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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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로 역사를 배웠다. 80년대 <조선왕조500년>을 시작으로<신돈>,<기황후>(역사적 사실에 논란이 되었지만,,,>,<정도전>까지 고려후기부터 조선의 개국 이후까지 드라마에서 주목하는 인물과 사건은 달랐더라도, 보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시간별로 연결되는 게 상당히 흥미롭다. 당시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사람이어서 역사책으로 역사를 깊이있게 알 수는 없더라도 드라마에서 주는 감동과 사건에서 받은 인상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강렬함 덕분에 인물들의 이름과 이미지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5년 전쯤, 저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한권을 읽었음에도 기존 역사책에서 느껴지는 지루함과 친절하지 못함은 발견할 수 없었다. 역사에 대한 확실한 주관, 통찰력, 그리고 날카로운 비판이 엿보였는데, 그런 면에서 저자의 책들을 한번쯤은 두루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의 신간인 이 책 <조선왕조실록1>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요즘은 바쁜 시대 한번이라도 역사책을 훑을 수 있도록 한권으로 이루어진 책들이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이 책은 왕권을 계승한 왕과 그 시대를 10권이라는 책을 통해 주목함으로 깊고 상세하면서도 명확한 역사의 사실을 다루어냈다. "우리도 드디어 <로마인 이야기>를 뛰어넘는 역사서를 갖게 됐다" 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처럼 철저한 문헌자료의 고증을 토대로 한 구상과 분석으로 조선왕조를 바라보고 있어 자체로도 상당히 가치있다고 생각된다. 

 

 고려 사회는 부정부패와 전반적으로 무너진 사회구조로 제대로 존립하는 것이 어려워보였다. 또한, 명,원나라 혹은 왜로부터 잦은 침탈이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의 존속은 시간 문제였다. 궁궐안에서조차 왕권이 원과 명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불안한 왕권으로 인해 제대로 된 개혁이 불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현시대에서 버려진 정도전과 고려사회 안의 괴리와 불합리한 현실을 이해할 수 없던 이성계의 만남은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다.

드라마를 통해 받은 인상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백성의 힘든 현실을 개국을 통해 타파해서 새로운 희망을 갖을 수 있게 되어서인지 정도전의 10년간의 유배와 이성계의 만남, 그리고 그 과정은 이 책에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하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마냥 조선왕조실록이기 때문에 조선건국에 대한 정당성을 지지하고 있지만은 않다. 사실을 고려시대 왕들의 이야기를 깎아내린 사실을 틈틈히 지적하며 조선이 개국의 정당함을 위해 고려의 역사를 위조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 면에서는 역사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지루하지않다. 폭넓은 역사적 사실이 흥미진진하다.  

한 역사를 면밀히 바라봄으로 조선시대의 흐름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 특유의 역사적인 고찰과 관점의 도움으로 우리 현재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기대해볼만하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더욱 신중하고 깊이 있는 접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이성계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기록이다.

1,893권 888책. 필사본·인본. 정족산본과 태백산본 등이 일괄적으로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네이버지식백과 참조) 이것을 후대에 남기고자 (군주도 건드릴 수도 감출 수도 없이 끝까지 그대로 기록한) 정신을 잃지 않으며, 기록하며 남기고자 했던 선조들에 대한 자부심과 그 지혜를 생각할 때에 이 책을 통해 조선왕조를 상세히 바라보는 것은 후손으로써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찾고, 정신을 깨달아 이 나라를 존속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선조들이 우리에게 <조선왕조실록>을 남긴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이후의 앞으로 9권도 기대하며, 작가님의 집필 완성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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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이 만드는 공포, 낙관이 만드는 희망 - 낙관주의적 상상력 없이 인류의 진전은 없다
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 김종수 옮김 / 움직이는서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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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근검절약, 환경보호를 강조하며 학생들에게도 여러 생활습관들에 대해 권면하셨다. 예를 들면, 샴푸를 쓰지말고 비누나 식초를 써라, 오존층이 파괴되니 에어컨과 스프레이 제품을 쓰지마라, 땅에서 기름한방울 안나는 나라에서 조금더 껴입고 달려서 열을 내라,, 등등. 순진했던 초등학생은 지구에 심각한 위기와 종말을 두려워한 나머지 엄마를 재촉해 머리를 비누로 썼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더 상쾌하지 않다며 머리를 수시로 벅벅 긁었다. 에어컨은 전기비가 많이 나오기도 했기 때문에, 땀을 참아가며 되도록 선풍기와 부채를 사용했다. 아직까지 오존층과 스프레이 제품에 관한 관계를 인용하여 자연환경보호에 힘써줄 것을 이야기하긴 한다. 하지만 그 밖에 수질, 화력 ,, 환경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걸까?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추억같이 떠오르면서도 그 이후 우리의 순수했던 노력이 과연 환경보호에 제대로 영향을 주긴 했을까? 선생님들의 말은 지금까지도 유효할까? 싶다.

 

 저자는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진 책<진보의 역설>을 출간을 한 바 있다. 그 책에서는 경제성장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형편이 나아진다고 여기지 못했다고 진단하면서 서구 선진국들에 팽배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원인으로 보았다. 여전히 불안해하고 불행해하는 그 난제를 계속 연구하던 중에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낙관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로 한다. 미래를 우려했던 것과 달리 과거에 비해 훨씬 나아진 현상황을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주장하며, 왜 그런 개혁과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현재 주어진 난제들에 적용하여 미래를 긍정하고자 한다.

 

책에서 우리의 상황, 세태들을 한마디로 분석한 사실이 흥미로웠다.(진보의 역설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정치인과 언론, 소셜미디어에서는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다룬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왜 그렇게도 문제가 끊이지 않는가?'라는 생각은 했지만, 우리 스스로 접하는 정보가 비관인지 낙관적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또한, 그 정보의 통로가 SNS, 정치분야라는 사실, 내용은 대체로 비관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우리가 비관에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낙관에서는 더 이상의 목표가 사라진 듯 보이기 때문이다. 낙관은 우리에게 어떠한 방향성이나 무언가를 추진할 에너지를 생산해 내지 않고 그냥 사실만으로 잠식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비관은 우리에게 불안을 형성시키고 그에 따라 불안을 제거하여 안정을 찾으려는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하게 한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비관에 더 쉽게 반응하고 예민한게 아닐까?

 

 우리가 문제라고 여기는 각 분야를 주목하여 그 안에 낙관적인 점들을 하나하나 지목해 준 점도 있다.

식량과 빈곤의 문제에서는 농업기술발달로 적은 땅으로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효율적인 결과로 그 어느때보다 식생활환경이 개선되었다. 또한, 개도국에서 빈곤의 문제는 자체 시설부족과 정치적인 부패로 인한 것이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으로 점차적으로 해결되는 상황으로 낙관한다.

수명에서도 의료기술의 발달로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동안 장애인이나 부상이 늘어났다는 결과를 보고 우리는 부상수에 주목했지만, 그만큼 사망수가 줄었다는 다른 한면이 있다는 것을 볼 때, 더나은 의료개혁을 기대해본다.

우리가 그동안의 관점이 굉장히 비관론적이고 한정적이었던 것에 반해 전반적인 실상은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간 불안이 조금이나마 잠식된다. 폭력이 줄어들고, 기술은 점점 안전해지고 있으며, 기존의 독재정치는 사라지고 정치개혁의 바람이 일고 있는 면에서도 우리가 낙관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많아졌다.(책을 읽어보시면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들었던 생각이기에 언급하려고 한다.

저자가 농업기술의 개발로 병충해를 줄이고 식량의 보급이 증대된 사실에 GMO(유전자변형)을 다소 낙관적으로 본 것이다. 식량부족으로 어려운 국가에겐 보다 빠르고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하지만 동물실험으로는 유해한 결과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느정도의 안정성을 우려하는 입장에서 이를 무조건 낙관적으로만은 볼 수 없다. 일단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고 안전에 대한 욕구 또한 중요시되는만큼 식량의 대량생산과 효율성이 세계 전반에 정당화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수치상으로 상황에 따라 사상자를 비교함으로 어떤 우위를 따짐으로 상황을 낙관으로 보려고 한 것은 (저자도 생명을 가지고 자신이 다루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 했다) 객관적인 수치로는 설득력 있게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소 불확실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비관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봤다.

 

 

 최근 대한민국은 대통령탄핵, 정치교체가 이루어진 현재까지 여러 분야의 문제들이 이슈화되고 있다.  환경(미세먼지), 세계/정치(전쟁), 사회(난민, 페미니즘, 최저임금..), 교육 등 여러 문제에서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청와대에 수많은 청원으로 올라와있고, 광화문은 하루도 조용한 날 없이 개혁과 변화를 부르짖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도 그에 속하든 안 속하든 개인의 현실 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잠시 멈추어 생각해면 좋겠다. 우리의 관점이, 불안이 매일 접하는 정치기사와 SNS, 미디어에서 무분별하게 흡수함으로 야기된 건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는 불안을 마냥 떠안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우리 안에 성취되어 결과를 얻은 낙관의 요소들은 없는지 한번 돌아봐야 하지는 않을까?

 

이 책을 통해서 그간 내가 본 세상이 흑백논리에서도 단면적인 한 부분만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개선된 상황을 여러가지 수치로 확인하고, 저자가 거시적으로 바라본 미국, 세계 상황의 변화를 다룬 것을 보면 기존에 알고 탄식하기만 하던 사회현상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덕분에 비관이란 한 면만 치중하는데에 벗어나 시야도 넓어지고, 주변에도 더 나아진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나눌 수 있게 되어 읽으면서 만족스러웠다.

저자는 '낙관주의는 역사의 화살을 추진시키는 활과 같다'고 말했다. 낙관주의는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과거의 향수에 빠져있거나 현실을 마냥 비관으로 바라보며 그 자체에 통탄하고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목소리는 단지 현실을 비관하고 목놓아 우는데 그쳐서는 안 되며, 포기 하지 않았던 현재까지의 발자취 속에서의 낙관이 발판이 되어 또 다른 역사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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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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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다면...? 권력이 있다면?

재벌총수들 못지 않는 재력을 지니고 있다면?

탁월한 감각과 지능, 그리고 성품을 겸비했다면...?


슬프게도 내 자신에게 위의 것들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해 본적 없는 시나리오다.

그래서 유명인들을 떠올리며 위의 것들을 하나라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행보를 생각해봤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정치에 뛰어들거나, 자신만의 위력을 펼쳐 각 분야 곳곳에 자신의 영역을 두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재력을 사용하더라. 종교 문화 분야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봤다. 이런 것들이 저들이 할 수 있는 전부 아닌가?

제국주의 시대가 지나면서 더이상의 신대륙은 없고, 현시대는 위성으로 세계 곳곳이 노출되어있으며 더이상은 지구내부가 아닌 우주로 방향을 돌린지 오래다. 현재의 행보를 당연스레 여겨오는 현진행상태에 책은 아로니아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며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 그리고 미래를 다루는 SF 영화 등에서 우리는 이미 작가의 상상력을 토대로 만들어진 새로운 국가, 세계를 접했다. 그것들이 현실 속에서 더 나은 사회를 갈망하는 우리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거나 미래사회적인 문제를 제시하는 등 의미를 부여하는 면에서 이 소설과 공통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한국의 현실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감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세계에서 연결되어 새로운 국가가 탄생된다는 점에서 더욱 실감나게 국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이 책은 아로니아 공화국의 탄생이 있기까지 대통령 김강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가 어떤 인물이며, 어떻게 아로니아의 건국에 참여하게 되어 두어번의 대통령의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 아로니아가 앞으로 나아가게 될 이야기를 고상하거나 격식없이, 솔직하고 털털하게 쏟아낸다.

그래서인지 인물의 행동들은 재치있고, 웃기는 상황들로 빵빵터진다. 김강현의 아로니아 이전 한국에서의 삶은 무겁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한국의 가정과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혼란스럽고 통탄스러울만한 현장들이 드러난다.

한국은 일제치하와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거쳐왔다. 산고의 고통과도 같은 시대적인 고통을 작가는 자신만의 탁월한 시선으로 분석하고 이해하여 독자들에게 터놓았다. 이전의 식민지의 삶, 가난과 분열의 아픔 못지 않게 유린되고 묵살된 한 국가의 인권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러한 작가의 시각으로 알게 된 한국의 현실에서 현실을 초월한 방향과 해답을 간절히 바라며 찾을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자신의 소리를 낸 모습의 김강현은 독자들에게 사이다와 같이 청량감을 주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도리어 죄가 되었고 그러한 현실은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하는 듯 전혀 진전도 요동도 없는 현실에서 실제로 많은 개혁과 진보의 선인들이 어떠한 마음이었을지 예상이 되어 참담하게 다가왔다. 그 막막함과 고통과 좌절감....


그래서 어떤 이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였다. 어떤 이는 감옥신세가, 고문을 피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또 어떤 이는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과연 대한민국은 변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볼 때는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는 면에 주목하여 방법을 찾게 된다.. 바로 그게 현실에 충실했을 때라면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하여 저들이 꿈을 펼칠 수 있게 해주었다.

바로 (한일공동개발구역JDZ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만한 다른 하나는 이 책이 우리가 전혀 접하지 않았던 한일공동개발구역 JDZ의 존재를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2028년 6월 22일 우리나라의 운명을 바꿀 또 하나의 일이 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시대의 상황을 고발하며, 또한 그것들을 접목시킨 국가 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룬다는 것에서 작가의 통찰과 바른 시대정신이 작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소설가들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들이 진정한 작가들의 역할이자 소명을 다하는 것임을 생각하며 감사하기도 했다.


다시 돌아와서, 이 책은 새 국가의 건설이라는 색다른 돌파구로 국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해 주는 책이다..

국가가 먼저인지, 국민이 먼저인지는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와 같은 문제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국가는 인간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인간은 국가가 없어도 산다. 지난 탄핵이전까지의 국가는 국민에게 자연스러운 희생을 요구했다. 그게 바로 애국이라고 했다. 바로 그게 다같이 사는 길이라고 감성을 자극하며 자신의 체제를 이끌어왔다. 그리고 나서 국가는 국민이 있는 국가에서 국민을 제대로 지켰는가? 만약 그랬더라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쓰라린 역사 한 부분을 장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저자 또한 세월호를 통해서 책임지지 않고 회피하는 국가를 보면서 이 책의 모티브를 얻게 된 듯 하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태어났고 그저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매체의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시대의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가며 나도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거기서 희생은 없었고, 억울함도 없었다. 차별을 느끼지 못했고,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찌보면 수동적인 인간이어서고, 그냥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가는게 가장 편하고 당연한거여서 한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운이 좋았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현실을 제대로 직면하지 않고 나편한대로 사는 이기적인 비겁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가란 무엇인지 발언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목숨을 내놓고, 싸워온 이름 모를 누군가 덕분에 나는 그 이기적인 비겁함을 유지하며 편하게 살았던게 아닐까?. 우리의 자유와 존엄과 행복을 위해 묻고 물어온 사람들 덕분에 자유와 존엄과 행복을 누리며 살았겠구나... 그런 그간의 은혜를 보답하는 의미로라도 나는 이 책에서 주는 국가에 대한 끊임없이 질문을 계속 고민해봐야겠다라고 결론내렸다. 국가를 소멸시키는 문제제기를 하며,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라도 국가의 스스로 세워온 것들을 계속 깎아내려야 한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나라를 물려줘야 하고 인간의 존엄, 자유, 행복을 위해 계속 현실을 주시하고 있어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가를 어떻게 세우려나?' 잠깐 집착하기도 했다.

언어는? 화폐는? 자원이 나지 않는 나라에서 물자를 어떻게 자급해 나갈지?

작가는 내 생각을 읽은 듯이 어떻게 해나갈 것이라고 답한다. 그와 더불어 한국에서 현재 문제가 되는 부동산 문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교육, 환경, 군대 문제 등을 아로니아에서 새롭게 해결해나가며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유병재, 김준현, 박세리 등,,, 유명인, 연애인 등장도 까메오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부모와 자식간의 짠한 관계로 감동스럽기도 하고, 김강현의 학창시절(삥듣기, 성당다니기 등)이야기도 좋던 싫던 추억이 떠오를만한 내용도 있다.

 

작가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기존의 국가에서 겪은 한계를 새롭게 극복하고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로니아도 한 국가로 다른 국가와 다르지 않은 국가라는 사실을 아내 수영과의 대화에서 직면하게 된다. 그 안에서 또 해체하며 소멸하여 애초에 국민이 행복하고 존엄하게 자유롭게 살 권리를 위해 돌아가고자 한다.

 

 아로니아는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존재한다. p.361


이 책은 새롭게 국가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현실을 무자비하게 비판하려고만 한 것이 아니다.

국가는 무엇인지? 그리고 국민은 무엇인지?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국가는 어떤 구성으로 어떤 방향으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어느 누구도 소속되어있지 않은 사람이 없고, 홀로 떨어진 사람이 없 듯이 소속된 국가의 국민으로 위의 것들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며, 또 생각하도록 한다. 국가의 한계를 의식하며, 나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국민인 우리를 위해 어떤 국가를 꿈꾸는지 어떻게 이끌어져가야할지 어떤 것들을 해결하고 개선해야 할지 (수동적으로 누리거나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제시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 구체적인 것으로 제시된 '한일공동개발구역 JDZ' 꼭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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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독서인들에게 또 다른 친구가 되어준 알라딘 앞으로도 함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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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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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2018년 국제도서대전이 있어서 갔다. 사전티켓이 무료라서 넉넉히 예약을 해두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갈 수 없던 상황이라 3장 중 1장만 사용했다. 현 도서관련 흐름이 어떤지 알고 싶었다. 책은 읽는 것 뿐 아니라 기획된 이벤트, 전시를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 시간에 읽던 책이나 더 읽을까도 했지만, 이번에는 전시가 어떨지 궁금했다. 나이가 들며 점점 굳어져가는 틀을 깨치게 새로운 분야들을 발견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좋았던 시간이었다. 책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둘러보는 게 그저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나서 나머지 2장 티켓은 다른 엄마에게 지역맘까페를 통해 드림을 했다. 그 엄마는 덕분에 잘 다녀왔노라며 거기서 구입한 물건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게 뭐지?' 하며 검색하고 알았다. 무슨 아이들 클레이 같은 거라던가? 사실 지금도 관심이 없다. 내가 준 티켓으로 어떤 엄마가 내게 이런 후기로 감사해 하더라고 남편한테 이야기 했다. 남편이 '너는?(뭘 보고 왔어?)'라고 묻는다. "나는?? 나는 내가 보고 싶은거 보러갔지" 라고 허가 찔린 기분으로 대답했다.


저자는 초반에 자신이 글을 왜 쓰는지 이야기하면서 쓸때에야 자신으로 살 수 있었던 사실을 고백한다. 재테크나 피부 관리, 자식 명문대 보내기에 관심없고, 아이들 사교육비보다 자신의 책값과 공부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었다는데 나는 거기서 동질감을 느꼈다. 도서대전, 유아교육대전 등 대형 전시회장에서 생기는 대전마다 자식들의 교육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찾아다니는 엄마들과 다른 나 또한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 정말 모성애 있는거야?'라고 자문을 해보다가도 정신차려보면 내 자신을 찾기 위해 쓰고, 다니고, 배우고 하는 그냥 한 사람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 자신을 부정할 수 없었고, 나와 비슷한 저자의 모습이 굉장히 매력있게 느껴졌다.


글쓰기의 최전선....

투쟁과 긴장이 느껴지는 제목이다. 최전선이란 뜻은 적과 맞서는 맨 앞의 전선(戰線)을 뜻한다. (네이버 사전 참고)

중간도 아니고 뒤도 아닌 바로 앞에 적과 대면하는 최전선에서 우리는 긴장할 수 밖에 없고, 수시로 귀울이게 된다. 두려움과 긴장과 치열함 앞에 물러서지 못하고 그 앞에 버티거나 혹은 싸워야 한다.

그런 상황에 놓인 글쓰기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저자가 글쓰기의 본질을 말하는 아래의 말에서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 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p.23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살기 위해 썼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모든 게 무의미 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나는 잠을 덜 자고, 쓰는 행위를 택했다. 그렇다고 거창한 글쓰기가 아니라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 아이의 도약의 순간, 아이로 인해 즐겁고 힘들었던 일을 일상을 적은 글일 뿐이었다. 여전히 나는 그 글을 쓰고 있고,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혹은 나 자신이 내향적이어서 수시로 뱉어내지 못하는 마음을 글로 쏟아내곤 했다.

글은 나의 삶의 수단이었고 그런 면에서 저자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란 말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는 한단계 더 나아간 글쓰기를 이야기 한다. 모든 열심과 노력이 발전이 아니 듯이 바른 가치를 향한, 진실한 글쓰기가 되도록 바른 방향으로써의 글쓰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에서 이 책은 글쓰기의 방식과 단편적인 목표를 가진 글쓰기를 제안하는 것과는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그냥 빠르고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생각하고 고민하며 고찰하며 자신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문장하나하나가 묵직한 울림이 있어서 글쓰기 관련한 그의 통찰에 더욱 진지한 마음을 갖고 나의 글쓰기를 다잡게 한다.


짧은 문장이 무조건 좋을까에 대한 글은 무조건 자르려고만 했던 행위를 멈추게 되었다. 문장을 한번 더 보게 되며, 짧은 글이 꼭 좋은 글이 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길게 끌고 가는 글이 좋지 않을 거란 편견을 다시 뒤집는다. 아직은 짧은 글을 통해 내 생각을 정리해야하는 나는 초보이지만, 추후에 길게 생각을 호흡하는 글들로 좋은 글을 써볼 수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늘 내 글은 내가 썼지만 어려웠다. 내글이라서 직면하기 싫기도 했지만 추상적이어서 읽는게 힘들었다. 하지만 거기에 낑낑대며 그 생각을 끌어내고 이어가려고 애썼다.

그것을 저자가 알고 있었다 듯이 꼬집었다. 그 문장 뒤에 내 감정을 숨기는 것이란다.

나는 어려웠다. 나도 나의 추상적임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저자는 정황을 인사배(인물, 사건, 배경)로 풀어쓰라고 한다. 무언가 해볼만 하겠다 싶었다. 한번 시도해 볼만 하다.


글은 나다. 글은 나보다 잘 쓸수도 없고, 덜 쓸 수도 없단다. 저자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는데, 나또한 여기서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에게 읽혀야 하는, 평가가 되는 의식이 되는 글쓰기이다. 글이 나 자체이기에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긴장과 무력함의 씁쓸함에서 나를 짓누르는 듯한 돌덩이 하나를 내려놓듯 가뿐하게 한다. 이 글이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진리와 같이, 생수와 같이 묵힌 갈증을 해소하는 말이 되리라. ㅎㅎㅎ


 내가 읽은 책이 곧 내 글이 된다는 말도 명심하며 점차 사유를 즐겁게 할만한 책도 읽어보기로 다짐해보았다.

읽기 쉬운 책이 아니라 읽기 힘든 책을 통해 그 고통스러운 사색들을 헤쳐나간 후 도약을 맛보는 거친 과정에 다시한번 도전해봐야겠다. 양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그것으로 나 자신이 뭐라도 된 것마냥 즐거워하기 보다, 느리지만 작가의 생각을 거쳐보며 그 가운데 내 자아와 충돌하는 그 사유의 결과들을 통한 성취를 맛보고 싶다.


현재 글쓰기 강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강의를 들으며 어떤 틀에 박힌 글쓰기가 되지 않을지, 어떤 상황에 따라 자유를 억압하는 글쓰기가 되지 않을지 염려했다. 사실 그건 핑계고, 은연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을 피하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나를 드러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띄어쓰기나 문장을 쓰는 방식이 아니라 글에 대한 절차적인 접근을 통해 글과 친밀해지는 것을 보며 더 나은 글쓰기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 또한, 어떠한 비판이라도 이제는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접어들게 되었다. 더이상 글쓰기로 나를 드러냄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닥쳐야할 현실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자신이 학인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이끌어오며 쌓인 노하우와 경험담이 또한 나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해주었다. 맞으려던 매를 조금은 덜 맞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나 할까?  


 알을 깨지 않고는 살아있는 개체로 성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바로 나를 둘러싼 알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극복하지 못한 내 삶의 부정적이고 두려웠던 그 막힘의 벽을 뚫어내고자 다시 도전해본다. 

어떻게 써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왜 써야 할지...

바라보고 고민하고 써내려가면서 최전선에 선 내 삶의 적진을 뚫어내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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