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00쇄 기념 에디션)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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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청난 스테디셀러 책이다. 어떻게 이 책을 선택해서 읽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서 혹은 어느 책에서 나온 것을 보면서 내가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넣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작가가 보인다. 작가의 문체 속에서 작가의 성격이 보이고, 그 사람의 밝음이 보인다. 이 책에서도 그랬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왠지 장영희 작가님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분의 기사를 찾아봤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이시다. 1살때,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인으로 사셨지만,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서강대학교 교수님이 되었다. 그리고 꾸준하게 계속 글을 쓰셨다. 그녀의 글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책을 읽어보니 오래된 느낌이 든다. 이 책에 나온 감정이라든지 배경들이 벌써 10년 전이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든다. 올드 한 느낌이 다 좋지 않은 건 아니다. 그 안에서 향수를 느낄 수 있어서 그런 느낌이 정말 좋았다.

1994라든지, 1988이라는 드라마를 책으로 읽는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때의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으로 자신의 형제 외에 자녀도 없고 가족도 없다. 그런데 그녀가 외롭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를 따르는 제자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10년 전만 해도 교수님과 제자의 사이가 유별났던 것 같다. 지금은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일지 모르겠다. 작가님은 자신의 자녀처럼 제자들을 돌보았고, 그들의 이름을 외워서 불러줬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교수님이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글에서 유독 제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냥 제자라고 뭉텅거려도 되는 것을 일일이 이름을 다 적어주셨다. 그만큼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애틋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님은 암 투병을 하면서 이 책을 쓰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이 출판될 즈음 이미 돌아가셨다. 작가님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 책은 100쇄를 찍은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추모 10주년을 기념으로 해서 올해 다시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정말 작가로서 얼마나 뿌듯할까?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하늘나라에서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뻐할 것 같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점이 부럽기도 하다. 내가 죽은 뒤 10년 후 내 책이 다시 이렇게 재출판 된다면 정말로 좋을 것 같다.

요즘에는 투병 중에 글을 쓴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그것만 가지고 화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작가님은 이 책에서 자신의 장애라든가 병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기사를 찾아보기 전까지 몰랐을 정도이다. 굳이 그것을 넣을 필요도 없었고, 투병을 하면서 쓰는 것이라 그런지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굳이 들어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책을 쓰셨고, 책에는 작가님의 밝은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래서 더 멋있게 느껴졌다. 아픔을 팔아서 쓰는 책이 있다. 회복한 것을 책으로 써서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굳이 오픈하려 하지 않았지만 스며듦을 느끼게 될 때 오히려 그 느낌은 더 배가 되는 것 같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운명의 장난'은 항상 양면적이야. 늘 지그재그로 가는 것 같아. 나쁜 쪽으로 간다 하면 금방 '아, 그것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군'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일이 생기거든. 협소 공포증이 생겨 엘리베이터 걸을 그만두고 나서 나는 정원 장식용품 가게에 점원으로 취직했고, 거기서 죽은 우리 남편을 만났지. 재작년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우린 53년을 같이 살았어. 남편을 만난 건 내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어.

어렸을 때 우리 집 우산 하나가 살이 빠져 너덜거렸는데 그 우산이 다른 우산에 비해 컸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를 업고 학교에 갈 때는 꼭 그걸 쓰셨다. 업혀 다니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데 게다가 너덜거리는 우산까지... 그래서 비 오는 날은 학교 가기가 끔찍하게 싫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때 내가 찢어진 우산을 쓰고 다녔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는 아마 지금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찢어진 우산이든 멀쩡한 우산이든 비 오는 날에도 빼먹지 않고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아무리 내가 입 아프게 말해도 이 모든 것은 절대로 말이나 글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짜 몸으로 살아 내야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먼 훗날,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진 어느 가을날, 내 제자나 이 책의 독자 중 한 명이 나보다 조금 빨리 가슴에 휑한 바람 한 줄기를 느끼면서 "내가 살아 보니까 그때 장영희 말이 맞더라"라고 말하면 그거야말로 내가 덤으로 이 땅에 다녀간 작은 보람이 아닐까.

상갓집에 가면 보통 육개장, 송편 전 등 자금자금한 음식들이 나오고 상추쌈이나 갈비찜 같은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상갓집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련을 남긴 채 이 세상을 하직하고 이제는 아무리 하찮은 음식일지라도 먹을 수 없는 망자 앞에서 보란 듯이 입을 쩍 벌리고 먹는 것은 무언의 횡포라는 것이다.

어부라는 시에서 김종삼 시인을 말했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신체적 불편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생산적 발전의 '장애'로 여겨 '장애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못 해서가 아니라 못 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응해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신체적 능력만을 능력으로 평가하는 비장애인들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 멋진 세상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얼마 전 다시 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대령과 사랑에 빠진 마리아가 '그 무언가 좋은 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다.

'어린 시절 난 심술꾸러기였고, 내 청소년기는 힘들었는지 모르지만 이제 이렇게 사랑하는 당신이 거기에 서 있으니, 내가 과거에 그 무언가 좋은 일을 했음에 틀림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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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뭘 기대한 걸까 - 누구도 나에게 배려를 부탁하지 않았다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이은혜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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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면서 전형적인 일본인들이 생각이 났다. 나는 일본어 전공자였고, 유학을 했고, 일본 회사에서 12년간 근무를 했다. 상대했던 사람들이 다 일본 사람들이었으니 나름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일본 사람들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있지만, 민간 차원에서 일본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배려심이 너무 심하다 못해 깊게 느껴지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라고 느껴질 때가 가끔 있었다. 예를 들면 백화점에서 아이가 무언가를 사달라고 떼를 쓴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엄마가 아이에게 혼냈었던 것이 '왜 떼를 쓰는지'에 대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네가 여기서 이렇게 큰소리로 울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라며 아이를 혼내는 모습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좋게 말하면 상대방을 인식했기 때문에 떼쓰는 아이에게 아이를 위로해 주는 말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 상대를 의식하고 생각하다 보면, 혼자서 곪아 터질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이런 교육을 받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도 느끼고 있고, 그런 행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나? 하는 노파심도 생긴다. 타인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면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길 때도 있고, 자신보다 남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이런 책이 많이 나오지 않나 하며 이해가 간다.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그들에게 배려하라고 부탁하지도 않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가 감수성이 풍부하다 못해 예민하다 보니 상대를 기분을 읽어버리고 자신을 희생 아닌 희생을 하면서 본인이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 스스로도 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는 그들을 위해서 조금 더 본인의 모습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다. 거절해도 괜찮고 싫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해 준다. 큰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고, 그 사람이 거절한 것 때문에 관계가 불편해진다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것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들에게는 각인해 줄 필요가 있다.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온 것이고, 위로가 되는 것이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일 잘하는 사람이나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이 너무 잘 보이는 탓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자주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의 훌륭함을 좀 더 인정하라!'이다. 자신의 감수성과 통찰력을 지금보다 훨씬 가치 있는 능력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같은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다'라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의 감수성과 재주를 활용해 요령 있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즉 긍정적인 의미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과 상태를 그 사람 자신보다 더 잘 알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무심코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상대가 힘들어하니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은 당신이 사랑에서 우러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며 이는 당신의 훌륭한 장점이다. 하지만 여기에 작은 함정이 숨어 있다. 자신보다 상대를 머저 생각하는 경우에 혹시 당신의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믿음이 있지 않은가?

'나는 괜찮아!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전혀 피곤하지 않은걸!'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정작 자신은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안타까울 정도로 많다. 사실은 몸도 마음도 괴로울 정도로 지쳤으면서 '저 사람이 더 힘들 테이까'라며 힘을 짜내고, 솔직히 여유가 없는데도'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무리하게 일한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 상황을 우선하면 의식이 외부로 향하면서 자기 일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처럼 쌓이고 쌓여서 견딜 수 없이 힘들어져도 그런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한다. 결국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서 도와주고 있지만, 당신의 마음속에는 점점 피로가 쌓여 간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 보라고 권한다.

"나는 하나도 안 괜찮아." 고장 한 문장인데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하는 사람, 필사적으로 부정하려 하는 사람, 마음까지 욱신거린다는 사람이 꽤 있다. 작은 소리라도 좋으니 당신도 한번 소리를 내서 말해 보라. 이것이 바로 당신이 편해지기 위한 첫 단계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음에도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상대에게 휘둘려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자기 기준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이끌어가는 요령이라 할 수 있다. 친절한 성격이나 평화주의,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모두 당신의 장점이지만 남의 기준에 따라 발휘될 때는 이 모든 것이 단점으로 변한다. 결국 이 훌륭한 재능은 빛을 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원인이 되어 버린다.

자기 기준으로 사는 삶에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첫째 배려할 상황을 선택할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항상 풍부한 감수성을 드러내며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상대의 반응에 실망하거나, 알아주지 않는 상대 때문에 속상해하기도 하는 등 몸도 마음도 바빠 금세 지쳐 버린다. 이는 헤아림 능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지나치게 상대를 배려해서 생기는 폐해로, 실질적으로 상대에게 자신을 맞추며 남의 기준으로 사는 상태다.

'나는' '당신은'과 같은 주어를 의식하며 이야기하면 그만큼 자신과 상대 사이에 선을 긋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과 상대의 창이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그 차이를 뛰어넘어 상대의 영역까지 파고들어 가 이것저것 살피고 배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조금 귀찮고 말이 늘어지는 느낌이 들더라도 주어를 의식하는 습관을 들어 보자.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야만 비로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밝다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열 명은 있어야 밝다고 할 수 있지'라는 식이다. 또한 우리는 남의 기준에 맞추고 있을 때 다른 사람과 자신을 더 비교하고 나보다 밝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인간관계에서 "불편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라"라고 말한다. 자신과 스타일이 전혀 달라 대하기 불편한 사람이 바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줄 스승이다. 당신이 그들을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당신 자신이 싫어서 감추고 있는 부분을 그들이 드러내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냉정한 사람, 메마른 사람이 불편하다면 당신도 이와 같은 면을 속에 감추고 억지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인간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싫은 건 싫다'라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우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이건 싫다' '그런 태도가 싫다' '그런 식의 말투가 싫다' '그 사람이 싫다' 등등 솔직하게 노트에 적어 보자. 기분이 나빠지고 자기를 부정하고 싶어질 수도 있지만, 점차 솔직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으면 어깨에 있던 짐이 가벼워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겸손한 편이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전하는 일에 서툴겠지만, 그 생각을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주에 일이 많아서 피곤하지 않아? 나는 만나고 싶지만 혹시 피곤해서 만나기 힘들면 말해 줘"라는 말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무엇보다 '나의 진심을 확실하게 전한다'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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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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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호기심에 나도 읽게 되었다. 이런 책은 한 번쯤 읽어줘야 해!!라는 단순한 선택을 했지만, 읽으면서 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재미로 읽어볼까 하는 사람은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은 재미로 읽기에는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고, 또 그다지 재미가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업무를 보는 사람으로 90년생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면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세대는 어떠했는지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82년생으로 이미 기성세대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나도 작가와 비슷한 세대인데 왠지 기성세대라고 하면 그 이미지가 50대쯤 되는 아저씨들이 떠오른다. 나는 아직 젊은 측에 속하는 것 같은데, 이미 나도 아줌마의 대열에 선 사람으로 기성세대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흔히 90년 세대들이 말하는 꼰대 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꼰대라고 한다. 나는 그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자꾸 그런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왜 이래? 우리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야!라고 하는 것부터 잘못된 판단이다. 왜 이래?라고 말하기 전에 그들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이해해야 하고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이 자라온 삶의 배경을 본다면 그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전에 먼저 뒤돌아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90년생 들 이 도대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알고 싶어 했고, 그들을 연구하다 보니 이런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도 아마 같은 이유일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이해심 많다고 자부하는 기성세대들도 저절로 꼰대로 만들어 버리는 90년 세대를 어떻게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읽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이 더욱 인기가 끌게 된 것은 대통령이 선물한 책으로 더욱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미 한풀 꺾였다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의 선택으로 다시 한번 붐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90년 세대를 보기 위해서 그전 세대부터 올라간다. 나 또한 20대 때 요즘 아이들이 문제가 많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x세대의 사람이다. 이미 이건 1988 같은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올드하고 진보적인 느낌이 든다. 우리 때에도 그랬고, 요즘에도 20대에 대한 말들은 많다. 아마 내 딸아이가 20대가 되면 더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시대를 알아간다는 것이 재미있다. 누군가 이렇게 시대를 연구한다는 것도 감사하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우리 딸은 왜 그래? 가 아닌 이런 성장 배경 때문에 그렇구나..라는 것을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세상에 사는 것 같다.

매년 트렌드를 조사한 책이 나오는 것처럼 매해 이렇게 새로운 세대들에 대한 책이 나온다.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나 또한 계속 공부해야 한다. 세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꽤 두꺼웠던 책 두께에 놀랐고, 디테일한 조사 내용에 놀랐고, 덕분에 폭넓게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돼서 감사한 책이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90년대생의 첫 번째 특징: 간단하거나

바로 모든 '길고 복잡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피해야 할 일종의 악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간단함'이다. 이와 같은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 습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문화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열쇠는 언어에 있게 마련이다. 생각과 느낌을 남과 주고받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단함을 추구하는 90년대생들의 언어 습관에서는 축약형 은어인 '줄임말'이 자주 나타난다.

2018년 출간된 <프리랜서 시대가 온다>에서 저자 이은지 씨는 콘텐츠 제작 분야의 크리에이터 모임에서 '어린 친구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을 콘텐츠화하고 이를 통해 수입이 창출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세대인데,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친구들이 회사 입사가 목적이 아닌 자기다움을 갖추고 잘 살기를 꿈꾼다면 수많은 기업들이 인재를 잃게 되리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창의성과 효율성을 종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기업이 새로운 세대의 니즈를 제대로 디자인해 인사 제도에 반영할 수만 있다면 하난의 새로운 인재 채용의 모델은 물론,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견'이 아닌 '참여'를 원하는 세대

새로운 세대는 참여라는 말에는 긍정적이지만 참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참견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와 별로 관계없는 일이나 말 따위에 끼어들어 쓸데없이 아는 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함'이고, 참여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함'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그들은 자기와 어느 정도 관계있는 일이나 말 등에 직접 나서고자 한다.

적절한 참여를 통한 인정 욕구 충족

중요한 것은 90년 생들은 숙련공이 되기 전에도 자신의 회사나 팀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길 원하며, 직접 참여를 통해 주목받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이 본인을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회사 업무에의 참여는 이들에게 일종의 '인정'의 의미이고, 이는 그들의 직무와 회사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의 하나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한정되거나 보조적인 역할을 부여받게 되고,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를 겪게 된다.

버티라 하지 말고 버텨야 하는 기한을 알려야

90년대생들은 묵묵히 선배들의 도제식 교육을 따르거나, 기약 없이 그들의 방식을 배우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들에게 이러한 방식은 불확실성만 높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내의 많은 조직들은 소위 '농업적 근면성'만을 강조하고, 단순 버티기를 거부하는 사원들을 '열정 없는 패배자'로 낙인찍고 혀를 차기에 바쁜 것이 현실이다. (중간 생략) 이제는 우리도 이들을 조직의 문제아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이들의 성장과 생활 전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너희는 참는 법을 배워야 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적응을 도와주는 것이 90년대생들이 맞이하는 조직의 새로운 리더십이 될 것이다.

흥미를 어떻게 이끌 수 있는가

일의 종류나 직위에 관계없이, 심지어 프론트 데스크 업무까지, 모든 직원의 업무 내용을 모두 '프로젝트화'한다. 모든 사람이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월별 업무 목표는 하난의 월별 프로젝트가 되어 엄격한 관리하에 진행된다. 직원들은 평소 하지 않던 업무를 프로젝트 단위로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직위를 바꾸지 않아도 순환보직, 수환 근무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프로젝트를 제대로 완성한 직원들에게는 다양한 방식으로 격려와 포상을 한다.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못한 담당자들은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찾는 시간을 갖는다. 회사는 직원별로 성공 프로젝트 누적 순위를 공개하는데, 직원들은 여기에 하나같이 비상한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는 이 방법을 통해 모든 직원들, 특히 주링허우 직원들이 스스로 원하는 자주성과 주인의식, 성취감, 참여의식, 평등 의식을 충분히 누린다고 했다. 회사의 실적도 자연히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업무 몰입이나 흥미 증진에 있어서 제도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90년대생들에게 '일을 통해서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통해 성장을 할 수 없다면 지금의 일은 의미가 없고 죽은 시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의 이 업무가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 된다면 일은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워라밸은 특히 우리나라 90년생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정당한 근로시간의 확보를 제공해주는 것과 동시에 본질적으로 일과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찰스 핸디는 그의 저서 2006년 그의 저서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에서 '일과 생활의 균형'은 잘못된 표현이며, '일의 균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언급했으며, 최근 아마존의 CEO 제프 베이조스 또한 "워라밸은 거래 관계로 유지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인간을 지치게 한다고 생각하여 지지하지 않는다'라며 워크 앤 라이프 하모니' 즉 일과 삶의 조화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업무의 흥미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사항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새로운 세대가 정말 흥미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원한다고 해서 적은 보상을 감수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열정'이란 단어에 유달리 높은 가산점을 준다. 일에 대한 열정을 빌미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열정페이와 부당 노동 행위는 수도 없이 벌어졌다. 90년대생들이 일에서 흥미를 찾는 태도를 적은 보상에 대한 마중물로 이해하면 안 된다. 그들은 앞의 어떤 세대보다도 보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지 그러한 보상의 개념이 단순한 연봉 액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법정 휴가 사용과 법정 근로시간 준수 및 근무 유연성 등 비금전적인 보상을 모두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

90년대생들이 바꿔버린 소비 지형도

90년대생들이 근무하기를 거부하는 이른바 '꼰대 조직'이 있다면, 90년대생들이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를 거부하는 '호갱 기업'도 있다. 유형은 크게 아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직원과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 등 불공정 행위를 하는 기업이다. 두 번째는 국내의 낮은 경쟁 상황을 이용하여 차별적인 가격정책을 취하는 기업이다. 세 번째는 기업의 수익성 향상을 위해 제품의 품질을 고의로 악화시키는 기업, 네 번째는 복잡한 프로세스를 개선하지 않아 소비자의 불편을 야기하는 기업이다.

이와 같이 90년대생들은 직원으로 일하든 소비자로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뢰'를 꼽곤 한다. 배달 앱의 후기처럼 신뢰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이 있으면 하나의 큰 성공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신뢰를 잃어버리면 그 많던 인기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스타벅스의 인사팀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담당자는 스타벅스의 성공을 광고와 프로모션이 아닌 브랜딩에 대한 투자와 내부 직원을 첫 번째 고객으로 두고 아끼는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고를 하지 않는 대신 브랜딩과 조직 관리에 힘쓴다는 것이다.

우리가 받는 사회의 혜택과 따스한 호의는 반드시 사회를 향해, 모두를 향해 돌려주고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의 아픔을 내일의 땀과 꿈으로 넘어선다. __ 내가 가는 길에 확신이 들지 않을 때마다 되뇌던 문장이다. 우리의 삶은 같은 길을 돌고 도는 원형과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나선형의 모양을 취하고 있다고 믿는다. 기성세대가 되면서 느끼는 지리는 이 세상 속에서 나의 힘 하나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기존 세대의 호의와 사회적 혜택을 통해 지금까지 자라왔다고 생각하고,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도 그런 믿음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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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버 -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
하형록 지음 / 청림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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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로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다. 장로님은 많은 책을 추천해 주신다. 그래서 대부분의 책들은 구매는 해 놨지만, 아직도 읽지 못하고 밀려있다. 그런데 이 책은 장로님이 이야기해 주신 날 너무나도 읽고 싶어졌다. 지난주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로 도서관에 가서 빌려서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이 책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페이버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이웃사랑에 대한 개념도 확실하게 알게 해 준 책이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내가 놀랐던 점은 하형록 목사님도 나와 같은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살 수만 있다면 내 남은 삶은 이웃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나도 임신했을 때, 내 아이가 좋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내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다면 제 남은 인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미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 나는 페이버를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분도 평생 그렇게 사셨다. 하나님과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웃을 위해 산다. 기업 경영을 하면서 늘 이웃사랑을 실천해 왔고, 자신이 손해 보는 역할을 담당했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쉬운 선택을 하는 게 페이버가 아니다. 이웃 사랑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 자체가 어려운 것이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목숨 앞에서 그는 심장을 얼굴도 모르는 여인에게 양보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페이버를 받았다. 이 책에서 페이버는 은혜와 달리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한 사람이 받는 상이라고 했다. 그는 그것을 이웃사랑이라고 정의했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 것이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그 감동에 헤어 나오지 못했다. 감격스러웠다는 표현이 맞았다.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최종의 선택을 할 때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그 순종이 어렵게만 느껴지면서 만약 내가 하형록 목사님이라면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최종에서는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이 책을 나에게 읽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인생. 내 삶을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입술과 말로만 하는 고백이 아닌 실천과 행동으로 옮기는 약속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거룩한 부담감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한 선택이 놓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웃사랑이라는 말에 순종하는 선택을 해야겠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게 아니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게 맞는다면 나는 그와 동일한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을 죽인 이들을 용서하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나 또한 이웃을 위해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참여하여 함께 아파하며 그 고통을 이겨나가도록 돕는 삶, 바로 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주님은 그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내 심장을 이렇게 만드셨는지도 모른다. 이웃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는 나에게, 이웃의 심장이 없이는 한 번의 숨도 편히 쉴 수 없는 병을 허락하셨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로 인해 자신이 신처럼 믿고 있던 의학이 아닌,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이다. 내가 타고난 나쁜 심장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항복을 했듯, 그는 나로 인해 하나님 앞에 항복을 한 셈이었다. 얼마 뒤, 나는 건강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나의 의지나 계획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축복 안에 기적적인 나날을 살아가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페이버'가 있는 사람일까. 첫 번째로, 하나님의 눈에 좋게 보이는 사람이다. 성경에서 이 '페이버'가 나올 때는 어김없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라는 표현이 함게 등장한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하나님 눈에 보기 좋은 '이란 말에는 무척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창세기부터 이 말이 등장하는데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여섯 번이나 반복한 말이 바로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그 '보시기에 좋은'것이란 바로 '천지창조'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있는 것, 즉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희생하며 천지창조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선한 질서를 지켜가는 것을 말하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즉 '페이버'가 있는 사람이다.

번역상 문제로 한국인들에게 유독 낯선 개념인 페이버는 우리가 거저 받는 은혜라는 점에서는 은혜나 자비와 비슷하면서도 도 다른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을 때'에만 우리에게 오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점이 다르다.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부터 오는 구원'은 은혜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은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페이버'를 받을 만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페이버라는 단어 안에 축복과 승리의 비결, 성공과 행복의 비결, 인생을 올바르게 나아가게 하는 비결이 숨어 있다. 1초, 2초, 3초 안에 우리가 해야 할 선한 결단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비결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뭔가 선한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페이버'의 축복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페이버'의 축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는 결정할 수 있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향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웃을 돕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희생이 있어야만 한다. 내가 심장을 얼굴도 모르는 여인에게 내준 것처럼, 내 친구 부부가 그들의 돈을 거저 준 것처럼, 이웃을 위해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것이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페이버'가 다가온다. 놀라운 것은 이 '페이버'의 축복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 '페이버'의 축복이 온다는 것이다.

'페이버'의 축복과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이웃이다. 이전에 나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나'였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얼마나 용서해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지만 이웃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기만을 기도하고 간구했을 뿐 이웃의 구원에는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또한 그와 같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므로 결론은 간단하다. 페이버의 축복을 바란다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기 사랑'의 탑을 허물고 '이웃 사랑'의 탑을 쌓아야 한다. 자기 자식, 자기 가족,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희생하고 인내하던 삶의 방식에서 돌이켜 같은 희생과 인내와 노력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독수리는 바로 이 상승기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그곳에서 날개를 편다. 그것이 'soa on wings'의 비밀이다. 자기 힘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상승기류가 있는 산봉우리, 혹은 계곡에 앉아 있다가 수직으로 바람이 불어오면 날개를 활짝 펼친다. 그것이 전부다. 그 상태로 하늘 높이, 다른 새들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비상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한국식 표현이다. 이 표현의 원래 뜻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즉 '하나님의 눈에 보시기에 좋은 '희생을 한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날아오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들은 인생의 수직 바람과 같은 하나님의 도우심, 즉 '페이버'의 바람을 타고 단번에 삶의 장애물을 뛰어넘는다. 걸어도 피곤치 않고 넘어져도 주저앉지 않는다.

그런 체험이 반복되면서 나와 우리 직원들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손해 보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아니, 워런 버핏이 말한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한 대가는 오히려 우리의 성장과 행복으로 되돌아왔다.

열정은 성공의 열쇠이지만 나눔과 희생은 성공의 완성이다. _ 워런 버핏

용서는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용서는 우리의 지긋한 인내를 요구한다.

용서는 우리의 힘겨운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용서는 묵묵한 끈기를 필요로 한다.

용서는 우리의 조건 없는 순종으로 요구한다.

용서는 종종 고통과 절망의 분노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용서는 가장 아름다운 희생의 다른 이름이다. 용서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함이 '페이버'를 받는 길이다."

이웃을 위한 희생은 페이버를 받는 지름길이자 성공의 열쇠다. '비즈니스계에서 용서란 없다. 양보나 희생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비즈니스의 목표는 돈이 아닌 사람이다. 내 동료를, 고객을 내 이웃처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용서하며 그들을 위해 희생할 때, '페이버'의 축복이 다가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 희생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희생이 없었다면 부활도 없었다. 희생과 부활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 원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 한 가지를 당부하셨다. '나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똑같은 사랑으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그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라고. 그것은 희생이야말로 성장과 행복과 안정과 성공과 승리, 아니 인생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들을 가져다줄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참희생이 승리의 지름길이듯,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서 주신 '페이버'야말로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 즉 은혜이다.

이웃을 향한 희생은 언제나 나에게 풍성한 삶의 지혜와 내 노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고귀한 삶의 품격을 가져다주었다. 단순히 '남의 유익을 추구한 것이 결국 나의 유익을 가져왔다'라는 말, 그 이상이었다. 물론 이웃을 위해 무언가 결정하는 것은 두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큰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하나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선택이 무엇인가 만을 생각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상당히 일찍 죽음을 알게 되었다. 20대 후반부터 내 앞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마도 내게 온 심장을 이웃에게 주었던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때 이후 나는 강해졌고 자유로워졌으며 큰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척이나 지혜로워졌다. 나는 그런 나의 삶을 '페이버'의 축복을 받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 가장 감사한 축복은 기쁨과 평안이다.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은 강하고 풍성하다. 나는 언제든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손해 보고 희생할 수 있을 만큼 강하며 이웃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을 만큼 강하다. 내 삶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며 하나님 안에서 나는 지극히 평안하다.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페이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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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에서 밀크티를 마시다 - 하염없이 재밌고 쓸데없이 친절한 안나푸르나 일주 트레킹
정지영 지음 / 더블: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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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사이판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오기 바로 전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한 겨울의 이야기다. 안나푸르나를 트레킹 하는 여성의 이야기. 이 책의 표지에 보면 '하염없이 재밌고 쓸데없이 친절한 안나푸르나 일주 트레킹'이라고 소개가 되어있다. 정말 이 말 그대로인 것 같다. 하염없이 재밌고 쓸데없이 친절하다. 책이 꽤 두꺼워서 오랫동안 볼 줄 알았는데, 2일 만에 다 읽었다. 그만큼 술술 읽혔고, 이야기가 재미있다. 특유의 웃음 코드가 있다. 정지영 작가의 첫 책이라고 들었는데, 여행책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트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내 머릿속의 상상력의 힘은 나를 계속 영화필름을 돌리게 했다. 그래서 혼자서 영화를 찍으면서 계속 웃어댔다. 이분 처음 글 쓰는 사람 맞나? 잘 썼다는 느낌보다 말 그대로 친철한 설명 덕분에 저절로 상상하게 되면서 나도 그녀와 함께 안나푸르나를 트레킹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기본적인 생리현상 부분을 디테일하게 적어주셔서 혼자서 키득키득 웃으며 공감했다. 여름휴가 관계로 일주일 뒤에 쓰는 서평임에도 그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는가 보다. 아직도 혼자 키득거리는 것을 보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곳에 다녀와서인지 안나푸르나의 잔상이 그리워진다. 마지막에 실제 사진으로만 봤지만 시골 같은 분위기지만 근엄한 산의 모습은 웅장하기까지 했다. 왜 산에 올라가는지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잘 모르겠다. 산을 타는 사람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라는 답을 한다고 한다. 등산을 이해 못 하는 나이지만, 정상에 올라가서는 그래도 올라가길 잘했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서 먹는 음식들 때문에 등산을 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나는 고산병에까지 시달리며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안나푸르나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싶은 곳이라 생각된다. 순례길을 도는 것도, 험악한 산을 오르는 것도 결국에는 나와의 싸움이고, 또 나의 한계를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가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안나푸르나에서 작가가 마시는 달콤한 밀크티 한잔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자주 등장했고, 또 그때 마시는 밀크티만큼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최고의 만족을 주는 것은 없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여행책이지만, 돌고 돌아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파랑새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 언젠가는 막연하게 그곳에서 나도 밀크티를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책. 그리고 여행책을 보면서 미소 짓게 되는 책. 나를 시트콤 같은 영화를 본듯한 느낌을 준책으로 읽는 내내 즐거웠음을 고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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