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을 샀어
조경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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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들의 제목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알맹이를 꼭꼭 싼 호두알처럼 선뜻 어떤 내용의 이야기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목에서 받은 밝고 청소년소설 같은 인상들과 달리 속 내용은 다 읽고 난 뒤에도 재떨이에서 남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꽁초처럼 난해한 작가의 심리를 속속들이 느끼고 공감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작가가 고민하고 추구하며 몸부림치면서 갈등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확신있게 이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다만 내가 느끼고 내 안에 차오르는 그 무엇이 있었다.

바로 '삶'이었다.

그것도 책에 실린 8편 중 대표작인 '풍선을 샀어'에서 가장 강하고 절박하게, 그러면서도 묘한 부웅 뜨는 비상(飛翔)의 심리를 느꼈다!

인생의 완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의 모든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니체

모든 정신의 위대함이란 질문에 대한 해답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견뎌야만 하는 삶, 가꾸어야 하는 삶, 돌봐야하는 삶, 조화를 이루는 삶에 대해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니체가 남긴 철학 중에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J. 그것은 변화를 뜻하는 것일지도 몰라.'-화자

공황장애가 있는 27살의 전직 국가대표 핸드볼선수가 서른일곱의 싱글 올드 레이디이로 부모님과 결혼한 오빠가족과 동거하며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것 외에 생계를 위해 백화점문화센터에서 철학강의를 하는, 십 년 동안 살던 하이델베르크에서 이제 막 한국으로 돌아온 화자와의 수업에 어머니대신 대타로 들어오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중년의 수다스런 인근 아파트의 주민인 아줌마들 속에 새파랗게 젊디 젊은 20대 남자가 끼여서 철학수업을 듣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터져나온다. 나 역시 100여 명의 남학생들 속에서 유일한 홍일점으로 교수의 유머에 목젖이 울리도록 걸걸거리는 웃음을 웃는 그들과 다른, 깔깔톤의 높은 소리로 그것도 길게 웃다가 그만 강의실에 남은 웃음의 파장이 퍼지는 통에 그 101명(교수포함)의 남자들을 얼마나 웃겼는 지 모른다.그렇듯이 공통점도 없는 여자들 속에 남자 혼자서 그 강의실을 찾아왔다는 것은 너무나 일상과는 동떨어진 출발이었다.

처음부터 주인공은 결정되어 있었는 지도 모르지만 난 이 J라는 청년이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이유는 소설을 이끌어가기 위한 작위적인 설정이 아닌 실존하는 인물, 이미 내가 만나보았던 그 녀석과 무척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화자와 J의 두 번째 데이트이자 영화관데이트에서 많은 익명의 사람들 속에서 유독 안절부절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매는 J를 보고서 비로서 그에게 '공황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경우는 내가 J의 나이였을 때 다섯 살 아래의 키가 크고 희고 깨끗한 피부에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던 그는 1년간 휴학을 하고 나서 복학한 탓에 그나마 알고 지내던 녀석들이 모두 군입대를 하고 난 뒤라 속 마음을 털어 놓고 지낼 사람이 필요했었고  나 역시 여드름 투성이의 툭 하면 알아듣기 거북한 '뭐라카노' 식의 남도사투리가 쏟아져나오는 후배들 속에 그 아이처럼 세련된 마스크에 목소리까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후배와 친해지는 것은 하늘의 선물일 따름이었으니까!

그런데 두 서넛이서 같이 걷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는 여느 아이들과 같던 그가 스무 명이 조금 넘는 동아리모임에서는 얼굴이 급격히 피곤해지면서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했고 그나마 얼굴을 바로 하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겨우 들곤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양 손을 꽉 쥐고 몸을 비틀면서 땀을 흘리던 그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일이 있고나서 그는 그 모임에 다시는 나오지 않았고 언제나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빠졌다.

처음에 그가 내게 했던,자신이 수줍음이 많다는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좀 지나치다 싶었다. 그 후로도 그는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딴 사람이 되곤 했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곤 했다.나로서는 책의 화자처럼 그를 위로하는데 능하지도 못했고 단지 그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진지하고 가슴아프게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고통은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 그 어린 나이게 그런 큰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 언제 이 싸움이 끝날 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공황장애는 실제로 위험상황이 아니고 아무런 해가 없는 상황에서 극심한 불안을 겪어 주관적인 발작을 되풀이하는 신경질환이다.

작가는 어째서 이 공황장애를 앓는 J를 등장시켜서 '삶=두려움' 이란 등식을 완성해버렸을까? 사실 공황장애를 앓는 것은 화자도 마찬가지였다. 화학자도 조율사도 되지 못한, 빈털터리에다 직장도 없고 드라마를 볼 때면 웃을 때도 아닌 데서 웃는다고 가족에게 등짝이나 얻어맞기 일쑤인 고독한 서른일곱의 싱글인 화자 역시 자신의 불안정성을 인식하고 극복하고 싶어 수천 개의 풍선을 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몇 개의 풍선을 불었을까? 그리고 언제 처음으로 불어보았을까? 미래에 대한 꿈과 독선으로 가득찬 10대 후반까지는 별다른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좌절감을 맛 본 20대에 들어서 날마다 풍선을 불었던 것 같다. 무지개빛 미래대신 짙게 썬팅을 한 유리창으로 세상을 보는 마냥 앞이 급격하게 흐려졌을 때가 바로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역시 그 아이를 만났을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숨이 헉헉 차오르도록 풍선을 불고 또 불고 해야지만  겨우 목숨을 연명할 수 있던 절정이었던 것 같다.

"후~우." 

 이제는 풍선을 불기 위해 숨을 강하고 길게 내쉬기 보다는 한 해가 다르게 부쩍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그 어깨의 짐을 떨어버리지 못한 채 허리가 굽어가는 그 모습에서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내면의 불기둥이 열기구의 기낭(氣囊>을 한 껏 무섭도록 크게 부풀어 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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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 이외수의 소통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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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얼마나 궁극적이고도 영원한 불가사의한 난제에 대한 진실한 답변이란 말인가! 작가 역시 모른다고 했지 언제 안다고 했냐 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날개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작가를 언어유희의 대가로 소개한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이외수작가의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독자라면 그가 단순히 타고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서 별다른 읽을꺼리없이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가여운 한국인을 즐겁게 해 주는 차원을 넘어 인간과 사회현상에 대한 깊고도 날카로운 통찰을 예전에 누구도 감히 그렇게 입 밖으로 표현해 낼 재주도 용기도 없었던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던져 뱉으면 그 곳에 떨어진 말의 씨앗이 썩어 누구도 무시 못할 놀라운 싹을 틔우고 그 작은 싹은 어느새 자라서 길가는 어느 누구도 밟아 부러뜨리지 못할 거목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느낀 이외수 작가에 대한 생명력이다.



사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책 제목을 대했을 때 약간 야한 것을 기대하는 이상스런 심리를 내 안에서 발견한 나는 나 스스로가 여성임에도 여자라는 생물에 대해서 제일 먼저 기대하는 것이 이것이라는 것을 처음 뚜렷하게 인식하곤 무척 놀라웠고 한편 부끄러웠다.

그런데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주제는 예상했던 야함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1-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지구에 현주소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매 주일 듣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진리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도저히 행위로써 완성시킬 수 없는 불능의 명령이라 여긴 바로 그 주제를 이 대목에서는 당신이 정령 인간이라면 이란 가정을 토대로 당신과 똑같이 생긴 인간은 물론 천지만물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이 있다라는 명제로 완성시키는 기막힘을 느꼈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이해한 것은 네가 몰골만 그럴듯한 인간이 아닌 창조주의 손길로 빚어낸 진짜 사람이라면 말이다, 네 안에는 이미 모든 것을 용납하고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랑이 분명히 들어 있단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만물의 으뜸이라고 말하는 이유란다. 군사정권의 무력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그 통치자로서의 으뜸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으뜸의 의미란다.

 

그렇다!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언어로는 표현 못하던 그 유아기 시절에 이미 나는 오래 전부터 어머니께 들어오던 그 말씀,

사랑한다, 우리아가! 너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하지만 한 살 두살 먹어갈수록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는커녕 점점 미워지고 싫어지는 것의 가짓수만 늘어갈 뿐이어서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묵직한 죄책감이 내 중심을 향해 거대한 원추처럼 매달려 길 가던 원수를 보고 심장이 뛰기 시작함과 동시에 흔들거리기를 몇 십 년째이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죄책감의 추 옆에 자기기만내지 자기합리화의 거미줄이 쳐졌는지 근래에 들어서는 설교자의 뭐뭐해라, 이를테면 교회 안에서 만이라도 사랑해라 라는 내용의 훈시를 들으면 급하게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너도 끼어들기 하는 차를 만나면 그 때도 이렇게 의젓하게 설교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건만 요즘 목사들은 모조리 섬김을 받기 위해 납신 것 같단 말이야! 동갑쟁이 목사의 설교를 간신히 인내하며 듣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아지면서 도대체 감동은커녕 은혜가 없는 시간을 보내던 중 이 대목을 읽으며 교회에서도 못 받은 찔림과 아픔을 경험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만약 개뿔이라는 설탕을 위에 발라주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많은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누가 나를 비난하거나 힐책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너무나 잘 진단하고 볼 수 있는 기회였고 기준이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진리였기에 그런 것 같다.

 

크리스천인 내가 성경 외에 인간의 말을 진리라고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지만 이 21번 말씀은 진리가 맞다. 내가 사람인 이유, 하지만 내가 아직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그런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며 그 몫으로서 해야 하는 일 등을 한꺼번에 꿰 뚫는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113번- 그대는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기 위해 그토록 힘겨운 모습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에서 이 사람이 누구관대,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것을 아는가 라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세상에 이렇게 낮은 모습으로 온갖 굴욕과 부당한 대접을 받으며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내야 하는 가로 북받치는 설움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눈물이 안구에 갇혀 잠시 책을 덮고 위를 바라보았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나라에 비록 만날 수는 없으나 진정한 주의 말씀을 아는 도인 같은 정직한 지혜자를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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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천재가 된 홍대리 3 (개정판) - 세금과 성장의 비밀 천재가 된 홍대리
손봉석 지음 / 다산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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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학과 세법을 공부하게 된 지 1년이 넘어간다. 처음엔 서점의 경영경제코너에 가서 중급회계나 고급회계의 목차를 넘겨보며 이 정도 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저자의 책들을 골라 팔목이 시큰거리는 것을 참아가며 집으로 운반했다. 하지만 휴일에 온 종일 앉아 회계의 목적이며 가장 기본이 된다는 재무회계의 기본을 요약해 놓은 것을 훑어보아도 좀처럼 알아듣기가 힘이 들었다. 급기야는 초반부터 질리도록 간단간단한 설명 뒤에 바로 나오는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등을 눈으로 보는 것에 아주 단단히 체하고 말았다.

그 뒤로 회계원리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한다는 선배의 친절한 설명에  지갑을 털어 회계원리, 그것도 아주 쉬운 대학초년생 교재용으로 골라들고 세법도 2권,아버지가 베고 주무시는 목침의 두께만큼 실로 무게가 대단한 최신판과 간략한 설명이 쉬워 보이는 것으로 구입했다.

회계에 입문하자마자 내 책 꽂이 아래 칸이 관련서 4권으로 꽉 차고 말았다.그래서일까 너무 숨이 막혀버려서,질려버려서 회계공부는 도무지 속도가 붙지 않고 더운 여름이 가고 어느 새 찬바람이 부는 늦 가을이 되었을 때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지라는 초심을 찾고자 부단히 애를 쓰고 있던 중 아주 가볍고 손에 잡고 있으면 그냥 웃음이 나올만치 반가운 홍대리를 만나게 되었다.   

홍대리시리즈는  참으로 만만하다. 특히 회사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한 과장도 아닌 입사 5년차의 애송이 홍대리가 어떻게 해서 이 괴롭고도 험난한 회계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는 지가 궁금한 사람은 필히 <회계천재가 된 홍대리>부터  읽어봐야 할 것이다. 처음엔 필자도 3권까지 내게 될 줄 몰랐던지 제목이 그냥 <회계천재가 된 홍대리>인데 이것이 이 홍대리시리즈의 출발이면서 동시에 흥미진진한 회계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사실, 처음엔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천하무적 홍대리>란 만화책의 주인공이 엉뚱발랄 지각대장 홍대리여서 그 홍대리가 나오는 회계만화책이 아닌가 해서 더 관심이 생겼던 것이었다. 표지부터 분명 만화책 분위기였는데 비록 그 홍대리는 아니었지만 회계천재 홍대리 역시 인물 좋고 명문대 나와서 직장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엘리트와는 사뭇 거리가 먼, 부서 내에서 저조한 영업실적으로 부장의 성질을 있는대로 다 돋구어 쌕쌕거리는 부장 밑에서 숨 죽이며 살아가며 한 편 애인이 있음에도 매너 좋은 색시공주라는 여사우에게 홀딱 넘어가려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직장 내 음모를 알게되면서 나설까 말까를 두고 한 참을 고민하는 참으로 소심한 인물이다.(이상 1권 요약)

능력은 탁월하지 않으나 참으로 희로애락이 분명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주인공 홍대리가 1,2권에서는 새로운 분야인 회계업무, 그리고 3권에서는 집중적으로 파고 든 세법에 대해서 실무에서 접하는 문제를 가지고 소설형식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회계와 세법용어들, 그리고 갈등과 긴장감을 느끼며 지금 내가 공부를하고 있는 것인지 재미난 소설의 결말에 더 마음을 쓰는 지 분간하기가 참 어려웠다. 

3권도 회사와 함께 빚을 남기고 간 홍부자 아버지의 죽음으로 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1권 역시 회사 대표인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대표이사가 된 최영순사장의 이야기로 부터 시작되는 것과 비교하면 경영을 전혀 모르는 이가 갑작스럽게 회사를 운영해야하는 위기를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면서도 흥미롭다.

상속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던가?

상속세란 피상속인의 사망 또는 실종선고에 따른 상속, 유증, 사인증여(10년 또는 5년 이내에 진 증여채무의 이행 중에 증여자가 사망한 경우의 당해 증여를 포함)및 특별연고자에 대한 상속재산의 분여에 의하여 상속인 또는 수유자가 피상속인으로부터 취득하는 재산을 과세대상으로 하고, 그 재산의 가액을 과세표준으로 하여 부과하는 조세를 말한다.

홍대리에는 이런 지루한 용어설명이 절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실제 상속세가 얼마나 부과가 되는 지 그 비율과 상속세를 현금이 부족할 경우 주식이나 부동산 등을 처분하여 내기 때문에 경영권이 위태로와지는 사례를 실감있게 다루어 구체적 사건과 그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갈등을 통해서 세금이라는 것, 그냥 고지서 받아서 은행가서 내면 끝이 아니라 는 것, 가만히 앉아서 세금폭격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배우고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면 세금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1년이 넘게 회계와 세법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나의 경우도 처음 회계원리부터 시작했을 때는 그저 수학실력에 의존해서 어차피 회계라는 것이 수식에 의해 도출되는 것이니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실무 경험이 적은 탓인지 각 챕터가 따로 놀았다. 재무회계편을 공부하고 나면 뒷 부분을 벌써 다 잊고 하는 식으로....

세법 역시 회계와 뗄 수 없고 오히려 회계의 일부인데 그 방대한 세법에 대해서도 도무지 관심이 생기질 않아 큰 곤혹을 치루었다. 국세와 지방세의 항목이 어찌나 많고 또 그 세율적용에 대한 예외규정이 너무나 많아서 마치 촘촘한 그물로 얽어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으나 고작 체감할 수 있는 근로소득세,재산세와 종부세에 대해서 '내 피 같은 돈을 이렇게 억울하게 빼앗기다니....' 하며 우리집에서 내고 있는 세금에 얼마 간의 돈을 보태면서 7월과 9월에 납부해야하는 지방세인 재산세와 12월에 납부해야하는 국세인 종부세 등에 애간장이 녹아내렸다. 그 후로 환급에 대해 부단히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종부세환급은 역시 강남의 수단 좋은 알부자들의 몫이었을 뿐 애초부터 불문곡직(不問曲直) 걸려든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어서 허탈감은 훨씬 컸다.

이런 일이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세금때문에 자영업을 못하겠다는 주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보았다. 아무리 경기가 나빠도 근거없이 세무서에서 턱 없이 높은 세금고지서를 발급하는 사태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맞보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이렇게 말한다.

 " 세금은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히 공부해서 알아야 해결이 되는 문제입니다."

문제는 세법 공부를 하는 것이 대단히 인내심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 많은 이들은 아예 전담 세무사를 두고 사업을 하지만 1인 사장이자 직원인 체제에서는 혼자서 감당할 수 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금에 대해 속이고 피하고 이중장부를 쓰는 수법으로 늘 패배를 당하는 이들에게 이 홍대리 3은 '세금도 만만하구나' 라는 것과 함께 더 공부하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데 참 좋은 동기유발제인 것 같다.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부분에서 단순히 이야기를 흘리듯 지나가버리는 부분이 눈에 띄어아쉽긴 하지만 세금에 대해 두려움을 벗고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한 다는 면에서는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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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싸게 팔아요 콩깍지 문고 3
임정자 지음, 김영수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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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어서 동화를 쓰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가 자못 궁금하다. 특히 작가 임정자씨는 자신이 직접 아이를 키우면서 그 아이와 씨름하며 골머리를 앓는 일상생활에서의 문제를 동화로 풀어내야겠다는 사명감을 띄고 이야기를 쓰는 것 같아 꿈과 낭만을 주는 동화 본연의 색채보다는 수필이나 수기의 색채를 훨씬 강하게 느껴지는 엄마작가이다.

이 전에 발표했던 <당글공주>에서는 홍역의 문제를 실제 아이가 홍역을 앓게 되면 어떤 증상들이 나타나며 어떻게 정확하게 대비하며 약을 써야하는 지를 용감한 당글공주와 괴물을 등장시켜 매우 자세하면서도 스릴있게 그려냈고 또,<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에서는 좁은 아파트 계단과 복도에서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음문제를 심각한 불화와 전쟁으로 그리지 않고 대신 아이들의 놀이터로 그려서 오히려 어른들에게 자신도 어린 시절 무수히 어른들의 꾸지람과 눈을 피해 다니며 밤늦도록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놀았던 시절을 상기시키며 권리찾기문제로 다투지 말고 조금 더 삶에 여유를 가지라는 부드러우면서도 따끔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그런데 이 책 <내 동생 싸게 팔아요>는 제목부터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분명 사랑과 평화대신 부글부글 끓는 갈등이 있으리란 것은 쉽게 예견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책을 펼쳐보니 집 안에서 다투는 모습대신 누나가 어린 남동생을 자전거에 태우고 집을 떠나 시장으로 향하는 것이 시작이었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읽기에도 무척 속도감 있는 빠른 진행이었다.

 
누나가 시장에 도착해서 가장 처음 만난 장난감 가게 언니에게 동생을 팔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 동생은요, 얼마나 얄미운데요.

나한테 대들고 나쁜 말도 하면서

엄마 아빠 앞에선 이쁜 척해요."

 
즉, 동생과 자신이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동생을 아랫사람이라 여기고

동시에 엄마 아빠의 사랑을 나눠가져야 하기에 동생이 밉다는 것이다.

또, 꽃가게 할아버지에겐 이렇게 설명했다.

 "내 동생은요, 고자질쟁이예요.

세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징징 짜기나 하고

엄마한테 일러서 나만 야단맞게 하잖아요."



동생을 때린 자신의 잘못은 인식도 못한 채 오히려 맞아서 우는 동생이 크게 운다며 밉다는 것이다.


그리고 빵가게 아주머니를 만났을 땐 이렇게 주장했다.

"내 동생은요, 욕심꾸러기 먹보예요.
자기 거 다 먹고
내 거 엄마 거 다 달라 그래요."

동생이 달라고 했을 때 엄마는 자신의 몫을 더 나눠주었겠지만 자신은 매몰차게

거절했을 텐데 그럼에도 엄마가 자신보다 동생에게 맛있는 것을 더 책겨주는 것이

몹시 질투가 나는 것이다.

 

이야기를 여기까지 듣다보면 자꾸 그럴듯한 억지를 부리는 누나가 우습다. 대신 동생은 한 마디 말도 못한다. 아예 말을 못하는 아기로 나왔는지 아니면 힘이 없어서 감히 누나의 이야기에 반론을 제기하지도 못하는 지 동생도 무어라고 한 마디 정도는 하겠지라는 나의 기다림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는 전환을 맞는다.

 

누나가 자신의 친구-순이를 만났을 때 동생을 거저주어도 안 받겠다는 것에 약이 잔뜩 올라 이제는 반대로 동생의 자랑을 하기 시작했을 때가 흥미롭다.

 

"그래도 잘 땐 이뻐"

이 한마디…….

 

눈을 뜨고 자신과 티격태격하며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 맛있는 간식을 나눠가져야 하는 경쟁자로서의 동생이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 아기로서는 한 없이 순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누나도 모를 리 없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대결구도가 누나대 순이로 굳어지면서 계속해서 동생의 자랑을 공격적으로 하던 누나는 자신의 말에 자신이 설득당하기 시작했다.

'순이에게는 이런 예쁜 동생이 없는데 나에겐 있다.'

'엄마놀이를 할 때도 동생과 함께하면 훨씬 재미가 있고 심부름도 잘 한다.'

' 밤에 혼자 있을 때도 동생이랑 같이 있으면 훨씬 덜 무섭다.'

 

갑자기 만약에 동생이 없어진다면 이란 상상을 하니 이 번엔 반대로 동생을 사겠다는 사람들로부터결사적으로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투철하며 비장한 누나로 변했다.

 

책 속에 나온 누나는 혼자서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그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동생을 미워했다가 반대로 사랑했다가 하는 '변덕스러움'을 보여준다. 반대로 동생은 힘이 없는 자로서 단 한 마디도 자신을 변호하는 말이나 누나의 말에 반박하는 말이 없다. 단지 그냥 누나가 하는 대로 나둘 뿐이다. 
 

나는 부디 이 책을 세상의 동생들은 모른 채 누나와 형들만 읽기를 간절히 바란다. 먼저 태어났다는 그 천부적으로 주어진 기득권 때문에 얼마나 동생들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만들었는지는  괴팍하다느니, 자기 말만 맞고 다른 사람의 말은 모두 틀리다고 생각하는 독재자라느 둥  내 뒤에서 자기들끼리 한탄하는 소리를 두 동생으로부터  많이 들어온 만큼 비례하기 때문이다.  똑부러지고 제 입장만 생각할 줄 아는 말 많은 누나를 주인공으로 삼은 줄 알았는데 그런 자신의 입장에서 동생을 바라  것을 전환하여 동생 그 자체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뜨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고 또 그 과정에서 스믈스믈 배어나오는 동생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훌륭하게 묘사되어 누나와 동생이 얼마나 서로에게 특별한 가를 일찍부터 알게 해 주는데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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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역사 - 대항해 시대에서 석유 전쟁까지
권홍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유난스런 꼬리한 냄새를 피운다며 구석자리로 밀려날망정 질겅질겅 씹다가 중간에 멈추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오징어 씹기처럼 8개의 다리와 2개의 촉완을 몽땅 그 자리에서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심정을 이 책 '부의 역사'를 읽으면서 오래간만에 느껴보았다. 거의 중독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만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흥미위주의 역사비틀기도 아닌 폼은 좀 날 것 같지만 드라이할 것 같은 예감이 팍팍 솟구쳐 오르는 이 책을 손에 잡고서 퇴근 후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오직 이 책 읽기로 밤을 보낼 만큼 중간에 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줄이야! 법정 스님이 새벽 2시 까지 읽었다는 모출판사의 책처럼 이 책 부의 역사가 사람 안 놓아 주는 책으로 유명해질 것만 같다. 한 번 붙들면 끝을 봐야만 포만감이 생기는 그런 책을 만다나니 정말 뜻밖의 횡재였다.


만화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허영만의 <부자사전1.2>에는 한국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실제 부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사례 별로 나와있어서 호기심 충만하게 쉽게 쓱쓱 읽어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권으로 넘어갈수록 내가 기대했던 정당한 수단으로 부를 얻는 것은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순진함의 발상이며 실상은 졸부들의 천하를 부의 세계라고 일컫는 다는 것을 한 참이 지난 후에야 씁쓸하게 깨달았다.  그 방법이란 것이 참으로 정권의 실세와 결탁하거나 탈세할 구멍도 찾아가며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라는 한국적 사고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한국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인간됨'을 벗어 던져야 가능하다는 뼈아픈 교훈을 받고 물러나고 말았기에 역시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고 생각해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탓이었다. 10월부터 계속 소비를 줄여나갔다. 지금은 소비가 스트레스해소는 커녕 치열한 머리싸움 그 자체로 변해버렸다. 꼭 필요한 생활용품 위주로 쇼핑품목이 짜이게 되니 자연히 자기계발이나 뮤지컬을 통해 나 자신이 충전되고 발전하는 그 즐거움을 이젠 '똑똑한 이기심' 으로 여기며 멀리하게 되었다. 그래도 책만큼은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골라도 예전처럼 자서전이나 인문학서 대신 실용서적, 그러니까 먹고 사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르게 되었다. 이 책 부의 역사처럼!


역사의 갈림길,1492년 첫 소제목을 대할 때만해도 1492라는 숫자의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며 시작되는 이 책을 이토록 재미나게 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이사벨과 페르난도 2세의 공동 왕국이 시작되며 동시에 에스파냐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몽땅 축출이 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 년 전 두 번씩이나 몰두하다시피 보았던 '킹덤 오브 헤븐'이 떠올랐다. 무대는 각각 에스파탸와 예루살렘으로 달랐지만 이슬람세력과 기독교세력이 함께 공존하던 것하며 왕국을 포기하는 대신 그 곳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순순히 수대에 걸쳐 통치하던 왕국을 등지고 떠나는 이야기 등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계속된 억압된 소비에서 벗어나고 파서 먹고사는데 도움이 될 요량으로 읽기 시작한 나는 왕국과 공주, 결혼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서서히 풍요와 낭만, 그리고 스릴이 있는 15세기 유럽으로 아주 천천히, 느리지만 평화로운 뱃길 여행을 떠나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부와 관련시켜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은 세계역사도 한 나라가 영원한 주도권을 쥐고 찬란한 역사를 이어갈 수 없듯이 세계의 부 역시 그 주도권은 계속해서 바뀌었다는 사실, 즉 부의 분명한 흐름이란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유태인이란 선택받은 민족의 이동과 함께!

처음에는 저자의 이 주장에 대해 선뜻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에스파냐에서 알람브라의 칙령으로 비통하게 그 땅을 떠난 유태인들이 네덜란드에 정착하면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확인하면서 비로소 이삭 아브라바넬이 남긴 비수같이 날카로운 말-

 

 

'"우리가 당신들에게 해를 끼쳤는가? 당신들을 돕고 거들었을 뿐이다……. 그렇다 왕과 여왕은 실수하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떠나도 영혼만큼은 결코 짓밟히지 않을 것이다. 부당한 박해를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떠난다. 그러나 이 날을 잊지 않을 것이다. 결코 ."

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부의 이동경로는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세계의 부와 유대인은 함께 움직였지만 저자가 주장하듯 유대인의 이동이 풍요를 가져온 것이냐에 대해서 큰 확신은 들지 않았다. 반대의견 즉, 유대인들이 풍요로운 지역을 따라 이동했다는 반론도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동하는 동안 유대인들은 그 옛날 칙령 하나로 삶의 터전에서 빈털터리 상태로 무능하게 쫓겨나올 때와는 그 위상이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그 막강한 부의 위력을 약자인 타민족에게 유감없이 과시하며 압제도 서슴지 않는 실질적인 세상의 강자로서, 지배자로서 서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느새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신대륙발견을 통한 금 사냥의 결과에 온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이유는 보물선이나 바다 밑에 수장 된 해적들의 유품의 양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유럽인들에겐 야만스럽게 보였다는 그 원주민들, 인디오들을 짓밟고 그 피와 눈물과 땀으로 개발된 금광에서 캐 낸 그 금으로 그들이 얼마만큼 대단한 왕국을 건설했는지 , 얼마나 찬란한 역사를 만들었는지가 속 시원하게 밝혀지길 고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에 대해서 저자는 간단명료하게 이렇게 밝혀 놓았다.



"금이 더 많이 들어올수록 왕국이 보유한 금은 더 적어진다. 우리 왕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다."

그리고 에스파냐의 국력과 관련해서 국왕에 대한 평가를 보고서도 쉽게 그 말로를 알 수 있었다.

"카를 5세는 전사였으며 왕이었다. 펠리페 2세는 왕이기는 했다. 펠리페3세와 펠리페4세는 왕도 아니었고 카를로스 2세는 인간도 아니었다."




역시 역사는 탁월하게 재미있다. 현재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효율성면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건들과 일련의 사실들, 사람들을 한 큐에 꿸 수 있는 그 놀라운 통찰력에 엄청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고한다는 것, 예측한다는 것, 그리고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간다는 것 이 모두가 역사를 알면 알수록 좀 더 정확하게 그리고 힘 있고 신속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매력이다.

 

 

이와 함께 내가 궁금했던 또 한 인물의 말로가 있었다. 바로 미국의 유명한 투기꾼이었던 대니얼 드루는 초상화에서 보듯 지독한 스쿠르지의 인색함과 동시에 한 번 물면 절대 먹잇감의 숨통을 놓지 않는 맹수의 날카롭고 잔인한 피냄새를 풍기는 사내였다. 그런데 15살 때 국가를 상대로 입영 장려금을 사기 쳐서 그 100달러를 종자돈 삼아 시작한 사업이 바로 가축사업이었다. 서부에서 소떼를 사들여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뉴욕에 도착하기 하루 전 강제로 소들에게 소금을 먹인 후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있다가 정육업자에게 넘기기 직전 허드슨 강가에 풀어놓았다. 긴 이동과 갈증으로 지칠대로 지친 소들이 물을 먹어서 불린 중량만큼 드루는 큰 돈을 벌었다.


바로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그렇게 원하는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드루의 비법을 따라할 수가 없다. 생명이 있는 소들, 곧 도살장으로 보내어져 최후를 맞이할 소들에게 그렇게 무지막지한 고통을 주며 마지막까지 위에 가득 찬 물의 무게 때문에 숨도 편히 쉬지 못할 소들을 생각하면 그 떼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을까!


남보다 지독스런 잔인함과 생명을 상하게 하는 추잡함이 탁월한 자신을 오히려 남보다 지능이 뛰어난 잘난 사람으로 착각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그의 말로가 평탄했다면 아마 나는 그 자리에서 책을 덮었을 것이다. 잘못 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바로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아무리 부자가 되고 싶어도 순하디 순한, 큰 눈에서 흐르는 소들의 눈물을 보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그런 일을 자행했던 그 망가진 인간성에 심한 분노와 함께 슬픔을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 계속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인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드루는 자신의 손으로 키운 후배세력에게 자신의 주특기인 바로 그 '물타기'수법으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재산을 잃은 뒤 쓸쓸히 퇴장하고 말았다.



제1차,2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이 세계강국으로 떠오르기 전 미국의 한 가난한 변호사가 석유추출을 위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이야기의 결과가 3번째로 궁금한 이야기였다. 조지비셀이란 이 변호사가 어떻게 법조문은 안 외우고 원유분석을 위해 예일대 벤저민 실리먼2세를 찾아갔는지도 무척 신기했지만 실제로 사상 최초의 수직 굴착식 석유시추에 성공한 에드윈 드레이크가 어떻게 근처 수백 개의 유정 가운데 자신의 유정에서만 단 30미터 파 들어간 상태에서 석유가 솟아났는지, 그 지점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 대단한 성공에 대해 읽으면서 전직 철도원에서 인생 역전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흥분이 되었다.

그렇다! 많은 돈은 분명히 긴장을 느끼게 하고 강력한 호기심과 함께 그 유정을 내가 팠으면 하고 엉뚱한 탐심마저 일으킨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한계였을까!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찰스 폰지와 같은 사기꾼들과 석유라는 빼앗길 수 없는 검은 황금을 놓고 서로 웃으며 악수하다가는 등 뒤로는 총을 겨누고 2번씩이나 세계전쟁을 일으키는 인간탐욕의 역사이다.

어째서 최근까지 금융과 석유가 미국의 독점아래서 움직이게 되었으며 이란을 공격한 것도 역시 종교적인 커튼 뒤에 가려 진 검은 황금-석유를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해졌다.

저자가 지적한 작금의 금융위기에 대한 처방 법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 미국에게 기대어 되도록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현 정권과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쇠고기개방요구에 반대의견을 표한 국민들에게 불순한 배후가 있다며 그 배후를 토설하라고 강압적인 공권력을 들이대는 정치인과 검.경찰을 생각하면 한 숨부터 나온다. 누구나 풍요롭게 살고 싶다. 그렇다고 힘이 약한 자들에게 그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이 궁핍이 바로 미국을 반대한 너희들의 책임이라고 전가한다며 말 못하는 소떼들에게 강제로 소금을 먹인 뒤 도살장으로 팔아넘기는 것으로 부자가 되었던 대니얼 드루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니 어떻게 사고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구의 탓인가를 따지기보다 객관적으로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부의 흐름 가운데 어느 지점인지를 정확히 파악한 후 그 해결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시작인 것 같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임기응변의 부정한 방법을 깨끗이 버리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저자는 당장 돈에 목말라하는 이 조급한 국민들에게 쉽게 가는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고 하필 케케묵은 15세기 알람브라칙령부터 끌어내어 유대인들이 대거 이동한 네덜란드에 잉여자본이 생기자 우습게도 튤립 알뿌리 투기가 번성하고 끝내는 국민경제에 치명타를 입혀 그 주도권이 이웃 영국으로 이동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무엇을 깨닫게 해 주려는 것일까! 아무리 위대한 왕국의 역사도 순식간에 완성될 수 없듯,몇 백 년을 두고 세워지듯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탄탄한 부의 왕국 역시 우리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거기에 덧 붙여 나는 봉착한 이 금융위기에 누굴 잡아 올가미를 씌울까, 혹은 거기에 동조해서 나만은 무사히 이 난국을 피해갈까 하는 비겁함과 무지함을 벗고 프랑스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마른 전투에서 보여 준 그 자발적인 단결과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고 참여하는 그 공생의 수준 높은 의식을 배우길 진심으로 바란다. 조셉 갈리아니 장군의 한 밤 중의 '택시징발'이라는 명령에 적극 협조했던 르노 택시는 이 먼 나라 한국에도 르노 자동차로 진출해 있을 만큼 참으로 강하고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서로 믿고 힘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리더의 도덕성이 참으로 간절한 때이다.

조급함을 버리고 얼마나 오래 계속 될지 모르는 이 경제위기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서 이다음에 내가 몸소 겪은 이 혼란과 물질적인 궁핍보다 더 심각한 지도력결핍, 신뢰결핍의 한국사회를 되돌아보는 책을 꼭 내고 싶다. 역사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 그것은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 아니 나의 생명이 후세대를 통해 영원히 계속된다는 기대와 희망이다. 그렇기에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느냐 식의 아전인수격인 역사를 지양하고 따가운 회초리처럼 아프지만 곧고 바른 역사를 남기고 배워야할 책임이 있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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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처 2008-12-25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말씀하신 역사책 꼭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멋질 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

queen 2008-12-26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글을 읽고 댓글까지 남겨주시다니 마음이 풍요로와지는 것 같아요.
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로처님도 꼭 힘을 발휘해 주실 분 같아
좋은 친구를 얻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