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엄마처럼 나 역시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없었다. 설렘은 고작 한 달도 지속되지 못했고, 자꾸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현실은 무거웠다. 나는 결혼이라는 미래를 그려볼 수가 없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엔 기혼 여성인 선배가 없었다. 그러므로 결혼은 나의 미래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나만 믿고 엄마를 지키면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절절한 사랑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로맨스 소설을 쓰며 온갖 판타지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일엔 부동산과 연금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로맨스 소설을 쓸 땐 회사에서 겪은 분통 터지는 일을 잊을 수 있었고, 죽이고 싶을 만큼 얄미운 상사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사랑만 하면 되었다. 열렬히 사랑만 하면 페이지가 가득 채워졌다.
첫 달엔 28만 원을 벌었다. 다음 달엔 19만 원을 벌었다. 그리고 그다음 달엔 8만 원을 벌었다. 수익이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는 새로운 로맨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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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엄마가 알면 엉뚱하다고 하겠지만, 엄마는 모른다. 내가 엉뚱한 소녀라는 것을 예전에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맨날 돈 얘기만 하니까 엄마는 내가 어른인 줄 알지만 나는 자라지 않았다. 아홉 살 언저리, 많아도 열한 살 어디쯤에서 멈추어버렸다. 그때부터 내가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엉뚱한 공상을 자주 한다는 걸 숨기고, 반 친구들에 비해 일기를 세 배 이상 길게 쓴다는 사실을 숨기고, 일기가 아니라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숨기고, 담임이 나의 상상력을 칭찬하며 모험 소설이 아니라 일기를 써오라고 말해도 좀체 듣지 않으며. 담임은 그런 나를 엉뚱하다고 비난하는 대신 작가가 되어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척하며 귀담아들었다. 작가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인지 물었더니 담임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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