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는 부모, 가치 있는 아이 -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가 제안하는 성경적 자녀 코칭
유한익 지음 / 두란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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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육아서로 고른 책인데, 일반 육아서를 원하시는 분들이 읽어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그런지 책의 글 밥이 어느 책보다 많은 듯하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와닿는 말들이 많았다. 자녀는 나의 거울이라는 말. 나의 생김새는 물론 나의 말투, 나의 행동까지 거울에 반사된 모습으로 내게 비추게 된다. 가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까지도 많이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한다. 아마 아이는 부모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사랑을 줄 주도 알고, 손해를 보면서까지도 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자녀는 내가 아낌없이 쏟아붓는 사랑의 결정체이다. 그 아이가 내게 어떻게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그 아이를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다. 받기만 하던 사랑에서 주는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을 성숙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아이만큼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평범한 우리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자녀를 섬기는 것과 나 자신을 자녀의 본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한다. 섬긴다는 말의 뜻을 백번 이해할 것 같다. 정말 그 마음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 자녀 양육인 것이다. 나 자신을 죽이고 타인을 높이는 것. 내 자아를 누르고 타인을 섬긴다는 것. 진짜 쉬운 일은 아니다. 육아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쉽지 않은 일들을 한다.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지인이 눈병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너무 무리해서 눈병이 낫지 않는 거라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지인은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한 지인은 디스크로 엄청 고생 중이다. 무조건 쉬어야지만 낫는다고 하는데, 아들을 양육하고 있으니 쉬어도 쉬는 게 아니고 엄마 손이 필요할 때마다 몸을 일으켜야 하니, 디스크 환자로서 쉴 수도 없다.

양육은 이렇게 힘든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부정적인 의미도 들어있기는 하고, 한 축만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적으로 힘든 것들이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한 노력이라고 하면 충분히 감안할 만하다. 다들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양육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힘들지만 가장 보람되는 일. 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에 대해 알려주는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부모를 바라보는 맑고 사심 없는 아이들의 눈빛처럼 부모 역시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지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렇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건지, 아이가 부모를 성장시키고 있는 건지 혼동될 때가 있다. 자녀 말고 누가 부모를 이토록 단련시킬 수 있겠는가?

나와 생김새는 물론 하는 짓까지 똑 닮아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 때로는 나와 너무도 달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자녀는 부모 자신을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비치기도 하고, 자신의 부모와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삶의 반전을 경험하려면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 먼저는 삶이 멈춰 서는 안 된다. 삶이 이어지지 않으면 후반전도, 2회전도 후속편도 펼쳐질 수 없다. 지금 힘들다고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슬프면 실컷 울고 안타까워한 후,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이고 정신을 가다듬자. 그런 다음에는 벌떡 일어나 다시 걸아가야만 한다. 대단히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각자의 자리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히 오늘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기다리며 기대해야 한다. 다시 걷는 작은 발걸음은 인생 2막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이다. 대신 이번에는 좀 더 정신을 집중하고 오감을 기민하게 만들어 보자.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한층 더 기대해 보자는 말이다. 성공회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의 말처럼 '조류 관찰자'가 되어 보는 것이다. 온몸과 온 마음의 집중을 유지하면서 긴 밤을 숨죽여 기다리는 관찰자만이 새들이 땅을 박차고 비상하는 전율의 순간을 목도할 수 있는 법이다. 예전에는 몰랐던 삶의 작은 순간들이 깊은 감동과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깨달을 수도 있고, 삶의 찬란한 기적의 순간을 맛볼 수도 있다.

반적과 역전의 삶, 감동과 전율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더 많이 기대하고 더 민감하게 우리의 집중력을 유지하자. 우리 어머니의 기도가 우리의 이해와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응답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제 자식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라는 옛말은 옳다. 일반적인 아이들을 양육하는데도 부모는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그 열매로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그렇다면 힘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어떤가? 아픈 만큼 더 성숙해지는가? 단연코 그렇다. 힘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보통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물론 죄다 울면서 배운 것들이다.

평범한 우리가 자녀들에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로, 섬기는 자세다. 모든 영웅은 사람들을 섬긴다. 그들의 능력은 다른 사람과 세상을 향해 있다. (중간 생략) 진정한 순종은 '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는 깊은 존경심에서 비롯된다. 부모의 섬김의 삶은 아이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둘째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본(本)이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도울 수 없다.

부모는 자녀가 힘든 현실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는 알 수 없다'라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한다. 인간은 앞을 내려다볼 수 없다. 이 사실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희망을 주기도 한다. 겸손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어떤 기대를 품게 한다.

인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는 '지지(支持)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는 '붙들어서 버티는 것'이다. 버티는 힘, 인내력, 즉 기다리는 힘이다. 누군가를 꺾거나 공격해서 성취하고 빼앗는 힘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꿋꿋이 견뎌 내는 힘이다. 맹수의 강력한 턱과 발의 근력이 아니라, 거친 풍파 속에도 흔들림 없이 서 있는 고목의 근력을 말한다. 부모는 자녀의 가장 확실한 서포터다. 자녀가 변할 때까지 끝까지 붙들고 버텨 줘야 한다. 그 힘이 양육의 원동력이다.

우리 자신의 자존감이 높은지 낮은지를 가장 손쉽고 정확하게 알아내는 방법이 있다. 바로 비판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의 비판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의 비판에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상대의 말이 그럴듯하면 별로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재료로 사용한다. 반면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울 때는 그냥 무시해 버린다. 결국 남의 비판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면 됐지, 결코 걸림이 되지 않는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그 반대다. 비판에 대단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대표적인 반응이 분노다. (중간 생략)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비판을 받을 때 흔히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은 남이나 환경을 탓하는 것이다.

도전하고 시도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극소수만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대부분의 성공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만 얻어지는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 자체가 아주 힘들고 고된 일이다. 뼈를 깎는 노력과 절제, 그리고 인내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 뿌리박혀 있는 유교적인 가치관은 시종일관 '극기'가 최고하고 부르짖지만 '자기를 이기기란 성을 정복하기보다 힘든 법이다.

사람들은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것들은 잃을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쉽게 외면한다. 하나를 성공하지 위해서 돌아보지 않은 다른 많은 부분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을 포기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손에는 오직 하나님을 꽉 움켜쥘 수 있다. 우리의 능력은 제한적이며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거듭 강조하지만 성공은 드물고 실패는 잦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아이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실패할 때마다 더 배우고 더 자라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지 않으면 절대 배울 수 없는 사실, 즉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어렵다는 겸손을 덤으로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자신처럼 부족하고 실패하는 다른 이들을 진정으로 품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정말 신비롭다. 실패의 보너스가 원래 의도했던 성공의 열매보다 훨씬 더 크고 값지다. 아이가 실패에 직면할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공유하며, 이것이 아이의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원하고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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