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Gatsby (Paperback) ㅣ Oxford World's Classics 112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 Oxford University Press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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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When I first read this book before, though I strongly related to Gatsby, I took this story just as one of those common tragic romance. But reading this once again after several years, I became doubt about Gatsby’s ardent love toward Daisy. It seems like he loved her enormous wealth that she inherited rather than Daisy herself. In the book, there’s a sentence that Gatsby’s saying that Daisy’s voice is full of money and Carraway agrees with it. Carraway too lured by her voice and keep saying in the narrative that there’s a special power in her voice which drags people and I think that power comes from her wealth. It’s not just a normal wealth but an enormous wealth. As it described in the novel that Daisy’s family is very opulent in Louisville, the life of Daisy probably was the one that Gatsby eagerly wanted since he was young. When he first saw Daisy, I guess he saw his ideal dream in her daily life and that probably made him instantly fall in love with her irresistibly.


Though pathetic tragedy has begun when he decided to rewind time and achieve his dream, I can’t think of better life of Gatsby than his death. Though his means may not be desirable, his pure commitment to his dream made him Great. Were it not for Gatsby’s pure commitment to his dream, the whole story would have been just a common tawdry affair. I feel sorry for Gatsby as I see myself in his behavior. Though I know I can’t turn back time, there were times that I wanted to re do with my newly achieved qualities. But as Carraway mentioned at the very last page of the book, things are already receded to the past and only lingered eagerness makes us stretch our hands toward those dreams until we reach our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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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잇 -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지구 온난화 충격보고
비외른 롬보르 지음, 김기응 옮김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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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쓰레기 같은 책


이 책을 읽지 마시오. 이 책을 읽는데 들어가는 당신의 수명이 아깝다. 

허수아비 때리기와 체리피킹이 난무하는 데다가 논리적인 척 온갖 궤변을 줄줄 늘어놓는데, 이 책을 동생이 추천했다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애초에 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요즘 환경관련 서적을 읽고 있다고 하니, 이 저자의 저서를 읽어보라며 추천하던 20대중반 대학생 남동생... 읽으면서 너무 어이없어서 너 진심으로 이거를 믿냐니까, 자기는 책을 읽어본 적 없고 그저 환경분야의 권위자 이길래 추천했다고 하는데 대체; 평소에 얘는 채식주의자를 비난하고 환경문제에 지입으로 관심없다고 했는데, 그런 주제에 그럼 인터넷에서 몇 줄 끄적 읽고 '아 지구 온난화는 과대포장 되어있고 소위 환경론자들의 정치놀음이네. 깨어있는 난 놀아나지 않겠어! 환경오염 왜 신경써? 채식 왜해? 나는 이대로 죄책감 없이 살거야. 우매한 인간들 ㅉㅉ' 이따위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지 심히 우려된다... 


이 책이 이미 10년도 더 된 책이고 정신승리하던 저자는 지금와서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지만(솔직히 안궁금하다) 일단 개소리가 난무하는 책에 내가 너무 열받으니까 여기에라도 써야겠다.



1. 비외른은 온난화로 인해 오히려 북쪽 지방에서는 살기 좋은 기후가 될거라는 개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온난화 덕분에 한파로 죽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엔 왜 주목하지 않냐며 울분을 토하는데 이새끼가 환경론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구절이다. 물론 이새기의 말대로 온난화가 진행되면 북쪽 지역의 추운 지역도 같이 더워지면서 일부는 사람이 살기 최적의 온도에 도달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지역이 매우 일부일 것이란 사실이다. 북쪽 땅이 따뜻해지는 만큼 적도와 중위도 지역은 불타오를 것이고 적도 주위를 시작으로 상당부분 사람이 살기 힘겨운 최고 온도를 찍게 될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상상을 이새기는 왜 하지 못하는가? (아, 심지어 이놈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적도지방은 별로 안뜨거워지고 고위도 지역만 기온이 오를 거라는 해괴한 주장도 한다. 대체 근거가 뭔지?)

 그리고 이놈은 지구 온도가 오르는 게 먼 대수냐는 태도를 취하는데 그 멍청함에 정말 탄복할지경이다. 지구의 평균온도가 오른다는 뜻은 평균의 함정으로 그만큼 여름은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진다는 걸 뜻한다. 하긴 이건 이미 온난화가 진행되어 기후 위기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시기의 상식이지만 대략 10여년 전의 우매한 비외른이 이 사실을 알기를 기대하기란...애초에 기대할 걸 기대해야지. 그는 개소리로 가득한 이 책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출판했을 정도로 멍청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2. 두번째로 경악스러운 부분. <날씨가 더워진다_단편적인 이야기> 챕터에서 그는 도시 열섬효과를 얘기하면서 지난 반세기동안 2.6도 내지는 그것보다 더 기온상승이 했는데도 도시가 버텨냈으므로 앞으로 2.6도 더 오른다고 해서 도시시스템이 붕괴하지 않을것이란 놀라운 주장을 한다. 이놈이 학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적정온도 라는 게 있다. 그 적정온도의 폭이란 매우 좁아서 그 폭을 벗어나면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려운데 지금으로 보자면 지구 온도는 그 적정온도의 꼭대기에 다다르고 일부 넘나드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여태 상승폭을 견뎌왔으므로 앞으로도 견딜 수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비외른은 인간이 여태까지 꾸준한 기온상승속에서 살아왔으니 50도의 폭염 속에서도 무리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3. 또한 비외른은 미래의 새로 나타날 기술에 거의 종교 수준의 믿음을 보이는데 그래...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이는 전형적인 미래는 무조건 진보한다는 안일한 사고방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4. 비외른은 경제를 들먹이면서 복잡하고 불투명한 지구온난화를 줄이는 대신 당면한 문제-기아, 말라리아 등-을 해결하자고 하는데 저자의 말대로 목전에 닥친 문제만 해결하다보면 당장이야 효과를 보겠지만 지구온난화-기후 위기가 불러오는 여러 폭염, 병충해, 가뭄 등의 부작용으로 세계가 더 극심한 빈곤과 고통에 휘말릴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마치 죽기전 마지막 발광을 하듯이 우리의 문명은 잠깐 자본주의의 꽃을 피우고 영영 불길 속에 사라질 것이다. 


5. 대체로 그의 비상식적이고 빡침을 불러오는 멍청함은 전체적인 흐름을 보지 못하고 지엽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데 따른 것들이다. 하긴 이 책이 10년도 더 전에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그때에는 나름 설득력 있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비외른은 스스로가 멍청하고 우매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었을 뿐이다.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정확히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비외른은 지가 그런 혜안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수많은 멍청이들 중 하나 였던 것이다.


6. 반박하다 지쳐 후루룩 책을 읽다보니 왜 비외른이 왜그렇게 필사적으로 환경오염에 대한 통념을 비판하려 했는지 알겠다. 그의 모든 것은 결국 교토의정서를 비판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건 마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서 셸렌버거가 원자력 찬양을 위해 온갖 비논리를 끌어오면서까지 허수아비때리기와 체리피킹을 했던 것과 같달까. 아니 시기적으로 비외른이 먼저구나. 셸렌버거야, 비외른한테서 배워왔니?

 어ㅉㅣ되었든 교토의정서에 대한 저자의 반감은 책 전반에 아주 강렬하게 흐르고 있는데 그는 4장에서 실효성 없는 교토의정서를 이행하느니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맞닥뜨린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건 타당한 주장이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앞 장에서 너무 개논리를 펼쳐놓았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주장을 보기 위해 내가 오늘 하루 이 책을 붙들고 있었구나... 


온갖 빡치는 개소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 싶으면 마지막 맺음말만 보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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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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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20년후, 그리고 100년 후 우리의 미래


요즘 들어 환경오염 내지는 기후위기에 대한 뉴스가 자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그만큼 기후위기의 증거가 우리의 삶 앞에 닥쳤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후위기의 여파가 이제는 외면하기 힘들 정도로 명백하고 뚜렷하게 소위 선진국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리라.


책의 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2부에서는 지구의 기온상승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12가지 재난 시나리오가 펼쳐지는데 그 처참하고 끔찍한 인류의 (거의 예정된)미래에도 불구하고 4부에 이르러 희망을 끌어낸, 아니 우리가 초래한 문제이니 해결책도 우리가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저자의 정신이...약간 경탄스러울 따름이다. 


사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가 겪고 있어 이제는 더이상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수 년째 매해 최고기온을 갱신하는 여름날의 폭염을 떠올려 보면 손쉽게 불에 타오르는 지구가 눈앞에 그려진다. 그렇지만 이런 추상적인 상상보다는 오히려 오늘 날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덥다고 느꼈던 여름철의 그 온도가 내 노년에 이르러선 겨울철의 최저 기온이 될 지도 모르는, 아니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는 편이 더 피부에 와닿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계속 지적하는 대로 인류는, 우리는 기후위기가 닥치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대신 오히려 추상화해버리거나 살짝 뒤틀어 미디어에 가둠으로써 책무를 외면하고 우리 스스로의 종말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다...


사실 기후 매커니즘의 복잡성과 우리의 이해의 한계로 인해 2부 내용의 대부분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기반한 추측성 내용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은 채로 지금까지 살아왔던대로 살아간다면 2부의 내용은 글쎄, 추측이 아니라 머지않은 현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아악.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온난화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다. 수억년 간 지구가 구축해놓은 균형적인 순환 생태계에 인간은 아주 단시간에 과도한 양의 탄소를 배출해 그 균형을 무너뜨려 놓았다. 이미 우리는 트리거를 당겼고 그 증거를 매 순간 눈으로 목도하고 있다. 지구의 모든 환경은 연결되어 있고, 그 연쇄적인 작동으로 인해 온난화의 방향으로 기울어진 기후는 이 모멘텀을 상쇄시킬 만한 대비책을 활성화시키지 않는 이상 스스로 박차를 가해 빠르게 종말 - 아니 정확히는 인류 대멸종의 순간으로 치달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단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부터 바뀌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까? 소비에 미쳐돌아가는 이 사회가 스스로 제동을 걸고 멈출 수 있을까? 

특히 수백 년간 지속된 서양의 우월주의 문화에 도취한 사람들은 인류 문명의 역사를 필연적인 운명에 따라 지구를 정복해 온 위대한 문명에 관한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뿐 곰팡이처럼 마구잡이로 불안하게 퍼져 나가는 위태로운 문명에 관한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 활동 전반에 드러나는 인류 문명의 불안정성은 지구온난화 시대를 이해하는 주요한 실존적 특징으로 자리잡았으며 이제 막 인류의 우월감을 뒤흔들기 시작했을 뿐이다. - P62

윌리엄T.볼먼이 두 권으로 된 장대한 저서 <탄소 이데올로기>에서 다루는 주제가 바로 이 지점이다.
(...)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언젠가, 우리가 살던 지구와 달리 더 뜨겁고 위험하며 생물학적으로 단순해진 지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신과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 애초에 생각이란 걸 하고는 살았는지 궁금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
"물론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는 늘 지적으로 나태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수록 대답할 필요도 없었으니까...우리 모두는 돈을 위해 살았고 결국 돈을 위해 죽었다." - P91

현재 정신적 고통을 겪는 수많은 기후학자들은 일종의 ‘탄광 속 카나리아‘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다 자칫 양치기 소년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학자도 많다. 대중이 얼마나 무관심해질 수 있는지 너무 잘 알다 보니 정확히 언제 어떤 식으로 경종을 울려야 하는지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 P207

한편 대중문화 속에서는 일종의 감정적 예방 처치도 이루어진다. 기후재난에 관한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낌으로써 스스로에게 인류가 재난에서 살아남으리라는 집단적인 확신을 불어넣는다. - P219

지구온난화가 페르미의 역설에 해답이 되리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여럿 있다. 문명의 자연적인 수명이 수천년밖에 되지 않고 추측건대 산업 문명의 자연적인 수명 역시 수백 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백억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주 속에서 항성계 역시 시공간 면에서 그만큼 방대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서로 다른 행성에서 문명이 출현하고 발전해 서로를 발견하기에는 너무도 빨리 스스로를 불태워 자멸하고 있는 것이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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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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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 대잔치. 돈룩업은 현실이었음.


책을 중반부까지 읽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리뷰창을 켰다. 


저자는 진실 사이사이에 헛소리를 교묘하게 끼워넣어서 자기 주장이 일견 타당한 것처럼 꾸며내는데 너무 역해서 끝까지 읽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일단 저자 또한 환경보호론자이고 기술발전이 인류를 기후위기에서 구원해줄것이라 굳건히 믿는 기술발전옹호론자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렇게 자극적인 목차와 근거를 뛰어넘는 주장을 이렇게 뻔뻔하게 책으로 펴내다니... 과연 이 책을 읽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많은 독자들이 앞으로 환경 보호에 신경을 쓰게 될까? 아마 어떻게든 채식을 하고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환경보호론자들을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런 어이터지는 목차를 쓴 것이라면 100퍼센트 성공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샐런버거가 하려는 말을 요약하자면 이미 발전을 끝낸 선진국들이 개도국에 제안하는 기후위기 해결방안은 현실과 괴리가 있으며 실행도 쉽지 않다. 그러니 차라리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기후위기 해결방안, 즉 기술개발을 빡세게 해서 그 기술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만이 답이다, 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일견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류가 기술발전의 혜택을 보기 전에 환경이 먼저 동날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내가 빡치는 점은 이 책이 환경보호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환경보호론자들이 성취한 수많은 성과들이 그들의 노력이 아니라 그저 기술진보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니 셀런버거는 오히려 환경보호론자들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었다고까지 주장하는데, 저자가 지 입맛에 맞는 일화만 쏙쏙 가져와 묘사한 덕택에 이 책만 읽고 환경보호론자를 본다면 두 개의 탈을 쓴 악마 내지는 논리없이 감성에만 호소하는 멍청이 둘중 하나로 보일 지경이다. 이게 '자칭' 환경을 보호한다는 저자가 할 말인가!


샐런버거의 주장은 논리의 흐름을 건너 뛰고, 중요한 사실은 간과하며 환경보호론자의 주장을 살짝 틀어 단순화하고 극대화하여 반박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정당성을 찾는다. 한마디로 너무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책은 환경보호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 앞으로도 쭈~~욱 관심없어도 된다는 개줫같은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 아주 해악성이 짙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는 환경보호따위엔 신경쓸 필요 없이 그저 내 몸 편하고 나 편한대로 소비를 계속해도 되겠구나, 아니 그게 바로 환경보호에 바람직한 것이구나 하는 아주 아주 아주 잘못되고 답없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환경보호에 관심도 없고 그저 나 편한대로 살고싶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런 이기적이고 멍청한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면책해주는 개쓰레기 책인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책 한권만 읽은 이들(그들은 애초에 환경 보호에 관심이 없을 확률이 크다)은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채식을 하고 불편한 삶을 감수하면서까지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살아? 오히려 소비가 환경보호를 가져온다고!' 이런 대가리 깡통 가득찬 발언을 내뱉으면서!



이 따위 종이뭉치를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 의문이 생기는 군... 저자는 너무나도 기술진보를 찬양한 나머지 수많은, 그것도 다양한 층위에 걸쳐 분포하는 환경보호론자를 하나의 극단주의자로 싸잡아 비난하고, 몇 개의 개인적인 일화를 확대해석해 자신을 정당화하며 정작 기술진보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것이다' 라는 긍정성 가득한 주장만 내세울 뿐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끌어온 근거는 아주 빈약하기 짝이 없다.



<7장>

와 7장에서 역대급 개소리 나와서 박제함.

"반면 육식이 비윤리적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가축들은 '자유'를 얻는 게 아니다. '존재'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생명을 가진 존재를 만든 후 생명을 앗아가는 것보다 아예 생명을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윤리적인가?" 이게 뭔 개소리지? 아니 애초에 이 두가지 사안은 비교불가능인데 셸렌버거 이새끼는 이 문장을 쓰면서 스스로도 궤변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나? 그렇다면 진심으로 오로지 도축만을 위해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지는 가축과 아예 육식을 안해서 그런 가축이 태어나지 않는 것 이 두개를 진심으로 비교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이새끼는 눈 뜬 그순간부터 감옥에 쳐넣어서 먹고 싸는것만 반복시킨 후 살만찌워서 자기 자신을 죽인다고 해도 그게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건가? 아니;;; 너무나 놀랍구나. 아니 차라리 육식 자체를 지금당장 근절시키는 건 어려우니까 오히려 집약도 있는 축산으로 생산성을 늘리면서 대신 과도한 육류의 소비는 지양하자~ 뭐 이런 식으로 논리 전개를 하면 수긍이라도 하겠다만 이넘은 대체 먼정신으로 책을 써제낀거지;; 

심지어 이 다음 문단은 더 처참하다. 야생에서 송아지 한 마리가 코요테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을 보고 이새끼는 오히려 "현대적인 도살장에서 당하는 죽음을 선택할 것" 이라고 한다. 와우...아니 최소한 채식이 비논리적이라고 반대할거면 지는 논리적인 근거를 대야지 어쩌다가 보게 된 야생의 장면 하나만 보고 이렇게 확대해석해도 되는 건가. 이거야 말로 논리 없이 감성에 호소하는 게 아니면 뭔데;; 체리피킹 정도도 아니다 이건. 애초에 야생에서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죽는거랑 인간의 탐욕스러운 식욕을 채우기 위해 도축되는 거는 비교불가라고 생각한다. 이 두개를 비교하려면 셸렌버거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야, 너 걍 지금처럼 잔인한 사회속에서 살래, 아니면 감옥 들어가서 평생 안온하게 살래? 왜? 감옥 싫어? 때되면 먹을거 주고 잠잘곳 제공해주고 얼마나 좋아? 야생과도 같은 잔인한 사회로부터 지켜주고 너가 노력하지 않아도 먹을것도 때되면 제공해주고 힘들게 빚내서 집구할 필요 없이 잠잘곳도 무료로 제공해주는데 왜? 감옥이 더 좋지 않아? 어?"



*

후반부로 갈수록 개소리 포텐이 터지는 듯 아주 구절구절 주옥같은 문장이 건빵 속 별사탕마냥 박혀 있어 도무지 책장을 넘길 수가 없다. p291 "탄수화물 섭취를 옹호하고 지방에 반대하는 십자군 운동은 환경뿐 아니라 사람들의 건강에도 유익하지 못했다. 돼지를 더 살찌우는 대신 덜 살찌우는 비효율적 방식으로 기르도록 분위기를 몰아갔기 때문이다...사람들이 저지방 식단을 택해 비효율적으로가축을 기르면 결국 필요한 땅은 더 넓어진다." 

셸렌버거 이새기는 말싸움 하면 높은 확률로 이겼을거 같음. 왜냐면 어이나간 궤변을 진지하게 주장해서 상대로 하여금 투쟁의지를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논리비약도 정도껏 해야지; 

허수아비때리기가 난무하는 책이고 이 문장에서도 어김없이 허수아비가 등장한다. 우선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채식주의자를 무슨 탄수화물 찬양론자로 몰아간거도 어이없는데 저지방 식단을 택해서 가축을 키우는 땅이 더 만힝 필요하다는 건 진짜;;; 이건 마치 플라스틱을 덜 써서 환경오염이 더 심해졌다는 소리와 궤를 같이하는 역대급 궤변인데...수요가 줄면 공급도 줄어든다는 기본적인 경제 공식을 이해하지 못하는건 차치하고서라도 육류에 대한 소비가 줄어든 것과 가축을 키우는데 더 많은 면적이 필요하다는 결론 사이에 논리적 비약이 너무 놀랍고 이런 개소리를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책으로 써갈겼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8장>

으음... 8장을 읽고 나서 알았다. 앞의 300페이지에 달하는 논리터진 개소리 - 그래서 나로 하여금 이 종이뭉치를 끝까지 읽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든 - 의 향연은 바로 8장의 원자력을 향한 밑밥이었던 것이다. 물론 체르노빌로 인한 지역주민의 암 사망 기대치가 0.6퍼 밖에 증가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나 후쿠시마 원전누출 사고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충격적이지만 원자력이 환경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태양력이나 풍력이 원자력만큼의 아니 화력만큼의 효율성도 내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자력의 위험도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건 너무하지않은가?)


하지만 원자력의 극적인 찬양을 위해 이렇게 앞에서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을 왜곡하고 호도하고 때론 놀랄정도의 악의를 가지고 환경주의자를 묘사해 놓은 부분 때문에 이 책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심지어 뒷부분으로 가면 환경주의자들을 마치 자기파괴적 신화에 사로잡혀 죽음만을 찬양하는 종교인들처럼 서술을 해놓았는데 기후위기와 그에따른 폐해를 시시각각으로 목도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이런 주장이 그저 놀랍고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어쨌거나 간헐적으로 타당한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 셸렌버거의 원자력 찬양은 이해가 가는 바이나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앞으로 환경보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자연과의 공생을 위한 방법을 모색할지는 미지수다. 아마 이들 중 상당수는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소비만을 위한 소비를 하며 엄청난 쓰레기를 죽을때까지 배출하면서 살 것이고 이들에게 셸렌버거가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 어떤 변화도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다.


책 후반부로 흐르면서 환경주의자들이 벌이는 다양한 노력은 오히려 환경에 해가 될 뿐이며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금 해왔던 것처럼 소비하고 개발하며 살자, 그러면 기술발전이 알아서 환경오염까지 다 해결해 줄 거라는 믿기힘든 저자의 낙관론은 일견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생각나게 한다. 아무도 개입하지 않고 그저 시장이 굴러가는대로 놔두어야만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며 시장이 성공적으로 작동한다는 그 논리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정부의 개입이 없는 시장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건 셸렌버거의 주장에도 마찬가지다. 수십년에 걸친, 환경주의자들의 다양한 노력들 덕분에 우리 모두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오염을 줄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었다. 그가 기술예찬의 근거로 삼고 있는 여러 사례들 - 기술발전이 환경오염을 막아낸 사례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의식 변화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무작정 개발만 한다고 환경이 알아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점을 항시 주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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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2-02-09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원한 글이네요. 저도 8장 읽고 나서 아 그래서 이 새끼가 그렇게 환경론자들을 증오했구나.. 이런 생각.
 
파워 오브 도그
토머스 새비지 지음, 장성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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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광막한 서부, 추방과 혐오 그리고 상냥함에 대하여


책의 마지막장을 덮자마자 영화를 틀었는데 소설보다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각색이 무척이나 잘된데다가 영화만이 가진 장점을 십분 발휘해 필과 로즈 그리고 피터 사이의 형용할 수 없는 긴장감, 음악 및 연출을 통한 인물의 심리묘사, 그리고 광막하고도 황량한 서부를 너무나도 훌륭히 담아내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것을 땅치고 후회했다...아마 줄거리를 모른 채로 봤으면 장면과 연출에 압도당해 어라이벌 급으로 기억에 남았을 듯한데 ㅜㅜ 이래서 상영관에 걸렸을 때 주저말고 봐야 한다...


책을 봤을 땐 온갖 장점과 찬양을 때려박았지만 결국 나이 40먹고도 자라지 못한 필이라는 인간에 대해 한심하고 답답한 마음이 컸는데 영화를 보니까 필이 너무나도... 짠한거다. 특히 마지막에 소년 어딧냐며 찾는 모습까지... 결국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건 인정일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인간 말이다...이 '있는 그대로' 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는 건 알지만, 필도 복수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했던 (거기다 혐오하기 마지않았던) 피터가 자신을 인정(?) 하자마자 피터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던 것처럼...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잘될거라고..지켜줄거라고? 뭐 그 엇비슷한 말 햇잔아...


Be kind, for everyone is fighting a hard battle. 영화 원더를 보면서 가슴에 남은 대사인데 필이 죽을 만큼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떠오른 구절이기도 하다. 결국 작은 선의, 최소한의 배려 내지는 상냥함이 필에게 있었더라면 이 파국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해 세상을 혐오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고슴도치마냥 겉으로 내찌른 가시 때문에 스스로마저 파멸로 이끈 삶 속에서 필은 행복을 찾은 적이 있었을까? 아, 있었겠네...브롱코 헨리와 함께하던 시절...


무튼 여러모로 여운이 남는 책...이자 영화이다. 보통 책 원작 영화이면 책을 뛰어넘기가 힘든데 파워 오브 도그는 영화랑 책 중 둘중 하나를 고르라면 영화를 고르겠다! 둘 중 뭐부터 먼저 볼지 고민이 된다면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게 좋을 듯 싶다. 그만큼 영화의 연출과....배경과 음악활용, 인물들의 연기가 정말 뛰어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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