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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버 -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
하형록 지음 / 청림출판 / 2017년 10월
평점 :
이 책은 장로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다. 장로님은 많은 책을 추천해 주신다. 그래서 대부분의 책들은 구매는 해 놨지만, 아직도 읽지 못하고 밀려있다. 그런데 이 책은 장로님이 이야기해 주신 날 너무나도 읽고 싶어졌다. 지난주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로 도서관에 가서 빌려서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이 책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페이버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이웃사랑에 대한 개념도 확실하게 알게 해 준 책이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내가 놀랐던 점은 하형록 목사님도 나와 같은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살 수만 있다면 내 남은 삶은 이웃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나도 임신했을 때, 내 아이가 좋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내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다면 제 남은 인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미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 나는 페이버를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분도 평생 그렇게 사셨다. 하나님과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웃을 위해 산다. 기업 경영을 하면서 늘 이웃사랑을 실천해 왔고, 자신이 손해 보는 역할을 담당했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쉬운 선택을 하는 게 페이버가 아니다. 이웃 사랑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 자체가 어려운 것이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목숨 앞에서 그는 심장을 얼굴도 모르는 여인에게 양보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페이버를 받았다. 이 책에서 페이버는 은혜와 달리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한 사람이 받는 상이라고 했다. 그는 그것을 이웃사랑이라고 정의했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 것이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그 감동에 헤어 나오지 못했다. 감격스러웠다는 표현이 맞았다.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최종의 선택을 할 때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그 순종이 어렵게만 느껴지면서 만약 내가 하형록 목사님이라면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최종에서는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이 책을 나에게 읽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인생. 내 삶을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입술과 말로만 하는 고백이 아닌 실천과 행동으로 옮기는 약속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거룩한 부담감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한 선택이 놓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웃사랑이라는 말에 순종하는 선택을 해야겠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게 아니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게 맞는다면 나는 그와 동일한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을 죽인 이들을 용서하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나 또한 이웃을 위해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참여하여 함께 아파하며 그 고통을 이겨나가도록 돕는 삶, 바로 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주님은 그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내 심장을 이렇게 만드셨는지도 모른다. 이웃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는 나에게, 이웃의 심장이 없이는 한 번의 숨도 편히 쉴 수 없는 병을 허락하셨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로 인해 자신이 신처럼 믿고 있던 의학이 아닌,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이다. 내가 타고난 나쁜 심장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항복을 했듯, 그는 나로 인해 하나님 앞에 항복을 한 셈이었다. 얼마 뒤, 나는 건강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나의 의지나 계획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축복 안에 기적적인 나날을 살아가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페이버'가 있는 사람일까. 첫 번째로, 하나님의 눈에 좋게 보이는 사람이다. 성경에서 이 '페이버'가 나올 때는 어김없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라는 표현이 함게 등장한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하나님 눈에 보기 좋은 '이란 말에는 무척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창세기부터 이 말이 등장하는데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여섯 번이나 반복한 말이 바로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그 '보시기에 좋은'것이란 바로 '천지창조'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있는 것, 즉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희생하며 천지창조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선한 질서를 지켜가는 것을 말하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즉 '페이버'가 있는 사람이다.
번역상 문제로 한국인들에게 유독 낯선 개념인 페이버는 우리가 거저 받는 은혜라는 점에서는 은혜나 자비와 비슷하면서도 도 다른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을 때'에만 우리에게 오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점이 다르다.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부터 오는 구원'은 은혜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은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페이버'를 받을 만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페이버라는 단어 안에 축복과 승리의 비결, 성공과 행복의 비결, 인생을 올바르게 나아가게 하는 비결이 숨어 있다. 1초, 2초, 3초 안에 우리가 해야 할 선한 결단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비결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뭔가 선한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페이버'의 축복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페이버'의 축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는 결정할 수 있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향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웃을 돕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희생이 있어야만 한다. 내가 심장을 얼굴도 모르는 여인에게 내준 것처럼, 내 친구 부부가 그들의 돈을 거저 준 것처럼, 이웃을 위해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것이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페이버'가 다가온다. 놀라운 것은 이 '페이버'의 축복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 '페이버'의 축복이 온다는 것이다.
'페이버'의 축복과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이웃이다. 이전에 나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나'였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얼마나 용서해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지만 이웃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기만을 기도하고 간구했을 뿐 이웃의 구원에는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또한 그와 같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므로 결론은 간단하다. 페이버의 축복을 바란다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기 사랑'의 탑을 허물고 '이웃 사랑'의 탑을 쌓아야 한다. 자기 자식, 자기 가족,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희생하고 인내하던 삶의 방식에서 돌이켜 같은 희생과 인내와 노력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독수리는 바로 이 상승기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그곳에서 날개를 편다. 그것이 'soa on wings'의 비밀이다. 자기 힘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상승기류가 있는 산봉우리, 혹은 계곡에 앉아 있다가 수직으로 바람이 불어오면 날개를 활짝 펼친다. 그것이 전부다. 그 상태로 하늘 높이, 다른 새들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비상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한국식 표현이다. 이 표현의 원래 뜻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즉 '하나님의 눈에 보시기에 좋은 '희생을 한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날아오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들은 인생의 수직 바람과 같은 하나님의 도우심, 즉 '페이버'의 바람을 타고 단번에 삶의 장애물을 뛰어넘는다. 걸어도 피곤치 않고 넘어져도 주저앉지 않는다.
그런 체험이 반복되면서 나와 우리 직원들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손해 보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아니, 워런 버핏이 말한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한 대가는 오히려 우리의 성장과 행복으로 되돌아왔다.
열정은 성공의 열쇠이지만 나눔과 희생은 성공의 완성이다. _ 워런 버핏
용서는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용서는 우리의 지긋한 인내를 요구한다.
용서는 우리의 힘겨운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용서는 묵묵한 끈기를 필요로 한다.
용서는 우리의 조건 없는 순종으로 요구한다.
용서는 종종 고통과 절망의 분노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용서는 가장 아름다운 희생의 다른 이름이다. 용서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함이 '페이버'를 받는 길이다."
이웃을 위한 희생은 페이버를 받는 지름길이자 성공의 열쇠다. '비즈니스계에서 용서란 없다. 양보나 희생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비즈니스의 목표는 돈이 아닌 사람이다. 내 동료를, 고객을 내 이웃처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용서하며 그들을 위해 희생할 때, '페이버'의 축복이 다가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 희생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희생이 없었다면 부활도 없었다. 희생과 부활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 원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 한 가지를 당부하셨다. '나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똑같은 사랑으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그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라고. 그것은 희생이야말로 성장과 행복과 안정과 성공과 승리, 아니 인생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들을 가져다줄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참희생이 승리의 지름길이듯,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서 주신 '페이버'야말로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 즉 은혜이다.
이웃을 향한 희생은 언제나 나에게 풍성한 삶의 지혜와 내 노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고귀한 삶의 품격을 가져다주었다. 단순히 '남의 유익을 추구한 것이 결국 나의 유익을 가져왔다'라는 말, 그 이상이었다. 물론 이웃을 위해 무언가 결정하는 것은 두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큰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하나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선택이 무엇인가 만을 생각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상당히 일찍 죽음을 알게 되었다. 20대 후반부터 내 앞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마도 내게 온 심장을 이웃에게 주었던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때 이후 나는 강해졌고 자유로워졌으며 큰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척이나 지혜로워졌다. 나는 그런 나의 삶을 '페이버'의 축복을 받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 가장 감사한 축복은 기쁨과 평안이다.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은 강하고 풍성하다. 나는 언제든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손해 보고 희생할 수 있을 만큼 강하며 이웃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을 만큼 강하다. 내 삶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며 하나님 안에서 나는 지극히 평안하다.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페이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