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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평점 :

청각을 통해 듣는 것과는 달리 시각으로 그 소리를 음미한다는 것에 반대의 의견을 품을 수 없는 작가의 신작이다.
전작인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 사각거리는 연필의 스케치 그림을 연속 떠올려보면서 눈은 읽되 손은 나도 모르게 연필을 찾아 헤매며 건축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과 비례한 그 이후의 작품들 또한 저자의 섬세한 필치가 각인되었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 또 한 번 느껴본다.

도쿄의 바쁜 회사생활을 접고 연고가 없는 홋카이도의 한적한 마을인 에다루에 정착한 무요 게이코-
비정규직으로 우편배달을 하면서 동거하던 남자 및 주변을 정리하고 내려온 그녀에게 주변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우편을 전하는 일은 단조롭고도 실용적인 면이 있다.
인차나이 마을에서 떨어진 강가에 목조 오두막에 기거하고 있는 데라토미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홀로 살아가는 모습을 짐작케 하는 그의 주변을 지켜보던 어느 날 소포를 전하면서 그의 초대를 받게 되고 그곳에서 하세가와라는 부부와 만나고 데라토미노가 들려주는 '음'을 듣는다.
세상에서 온갖 소리를 들으며 하루에도 무심히 지나쳐가는 소음과 소리들, 그런데 그가 들려주는 '음'은 말 그대로 '음'이다.
함께 모여있을 때 진정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에서 뚝 떨어진 독립적인 소리의 세계, 그 간단하고도 현실성 내지는 비현실적인 '음'에 빠져들면서 그가 이후 다시 초대한 것을 응하면서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깊은 관계를 맺어나간다.
전공관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에 대한 표현이 이토록 정갈하면서도 껄끄럽고 불협화음 같으면서도 왠지 더 듣고 싶어지는 오묘한 세계, 읽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점차 진행되면서 성인들의 연애가 젊은 청춘들의 연애와는 좀 다르게 와닿았다는 현실성 있는 표현들에 빠져든다.
연애 감각이 없진 않았던 30대의 사랑이란 그 사랑의 주체에 해당하는 두 사람의 감정의 깊이와 생각도 그렇지만 사계절 자연의 변화해 가는 모습들이 문장문장마다 깃들어 있있어 역시 저자의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은 마을에서 보이지 않는 주요 시선의 대상자로서 그녀의 행동에 대한 소문들이 어떻게 흐르는지, 그러면서도 데라토미노의 일관성 있는 감정의 표현과 행동들이 호기심과 열정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그를 알고 싶고 함께 하고 싶다는 감정이 들기까지 게이코가 느끼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폭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보여주는 흐름들을 통해 잔잔하면서도 열정적이고 때론 그 표현들이 어른의 연애를 그렸다는 점에서 저자가 이런 작품도 쓸 줄 알았구나를 생각해 본다.
프랜시스란 수력기계를 관리하면서 게이코를 만나고 사건이 발생하는 과정에 자연의 혹독한 표현들을 제대로 드러낸 폭풍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한 매개가 아니었을까?
- 격류에 실려온 커다란 바위나 큰 나무줄기처럼, 거기에 멈춰 서서 형태를 남기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좀처럼 흘러오지 않는다. 그렇게 친숙하고 친했던, 못 알아볼 리도, 잊을 리도 없는 몸짓과 목소리와 냄새는 망망한 시간 앞에서 여지없이 패배한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이윽고 잊히고 사라진다.-p.23
인생의 흐름이 강물의 흐름처럼 잔잔한 가운데 자연의 거센 도전을 받고 그 도전 속에 굳건히 버티는 삶, 그런 삶 가운데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다면 프랜시스도 이해하고 스스로 멈추길 허락했을 것도 같다.

어른의 연애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던 저자의 말처럼 자연의 조화 속에 인생과 사랑, 연애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으로 실존하는 마을이라면 방문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전작들이 모두 양장본으로 출간된 것을 생각하면 이번 작품 또한 양장본으로 출간해도 정말 좋았겠단 생각이다.
가격 대비 2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의 내용을 생각해도 그렇고 소장하고 있는 책들과 함께 같은 형식을 취했더라면 더욱 좋았겠단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