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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 ㅣ 퓨처클래식 2
바데이 라트너 지음, 황보석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7월
평점 :

존 레넌의 ' IMAGINE'을 들을 때면 가슴이 왠지 모르게 차분해지면서 울먹해짐을 느낀다.
노래가 주는 위안이랄까, 아니면 어떤 영상이 떠올라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한 영상을 지울 수가 없음을, 그것이 결코 시간이 흘러도 가슴속 한 편의 다른 방에 새겨진 조각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킬링필드-
영화를 본 지도 꽤 오래됐고, 캄보디아란 나라를 방문하면서 그 당시의 살육의 현장을 보존하고 있던 그 장소를 보면서 새삼 역사 속에서 치러진 그들 나라의 비극뿐만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 온 역사란 이름 아래 치러진 그 모습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음을 다시 느낀다.
자신의 체험만큼 가공할 얘기를 대체할 수는 없는, 무엇보다도 어린 소녀가 직접 겪은 그 고통의 체험을 담담히 써 내려간 글이라서 그런지 더욱 마음이 아픔이 전해오는 책을 접했다.
신분이 정말 고귀한 계급인 공주 출신의 어린 라마란 소녀가 겪은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투영한 저자는 자신의 온 가족의 몰살과 함께 엄마와 극적으로 탈출해 살아남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프랑스에 유학한, 왕자 출신의 아빠는 시인이자 왕자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당시 흐름의 세태에 대한 관심과 겸손을 지닌 사람으로 저자 자신의 화신으로 나오는 라미에게 희망과 사랑의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다.
축제를 맞아 음식 장만을 하러 길거리에 나갔던 하녀의 실종과 함께 시작되는 크메르 루즈란 공산당원들에 의해 치러진 한순간의 내몰림, 가구와 그 어떤 것도 가져오지 못한 채 삼촌 가족과 할머니 왕비, 고모까지 피신한 별장에서 다시 흩어져 시골 쪽으로 내몰리게 되고 그곳에서 아빠는 라미의 말 한마디에 끌려가 생사를 모른 채 이별하게 된다.
뒤이어 이어지는 또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 말라리아에 걸린 동생의 죽음 앞에서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숨죽인 생활 속에서 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삼촌과의 해후는 또 다른 이별을 맞이하게 되고 어린 소녀의 삶을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연상케하는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히틀러에 의한 홀로코스트 외에도 전쟁이 주는 참혹한 실상은 직접 겪은 당사자의 입을 통해서 듣는 것과는 별개의 고통과 아픔을 전달받게 된다.
실제 이 책은 저자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여기서는 7살로 나오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당시 저자가 전쟁을 겪은 시기는 5살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보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현상인지, 알고도 모른 척, 모르면서 넘어가는 일련의 시련들이 캄보디아란 나라가 지닌 설화와 동화, 그리고 전통 종교인 불교와의 결합으로 인해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게 해 준다.
원제 제목을 보니 '반야 나무 그늘 아래'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 동남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반야 나무 아래서 사람들은 휴식을 즐기는 생활을 하지만 공산 당권이 들어오자 이마저도 여의치 않는, 안경 쓴 사람, 운전할 줄 아는 사람, 배운 학자 출신들을 우선적으로 처형시키는 식의 일련의 행위를 통해 그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세상 구현을 위한 모습이 마치 책 속의 대사처럼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는 있을지에 대한 희망사항을 드러내는 구절로도 쓰인다.
""우리 중에 반얀 나무 그늘 아래서 쉴 꼭 그만큼만 남게 될 거야." 왕비 할머니가 다시 중얼거렸고
(....) "전쟁은 계속될 거고 안전한 곳이라고는 여기...반야 나무 그늘 아래뿐이니."-P39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모멸감은 바로 굶주림이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제방을 쌓기 위해 차출된 곳으로 끌려가 저녁 해질 무렵이 될 때까지 곡괭이와 두 어깨에 짊어지고 흙을 나르는 어른들, 그 틈에 끼여서 바구니에 손과 발을 이용해 흙을 퍼담고 다른 장소로 옮기는 중에도 배고픔은 시간 맞춰 돌아오고 심한 황달에 걸린 나머지 오로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어린 소녀의 몸부림은 그야말로 참혹스러운 광경 그 자체다.
그들에게 어떤 것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원동력이 될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들려준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아버지의 이름이 밝혀지고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따라나섰던 아버지, 끝까지 희망의 빛과 사랑의 힘을 보여줬던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바로 라미에겐 그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헤쳐나갈 수 있었던 동기를 부여해준다.
"내 가장 큰 소망은 라미, 네가 살아있는 것을 보는 거란다. 네가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가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칠 거야. 전에 네가 걷는 것을 보려고 모든 것을 다 포기했던 것처럼 그렇게."
"내가 지금 네게 이 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게 하나의 이야기여서고, 네가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야. 내가 이 땅 밑에 묻혀 누워 있을 때 너는 날개 될 거야. 나를 위해서, 라미, 네 아빠를 위해서 너는 높이 떠오르게 될 거야."-P 230~231
베트남인들과 닮았다는 것 하나로, 그것도 억지로 지정해버린,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인간 말종의 잔인한 행동이 끝 바지에 다다를 즈음에도 살아남았던 것은 아마도 아빠의 달이 저 멀리서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준 것이 아니었는지, 극적으로 탈출하기까지의 긴박했던 근 4년간의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기억의 고통을 한 조각 한 조각 끄집어내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완성해 낸 작가의 마음도 많이 아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열대 몬순기후에 따라 펼쳐지는 푸른 초원의 논농사 외에 코코넛 야자수 액을 빨아들이는 행위를 통해 척박한 삶일지라도, 끝까지 삶에 대한 포기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희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참혹 상이 더는 일어나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