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페미니즘 책인가? 처음 접할 때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페미니즘이라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나는 여성들 속에서 자라고 삶을 살면서 여학교에 더 많이 다녔고, 주변 친구들도 현재 내가 만든 모임에서도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에 나의 생각도 여성들을 위한 생각을 더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는 듣는 나에게도 참 불편하다.
이런 단어가 생겼다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여성이 자신의 인권에 대해 말하면 페미니즘인가?
아니면 극과 극으로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단어인가?
물론 아직까지도 여성의 존재는 평등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지금에서도 평등하지 못한 대우를 받는 곳이 많다. 그래서 속상하다.
하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팀 나누기를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암튼! 그렇게 나누기 전에, 이 책은 여성들의 이야기로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의 인터뷰. 그녀들은 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을까?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예요. 만약에...."
라는 말로 모든 인터뷰는 시작된다.
이유가 참으로 다양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력이 정말로 무시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여성들이 이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건 자신의 삶을 통해서였다.
무조건 적인 사랑을 주신 부모님을 만난 여성들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여성들도 있었다.
남보다 못한 부모를 만난 여성들도 그 안에서 자신의 부모에게 영향을 받았다.
가장 많이 나왔던 이야기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어머니도 있었지만, 무관심한 어머니의 이야기도 있었다.
어떠한 상황이던 그들은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완성시켜 나갔던 것 같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나왔지만 나는 아네스 베라는 여성에게 눈이 많이 갔다.
그녀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어릴 때 철없는 행동으로 17살에 결혼해서 쌍둥이를 낳았고 남편은 그를 버렸다.
그는 19살에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다.
19세 나이라면 한참 자신의 것을 만들어 가야 하는 나이인데, 그녀는 아이들을 위하여 어떤 일이든 했다.
네 문제는 너 스스로 해결해!라며 가족까지 그녀를 돌보아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이들을 버리지 않았고 자신의 힘으로 키워나갔다.
돈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벼룩시장의 중고용품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그 안에서 패셔니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상황에 좌절만 했다면 지금의 그녀는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충분히 그러고 있어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아이들이 그녀를 키웠던 것 같다.
쌍둥이라는 다소 무거운 책임감이 그녀를 성숙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좌절할 틈도 없었을 것이고, 한가하게 신세한탄이나 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
머리 질끈 매고 이럴 때일수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발 동동 거리며 살았을 것 같다.
자존심이 그녀보다 컸다면 벼룩시장에서 옷을 고르지 못했을 것 같다.
다행히 그녀는 자존심보다 삶에 무게로 버텨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 마음이 그녀를 성숙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 마음이 그녀를 살아가게 만들지 않았을까?
내 자존심이 나보다 컸다면 그녀는 패셔니스타라는 말을 듣지 못했을 것 같다.
자존심보다 자신감이 컸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고,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인터뷰 부분을 보면서 참 멋있는 여성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 책에 나온 여성들 전부가 대단한 여성들이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단단한 여성들이다.
내가 아네스 베라는 여성에게 특히나 더 눈이 갔던 이유는 그녀의 삶을 보면서 나와 비슷한 면도 많이 느꼈고
이미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겪은 사람이기 때문에 닮고 싶은 마음도 있었서였다.
나도 아이를 낳고 성숙된 사람이다. 내가 아이를 양육한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니 아이가 나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 때문에 산다라고 하지만 아이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아이 덕분에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지금의 나는 20대 때보다 더 열심히 산다.
배움의 즐거움을 이제야 알아가고 있어서 평생 학생이 꿈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일하면서 무언가를 새롭게 계속 배워나가게 될 것 같다.
아이 덕분이다. 함께 아이와 배워나가니 아이에게 뭐라고 할 것도 없다.
나도 모르는 것을 처음 배우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잔소리를 안 한다. 아니 못한다.
나는 패셔니스타는 아니다. 전혀 그쪽에 관심도 없다.
주로 입는 옷이 원피스인데 옷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입기 편한 옷을 입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건 자존심도 아니다. 내 옷들은 보세옷 들인데 이런 옷에 대해서 부끄럽거나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는다.
아침마다 무엇을 입어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하지 않는다. 화장하는데 5분이면 끝난다.
나의 외모와 옷이 나를 만들어주겠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나이 어린 선생님들에게도 무엇을 배우는 게 자존심 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넙죽 엎드린다. 이런 것을 자존심이라면 이미 내 자존심을 다 죽었다.
그것보다 나는 자존심 내려놓고 자신감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 좀 못하면 어때? 모른다고 배우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운 것이지..
내 삶에, 내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고 나아가고 싶다.
내 삶과 환경을 완전히 뜯어고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바꿔나갈 것이다.
내가 만약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과 같은 인터뷰를 시작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예요. 만약에...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나밖에 모르는 콧대 높은 골드미스로 살았겠죠.
세상을 우습게 보며,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우습게 보며 살았을 거예요.
결혼 생활을 통해서 좌절하고 힘들어하면서도 그 안에서 나를 살리는 내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었습니다.
죽지 못해 살았다고 했는데 아니였어요.
그 아이가 나를 살렸고 나를 키워냈습니다. 그 아이와 함께 성장한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