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가장 작은 단어 무더기를 집어 들었다. 엄마는 어디로 가게 될까, 나는 추측해보려 했다. ‘너무 높은 곳도 아니고, 너무 낮은 곳도 아니고.’ 나는 속으로 노래 불렀다. 하지만 단어들을 내 손에 건네는 대신, 아빠는 벽난로를 향해 성큼성큼 세 걸음을 걸어가더니 불꽃 속으로 던져 넣었다.
세 장의 쪽지였다. 아빠의 손을 떠난 쪽지들은 열기를 타고 춤을 추며 각기 다른 안식처를 향해 날아갔다. ‘릴리’가 채 내려앉기도 전에 불타 오그라들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벽난로로 달려갔다. 아빠가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게 들렸다. 쪽지가 불길 속에서 뒤틀리고 있었다.
나는 구해내려고 손을 뻗었지만, 갈색 종이는 이미 숯 검댕으로, 거기 적혀 있던 글자들은 모두 흔적으로 변해버린 뒤였다. 겨울이 되어 빛이 바래고 바삭바삭해진 오크 나뭇잎을 잡듯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손가락으로 감싸자 그 단어는 부서져내렸다.
나는 영원히 그 순간 속에 갇혀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빠가 바람이 일 정도의 힘으로 나를 잡아챘다. 아빠는 나를 데리고 스크립토리엄 바깥으로 달려 나갔고, 눈 속에 내 손을 넣었다. 안 아파요. 아빠의 얼굴이 잿빛이라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손을 펴자 새까매진 단어 조각이 녹아내린 살갗에 눌어붙어 있었다.
10/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