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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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 그대로 나는 이 책을 읽고 계속 불편했다. 토요일 새벽 이 책을 읽었는데, 그날 오전의 기분이 온통 이 책의 표지와 같은 색깔이었다. 오묘한 기분. 뭐지? 뭔지 모를 이 불편함은???

작가를 찾아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 여동생도 찾아보게 되었다. 앳되고 가냘픈 두 여성으로 보인다. 어떻게 이렇게 강한 에너지를 낼 수 있을까? 이분들의 환경이 이렇게 만든 것일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 내 인생을 뒤흔드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다. 처음 느껴본 감정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누구에게 화가 난 건지 모르겠지만 화도 났다.

작가. 작가의 여동생. 그리고 작가의 친한 친구가 낙태를 했다는 사실도 마음이 아팠다. 낙태의 찬성, 반대 여부를 떠나서 그런 상황이 마음이 아팠다. 더 많은 여성들이 몰래 낙태를 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불법이라 어디 가서 잘못된 수술로 항의도 못한다는 것도 마음이 아팠고 무책임한 사람들에 대한 마음도 아팠다.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불편했다. 왜 이렇게 세상을 까칠하게 보는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까칠하게 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책을 보면서 몰랐던 부분. 아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귀 닫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불편하게만 생각했던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9월에 작가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지도 고민하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인정해 달라는 그 말이 마음속에 울림으로 남는다. 왜 그들은 이런 말을 해야만 했을까!!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누구도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어떤 사람도 누군가의 구원이 되지는 못하니까. 상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서 영향을 주는 것보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친절한 타인으로 남는 게 더 어렵다. 관계 맺음의 상상력 갖기.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기. 그것이 관심이 아니라 침범이었다는 걸 인정하기.

부족한 여자라 내가 가르쳐줘야 하고, 보살펴야 하고, 지켜줘야 한다는 인식. 그 자체가 폭력이라면 어떨까? 사랑받기보다 존중받길 원한다는 말은 왜 이렇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걸까.

내 '의견'이 아니라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시선 속에서 나는 점점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과연 한 조직의 대표로 있어도 될까, 나는 왜 이렇게 약하고 예민할까. 불편한 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혹은 내가 만만한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누군가는 내게 밝은 글도 쓰라고 말한다. 당연하게도 내 삶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 밝고, 가볍고, 기쁘고, 행복한 순간도 있고, 사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내가 고통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고통을 외면한 희망의 언어보다 고통을 응시하는 정직한 절망의 언어가 나를 살아 있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적어도 스스로를 외면하지는 않으니까. 가끔씩 내 글이 어떤 이의 삶에 당도했다는 기별이 돌아오기도 하니까. 그럴 때 나는 뜨거운 위안을 느낀다.

글을 쓰면서 계속해서 내 욕망을 점검하고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듯, 예술도 필연적으로 자신의 구체적인 삶과 욕망을 직시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사회 속에 섞이며 내가 느끼는 감정과 사유. 그 고유한 느낌이 사실은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지난한 작업이 예술이 아닐까?

지난 수년 동안 카페에서 '누구나 예술가 프로젝트'로 사람들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창조하는 활동을 도모하면서 항상 되뇌었던 말. "예술은 하는 게 아니라 사는 거다."

이제 막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를 찾아서 더듬더듬 기존의 '역할'을 벗어나는 중인데, 여전히 많은 여성은 자신에게 주어졌던 자리를 이탈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미안해한다. 또 타인에게 그것을 알릴 때, 그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는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 상처가 됐거든요.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누군가 흔들 때 충격이 컸어요. 제 세계가 온통 흔들리는 경험이었어요. 밤새 울었어요. 그런데 같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줘도 될까요?"

여성학자 정희진은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아는 게 편하기만 하면 무슨 소용일까요? 저는 무언가를 공부하고 알아가는 건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담해왔던 세계를 직면하면 나도 모르는 새 저질러왔던 폭력이 선명해지면서 자책과 후회. 부끄러움이 밀려와요. 동시에 내가 폭력인지 모르고 당하고 지나쳐왔던 일이 선명해지면서 분노와 슬픔이 밀려오고요. 그렇게 복잡한 감정 속에서 상처받는 게 아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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