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1949년에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적극적으로 대미 수출 정책을 폈는데 그때 수출 1등 품목이 아란 스웨터였다. 뜨개가 산업이 된 건 이때부터다. 뜨개 전문 인력을 구성해 제각각으로 뜨던 사이즈를 표준화하고, 일정한 완성도를 갖춘 스웨터를 다량 생산해 수출하기 시작했다.
켈트 문화의 숨결이 담긴 이 고상한 스웨터를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는 놓치지 않았다. 크리스찬 디올이다. 《보그》와 《하퍼스 바자》에 소개되면서 파리를 시작으로 점차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아란 스웨터는 1960년대 미국에서 대유행한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J. F. 케네디였다. 그의 할아버지 고향이 어디였는가? 아일랜드다. 미국에서 아이리시 아메리칸이 겨우 목소리 내고 살게 된 시점에 그가 고향에서 온 전설의 스웨터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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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보통강 구역 105층 류경호텔 앞에 있는 공예 미술 창작 기관으로, 주로 자수와 뜨개질 기술을 연마하는 곳입니다."
기자가 제목에 뜨개질 연구소를 넣은 건 실수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뜨개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아픈 대목은 뜨개‘질’이다. 평양 수예 연구소가 자수와 뜨개질 기술을 연마하는 곳이라면, 기사 제목에 "알고 보니 자수 연구소"라고 쓰지 않고 굳이 "알고 보니 뜨개질 연구소"라고 쓴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기자가 접미사 ‘질’의 뉘앙스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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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행위를 일컫는 명사를 찾으려면 ‘질’을 뺀 낚시를 검색해야 한다. 생각해보자. ‘같이 낚시질하러 갈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낚시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행위에 더는 질을 붙이지 않는다.
니팅 카페에는 뜨개를 비하하는 분위기 때문에 서글프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이런 반응이 가장 두드러졌던 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개봉했을 때였다.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사는 충숙이 저가형 코바늘로 수세미를 뜨는 장면을 지적하며 봉준호 감독이 뜨개 문화를 비하했다는 비판 글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제법 많은 댓글이 달렸고, 댓글의 상당수가 이 글을 옹호했다. 나는 봉준호 감독이 뜨개 문화를 비하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뜨개 문화를 비하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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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질’을 붙여 깎아내리려고 하는 그 행위를 통해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려는 이들도 있다. 관계 맺기의 시작은 호명이라고 했다. 니그로가 아니라 아프리칸 아메리칸, 벙어리장갑이 아니라 손모아장갑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공감한다면 이제부터라도 뜨개질에서 ‘질’을 뺐으면 한다. 뜨개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 행위의 이름은 뜨개로도 충분하니까. 8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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