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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핸드 투 마우스 - 부자 나라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민 여성 생존기
린다 티라도 지음, 김민수 옮김 / 클 / 2021년 3월
평점 :
시종 화가 나 있다. 그래서 일 끝내고 지쳐있을 때는 도무지 읽기가 힘들었다. 화가 난 어조 아니면 억울한 어조일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부자들에 대한 비판과 생각은 대체로 통쾌하게 읽었다. 그러나 가난에 대한 입장은 이분이 전부를 다 대변해주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 때문이기도 하고 인종과 사회적 지위와 환경 때문에 많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저자와 다르게 딸린 애가 없고 부모님 등골 빼먹으며 학자금 대출 없이 사립대학을 두군데나 나왔고 그것도 빨리빨리 졸업하지도 못했고 10년간 토익 토플 텝스를 쳐댔다. 자가로 집이 있다. 그래서 형편이 나아 보일 수도 있지만.
자가로 집을 사며 대출을 꼈는데 그걸로 두번째 학교 입학할 무렵부터 10여 년간 나름 고생을 했고 약 7년간은 아파서 사람다운 생활을 못했고 또 결과적으로 구직 운이 없었다.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악화로 비보험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에 비하면야 나는 한달에 30-40만원의 의료비만 나간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하고 있고 차를 몰지 않아도 집과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좁은 땅덩어리라는 조건에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렇지만 읽다보니 점점 내가 저자와 빈곤경쟁을 하나? 하는 생각에 읽기가 힘들었다.
일단 나는 오랜 구직생활을 한 무직자였으므로, 이분의 전제에 동의를 잘 못하는 편이었다.
일단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내가 업주라도 돈을 많이 줄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니깐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생활비가 이렇게 들고 이런 게 힘드니 돈을 많이 줘라. 그게 아니면 팁 줄 것도 아니면서 진상짓 하지 마라. 이 말에 반만 동의한달까. 일단 돈 주면 개진상떨고 왕이라도 된양 행동하는 것은 부와 가난 문제가 아니라 도덕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빌려간 돈 받아가듯이 하면 안 되지. 그렇다고 존나 힘들게 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표정, 좋은 말투, 좋은 서비스 바라지 말라니. 그것도 좀…
술담배마약섹스에 빠질수밖에 없는 이유, 게으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합리화에 가까웠다. 안 그런 사람들도 많은데 그게 다 돈이 없어서라는 말을 그냥 웃어넘기기도 힘들고. 겪어본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고? 그냥 일을 안 하고 싶은 거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하는 말들도 많았다. 땅판다고 돈 안나온다.
기본적으로 사지 멀쩡하다면 내 생활권은 내가 보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떻게든 살아진다. 어떻게든 살아지니까 기왕이면 잘 살아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내생활을 급여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 일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진 게 없어서, 자격증이 없어서 뭐 밖에 못한다고? 그거는 어떤 직업이 있는지 자체에 무지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튼 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고 10-20대때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무척 한정적이고 다른 덴 구인난에 허덕이는데 또 어떤 덴 사람들이 몰리니깐, 다른 생각이 없는 거 같다. 직업탐구를 고등학교 때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어쨌든 내 임금이 싼 이유는 대체제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니 단기로는 어쩔 수 없어도 장기적으로 내 직업으로 가져가야 할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더라.
문제가 있는 미국 시스템도 많기는 했다. 우리에게 팁문화가 없어 생경하긴 하지만, 나도 비슷하게 수입이 적은 입장이어서 그런지… 여긴 직원들을 왜 쓰는 걸까 싶은 곳도 많고 로봇이나 셀프로 대체하는 식당들도 많다보니, 다른 나라에 저 팁 문화는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팁이 아니면 월급을 보장받을 수 없는 문화라니. 고객에게도 불필요한 서비스 강매같기도 하고.
나도 화가 많은 사람이지만 구직 시절의 간절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씨발 그럴 거면 너 나와, 나 좀 들어가자,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하면서 읽었는데, 그게 웃긴게 지금 읽어도 그렇다. 그래서 빈곤경쟁한단 느낌이 들었다. 더 비참한 상태라고 느껴서 읽으면서 화가 났던 거 같다. 안 힘든 사람 어딨어? 제발 시켜만 주면 나는 웃으면서 하겠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건, 내 생활에도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까. 슬프네 참.
어서 돈이 돈 벌어다 주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조금 덜 아팠으면 좋겠고. 당장은 삼백만원이 없는데 큰일이다 이 생각뿐. 월급 받은지 얼마 안돼 적금 통장 만들어둔 게 없고 월급은 정말 작고 그때그때 병원비로 다 나갔고 하락장이라 마이너스 천지인 주식통장엔 손댈 수 없어서. 애는 없지만 정기적으로 충격 주는 병원비 덕에 그래도 오늘 하루 견디는 것 같다. 뭐 닥치면 뭐라도 미래의 내가 해놨겠지. 회사 일도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자가 따뜻하고 활기찬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잘 읽은 것도 아니지만 못 읽은 것도 아니었다. 화두는 던져주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