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 지음 / 유선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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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 아닐지라도 나만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두 번쯤 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정말 한 문장 한 문장 주옥같아서 필사하고, 여기에 이렇게 적절한 문장을 빚어내는 작가들에게 대한 부러움과 시샘(?)들을 느껴보던 순간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도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시대, 글보다는 영상으로 접하는 시대의 흐름을 제외하더라도 글쓰기에 대한 각기 다른 모습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의 내용은 라인업이 화려하다. (전고운, 이석원, 이다혜, 이랑, 박정민, 김종관, 백세희, 한은형, 임대형 )


어떤 한 사람의 에세이가 아닌 총 9명의 글을 통해서, 그들의 글쓰기에 관한 생각들을 보인 이 내용은 책 제목처럼 각자가 일과 삶이란 병행된 흐름 속에서 쓰기가 어떻게 자신들에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들려준다.


취미로 글을 쓰는 것과 직업으로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쓰고 싶다 와 쓰고 싶지 않다는 경계선 사이에서 오는 갈등, 쓰고는 싶은데 몸이 이에 못 미칠 때의 안타까움, 마감일이 임박해서야 쓰게 되는 글이란 굴레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글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작가들의 마음들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어느 에세이스트의 최후'에서 작가로서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출간한 작품이 서점 랭킹 순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고 판매 저조로 이어지면 마음의 좌절을 느끼게 된다는, 자신의 책이 좀 더 독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리 위치를 고려한다는 점은 출판사 직원들의 마음과 일맥상통한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서점의 형태가 카페와 병합된 한 부분의 공간 활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과 과거의 서점 형태와 비교하는 글은 나 또한 서점이 가진 기능에 대해 비슷한 생각들이 있는 터라 반가움이 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다혜 님의 글은 많은 공감을 일으킨 부분들이 많았다.


직장인으로서, 타 매체에서 글 청탁을 받을 때, 나만의 글 쓰는 타입을 보인 부분들과 노력한 모습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그만의 생각들은 글쓰기 행위에 대한 많은 생각을 담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는 자신과 싸움이 있고 창작의 고통이 있으며 이런 고통과 마침표를 찍는 순간 느껴보는 희열의 짜릿함은 치열함의 쟁취를 느껴보는 순간임을 읽으면서 나 또한 그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잘 써지는 날도 있지만 머리를 짜내도 안 써지는 날이 있는 글쓰기 행위, "태생적으로 출력보다는 입력이 쉬운 사람이다. 먹지보다 백지가 무섭다. 백지를 나의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에 매우 서툴다. (-p125)"란 박정민 님의 글은 귀여운 고백처럼 다가온 문장이다.


아홉 명의 작가가 모여 만든 에세이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


그들이 생각하는 글쓰기에 관한 생각들을 하나하나 엿볼 수 있어서 좋았던 책, 쓰기 위한 첫 발자국을 넘어서 행동으로 나아가기까지의 여정이 독자로서는 여전히 부럽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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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자들 1 - 시간, 지구와 바다 발견자들 1
대니얼 J. 부어스틴 지음, 이경희 옮김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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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중 첫 번째에 해당되는 발견자들이다.

 

 

1편에서는 지금의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시간'에 관한 것을 다루는데 시간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라 현재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설명해준다.

 

 

옛날 사람들이 이용했던 달을 기준으로 하루, 일 년에 대한 개념들이 시대가 바뀌고 각기 다른 민족들이 저마다 어떻게 다르게 사용했는지부터 태양력을 사용하고 일 년이란 개념의 날짜 혼동을 거쳐 오늘날 달과 태양을 함께 이용하는 사례들을 통해 동양과 서양 간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부활절에 얽힌 내용들 중  몇 번째 일요일로 정하는 것부터 각 나라들마다 달랐던 이야기에 이어  오늘날 규칙을 정해 이루어지기까지의 혼돈과 정착에 대한 내용은 물론  시계에 관한  유럽과 중국의 차이점을 들려주는 이야기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2편인 지구와 바다란 주제를 통해 바다를 통한 해상패권을 통한 역사는 이미 알고는 있지만 아랍인들이 아시아 통로를 쥐고 있었던 육로가 칭기즈칸 몽골제국에 의해 개방이 되었고 이는 곧 몽골 패권이 계속 이어졌더라면 지금의 세계지도는 어떻게 변했을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특히 중국의 정화가 영락제의 명에 의해 고국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탐험 원정을 했더라면 서구의 패권보다 먼저 세계를 주도할 수도 있었겠단 생각을 다시 떠올려보게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에 의해 지리학의 발전이 걸림돌이 됐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고, 그리스도교의 우주론을 버린 유럽의 군주와 투자자들 덕분에 오늘날 위도와 경도가 발전하게 됐다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발견자들이 이룬 내용들을 흥미롭게 읽을 수가 있다.

 

 

끝으로 북아메리카의 발견으로 지금의 아메리카로 불리기까지 다룬 이야기로 끝을 맺는 내용들은 연대순으로 설명하고 있어 최초의 발견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알아가는 재미를 느껴보는 것과 동시에 지금도 여전히 해상 패권 장악에 대한 각국의 치열한 모습들을 떠올려보게 한 내용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책이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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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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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누구인지, 언젠가는 자신을 찾아올 것이란 희망을 품었던 아이바 준은 양부모의 입양으로 인해 한 가정의 구성원이 되지만 좀체 화합하지 못한 관계, 학창 시절마저 외롭고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젊은이다.

 

이렇듯 인생에 대한 무의미를 느끼던 그에게 어느 날 사신((死神)이란 자가 찾아와 그의 수명을 자신에게 넘겨주면 3년 후에 원하는바대로 죽게 된다는 조건과 함께 24시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우로보로스 시계를 주며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려준다.

 

 

이에 자신의 수명을 허락한 아이바, 어느 날 뉴스에서 자신이 그토록 죽고자 향했던 다리에서 어느 한 여중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끌린 그는 시계를 되돌려 그녀의 죽음을 막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사신의 등장이나 수명을 허락하는 설정,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원을 그리는듯한 형상을 그린 우로보로스 시계의 등장까지, 여기에 자신의 운명은 운명대로, 자살을 한 소녀 이치노세 쓰키미란 여중생의 죽음을 막으려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 흐름들이 타임루프 물로써 재미를 느껴보게 한다.

 

 

만약 이 작품의 내용처럼 나의 수명을 주고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시계를 받는 조건이라면, 응할 수 있을까? 물론 판타지 소설의 형식이라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이런 상상의 나래를 통해 나의 운명에 대한 책임감을 동반한 생각들이 연신 떠오르게 한 내용이다.

 

 

 수차례 자살을 시도한 이치노세의 불우한 가정환경과 따돌림의 학창 생활은 어린 소녀로서 겪은 그 시기의 성장통이 얼마나 힘겨웠쓸지, 자살을 방해하러 나타나는 아이바와의 만남을 통해 사신이 그토록 경고를 했지만 둘의 사이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의 아픔을 들어주고 나누었다는 점에서 고통과 아픔의 상처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감싸 안으며 발전해나가는 과정이 싱그럽게 그려진다.

 

 

언제 죽을지 알고 있는 아이바에게 다시 새로운 의미의 인생의 환희를 느껴보게 해 준 이치노세와의 만남은 아이바뿐만이 아니라 이치노세에게도 아이바란 존재는 구원이 되어준 고마움의 대상이란 점에서 이들의 사랑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 후반부에 갈수록 조바심을 느끼게 한다.

 

 

삶과 죽음의 그 경계선을 드러내 주는 우로보로스 시계의 설정 타임, 읽으면서 나름대로 생각했던 부분들 가운데 왜  다른 생각의 전환을 하지 못하지? 하며  읽었는데, 역시 반전의 묘미 또한 이들의 순수하고 예쁜 사랑을 통해 한 편의 타임을 소재로 한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에게 가치가 생길 거라고 여겼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으려 하지 않던 나 같은 인간도 손쉽게 가치를 높이는 방법. 그것이 자기희생이라고 믿었다.


 

 

아이바의 생각을 바꾸어 놓은 그들의 사랑법, 서로가 다른 방식으로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이지만 진정한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랑법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로맨스물의 요소를 충분히 느껴가며 읽게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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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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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드라이버인 아버지, 범죄에 연루돼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떠났고 그 자신도 소년원에서 5년을 수감되어 있다 나온 일명 버그로 불리는 보러가드-

 

미국의 남부 버지니아주의 소도시 레드힐카운티에서 과거의 일에서 손을 씻은 뒤 정비소를 운영하고 살아가지만  현실은 그가 꿈꾸던 작은 행복마저 무너뜨리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경쟁 정비소가 생기면서 타격을 받게 되고 철없던 시절  전부인 사이에서의 낳은 딸의 대학 등록금 마련,  현재 가정을 꾸리고 있는 아들 두 명에 대한 장래, 요양원에 계신 엄마 병원비, 대출까지...

 

숨 막힐 틈도 없는 꽉 막힌 상태에서 불법자동차 경주를 통해 돈을 벌어보려 하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던 차, 과거에 자신을 물 먹인 동료 로니가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보석가게를 함께 털어보자는 것,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버그의 드라이버 실력이 꼭 필요함은 물론 서로에게 필요한 일이란 말로 설득하는 로니 앞에서 버그는 결국 이 일에 가담한다.

 

철저한 현지 탐사와 경로 파악, 예상시간까지를 모두 계획한 그들, 그런데 뜻하지 않는 돌발 총기 사건이 벌어지고 이 사건은 버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간다.

 

강도 범죄에서 무고한 희생을 낳고 보석가게 뒤 배후에 밝혀진 조직의 위협이 서서히 다가오면서 그의 가정까지 위협에 시달리는데,  과연 버그는 이 모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모처럼 화끈한 스피드를 겸비한 범죄영화를 보는듯한 작품이다.

 

과거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성실한 가장으로서 살아가고자 한 버그란 인물이 지닌 드라이버로서의 자질은 이 작품에서 자동차와 사람이 어떻게 한 몸이 되면서 질주를 할 수 있는지, 자동차의 개조와 액셀과 브레이크를 연신 밟으며 도로와 비포장 도로, 공사장을 하늘을 날듯이 폭주하듯 달리는 장면은 긴장감의 연속으로 '분노의 질주', '스피드'를 연상시킨다.

 

범죄 스릴상 이런 장치들을 통해 독자들은 버그가 처한 상황들을 이해하고 동정하게 되는, 특히 미국에서 흑인들이 살아가는 현실적인 모습들은 잘못이 없어도 되도록이면 경찰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과 아들에게 건네는 충고들은 현실적이다.

 

 

 

 

 

-“잘 들어, 아들.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건 사람들의 낮은 기대감을 등에 업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땅으로 고꾸라지는 건 순간이야. 달리기 경주라고 생각해봐. 다른 사람들은 너보다 먼저 경주를 시작했는데 너는 낮은 기대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끌고 달려야 하는 거야. 하지만 선택지가 생기면 그런 낮은 기대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그걸 등에서 떨쳐버릴 수 있어. 무언가를 놓아버릴 수 있는 것, 그게 자유라는 거야. 그리고 자유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건 없어. 내 말 알아들었니, 아들?” 보러가드가 말했다

 

 

그 자신이 너무도 싫어했던 범죄의 길을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버그란 인물을 통해 작품은 통쾌한 한방으로 깔끔한 스릴의 마무리를 짓지 않는다.

 

누아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잔혹한 처벌과 배신에 대한 복수, 한 가정의 불화와 불안이 어떻게 이들을 힘들게 하는지, 두 개의 삶을 살아가는 버그가 내뱉는 고백은 그래서 더욱 안쓰럽게도 느껴진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는 과정들은 자동차 추격전이라는 설정을 통해 재미와 스릴, 속도감을 제대로 충분히 느껴볼 수 있는 내용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작품으로  여전히 코끝에 먼지와 바람, 타이어의 불타듯 내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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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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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있어서 전쟁이란 키워드는 사라질 날이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한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전쟁의 양상을 생각해 보면 전쟁이란 부조리는 여전히 진행 중임을 느끼게 한다.

 

살아가면서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결과물이 인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들이 많지만 이 책에서 다룬 내용들은 선의의 가치관이 다른 파급의 효과를 낳는다면 우리는 어떤 편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에 대한 도덕적 선의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저자가 다룬  1945년 미군의 '도쿄 대공습'을 토대로 다룬 내용은 그 역사 속에서  발생한 배경을 통해 두 지휘관을 내세워 그들이 지향했던 생각들을 함께 한다.

 

헤이우드 핸셀 장군과 커티스 르메이는 서로 다른 전쟁관을 가진 군인들이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전쟁의 피해 양상에 따른 결과를 통해  최소화할 수 있는 전쟁의 양상을 생각했던 '일명 폭격기 마피아'의 일원이었던 핸셀과 그의 동료들은 항공기에 관심을 두었고 네덜란드 출신 노든이 만든 폭격 조준기를 통해 최대한 피해를 줄여보고자 한 사람이다.

 

그런 반면 르메이는 이들과의 생각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거리를 둔 사람으로 이들이 겪는 2차 대전의 양상은 반대로 드러난다.

 

일본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당시 핸셀은 폭격 조준기를 이용해 공장, 발전소 등 기반 시설을 위주로 파괴하는 전술을 세웠지만 제트기류,  구름 등으로 인해 항공기와 부하들을 잃은 큰 피해를 당하고  상부의 명령마저 자신의 뜻과 맞지 않자 차일피일 미루다 경질당한다.

 

그의 뒤를 이은 르메이는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전쟁을 끝내려면 초 저공비행, 야간공습, 네이팜을 통한 폭격이 필요하단 판단하에  공격을 통해 10만 명의 사망자를 낸다.

 

 

 

 

 

전쟁을 통한 생명의 가치는 그 소중함이 무색하게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행동으로 희생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는다.

 

다만  희생을 줄이는 전략을 내세우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사에 있어서 차선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한계를 드러내지만 말이다.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의 항복을 받았지만 그 일이 있기까지 위 두 장군의 전쟁 수행 방법을 통해  우리는 옳다고 여긴 선택이 정말 끝까지 옳은 선택이었나?에 대한 물음 앞에선 많은 생각들을 던진다.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 일테면  노든의 경우도 전쟁을 위해서 폭격 조준기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편으로 연구한 것이 대상 초점만 정확히 공격할 수 있다면 무고한 희생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 핸셀의 경우도 이와 같은 생각을 지닌 폭격기 마피아였지만 결과는 르메이가 행한 결과를 통해 전쟁은 많은 희생을 치르고 끝났다.

 

이런 사실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 기술 진보와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욕망과 파괴적인 일을  멈출 수 있다는 개선 방안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반대의 영향으로 이용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게 한다.

 

그렇다면 르메이가 행한 전술들은 옳지 못한가?

 

적어도 그는 지휘관이란 자리에서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나름대로 고심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자신의 행동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과 스스로의 원칙을 조화시키기 위해 옳다고 스스로 설득할 수 있는 언어와 개념을 찾아(p187)” 냈다는 사실로 증명하지 않았을까?

 

 

 

 

 

전쟁이란 기간 단축을 두고 선의의 잣대로 행한 일들이 무고한 희생과 대량살상 무기를 통해 수반한 결과물이라면 이것이 과연 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한 도덕적 물음을 던진 내용들은 선택의 방법과 그 선택에 대한 판단 기준, 더 나아가 선과 악의 결과물의 아이러니를 생각해 보게 한다.

 

 

 

-커티스 르메이는 전투에서 이겼다.  헤이우드 핸셀은 전쟁에서 이겼다. - p 234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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