당혹스럽기도 했다.


아들을 둘을 낳다보니, 나와는 너무나 다른 신체구조를 가진 아이가 그에 따른 행동들을 하는 걸 보면서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소변을 보는 법, 그리고 유아 자위에 대한 접근, 아이가 성기가 아프다고 할 때 고통과 대처 등...

아직은 어리다면 어릴 아이들에게서 일어난 일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여자인 나로써는 아이에게 어떻게 제대로 설명해줘야 하는 것인지당황할 때가 많았다.

아빠가 늘 상주해서 동성으로 설명해준다면 좋지만, 아이와 생활하고 케어하는 건 엄마 몫이기 때문에 아이룰 단지 유아가 아닌 남자로 잘 알아보고 이야기 해 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나부터도 성에 대해서는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보여주시던 영상을 통해, 그리고 수업시간에 듣던 교과서 이야기가 전부다. 그러다가 친구들을 통해서 드문드문 알게 되었고, 조심스러운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게 앎에서 조금 추가된 것이었다. 낯부끄러운 말에 대해 상당히 조심성 많았던 부모님은 여성의 몸을 조심히 소중히 해야 한다고는 알려주셨지만, 여자와 남자의 몸에 대해, 아기는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해 알려주신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많은 나로써는 그에 대한 지식이 늘지 않았다.

아마도 이 때문에 나조차도 아이에게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땐 나도 모르게 소리지르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나보다.


하지만 요즘 점차 확산되어져가는 미투(me too) 운동으로 딸 엄마가 자기 딸을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아들 엄마로써 우리 아들도 걱정이 된다. 여자인 엄마로써 내 아이인 아들이 그러한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경계심이 바짝 든다. 주로 성으로는 남자가 여자에게 가하는 확률과 상황들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미루었다가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미리 자신의 몸에 대해서 그리고 주체적인 한 자아로써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책에서 찾고 싶었다. 그러던 중 가장 실질적이고 최근에 출간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얼마전에 교회에서 짧게 영아들에게 아니 영아의 부모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 '무슨 아직 분유나 기저귀도 안 뗀 아기에게 성교육인가?"라는 생각에 흘려들었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부모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아기가 말을 하든 하지 않든 아기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요즘은 그러할 것을 권장하고 또 부모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이의 말과 귀가 언제 터질지 모르고, 아이가 언제 옳고 그름을 인식할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교육이 그와 다르지 않다. 저자도 말하지만, 아이에게 성에 대해서 그 아이의 눈높이의 언어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면 무심코 들었던 일이 자신에게 갑자기 일어났을 때, 아이가 무덤덤히 받아들이고 덜 당황할 것이다. 그런면에서 어릴 적부터 아이의 인지능력과 상황에 맞게 성교육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 책은 요즘의 성과 관련한 우리나라 상황 뿐 아니라 성장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잘 파악하여 지금으로써는 가장 적합한 성교육 저서이다. 또한, 아직은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일반적인 상식이자 개념으로 오해하는 경우를 잘 지적했다. 개인이 갖고 있는 성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개념과 판단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교육의 핵심이 성지식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이란 저자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뜻밖이기도 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가 일어나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놀라게 된다. '자기결정권'이 개개인에게 있다. 그러므로 개개인은 존재로써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고 또한 이게 성적인 자기결정권까지 연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의했다.


 성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어쩌면 내가 폐쇄적일지도) 그렇기 때문에 먼저 우리가 갖고 있는 성에 대한 관점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무조건 억압하고 금지시키기 보단 책임소지가 더 커질 최악을 예방하기 위하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은 부분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아들을 공부하고 현상황을 이해하기에 이 책이 많은 부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현상황이니 초등학교,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 상황들이 쉽게 와닿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이나 설명에 100% 동의할 수는 없었다. 일단 나의 경우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몸에 대해 저자와는 다른 접근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에 대해서 아는 것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성에 대한 기본 인식과 방향성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물론 요즘 상황에 맞게 의견을 좁혀가는 것이 얼마만큼 가능할지는 아직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해서 성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닥친다고 해도 어떻게 아이와 이야기를 해야할지는 저자의 의견대로 먼저 아이와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리 알고 끊임없이 고민해보는 것이 엄마인 내게 있어서 큰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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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리커버 에디션)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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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블레셋의 대장으로 2미터가 넘는 거구엿던 그는 이스라엘을 말로는 조롱하고 그의 신체와 용사적인 면모로 이스라엘에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그에 두려움을 뛰어넘어 맞서 골리앗을 쓰러뜨린 역사적인 기적의 인물 다윗이 있다.

이 성경이야기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이야기다. 약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새로운 돌파구를 기대하게 하는 승리의 대반전 스토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저 두 인물이 그리고 그 사건이 떠올랐다.


이 책은 점점 주변을 삼키며 거대한 괴물로 몸집을 키워가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과 오랜 가풍과 전통을 고수하며 그들의 생계를 꾸려온 소상인들의 이야기다. 드니즈란 한 여인을 중심으로 하여 그녀의 성장과 함께 시대적인 변화의 상황에 대한 것이다. 백화점의 사장인 무레는 자신의 야망과 꿈을 좇아 자신의 백화점 영역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그에 어쩌면 걸림돌이 되는 각 건물과 상점들을 매입한다. 자신의 것들을 순결을 지키려고 애쓰는 듯한 처녀와 같이 강한 의지와 집념을 가진 소상인들은 자신의 가게를 어떠한 금액에도 내놓지 않고 자신의 사업을 지키고자 버틴다.  

'그래도 있을까? 그래도 있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반전을 기대하며 판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하지만, 꿈쩍하지 않는 상황에서 겪는 소상인들의 애절함과 극심한 고통은 읽는 이로하여금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백화점은 더욱 구매분야를 넓혔고, 그들의 영역을 확대했다. 소상인들의 추억과 생계를 위협하는데에 가차없고 냉혹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구조는 비슷했지만 결론은 다르다.


주인공 드니즈의 큰아버지 보뒤의 가족은 백화점의 등장으로 그 잔재마저 소멸되어 버리는 소상인들의 삶을 비유적으로 잘 보여준다. 아버지는 전통적으로 받은 사업체를 잃고, 엄마는 딸을 잃었다. 딸은 자신의 약혼자마저 백화점 직원에게 빼앗기므로 결국 죽음에 이른다. 건물은 헐값에 매각되거나 그 형체조차 사라져버리고 만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소상인들의 분노와 무너진 자존심을 보며 우리 조차 힘없는 시민 중 한 사람으로써 그들처럼 순식간에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는 약한 자라는데 공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단지 소상인들의 몰락으로 인한 비참함만을 이야기 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어쩌면 아니 언젠가는 있을 변화에 대해서 소상인들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 거대한 괴물의 승승장구는 우리에게 닥칠 시대적인 상황임을 드니즈의 생각을 통해 긍정하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안타깝게도 그러한 희생을 통해서 우리는 또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함을 이야기 한다. 드니즈의 결정과 방향이 아마도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응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는 듯 하다.


... 맙소사! 이렇게 잔인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눈물 흘리는 가족들, 길거리로 내쫓기는 노인들, 파산이 야기하는 온갖 비극들! 하지만 그녀는 아무도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며, 내일의 파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밑거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밝아모녀서 드니즈는 다시 차분함을 되찾았다. 체념과 커다란 슬픔으로 인해 내내 깨어 있다시피 하면서 창문 쪽으로 몸을 향한 채 누워 있는 동안 유리창 너머로 차츰 동이 터 오르는 게 보였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피로써 치러내야 하는 몫이었다. 모든 혁명은 순교자를 필요로 하며, 죽음을 딛고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이자 각 세대가 치러내야 할 산고 앞에서, 그동안 드니즈가 느꼈던 두려움, 자신이 가까운 사람들의 파국에 일조를 함으로써 그들의 불행을 초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그들을 향한 크나큰 연민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가능한 모든 위로의 방식을 찾고자 애쓰면서, 적어도 자신과 가까운 이들의 치명적인 파국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궁리했다. p.625


또한 이 책은 단지 저 두 부류의 갈등과 대조적인 상황 뿐 아니라 백화점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고발한다. 서로 물고 물어뜯기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해나가는 자본주의 경제사회가 백화점으로 축소화 되었다. 어느 때는 아군이었던 사람이 적군이 되기도 하고, 적이었던 이가 바뀌기도 한다. 자신의 필요와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백화점의 내부와 쫓기고 굶주리는 드니즈 가족을 품어주는 소상인들의 정감있는 행동은 또한 한 사회안에 공존하고 있는 대조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거대한 프렌차이즈와 대형마트 속에서 설 곳을 잃어가는 자영업의 좁아져가는 입지가 떠올랐다.(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의 정부 개입이 있기는 하지만..도움이 안될지라도^^;) 

유럽이 확실히 우리보다는 경제사회문화등에서 상당히 앞선 것은 사실이지만, 요사이 우리나라에서 주목되고 있는 대형상인과 소형상인들의 갈등이 이미 19세기말에 다루어졌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또한 이 책을 위해 에밀 졸라는 백화점과 주변을 인터뷰하며 자료를 모았다고 한다. 그런 에밀 졸라의 시대이해와 통찰력이 그때뿐 아니라 현시대까지 아우르는 인간의 욕구와 사회상황을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욕망과 내재된 시선들을 어찌나 잘 다루었던지 여성을 고객으로 하는 분야에서는 이 책이 필독서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인물 중 여성들의 욕망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잘 이용하여 경영에 적용하여 성공을 이루었던 무레(백화점 사장)의 냉혹잔인함은 여자들에게 있어서 적과 같이 여겨진다. 아니 책 속의 인물들은 그의 겉모습과 말에 현혹되어 그 안의 야망과 경멸스러움을 알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속수무책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에 바쁘고 탐욕의 끝을 달리는 여인들의 모습에 현재의 우리를 발견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드니즈'란 인물을 통해서 새롭게 개혁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함으로 여성들의 꼭대기에 있던 무레를 좌지우지(?)함으로 선한 발전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여인들의 물욕과 공허함이란 본능은 오히려 그대로이고 백화점이란 공간을 통해 더욱더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여성들의 본능에서 욕망을 위한 소비에 속수무책인 것이 조금은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될까?

백화점이란 공간으로 과거부터 억눌리고 감춰져온 여성들의 욕망의 발현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든다. 한편으로는, 미투 운동을 통해 점차 회복되는 여성의 인권 현실을 끄집어 내어 보며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들의 욕망들을 해소하고 나아갈 방향들이 이제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물론 소비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참! 책이 너무 예뻐서 읽고 싶었는데 책 느낌이 나는 메모책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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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로 살 것인가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기술
로렌 헨델 젠더 지음, 김인수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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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아픔과 상처가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내 주변을 보자면 당당하고 자신있어 보이는, 건강한 정신을 가진 듯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그들 안에 모순과 불안이 섞여 그들의 삶에 그것들이 녹아나 있는 것을 본 적있다. 나조차도 평소에는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이성을 잃고, 어느 순간 예민해지고, 어느 순간 극도로 불안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괜찮을 것 같은데, 쿨할 것 같은데 두려워하고 불안을 자아내는 그들의 행동 속에 과연 무엇이 숨어있을까?


 이 책 초반을 읽어보면서 단순히 개인의 꿈을 회복시켜주는 책으로 판단하기 쉽다. 제목부터가 '다시 꿈을 꿔야 할 시간'이다. 꿈을 자극하고, 자신감을 불어넣게 해주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단순한 자기계발서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꿈을 깨우치고, 막연하게 개선된 삶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은 단순히 우리에게 '기운을 내라' '당신은 할 수 있다' '우리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는 식의 위로나 격려, 응원을 하는 책이 아니다.

이 점이 다르다면 다른 책과 확실히 구별되는 점일텐데, 이 책은 우리를 통제하고 행동하게 하는 가장 깊숙한 우리의 내면자아를 끄집어내며 우리 안의 목소리를 직시하게끔 이끈다.


저자는 라이프 코칭에 대해 전문가다. 그녀의 강의는 MIT 강의를 비롯해서 여러 군데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었고,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게 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가도록 올바르게 제시하고 있다.

현대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시시각각 달라지는 현실을 살아내는 건 하루하루 버겁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 우리의 조용한 목소리에 귀기울여보길 안내하는 이 책은 어쩌면 선뜻 들어서기 힘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끔 내게서 벌여지는 나의 행동과 심리에서 '이건 아니다'싶은 경우가 한번이라도 있다면 잠시 'break'를 걸어 돌아보면 좋겠다.

 꼭 어떠한 일이 있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삶의 이상을 인식조차 하기 힘든 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며 그간 우리의 삶을 한번쯤은 되돌이켜 볼만은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고 생각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의 요구와 약속은 철저히 지키려고 애쓰면서도 정작 나와의 약속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 소중하게 여기기 보다는 언제든지 약속을 파기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로 여겼던 것이다. 내 자신을 존중하지 못했고, 내 자신을 이해하거나 아껴주지 못했다는 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고, 그다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은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내 이야기를 알고 객관적으로 알 필요가 있었다. 내 이야기를 안다는 것은 그냥 들어주고, 공감 해주고 이해 해준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겁쟁이 치킨과 버릇없는 아이를 보고 또한 현재 내 생각, 기억, 거짓말 등을 살펴보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꼭 이것들을 글로 써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책은 4명의 사람을 예로 들어서 각각의 나의 내면을 관찰하는 작업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솔직한 사례들을 보면서 내가 두려워했던 것들, 긴장하며 염려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글로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방법이 더 쉽게 다가왔고, 그들의 개선된 삶을 보며 내 삶의 변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책에 제시된 예가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 상황인 탓에 약간은 더 자극적으로 보여 공감은 조금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심각해보이는 개인의 삶을 보며 위안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아마도 우리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깊은 내면이 적랄하게 표현된 거라 주관적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미 끝난 과거의 상황에 대해 용기를 내어 상대에게 표현하고 이야기를 시도해보는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생각한 것보다 충분히 발전된 삶을 보여줄거란 확신은 든다. 지나갔다고 과거에 대해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와 기억이 우리의 삶에 어느정도까지 악착같이 붙어 괴롭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지인이 아닌 낯선 사람과 그룹을 만들어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리더 한 사람을 세우고 서로 위로와 격려가 될 멤버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기 좋을 책 같다. 어느 정도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하기엔 의지와 용기가 다소 요구될만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보며 끄집어내는 내 내면의 목소리가 충분히 나올 수도 있으리라 본다. 오히려 하나하나 이 책의 순서를 따라 적어내려간 내 꿈과 내 기억, 거짓말, 감정들이 어쩌면 내가 은연 중에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점은 미리 경고(?)한다. 생각보다 아픈 이야기지만 그것들에서 자유해지는 기쁨은 아픔보다 클 것으로 기대하고 책에서 제시하는대로 충실히 따라본 다면 더없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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