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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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 그대로 나는 이 책을 읽고 계속 불편했다. 토요일 새벽 이 책을 읽었는데, 그날 오전의 기분이 온통 이 책의 표지와 같은 색깔이었다. 오묘한 기분. 뭐지? 뭔지 모를 이 불편함은???

작가를 찾아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 여동생도 찾아보게 되었다. 앳되고 가냘픈 두 여성으로 보인다. 어떻게 이렇게 강한 에너지를 낼 수 있을까? 이분들의 환경이 이렇게 만든 것일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 내 인생을 뒤흔드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다. 처음 느껴본 감정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누구에게 화가 난 건지 모르겠지만 화도 났다.

작가. 작가의 여동생. 그리고 작가의 친한 친구가 낙태를 했다는 사실도 마음이 아팠다. 낙태의 찬성, 반대 여부를 떠나서 그런 상황이 마음이 아팠다. 더 많은 여성들이 몰래 낙태를 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불법이라 어디 가서 잘못된 수술로 항의도 못한다는 것도 마음이 아팠고 무책임한 사람들에 대한 마음도 아팠다.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불편했다. 왜 이렇게 세상을 까칠하게 보는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까칠하게 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책을 보면서 몰랐던 부분. 아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귀 닫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불편하게만 생각했던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9월에 작가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지도 고민하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인정해 달라는 그 말이 마음속에 울림으로 남는다. 왜 그들은 이런 말을 해야만 했을까!!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누구도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어떤 사람도 누군가의 구원이 되지는 못하니까. 상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서 영향을 주는 것보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친절한 타인으로 남는 게 더 어렵다. 관계 맺음의 상상력 갖기.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기. 그것이 관심이 아니라 침범이었다는 걸 인정하기.

부족한 여자라 내가 가르쳐줘야 하고, 보살펴야 하고, 지켜줘야 한다는 인식. 그 자체가 폭력이라면 어떨까? 사랑받기보다 존중받길 원한다는 말은 왜 이렇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걸까.

내 '의견'이 아니라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시선 속에서 나는 점점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과연 한 조직의 대표로 있어도 될까, 나는 왜 이렇게 약하고 예민할까. 불편한 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혹은 내가 만만한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누군가는 내게 밝은 글도 쓰라고 말한다. 당연하게도 내 삶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 밝고, 가볍고, 기쁘고, 행복한 순간도 있고, 사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내가 고통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고통을 외면한 희망의 언어보다 고통을 응시하는 정직한 절망의 언어가 나를 살아 있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적어도 스스로를 외면하지는 않으니까. 가끔씩 내 글이 어떤 이의 삶에 당도했다는 기별이 돌아오기도 하니까. 그럴 때 나는 뜨거운 위안을 느낀다.

글을 쓰면서 계속해서 내 욕망을 점검하고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듯, 예술도 필연적으로 자신의 구체적인 삶과 욕망을 직시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사회 속에 섞이며 내가 느끼는 감정과 사유. 그 고유한 느낌이 사실은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지난한 작업이 예술이 아닐까?

지난 수년 동안 카페에서 '누구나 예술가 프로젝트'로 사람들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창조하는 활동을 도모하면서 항상 되뇌었던 말. "예술은 하는 게 아니라 사는 거다."

이제 막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를 찾아서 더듬더듬 기존의 '역할'을 벗어나는 중인데, 여전히 많은 여성은 자신에게 주어졌던 자리를 이탈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미안해한다. 또 타인에게 그것을 알릴 때, 그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는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 상처가 됐거든요.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누군가 흔들 때 충격이 컸어요. 제 세계가 온통 흔들리는 경험이었어요. 밤새 울었어요. 그런데 같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줘도 될까요?"

여성학자 정희진은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아는 게 편하기만 하면 무슨 소용일까요? 저는 무언가를 공부하고 알아가는 건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담해왔던 세계를 직면하면 나도 모르는 새 저질러왔던 폭력이 선명해지면서 자책과 후회. 부끄러움이 밀려와요. 동시에 내가 폭력인지 모르고 당하고 지나쳐왔던 일이 선명해지면서 분노와 슬픔이 밀려오고요. 그렇게 복잡한 감정 속에서 상처받는 게 아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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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는 부모, 가치 있는 아이 -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가 제안하는 성경적 자녀 코칭
유한익 지음 / 두란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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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육아서로 고른 책인데, 일반 육아서를 원하시는 분들이 읽어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그런지 책의 글 밥이 어느 책보다 많은 듯하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와닿는 말들이 많았다. 자녀는 나의 거울이라는 말. 나의 생김새는 물론 나의 말투, 나의 행동까지 거울에 반사된 모습으로 내게 비추게 된다. 가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까지도 많이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한다. 아마 아이는 부모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사랑을 줄 주도 알고, 손해를 보면서까지도 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자녀는 내가 아낌없이 쏟아붓는 사랑의 결정체이다. 그 아이가 내게 어떻게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그 아이를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다. 받기만 하던 사랑에서 주는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을 성숙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아이만큼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평범한 우리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자녀를 섬기는 것과 나 자신을 자녀의 본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한다. 섬긴다는 말의 뜻을 백번 이해할 것 같다. 정말 그 마음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 자녀 양육인 것이다. 나 자신을 죽이고 타인을 높이는 것. 내 자아를 누르고 타인을 섬긴다는 것. 진짜 쉬운 일은 아니다. 육아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쉽지 않은 일들을 한다.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지인이 눈병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너무 무리해서 눈병이 낫지 않는 거라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지인은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한 지인은 디스크로 엄청 고생 중이다. 무조건 쉬어야지만 낫는다고 하는데, 아들을 양육하고 있으니 쉬어도 쉬는 게 아니고 엄마 손이 필요할 때마다 몸을 일으켜야 하니, 디스크 환자로서 쉴 수도 없다.

양육은 이렇게 힘든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부정적인 의미도 들어있기는 하고, 한 축만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적으로 힘든 것들이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한 노력이라고 하면 충분히 감안할 만하다. 다들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양육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힘들지만 가장 보람되는 일. 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에 대해 알려주는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부모를 바라보는 맑고 사심 없는 아이들의 눈빛처럼 부모 역시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지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렇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건지, 아이가 부모를 성장시키고 있는 건지 혼동될 때가 있다. 자녀 말고 누가 부모를 이토록 단련시킬 수 있겠는가?

나와 생김새는 물론 하는 짓까지 똑 닮아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 때로는 나와 너무도 달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자녀는 부모 자신을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비치기도 하고, 자신의 부모와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삶의 반전을 경험하려면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 먼저는 삶이 멈춰 서는 안 된다. 삶이 이어지지 않으면 후반전도, 2회전도 후속편도 펼쳐질 수 없다. 지금 힘들다고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슬프면 실컷 울고 안타까워한 후,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이고 정신을 가다듬자. 그런 다음에는 벌떡 일어나 다시 걸아가야만 한다. 대단히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각자의 자리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히 오늘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기다리며 기대해야 한다. 다시 걷는 작은 발걸음은 인생 2막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이다. 대신 이번에는 좀 더 정신을 집중하고 오감을 기민하게 만들어 보자.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한층 더 기대해 보자는 말이다. 성공회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의 말처럼 '조류 관찰자'가 되어 보는 것이다. 온몸과 온 마음의 집중을 유지하면서 긴 밤을 숨죽여 기다리는 관찰자만이 새들이 땅을 박차고 비상하는 전율의 순간을 목도할 수 있는 법이다. 예전에는 몰랐던 삶의 작은 순간들이 깊은 감동과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깨달을 수도 있고, 삶의 찬란한 기적의 순간을 맛볼 수도 있다.

반적과 역전의 삶, 감동과 전율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더 많이 기대하고 더 민감하게 우리의 집중력을 유지하자. 우리 어머니의 기도가 우리의 이해와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응답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제 자식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라는 옛말은 옳다. 일반적인 아이들을 양육하는데도 부모는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그 열매로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그렇다면 힘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어떤가? 아픈 만큼 더 성숙해지는가? 단연코 그렇다. 힘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보통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물론 죄다 울면서 배운 것들이다.

평범한 우리가 자녀들에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로, 섬기는 자세다. 모든 영웅은 사람들을 섬긴다. 그들의 능력은 다른 사람과 세상을 향해 있다. (중간 생략) 진정한 순종은 '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는 깊은 존경심에서 비롯된다. 부모의 섬김의 삶은 아이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둘째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본(本)이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도울 수 없다.

부모는 자녀가 힘든 현실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는 알 수 없다'라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한다. 인간은 앞을 내려다볼 수 없다. 이 사실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희망을 주기도 한다. 겸손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어떤 기대를 품게 한다.

인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는 '지지(支持)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는 '붙들어서 버티는 것'이다. 버티는 힘, 인내력, 즉 기다리는 힘이다. 누군가를 꺾거나 공격해서 성취하고 빼앗는 힘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꿋꿋이 견뎌 내는 힘이다. 맹수의 강력한 턱과 발의 근력이 아니라, 거친 풍파 속에도 흔들림 없이 서 있는 고목의 근력을 말한다. 부모는 자녀의 가장 확실한 서포터다. 자녀가 변할 때까지 끝까지 붙들고 버텨 줘야 한다. 그 힘이 양육의 원동력이다.

우리 자신의 자존감이 높은지 낮은지를 가장 손쉽고 정확하게 알아내는 방법이 있다. 바로 비판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의 비판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의 비판에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상대의 말이 그럴듯하면 별로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재료로 사용한다. 반면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울 때는 그냥 무시해 버린다. 결국 남의 비판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면 됐지, 결코 걸림이 되지 않는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그 반대다. 비판에 대단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대표적인 반응이 분노다. (중간 생략)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비판을 받을 때 흔히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은 남이나 환경을 탓하는 것이다.

도전하고 시도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극소수만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대부분의 성공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만 얻어지는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 자체가 아주 힘들고 고된 일이다. 뼈를 깎는 노력과 절제, 그리고 인내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 뿌리박혀 있는 유교적인 가치관은 시종일관 '극기'가 최고하고 부르짖지만 '자기를 이기기란 성을 정복하기보다 힘든 법이다.

사람들은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것들은 잃을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쉽게 외면한다. 하나를 성공하지 위해서 돌아보지 않은 다른 많은 부분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을 포기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손에는 오직 하나님을 꽉 움켜쥘 수 있다. 우리의 능력은 제한적이며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거듭 강조하지만 성공은 드물고 실패는 잦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아이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실패할 때마다 더 배우고 더 자라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지 않으면 절대 배울 수 없는 사실, 즉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어렵다는 겸손을 덤으로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자신처럼 부족하고 실패하는 다른 이들을 진정으로 품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정말 신비롭다. 실패의 보너스가 원래 의도했던 성공의 열매보다 훨씬 더 크고 값지다. 아이가 실패에 직면할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공유하며, 이것이 아이의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원하고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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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중이니까 괜찮아 - 엄마가 된 딸에게 들려 주는 자녀사랑 이야기
이기복 지음 / 두란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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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마가 딸에게 해 주고 싶은 말로 되어있다.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4명의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있는 딸에게 엄마로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정한 느낌이다. 이기복 님을 검색해 보니 이미 크리스천 육아 쪽으로 유명하신 분이셨다. 강의도 많이 하시고, 또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그런 분이셨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자신이 깨달았던 이야기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나 보다. 보통 엄마들은 딸에게 하는 이야기면 손자 손녀에게 컨셉을 맞추는 것보다 자녀에게 더 많은 포커스를 두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은 보편적으로 크리스천 육아를 꿈꾸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책이다. 내가 쓰려고 하는 나의 컨셉과 비슷한 책이어서 더 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크리스천 육아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고 이분이 원하시는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딱히 크리스천 육아라고 하지 않아도, 일반적인 육아책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믿지 않는 엄마들이 읽어도 괜찮을 책처럼 느껴졌다. 다만 내가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그래도 뭔가 더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그 무언가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찾고 있는 보물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크리스천 육아에 대해서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일반 육아서로서 너무나도 좋았고 내가 쓰고 싶은 컨셉으로 쓰여서 참 좋았지만, 크리스천 육아만의 무언가가 없어서 아쉬움이 남은 책이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자녀의 어떠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사랑한다. 자랑스럽다'라고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실제로 그렇게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려고 합니다. "네가 자랑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나의 보물이야."하고 말하면 아이는 보물로 살게 됩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자녀가 스스로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듯이 자신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자격 미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모습 그대로 나를 기뻐하시고 잠잠히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참사랑이란 상대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Empoering Love' 즉 상대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킵니다. 그래서 자녀를 사랑할 때 참 사랑을 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좋은 것 먹이고 좋은 것 입히고 좋은 학교 보내는 것이 참 사랑이 아닙니다. 자녀가 부모인 나보다 더 성숙하고 나은 인격체가 되는 것, 정신적,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훈계는 잘못을 교정해 주는 것이지만,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더 큰 목적입니다. 부모의 욕심대로 끌고 가는 것은 훈계가 아닙니다. 더 나은 결과를 바라기 전에 욕심과 성급함을 내려놓으십시오. 아이들은 지금 자라는 중이고 실수하며 배우는 중이며 성장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럴 때 부모는 "길게 봐라. 성적은 떨어질 때도 있고 오를 때도 있단다."하고 말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자녀를 잘 키울 지혜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우리 아들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이 아이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하나님께 진심을 담아 기도할 때 자녀는 그 기도 소리를 듣고 사랑을 배웁니다. 기도하면서 꼭 안아 주는 것도 좋습니다. 평소에 엄마 아빠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걸 자녀가 충분히 알고 느끼게 해주십시오. 그러면서 제한과 질서와 순종을 가르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자녀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참 사랑입니다.

사실 자녀 문제는 근본적으로 부모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먼저 부모가 변해야 자녀가 변합니다. 자녀를 도와줄 수 있는 최고의 상담자는 어쩌면 부모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부모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니, 부모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구나'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나도 회복되고, 자녀도 회복될 것입니다.

자녀교육의 종착역은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립이란 상호적인 것이라서 자녀가 독립하려면 부모 역시 자녀를 독립시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시도하고 책임지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첫째, 엄마가 먼저 내적으로 강해져야 합니다. 원래 불안과 염려가 많은 부모가 자녀를 과잉보호합니다. 따라서 모든 염려와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주여, 원하옵나니 나의 자녀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기보다는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도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자녀가 중학교에만 들어가도 "우리 딸이 이제 중학생이 되었네. 이제 어린애 취급하면 안 되겠다"하면서 생일 파티를 특별하게 열어 줍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요즘 아빠가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권유받고 있는데, 고민이 많아. 네 생각은 어떠니? " "엄마가 허리가 아픈데 좀 도와줄래?" 하면서 사소한 집안일에도 의논하고 동참시킵니다. 가족 문제가 일어났을 때도 의견을 같이 풀어 나갑니다. 그러면 사춘기 자녀는 책임감을 느끼며 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할 것입니다.

물론 이런 부모의 노력에도 자녀는 사춘기를 겪습니다. 사춘기는 성장 과정에서 건너야 할 강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사춘기 자녀를 보고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곧 지나간다'라고 위안 삼으며 기다려야 합니다. 자녀가 아무리 심하게 흔들려도 부모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처럼 사춘기 자녀에게 부모의 약함과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철없는 줄로만 알았던 자녀가 오히려 가족의 책임을 나눠지려고 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어른으로 대우해 준다고 여길 때 책임감을 느끼고 부모를 배려합니다. 사실 우리가 자녀를 애 취급해서 그렇지, 청소년 자녀는 이미 부모로부터 독립을 꿈꾸고 그럴 능력도 있습니다. 부모가 그렇게 인격적으로 자녀를 대우해 주면 사춘기의 반항이 오히려 줄어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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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높이기의 기술 - 죽도록 일만 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25가지 커리어 관리의 비밀
존 에이커프 지음, 김정희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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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니 나랑 여러 면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 것 같다. 그래서 책 표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니 역시... 코칭을 하셨고, 커리어 코칭을 전문으로 하고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많은 면에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괜히 반갑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이유 불문하고 그냥 반갑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분은 이미 이쪽 길에서 성공의 길을 가고 계신 분인 것 같다. 아마존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고 자기계발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아주 작은 나라에서 작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작은 작으나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 생각을 가지고 오늘도 한발 한발 내딛는 중이다.

나와 이분의 생각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두려움과 일에 대한 믿음이다. 뭔가 시작할 때 항상 따라오는 것이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가 어쩌면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나는 두려움은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떨쳐버리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리고 떨치려고 해도 떨쳐지지 않는 것이 두려움인 것 같다. 그럴 때는 그냥 인정하면 된다. 인정하고 나아가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은 나의 경험담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내가 드는 생각은 '나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것.' 나 자신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더라도, 나만큼은 자기 자신을 믿어줘야 한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할 때, 나는 그 일을 할 수 있다. 이것도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다. 몸값을 올리는 방법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는데, 읽어보면 다 기본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기본만 해도 몸값을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평생 공부하고, 남의 것도 내 것처럼 아껴야 한다는 것. 회사 생활을 하면서 시간 약속은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뭔가 특별한 기술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요즘에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깨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 당연한 것이 지켜져야 한다. 커리어 코치로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아보기에 좋았던 책인 것 같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내 앞에 놓인 일을 피하려고 애쓰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면 어떻게 될까? 경력의 '전환'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에 대해 던질 질문은 달라진다.

* 인맥 : 당신이 아는 사람. 지난 경력 기간에 당신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

* 기술 : 당신이 할 줄 아는 것. 경력을 쌓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

* 인성 :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타내는 척도. 당신의 모든 경력을 담는 그릇.

* 추진력 : 당신이 일을 하는 방식. 남들이 하지 않는 어떤 일을 밀어붙여서 그들이 얻지 못하는 결과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연료

당신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모르면 그들은 당신을 도울 수 없다. 도움을 청하는 게 싫다고? 나도 싫다. 애초에 도움을 청할 일이 안 생기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지금 바로 시작해!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부메랑을 최대한 많이 던져라.

경력에 도움이 필요하면 당당하게 도움을 구하라.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처지를 숨기고 도움을 외면하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짓이다.

누구나 커뮤니티를 찾고 있다. 당신만의 테이블을 찾아서 커뮤니티를 시작하라.

누군가와 더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가? 제일 먼저 응답하라. 제일 먼저 가서 도와라. 관계 맺기를 마음먹었으면 그것에 따르는 수고를 아끼지 마라.

그렇다면, 반대로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줘야 할까?

적에게는 무조건 '거리'를 줘야 한다.

친구에게는 약간의 '호의'를 줘야 한다.

지지자에게는 나에 대한 '접근권'을 줘야 한다.

지지자는 당신의 삶에 발을 더 깊이 들일수록 좋다. 당신의 경력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날카로운 조언을 던질 사람들에게 '접근 금지'조치를 내린다면 그들이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그래서 지지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미 당신이 완벽하다면 조언 따위는 없어도 된다.

태도도 기술이다. 따라서 태도는 바꿀 수 있다. 태도는 더 좋아질 수 있다. 그 시작은 당신이 더 좋은 태도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태도는 당신의 일진, 당신이 다니는 직장, 당신의 근무 환경 당신의 동료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 결정한다. 태도의 주인이 되어라. 더 나은 일자리를 원한다면 더 나은 태도로 시작하라. 새로운 일자리를 원한다면 새로운 태도로 시작하라. 꿈을 좇고 싶다면 그 꿈에 어울리는 태도로 시작하라. 더 높은 몸값을 받고 싶다면 더 좋은 태도로 시작하라. 태도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태도에서 시작하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들

1. 기대치를 넘기는 기술

2. 절충하는 기술

3. 고마움을 표현하는 기술

4.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기술

5.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기술

6.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기술

7. 만족하는 기술

8 회사 장비를 소중히 여기는 기술

9. 배움을 멈추지 않는 기술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의 경력은 다음 주에 멸종할 것이다.

뭔가를 하고 싶다면 벼락치기 전문가가 아니라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무언가를 배우려는 습관을 들이면 우리 뇌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음 기술은 언제 배울 거야?"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일단 '해보고 싶은 기술'로 배움에 탄력을 붙이자.

시간, 장비, 돈, 전문가의 도움, 지식, 이 모든 것을 다 챙기려고 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돈이 안 드는 '시간'과 '지식'으로 시작하라.

당신의 24시간을 정직하게 파악하라.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바쁘지 않다.

우리의 꿈을 감시하고 격려하고 축하해줄 '그 사람'을 찾아라.

가끔 두려움과 후회가 같은 것처럼 헷갈릴 때가 있지만 둘은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후회는 두려움보다 유효기간이 훨씬 길다. 두려움은 순간이다. 두려움이 아주 강력한 맹수라면, 후회는 천천히 타오르는 불길이다. 두려움이 거대하고 요란하며 순간적으로 강하게 몰아치는 해일이라면, 후회는 오랜 시간 당신의 마음속 협곡을 깎아내리는 작은 개울이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다. 욕심이 있다는 신호다. 우리 모두 겁낸다. 일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이 감정을 안다. 하지만 이 감정이야말로 우리의 경력을 재창조하는 값진 대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다. 후회 속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낭비하며 산다.

남들보다 더 많은 행동하는 것이 과연 가장 좋은 성공의 지름길일까?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우리의 삶에서 무언가를 덜어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더할 수 없다. '일을 잘하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언가를 더하기 전에 삶에서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야 한다.

즉, 우리가 뭔가를 더 할수록 이것저것 일을 벌일수록, 기술을 더 많이 단련할수록, 여기저기에서 사람을 만날수록, 다양한 감정과 취향을 쌓을수록, 다시 말해 우리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일'이라는 것을 시작할수록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더 분명해진다. 나는 완벽한 계획보다 희미한 비전을 믿는다. 일단 움직여라 당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실제로 거기에 노력을 들이는 동안 더 선명해질 것이다.

난 당신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난 일이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그러려고 선택하기만 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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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이로 키워라
박현숙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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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으로 책을 많이 쓰신 분이시다. 특히나 크리스천 육아책을 많이 쓰신 것 같다. 최근에는 부부 이야기도 쓰셨다. 관심을 갖게 되니 자꾸만 보이는 것 같다.

이분의 책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들어있다. 하나님의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아이만 잘해서는 안 되고, 엄마만 잘 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가정에 관한 이야기 및 부부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가슴속에 와닿았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다들 결혼하면 여성이 손해이고, 여성만 희생한다는 생각이 무척 강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아이를 하나씩 낳을 때마다 자신의 비전이 달라졌다는 작가의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전에 꿈이라고 하면 여성으로서의 꿈만 생각했다. 나. 김여나로서 성장 이야기. 그리고 되고 싶은 나를 꿈꿔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이 때문에 희생해야 하고, 나만 모든 패턴들이 바뀌어 버린 듯해서 억울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분의 말을 들어보고 내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아이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자신의 비전을 바꾼다는 이야기. 아이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이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아이를 낳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비록 내가 하고 싶었던 해외무역 일은 할 수 없지만, 대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일들. 이것은 내가 육아로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내 비전이 바뀌게 된 것이다. 또 한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나는 아이를 낳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고 있다. 비록 그 속도는 예전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

아이는 엄마의 방해물이 아니다. 아이는 축복이다.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생명체이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소유물로 여기면 안 되고, 최상의 노력으로 한 생명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크리스천 육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 정말 세상적인 지식을 쌓기보다 하늘나라에서 쓸 수 있는 지식을 쌓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앞으로 크리스천 육아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인 것 같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우리 부부에게 상으로 주신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삶을 공유하면서 나중에 행복하게 추억할 이야기를 많이 만들다 보니 아이들과 더 친해졌다. 가족이 함께하는 놀이는 친밀한 관계를 낳는다. 친밀감은 서로를 향한 신뢰로 발전한다. 신뢰는 순종을 낳는다. 특히 부모 자녀 간의 신뢰는 자녀교육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계명을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주셨다. 자녀들은 순종하는 법을 부모에게 배운다. 순종은 부모가 자녀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특히 어린 시절에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순종을 몸에 익힌 자녀는 보호벽 안에 살기 때문에 언제나 안전하다. 부모가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의 말을 신뢰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좋아한다. 자녀는 부모를 신뢰할 때 부모에게 순종하기 쉽다. 신뢰는 친밀함에서 나오고 친밀함은 함께한 시간과 비례한다. 부모와 많이 논 자녀는 부모의 말을 믿고 따르는 일이 쉽다. 부모가 아이들과 많이 놀아줄수록 아이들이 기꺼이 순종한다.

나는 엄마로서 아이들 각각의 특징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육아에 대한 기본 지식을 넘어 내 관심은 아이들의 부르심과 사명으로 점점 옮겨갔다. '내 아들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잘 키워야 한다.' 이것은 의식주의 필요를 채워주는 기본 양육보다 더 중요한 주제였다.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사인 우리 모두는 공통의 부르심이 있다. 바로 천하 만민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획일화된 교육을 피하고 과도한 주입식 학습을 그치며, 세속 가치에 따른 직업 선택을 종용하지 않는 부모들을 나는 항상 존경한다. 자녀로 하여금 자신의 길이 있음을 믿도록 양육하며, 각자 자신의 길을 발견하도록 돕고, 그 길을 가려 할 때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부모들을 향해 나는 박수를 보낸다. 또한 나는 모든 사람의 청사진이 주님 손에 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가 만난 아이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세상 욕심을 버리고 아이의 은사와 비전을 살리면서 부모가 중심이 되어 교육하면 교육비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엄마에게 비전과 자기 꿈이 있기 때문에 임신을 망설이는 경우도 많다. 비전은 결혼의 조건이 아니다. 그렇다고 결혼 전에 품었던 비전이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면서 서로의 비전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려면 서로 다른 두 비전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조정하면서 우리 둘만의 비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새롭게 만든 비전을 기반으로 부부가 동역자가 되었다. 아이 한 명을 낳을 때마다 내 비전이 달라졌다. 비전은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계속 변화하고 새로워진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겠다는 방향성만 유지하면 된다.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오히려 남편과 아이들의 도움으로 비전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엄마가 동생을 임신한 기념으로 치즈케이크, 책, 소프트아이스크림 등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한 번에 하나씩 선물을 주었다. 그때마다 '동생 기념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엄마 배 속에 있다는 동생은 말 그대로 축복의 통로였다. 엄마 배가 커질수록 선물도 늘어갔다.

영성훈련을 효과적으로 하는 좋은 방법은 성경 묵상을 가족이 함께 나누는 것이다. 각자 묵상하고 그것을 나누게 하였더니 아이들의 성경 묵상 훈련도 되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되어서 더욱 좋았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보내는 모든 시간을 좋아한다. 더구나 부모에게 배우는 시간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경험이 된다. 영적 성장의 기초가 되는 말씀 묵상을 나누는 시간은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매우 특별했다. 같은 시간에 함께 묵상하지는 않았어도 그 내용을 나누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내가 먼저 본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듣고, 자기의 묵상을 나눈다. 성경 묵상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 적당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여쭤보며 가정을 올바르게 세워나가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고 세워주시기 위하여 찾아오셔야 한다. 그렇다면 그분은 언제 오시는가? 부모인 우리가 기도할 때 오신다. 우리가 기도하기 이전에 먼저 오실 수 있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결과보다 기도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주제보다도 가정을 세우는 부분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기도하는 엄마는 마음이 편하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이끄시고 인도하심을 알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엄마는 잠도 잘 잔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나님께 그렇게 요청했으므로 하나님이 지키시고 복 주고 계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하지 않다. 벌벌 떨거나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전에는 약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고 능하신 팔을 의지해서 기도함으로 자신도 강해진 것이다. 기도하는 엄마는 강하다. 자녀를 하나님 뜻대로 키울 수 있다. 말씀을 따라 교육할 수 있다. 욕심을 내려놓고 이타적으로 살도록 양육할 수 있다. 담대하게 아이를 선교여행 보낼 수 있다. 하나님이 이끄신다면 세상 끝으로도 보낼 수 있다. 자녀가 부모를 떠나갈 때 기쁘게 보낼 수 있다.

신명기 말씀을 차근차근 읽어보니,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 내용이 두 가지였다. 첫째, 하나님은 유일하시다. 둘째 그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은 내가 가르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모든 학문과 교육의 중심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도록 양육하자.' 하나님을 모르는 교육은 헛되다는 믿음은 처음부터 있었다. 그런데 신명기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교육의 중심인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왜 걱정했는가?' 하나님이 우리 가정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부족해서 걱정했다. '무엇을 걱정했는가?' 내가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해서 걱정했다.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부모들이 함께하는 과정에서 얻는 유익이 아주 많다. 영국의 정치가인 월리엄 월버포스가 이끌었던 클래팜 공동체도 육아를 여러 가정이 함께했다. 그 결과로 영국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친 놀라운 결과들이 클래팜 공동체를 통해 일어났다.

딸이 부모의 신앙이 아닌 자기 신앙으로 비전을 찾은 전도여행이었다. 복음이 전해지는 현장을 어려서부터 경험하면, 아이들이 자기의 진로를 결정할 때 도움이 된다. 또 공부하는 목적도 분명하게 찾을 수 있다. '너와 네 자손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겠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려면 그분이 원하시는 곳으로 자녀를 떠나보내야 한다. 그분이 원하시는 곳이 곧 부모가 원하는 곳이 되고 우리 자녀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말씀으로 양육 받고 바른 가치관으로 훈련되었다면 아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날아가야 한다. 부모는 기쁘게 지지하고 후원하면 된다.

잘 떠나보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내가 낳아서 키운 내 자녀이지만, 그가 결혼하면 우선순위가 바뀌도록 허락하는 일이다. 그동안 부모가 우선이었다면 이제 자신의 배우자를 우선권에 두게 한다. 앞으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부모의 의견보다 배우자의 의견을 더 중요하게 여기라고 가르친다. 혹시 부모와 배우자가 충돌하게 되면 배우자 편에 서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야속하고 섭섭한 기분이 들겠지만 그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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