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 이외수의 소통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얼마나 궁극적이고도 영원한 불가사의한 난제에 대한 진실한 답변이란 말인가! 작가 역시 모른다고 했지 언제 안다고 했냐 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날개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작가를 언어유희의 대가로 소개한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이외수작가의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독자라면 그가 단순히 타고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서 별다른 읽을꺼리없이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가여운 한국인을 즐겁게 해 주는 차원을 넘어 인간과 사회현상에 대한 깊고도 날카로운 통찰을 예전에 누구도 감히 그렇게 입 밖으로 표현해 낼 재주도 용기도 없었던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던져 뱉으면 그 곳에 떨어진 말의 씨앗이 썩어 누구도 무시 못할 놀라운 싹을 틔우고 그 작은 싹은 어느새 자라서 길가는 어느 누구도 밟아 부러뜨리지 못할 거목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느낀 이외수 작가에 대한 생명력이다.



사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책 제목을 대했을 때 약간 야한 것을 기대하는 이상스런 심리를 내 안에서 발견한 나는 나 스스로가 여성임에도 여자라는 생물에 대해서 제일 먼저 기대하는 것이 이것이라는 것을 처음 뚜렷하게 인식하곤 무척 놀라웠고 한편 부끄러웠다.

그런데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주제는 예상했던 야함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1-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지구에 현주소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매 주일 듣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진리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도저히 행위로써 완성시킬 수 없는 불능의 명령이라 여긴 바로 그 주제를 이 대목에서는 당신이 정령 인간이라면 이란 가정을 토대로 당신과 똑같이 생긴 인간은 물론 천지만물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이 있다라는 명제로 완성시키는 기막힘을 느꼈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이해한 것은 네가 몰골만 그럴듯한 인간이 아닌 창조주의 손길로 빚어낸 진짜 사람이라면 말이다, 네 안에는 이미 모든 것을 용납하고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랑이 분명히 들어 있단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만물의 으뜸이라고 말하는 이유란다. 군사정권의 무력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그 통치자로서의 으뜸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으뜸의 의미란다.

 

그렇다!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언어로는 표현 못하던 그 유아기 시절에 이미 나는 오래 전부터 어머니께 들어오던 그 말씀,

사랑한다, 우리아가! 너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하지만 한 살 두살 먹어갈수록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는커녕 점점 미워지고 싫어지는 것의 가짓수만 늘어갈 뿐이어서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묵직한 죄책감이 내 중심을 향해 거대한 원추처럼 매달려 길 가던 원수를 보고 심장이 뛰기 시작함과 동시에 흔들거리기를 몇 십 년째이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죄책감의 추 옆에 자기기만내지 자기합리화의 거미줄이 쳐졌는지 근래에 들어서는 설교자의 뭐뭐해라, 이를테면 교회 안에서 만이라도 사랑해라 라는 내용의 훈시를 들으면 급하게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너도 끼어들기 하는 차를 만나면 그 때도 이렇게 의젓하게 설교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건만 요즘 목사들은 모조리 섬김을 받기 위해 납신 것 같단 말이야! 동갑쟁이 목사의 설교를 간신히 인내하며 듣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아지면서 도대체 감동은커녕 은혜가 없는 시간을 보내던 중 이 대목을 읽으며 교회에서도 못 받은 찔림과 아픔을 경험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만약 개뿔이라는 설탕을 위에 발라주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많은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누가 나를 비난하거나 힐책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너무나 잘 진단하고 볼 수 있는 기회였고 기준이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진리였기에 그런 것 같다.

 

크리스천인 내가 성경 외에 인간의 말을 진리라고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지만 이 21번 말씀은 진리가 맞다. 내가 사람인 이유, 하지만 내가 아직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그런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며 그 몫으로서 해야 하는 일 등을 한꺼번에 꿰 뚫는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113번- 그대는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기 위해 그토록 힘겨운 모습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에서 이 사람이 누구관대,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것을 아는가 라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세상에 이렇게 낮은 모습으로 온갖 굴욕과 부당한 대접을 받으며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내야 하는 가로 북받치는 설움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눈물이 안구에 갇혀 잠시 책을 덮고 위를 바라보았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나라에 비록 만날 수는 없으나 진정한 주의 말씀을 아는 도인 같은 정직한 지혜자를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