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 이야기 - 젊은 세대와 나누고 싶은 100세 철학자 이야기
김형석 지음 / 열림원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00세 철학자의 인생 이야기. 100세가 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그때쯤 돼서 느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한 세기를 꽉 채워본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변화 전부터 변화된 지금까지 살면서 그는 어떤 말을 젊은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일까? 나는 살아있는 현자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게 되었고,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내 옆에서 할아버지가 내게 이야기해 주는 듯한 느낌이다. 너무 어렵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다. 정말 어린아이에게 말하듯 쉽게 가르쳐 주신다. 100세 철학자 할아버지의 여러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가 있다. 오래 살려고 노력하지 말고 많이 살려고 노력하라는 말이다. 100세가 되었으니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도 올라가 보셨고, 또 지금까지 정정하게 1년에 160회 이상 강연을 하시고 글을 쓰신다.

살아있는 현역이다. 그런 그가 욕심내서 이번 1년 동안은 남들 3년만큼 살아보겠노라 하신다. 100세쯤 되었으면 쉬어도 되지 않을까. 이제는 내려놓고 그냥 살아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부터 3년 치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 말 자체가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도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마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래 산다는 것이 예전처럼 기쁨의 소식은 아니다. 오히려 장수 가 죄악처럼 느껴지고 벌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런 그가 말한다. 더 많은 삶을 살겠노라고. 많은 삶을 살겠다는 건 앞으로도 그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삶에 있어서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삶의 의욕 없이 수많은 포기를 하면서 현재에 안주하고 있는 요즘 현대인들에게 제대로 된 한 마디이다. 100세인 나도 이렇게 살고 있으니 너희들은 더 힘내서 살아라... 100마디 말보다 더 진한 말이다. 알아듣는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사람들을 불쌍하다고 하면서 일에 쫓기는 삶. 피곤에 쩔은 삶을 저주한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도 행복인 것 같다.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아직도 현시대에 배를 곪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5년간 경력단절로 있으면서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사회에 다시 섞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 본 사람으로서 다시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 삶을 더 많이 살아야겠다. 오래 살고 길게 사는 것보다 많이 살고 싶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이 땅에 내가 온 이유를 확실히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우리는 행복을 목적으로 삼고 저기 있는 행복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값있는 성장을 계속할 수 있고, 그 성장과 노력의 과정의 속에서 행복을 찾아 누려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며 옳은 일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예수는 가르쳤다.

적어도 우리가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남겨 줄 수 있을 때, 그들에게 어떤 업적을 옮겨 줄 수 있을 때 나머지 절반 인생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삶이란 인격적 사귐이며, 인격적 사귐이란 서로 악을 배제하고 선한 뜻과 인격을 나누어 가는 것으로 여기에 삶의 본질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며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무엇 때문일까? 문제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와 확고한 문제의식을 가졌더라면 먼저 주체 의식이 생기고, 그 문제의 해결이 나 문제의 내용을 보완하는 데 모든 지식들이 통일과 생명적인 내용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문제도 없이 4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으니 뒤에 남은 것이라고는 단편적인 지식의 조각들과 막연한 기억뿐이다.

칼 힐티의 책 속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잘 사는 집이라고 해도 자녀를 기를 때 돈을 벌어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밖에 주지 못한다면 그 가정에서는 진정한 인재들이 자라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한 가정이라도 자녀를 기를 때 이웃을 위해 걱정하고 사회와 민족을 위해 마음 쓰면서 살아가면 그 가정에서는 반드시 유용한 인물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가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걱정하는 사회의식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돈을 버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어떻게 벌어서 무엇을 위해 쓰는가 함이 문제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돈을 벌어 소유하고 즐기면 된다는 사고는 배척받아야 하나 열심히 벌어서 사회경제에 이바지하겠다는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다.

역시 우리는 토막 시간들을 이용해 가면서라도 공부하고 노력해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는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공부하지만, 둘째는 우리들의 인간적 역량을 풍부히 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개인적인 정서적 여유와 윤택함을 얻어 폭넓은 인간적 성장이 가능했다는 점은 잊을 수가 없다. 신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음식물이 필수이듯이 우리들의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풍요로움을 위해서는 전문직 이외의 취미 활동을 통한 마음의 영양이 필요하다. 특히 직업이 전문직이어서 심정의 폭이 좁거나 고갈된 사람들은 나이 들기 전에 어떤 취미활동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좋다. 경험을 해 본 사람은 그 사실을 심각히 받아들이게 된다.

인생에도 그런 면이 있다. 정신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신체적인 취미를 가지며 육체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취미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으로 오락의 긍정적인 필요성을 지적한다면 오락이 갖는 재창출의 뜻일 것이다. 오락을 영어로는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이라고 한다 '새로 창조한다'라는 뜻이다. 오락을 통해 피로, 긴장, 스트레스를 풀고 더 수준 높은 일, 더 소망스러운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오락은 취미 활동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고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필수적이다.

어쨌든 우리는 오래 살 욕심만 가졌지, 많이 살아야겠다는 뜻을 가져 보지 못했다. 나의 1년으로 다른 사람의 3년을 살 수도 있으며, 나의 3년이 남의 반 년도 못 되는 경우가 있다. 예수는 불과 3년 3개월의 공생활로 당신의 뜻을 다 이루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많이 일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사람이다. 근면은 선(善) 중 선이며, 게으름은 악(惡) 중 악이다.

그들은 인간의 능력을 믿었으며 인간의 힘은 자연과 세계를 바꾸며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근대사회에서의 서구인들의 개척정신이었다. 할 수 있다는 정신이 의욕과 용기를 갖고 역사를 건설해 왔다. 물론 모든 생각에는 장단점이 공존하다. 서구적인 개척 방식이 옳거나 제일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인간은 유한하기는 해도 가능성을 갖고 있는 동물이다. 그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의 자멸을 초래한다. 인간의 완성은 스스로의 능력을 끝까지 발휘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데 있다. 그러나 문제는 '된다'는 말 자체가 아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무의식중에 '한다'는 신념과 용기를 갖고 현실에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한다. '한다'는 각오에 차 있는 사람에게서만 '된다'는 법칙이 통한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적 삶의 마무리, 즉 완결과 완성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옳을 것이다. 죽음은 왜 있는가. 우리 삶의 내용과 의미를 완결 짓기 위해, 완결이 완성이라면 죽음이 없다면 인생의 완성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완성으로 가는 것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완결 지어 남게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가능해진다. 그 완결된 것을 죽음 뒤에 남겨 주는 것이다. 부모들이 유산을 자녀들에게 남겨 주고 가듯이 우리는 우리들 삶의 유산을 죽음을 통해 사회에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인간들 속에 살아남게 되며 나의 삶이 시간적인 종말을 거쳐 역사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만일 정서적으로 보거나 정신적 위치에서 몇 살까지 사는 것이 타당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일과 더불어 삶을 즐길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았으면 좋겠다는 해답이 나올 것 같다. 사는 것이 즐겁지도 않으며 행복하지도 못하다면 더 살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 즐거움과 행복의 기본 조건은 일을 할 수 있음이다. 청장년기에는 모르지만 늙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일이다. 일없는 노년기는 자신과 이웃을 위해서도 반가운 것이 못된다.

그가 훌륭한 생애를 살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남기는 바 있는 인생이며 그런 인생을 통해 인류는 선한 역사와 보람된 사회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오래 살기를 빌어 주는 인생이 귀한 것이다. 내가 오래 살기를 욕심내는 것은 지혜로운 자세가 아닐 것이다.

물질적 유산이 물질적인 것을 이어가며 정신적 유업이 정신적 풍요로움을 더해 주고 있으나 생명과 인간에의 사랑은 더 고귀한 뜻을 갖고 우리들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에 귀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고귀한 것을 남기기 위해 최선의 삶을 살고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고 유산으로 남겨 주기 위해 죽음을 맞게 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려움 없이 살아가기 - 두려움은 실체가 아니다
카터 콜론 지음, 김성녀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내 관심 화두는 "두려움" 인 것 같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은 왜 생기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왜 두려움은 시작을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가 나의 궁금증이었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게 바로 나부터 그런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 또한 무언가를 시작할 때마다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 두려움이라는 단어 자체가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나도 안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두려움"에 눌려 살았다. 이십몇 년간을 공황상태로 지냈으며 사람들을 만나거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두려워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저자는 그 두려움 덕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당당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은 무척 얇다. 나도 설 연휴를 이용해서 이 책을 후딱 읽게 되었다. 하지만 내용을 결코 얇지 않다. 오히려 무겁다. 그리고 엑기스만 압축해 놓은 느낌이라 더 보기 쉽고 좋았다.

이 책의 제목이 나를 이끌었고, 또 이 책을 추천한 크리에이터가 두려움을 이겨나가는 삶을 보여주었기에 그 믿음으로 이 책을 구매한 것 같다. 그 크리에이터도 크리스천이다. 그는 믿음으로 살고 있고, 지금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이었다.

나 또한 엄청난 겁쟁이였다. 아니 지금도 ing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담하는 것은 이전의 내 모습보다 훨씬 나아진 지금의 내 모습이다.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슬프거나 무섭지는 않다. 나의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이 훨씬 좋아졌다. 나의 믿음이 예전보다 훨씬 더 두터워졌고, 그 믿음으로 나는 담대해졌다.

믿는 곳이 있기 때문에 그 빽 덕분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나의 뒤를 든든하게 봐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믿음 속에서 나는 오늘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덜 두렵다. 이 책의 작가처럼 담대하게 살 것이다. 하나님의 나의 삶에 어떤 것을 예비해 두셨는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기쁘게 살 것이다. 그게 크리스천 다운 삶인 것 같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그는 두려움의 속삭임을 믿고 살다가 어느 날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두려움에 승부수를 던지게 된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 죽음의 상황이 올지라도 주님을 믿고 천국에 가는 자신이 승자임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골리앗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정면 대결을 한 결과, 그는 두려움에 대한 승리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와 부패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불길한 예감이 가득 몰려올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없는 자들은 정말로 두려워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세상이 재난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견딜 수 있으며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알고 끌어안을 수 있다. 그저 재난을 통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엄청난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더 큰 은혜다. 그러므로 이제 스스로 준비하라. 바로 지금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 상황을 직면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준비되어야 할 시간이다. 세상은 빠르게 꼬여 가고 모든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안팎으로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 한가운데서, 우리는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을 물리치고 앞에 닥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힘과 의지가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에서 나온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잊은 채 계속 우리의 부족한 능력과 어려움에만 집중한다면, 사탄은 두려움이라는 무기로 마음껏 우리를 공격하고 그 무기를 제멋대로 휘두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서 바라시는 것과는 거리가 먼 엉뚱한 길로 빠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사울이 놓친 교훈을 바로 알고 배워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길이다. 만사가 잘되어 갈 때는 우리 내면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다져지지 않는다. 일이 잘되지 않을 때, 불가능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몰려오더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분의 목소리에 순종하기를 배워야 한다. 부룬디에서 나는 하나님이 내게 지시하신 것을 믿고 온전히 따라야 함을 깨달았다. 내가 엄청난 두려움에 흔들렸던 그날 밤에도 그래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현재 당신의 가장 큰 두려움은 하나님을 실망시켰다는 것, 그래서 이제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축소되었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실패를 했건, 두려움의 목소리를 쫓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자리에까지 왔건, 담대하라! 이 모든 일 후에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으니,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므로 당신이 아무리 실패해도 하나님의 계획은 지금도 당신의 삶 속에 여전히 진행 중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라'를 돌려주실 것이다. 다시 한번 당신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 숨 쉬게 하실 것이고, 그것을 통해 당신은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아무리 크게 실패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이런 능력의 영을 주고 싶어 하신다. 진정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도 주시지 않으면서 부르심에 합당한 존재가 되라고 하시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충만한 능력을 절대로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 그 외 다른 데서는 하나님의 참된 능력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미 자기 생의 끝이 임박했음을 알고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다. 그가 디모데에게 준 마지막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고난 때문에 돌아서지 마라. 너 자신을 위해 안전한 안식처를 찾는 데 인생을 쓰지 마라. 그것은 두려움만 가중시킨다. 그보다는 너 자신을 하나님의 역사에 드려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슨 일을 겪든 감수해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선택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해 두신 것들을 깨닫고 놀랄 것이다.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은 하나님만, 오직 하나님만이 주신다. 하나님이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모든 능력을 주실 것을 신뢰하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뛰어들기로 결심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당신에게 성령을 가득 부어 주시고, 그 성령이 모든 두려움의 영을 정복하실 것이다.

당신에게도 책을 덮고 이렇게 말해야 할 시점이 오고 있다. "나는 내 인생에 관해 거짓 진리나 다른 견해에는 귀 기울이지 않을 거야. 나는 내 삶의 목적을 알고 있고,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실 것도 알고 있어. 이제 나는 두려움이라는 책을 덮는다!"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맘 다해 믿는다는 뜻이다. 이 믿음 없이는 아무리 배워도 결코 진리를 아는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

어려움이 닥칠 때 그 이유를 깨달으면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장하도록 그 일을 하락하신 것이다. 우리가 원수를 대적하기로 결심할 때, 하나님은 길을 여신다.

오늘 당신의 원수를 대적하기로 작정하라. 두려움에 물러서지 말고, 당신이 정말로 대적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열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라. 당신은 이 땅에서 당신 앞에 서 있는 거인만 보겠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보겠는가? 어려움이 올 때 오히려 기도실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바로 들어가라.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모든 원수를 대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지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사랑을 남들에게 드러낼 때, 내일에 대한 모든 염려가 사라진다. 당신의 신학적 관심을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려라. 그러면 당신은 은혜 안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자신을 보며 놀랄 것이다. 하나님의 큰 능력이 당신의 삶 속에서 당신을 변화시키는 모습에 놀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 - 젊은 세대와 나누고 싶은 100세 철학자 이야기
김형석 지음 / 열림원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소개란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100세가 되니 이제야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는 겸손의 말이 있었다. 이분의 강의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었다. 강의를 듣는 자체가 신기했다. 책에서만 봤던 분들의 이야기가 함께 공존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역사 책에서만 봤는데,, 황순원의 이야기는 교과서 속에서 봤는데, 이분의 삶 속에도 그분들이 있어다. 정말 살아있는 현자의 이야기를 듣는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김형석 교수님이 그동안 강의하셨던 것을 정리해서 책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젊은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인 것이다. 저절로 겸손해진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 같은데... 100세가 돼서 보는 세상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아직도 꾸준하게 자신의 관리를 하고 계시고, 공부도 하고 계신다. 90세 때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교수님이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 될 것 같다는 말은 이제는 절대로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90세 때 시작해서도 10년을 하셨다. 어떤 일을 10년 했다고 하면 우리는 전문가라고 한다. 90세 때 해도 충분히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수님도 본인이 100세까지 살 줄 알았을까? 몰랐어도 90세 때 새로운 시작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냥 이분 자체로 가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 말씀 한 말씀이 다 마음에 와닿았다. 삶에 대한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교과서적인 이야기 일 수도 있겠지만, 100세를 살아보니 그게 맞았다는 것을 안 사람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살아계셔서 그리고 그 연세에도 160회가 넘는 강연을 계속해 주셔서, 그리고 꾸준하게 집필활동을 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그렇게 업을 이룬 위치의 선배들이 돈과 개인의 권리를 앞세우는 후배들을 볼 때, '저렇게 해서는 성공도 못하며 지도자가 되기 어려울 텐데...' 하는 생각을 갖는 것은 사실 이상한 생각은 아니다. 사랑의 충언과 기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물론 똑같이 그렇게 살라는 건 아니다. 이제는 그렇게 산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도 아니다.

하나님 저희들은 가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유혹이 우리들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참되고 정직하게 살 수 있게 지켜 주시옵소서. 비록 어려움과 굶주림이 찾아오더라도 참된 믿음과 깨끗한 마음만은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날 밤 나는 돌아오면서 한 번 더 종교의 필요성과 신앙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용기와 신념을 신앙에서 얻을 수 있다면 신앙보다 더 귀한 것은 무엇인가.

행복을 기다리기보다는 행복을 만드는 사람, 행복을 받으러 하기보다는 행복을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대수롭지 않는 명성, 불필요한 직의 감, 지극히 적은 정신적 소유에서 오는 고민 등을 버리고 언제나 인간다운 인간, 편협됨이 없는 성격을 갖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 같다. 이러한 생활과 마음의 태도가 습관이 되며 사회의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전통과 빛이 된다면 우리들의 행복, 인류의 안정과 영광은 더 높아질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해해서는 안 되는 중대한 뜻이 숨겨져 있다. 죽음이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삶은 죽음을 전제로 했을 때 알려지며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죽음은 우리들이 체험하는 순간이 곧 우리들의 존재를 무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체험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죽음은 우리들의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언제나 죽음을 전제로 한 삶일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죽음은 하나의 관념이며 삶은 현실이다. 그런데 이 삶이 참다운 삶이 되기 위하여서는 항상 죽음을 전제로 해야 가능해진다.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삶의 완성을 아무 때라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삶의 성공과 실패는 물론 완성과 미완성을 말해 주는 것은 죽음이 있음으로써만 가능해진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들이 스스로 삶을 묻는 것도 죽음이 있기 때문이며,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이 보다 깊은 삶에의 접근을 가져오기도 하나, 죽음에는 극복이 마침내는 삶의 완성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길이 된다. 즉, 죽음은 절대적이며 필연적인 것으로 찾아들지만 죽음이야말로 삶을 해결지으며 완성을 가져오는 유일 절대의 조건도 된다.

무에서 유로 와서 다시 유에서 무로 가는 것, 그나마 앞과 뒤의 무는 영원한 것인데 유는 순간적이며 속절없는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 어찌 모순이 아닐 수 있으며 비참과 환멸이 아닐 수 있는가? 그러나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삶인 것이다. 유로 있으려 하면서 무로 가는 것, 끝까지 스스로의 유를 보존하려 하다가 속절없이 무로 스며들고 마는 것, 누가 인간의 이러한 현실과 실상을 부정할 수 있으며 이 엄연한 사실에서 외면할 수 있겠는가?

참다운 우정이란 서로의 존경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존경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마음으로부터의 예절을 가진다는 뜻이다. 정은 예절을 초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예절은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존경이기 때문에 마음속에는 항상 높은 예절로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들의 우정이 이웃과 사회에 도움을 주며 어떤 혜택이라도 남겨 줄 수 있을까? 거기에는 간단한 원리가 뒤따른다. 우정을 단순히 자연적이며 본능적인 위치에 머물게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이며 기능적인 책임을 담당케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전자에 머문다면 우정은 친구와의 즐거움과 위로와 도움을 나누는데 그치고 만다. 그러나 우리들의 우정을 보다 높은 정신적 가치에까지 끌어올리면 거기에는 참된 우정의 대가로 이웃과 사회에 봉사가 크게 열린다.

첫째 자신을 믿어야 한다 스스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자신과 더불어 모든 것이 흔들리지 때문에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자신에의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하며 그 위에 온갖 행복의 화초가 자라는 것이다. 자신의 인격, 선에의 가능성, 발전과 향상의 능력, 봉사와 건설의 뜻을 굳건히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모든 행복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행복을 위하여서는 자기 불신은 절대로 금물이며 자신에의 회의는 모든 것의 동요를 빚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나부터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 실은 조금도 괜찮지 않은 나를 위해
엔도 슈사쿠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침묵을 쓴 작가. 앤도 슈사쿠

침묵에서 워낙 거친 표현을 해서 이분의 다른 책도 그런 분위기 일 줄 알았는데, 나의 상상을 완전히 깬 책이다. 이미 96년도에 돌아가신 분이시고, 23년 생이시니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분이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요즘 나오는 에세이식의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편집장님의 기술이 들어가긴 했겠지만 그분의 사상이라든지 가치관은 요즘 현대인들과 비교해도 전혀 옛스럽지 않다.

아니면 내가 이미 기성세대들 쪽으로 생각이나 마음이 기울여져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나의 생각이나 판단은 기성세대를 앞지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편견을 깨야 하는데, 나도 정말로 부족한 사람이기에 아직도 그런 편견 속에 있는 것 같다.

좋은 내용이 많아서 필사가 길어졌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분의 글로 들으니 조금은 색다르게 느껴졌다. 가장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건 내가 경험을 해서 그런지 확실하게 와닿은 것 같다. 나약한 자기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서 사람들은 자신을 꾸미고 더 커 보이기 위해서 어깨에 힘을 주고 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가 아프고 공허하고 헛헛한 마음에 본인 스스로가 지쳐 버린다.

아마 나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하나님은 내게 자꾸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주신다. 내가 처음부터 승승장구 한 사람이라면 거만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실패를 했고, 좌절되는 일들이 끊임이 없었다. 그 상황에서 자꾸 일어나려고 하면 누군가는 나를 항상 밀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겸손하고 싶어서 겸손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를 만들어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지만, 순간순간은 나를 미치도록 힘들게 해서 눈물이 날 때가 많았다. 나의 연약한 점을 인정하고 그 점들을 나의 열등감이 아닌 그냥 그 모습도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그렇게 살고 있다.

매력적인 사람은 처음부터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라 부단히도 노력하는 사람이라 했다. 그 말에도 나는 공감한다. 그리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하려 한다. 이제 이만한 나이가 되니 예쁘다는 소리보다 매력적이라는 말이 더 좋아진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남들에게 강하게 보이려고 무리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있는 그대로 나의 연약한 점을 인정하고 되도록 그 약점을 나에게 유리하게 바꿔보자는 생각을 한 뒤에야 비로소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기'와 자기 '자신'은 구별해야 한다. 자기는 자신의 일부분이다. 요컨대. 자기 자신은 자기를 포함한 크고 전체적인 의미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가면을 쓰고 있는 자신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 모습이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가면을 쓰고 있는 자기는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외모나 사투리에 대한 열등감이 인간관계의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꾸로 열등감의 요소를 자신의 개성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오히려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자신이 말주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잘 호응해주는 법,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태도를 연구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이유로 당신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기쁘게 생각하고, 비난의 말을 듣는다면 그 이유를 스스로 고민해봐야 한다. 그러나 점차 자기 자신에게 자존감을 갖게 되면 그러한 감정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내고 확고한 자신감이 생기게 되면 대수롭지 않게 비난을 감수하게 되므로, 거꾸로 상대방이 당신의 눈치를 살피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다음 기억해야 할 것은 본인의 나쁜 성격은 좋은 성격이 단점은 동시에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한 좋은 사람은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으며 나쁜 사람은 그 사람만의 남다른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주변에서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나는 젊음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라고 말하고 싶다. 젊을 때에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별로 없다. 따라서 능력적인 부분의 자기혐오도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인정하고 다른 능력의 가능성을 생각해본다면 젊을 때에는 얼마든지 새로운 분야로 도전하며 자신 있는 분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본래부터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 속에서 자신의 싫은 성격, 부족한 능력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인생에는 반드시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는 마이너스 상황인 때가 찾아온다. 하지만 이것을 최대한 플러스로 바꿔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운이 따르지 않는 시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인생이 주는 중요한 교훈들을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경험과 삶의 어려움을 겪어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어려운 시기 앞에 놓일 때 다음과 같은 점만 잘 기억해두자. 첫째, 스스로 운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상대적으로 운이 좋은 친구를 가까이하며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다. 둘째, 운이 엇는 시기일수록 공부하고 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관점을 바꿔서 나쁜 운을 좋게 바꿔낼 돌파구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사람은 평생 무언가를 공부해야 하는데,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즐기면서 공부하는 방법은 없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나약한 의지를 한탄하기 일쑤다. 그렇게 탓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배움의 자세, 방법의 시점을 바꿔보라고. 항상 정면에서만 달려들려고 하면 똑같은 고통에 처할 뿐이니까 배우려는 생각을 갖되,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 보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지혜는 되도록 수고를 덜하고 터득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끈질긴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낸다는 것은 어쩌면 의지의 훈련인 셈이다. 나는 의지를 훈련시키는 대신, 즐기면서 무언가를 배우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온 정신적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란 스스로 모든 것을 개척해보는 것이 아닐까. 나는 미지의 땅과 처음 만나 사람들에 의해 자극을 받는 하나의 인생 경험을 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관광이라는 것은 생활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질투심이란 실로 복잡한 감정이기 때문에 질투심을 느끼는 원인을 잘 파악하고 있다 해도 절대로 질투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다만, 질투심을 덜 느끼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일단 질투심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말 것. 상대방의 자신감을 없애는 일을 하지 않을 것. 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칭찬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상대방에게 완전히 무시당할 정도여서는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 빈틈이 있어야 상대방에게도 안도감을 줄 수 있다. 모두가 애정을 담아 "저 사람은 좀 부족한 구석이 있지만 괜찮아"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런 사람이 타인들의 질투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
글배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히 알게 된 글배우님의 글.

시집도 아닌 것이 에세이도 아닌 것이, 하지만 짧은 글 속에 담긴 깊이는 매우 깊다. 생각보다 글배우님은 매우 젊은 분이다. 젊은 분의 사고가 이렇게 깊다면 그는 도대체 어떤 경험을 한 것일까! 그의 책을 다 읽었다. 시집같이 얇아서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다 볼 수 있는 책들이다. 그런데 그 여운은 하루를 넘긴다.

사업에 실패했고, 남들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가려는 그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한 사람이다. 같은 길을 갔어도 다른 길을 선택했어도 그 길에서는 분명 실패 과정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사람의 깊이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 같다.

많은 실패를 통해서 얻은 깨달음이 많은 분 같다. 한 번에 얻은 것이 없기에 겸손함을 알게 되었고, 결국에 성공이라는 것을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았던 사람이기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후회를 많이 해 봤기에 지금 후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사람 같았다. 이런 공감은 글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느껴지는 것 같다.

아무리 똑같은 글을 쓴다고 해도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도 한구석이 허전함을 느꼈고, 위로도 받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글배우님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 없다고 하지만 이 분의 글은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진정한 마음으로 쓴 글들이라 생각되었고, 그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나도 같은 이유로 좋아한다. 그래서 이분의 책을 다 봤다. 그리고 다음에 나올 글들도 기대가 된다.

책을 많이 쓰면 아무래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게 추억을 되새김질해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역시 사람이 좋고 그 사람의 글이 좋아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냥 좋아지는 게 맞는가 보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해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없을까 봐 판단하고

자꾸 포기하는 습관과

지금 눈앞에 놓여진 것들에 소홀하고

과거와 미래만 생각하느라 인생의 시간을

계속 쓰는 일들

남에게 사랑받기 위해 내가 힘들어도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워하며

살아왔던 일


아무리 예쁜 길도

아무리 좋은 길도

내가 걸을 수 있는 힘보다 더 걷게 되면

걷기 싫어집니다.

무기력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원하는 방향으로 가다

무기력해졌다면

두 가지 때문입니다.

지쳤거나

너무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

잘하지 못한 나를 만나면 하기 싫어지거나.


<가장 답답할 때>

사람이 가장 답답할 때는

지쳤을 때도 아니고

일이 잘 안될 때도 아닙니다.

그냥

도저히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입니다.

때로는 삶이 혹독하고 당신에게 많은 아픔을 주지만

그 속에서 당신에게 아름다운 선물 같은 날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는 삶이 되기를

어느 순간에도 당신이 절대

당신의 손을 놓고 미워하고 버리지 않기를

당신과 당신이 인생이란 아주 먼 여행을

완벽하진 않지만 즐겁게 다녀올 수 있기를


<걱정이 많은 이유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미래에 생길 모든 문제를 지금 미리

풀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재 즐거운 일들에 집중하지 못하고

걱정하느라 늘 현재를 힘들어합니다.

현재가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서 힘들기보다는

스스로 생각으로 스스로가 힘든 날이 더 많습니다.

어떤 생각이든

반복해서 자꾸 생각하면

심각하고 큰 생각으로 변합니다.

내가 지금 하는 걱정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새로운 길을 가고 싶은데

불안하고 두렵다면>

새로운 길을 가고 싶은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불안해서

그냥 기존에 하던 걸 할지

아니면 새롭게 시작해야 될지

이런 생각으로 힘들다면

새로운 길을 가보길 추천합니다.

이유는 우리는 정말 좋으면

여길 떠날까 말까 고민 같은 건 들지 않거든요.

그런 생각이 든다면

지금 있는 곳이 나에게 정말 좋은 곳이 아닌 겁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내가 고민되지 않을 만큼 좋아하는 걸

찾을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20대 30대라면.


우리는 스스로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 때는

만족감을 채우기 쉽습니다.

물론 살다 보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만

채워줄 수 없을 때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일차적으로 고민인 것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는 것

다시 말하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고민인 것입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필요로 하는 것)

어떻게 찾나 그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 방법에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나에게 실패할 기회를

많이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만나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지쳤다면>

내가 지친 만큼 내 속도로 가세요

천천히

그렇게 간다고 해도 뒤처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속도로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목적지가 다 다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