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쾌락의 역사 - 역사상 가장 강렬했던 쾌락의 기록
레이 로렌스 지음, 최기철 옮김 / 미래의창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기원후 1세기의 로마를 생각한다면 단연코 쾌락으로 물든 시대였다. 

쾌락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  감성의 만족,,, 

그렇다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그 시대의 로마에선 쾌락을 어떻게 즐겼으며 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바로 이를 다룬 책이다.  

기원전보다 기원후 1세기의 로마에서의 쾌락의 주인공의 중심은 무소불위의 황제였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표현을 보자면 유약하고 병약하게 생겼지만 정말로 의외의 욕정을 가진 남자로서 친구, 친척의 부인,노예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이런일에만 쾌락을 쏟았던 것은 아니다. 

 농신제란 나라의 축제일을 맞아서 온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으며 빈부의 차이를 구분하지않고 즐길 수있는 축제를 주도했다. 이후 그의 뒤를 이은 황제들도 여전히 그의행보를 답습하고 있고 여기에 덧붙여서 건축이나 기념물세우기, 화재로 인한 복구같은 선정적인 정치도 곁들여했다. 이런 쾌락은 네로황제에 이르러서 소수자들이 즐기고 있던 내실에서의 은밀한 즐거움까지 백성들에게 전이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면 쾌락엔 이런 정도에 그쳤겠는가가 작가의 토대로 이뤄진 다음의 내용이다.  

로마인들은 우선 도시가 가질수 있는 기능에 충실함을 보인다. 즉, 도시의 아름다움을 주도했고 이는 폼페이우스의 최초의 석조극장 건설에 이어서 카이사르대에 이르러선 광장안에 그림을 전시함으로써 백성들이 찾아와서 즐길 수있는 볼거리의 쾌락을 주도했다.  

 그후 아그리파의 대규모 건축공사 , 네로 때의 대화재로 인한 빈민가의 재건축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베시파시우스 황제의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모토아래 콜 로세움과 평화의 신정 설립은 또 다른 이정표를 낳았으며 이는 로마의 도시계획이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게끔 새로운 길을 열게된다.  

이런 황제의 주도아래 로마의 시는 점차 황제가 지닌 권력에 맞춰 화려한 각종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고 이는 곧 황제의 정원, 시민들에게 개방된 정원이란 이분법적으로 갈린다.  

그랬기에 귀족들은 황제에게 맞서지 않되 자신의 금권력으로 쉴 수있게 만든 지방의 빌라가 유행하게 된다. 이들 부자들은 빌라를 지음에 있어서 문화활동 외에 규칙적인 운동을 할 수있는 체력단련실을 마련함으로써 휴양의 목적과 함께 규칙적인 생활을 위시했음을 중요시 여겼다.  

다음으로 누릴 수 있는 쾌락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목욕의 문화와 에로티시즘을 얘기 할 수있다.  

목욕은 다름 사람과 어울릴 수있는 쾌락을 선사했으며 목욕탕의 종류도 냉탕, 열탕, 온탕으로 나뉠만큼 세분화되었다.  

계급의 차이도 없을만큼 누구나 같이 옷을 벗고 할 수있는 유일한 문화였지만 이마저도 자신의 계급 위치에 따라서 본의 아니게 물의 온도차가 생기기 마련인 목욕탕에서 구분이 지어지게된다.  (한가한 귀족들은 한창 뜨거울 온도와 적정한 온도의 물을 즐길 수 있었으나 힘든 노동직이나 노예들은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물의 온도도 내려간 이후에 사용할 수 있었다.) 

과거의 어두운 면이 강조된 목욕탕과 함께 유리의 발달로 인한 환한 빛이 들어오는 신식 목욕탕이 공존해 있었고 목욕탕 안에서의 체력단련 소리, 마사지사의 소리,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소리까지듣게되었다.  

 이 목욕문화가 발달한 것에는 목욕이 주는 자체의 쾌감, 남들을 보면서 느끼는 쾌감, 성적인 섹스를 좋아할 것이란 상대를 보고 느끼는 이상한 쾌감이 공존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목욕탕에서도 남을 의식하는 행동을 하지않을 수없는 현상이 발생하게되고 남,녀 혼탕도 존재했다.  

 미드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로마인들의 에로티시즘을 엿 볼 볼거리를 가지게된다.  

로마인들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 동성간의 성이란 개념이 없었으며, 춤추는 사내아이란 뜻의 키나에두스를 혐오했다.  

로마인들이 생각하는 성이란 것은 성 행위의 주도성을 중요시했기에 자신의몸을 상대방에게 허락함으로서 희열을 느끼는 수동적 행동의 이런 부류들을 이용하면서도 동급의 인간으로 생각을 안했다.  

가장 큰 충격은 우리가 알고있는 로마의 대표적 인물인 카이사르조차도 어릴 적 친척들로부터 항문 삽입의 성을 당했단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어린남아가 성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에 아무런 장애가 안됬으며 이로 인해서 결혼에 이르러서는 정착하는 과정이 된다는 당시의 사람들이 가진 성개념이란 사실이었다.  

또한 폼페이의 프레스코화에 나타난 남녀간의 성 묘사는  여러 난잡한 혼교를 보여주는 그림이 있지만 실제론 로마인들의 성 생활은 은밀한 내실에서 이루어졋고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지는 장면들은  현대들이 상상한 결과임을 작가는 말해준다.  

이들이 느끼는 쾌락은 만찬문화와 산해진미, 와인으로 이어지며 음악과 춤으로 이어지는 연장선을 보인다.  

즉, 생선젖을 이용한 감칠맛을 내는 음식조리법, 오늘날의 와인의 등급효시가 되는 과정, 귀족들에게까지 퍼진 가무의 연장은 거리의 온갖 소음으로 이어지는 폐단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뭣보다 가장 크게 즐겼던 것은 폭력과 잔혹성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남에게 고통을 가하고 괴롭게 만들고 굴욕감을 주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존재- P317  

이 구절처럼 로마인들은 대형 원형경기장에서 예루살렘 정복후 포로가된 유대인들을 죄수로 삼아 온갖 잔혹함을 즐겼다. 더불어서 검투사라 불린 사람들의 존재도 인기가 급상승되는 시대를 연다.  

 이 밖에도 수집 열풍이 불어서 광적으로 모음으로써 또 다른 쾌락을 맛보게 되고  이에는 아주 다른 특이한 인간수집도 모으는 사례를 남긴다.  

곱추나 난쟁이 같은 사람들은 노예로서도 아주 비싼 값을 치르는 수집대상이 되었으며 모든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존재로 살아갔다.  

 이처럼 기원 후 1세기인100년 동안 이루어진 로마의 모든 종류의 쾌락을 되짚어 본 작가의 내용은 그간 알고 있었던 다분히 상투적인 쾌락의 본질을 넘어선 전혀 다른 종류의 쾌락을 선사함으로써 독자를 끌어당긴다.  

 위의 쾌락은 결국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안에서 풍요롭게 경제를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작가는 말한다. 즉 건설로 인한 대규모 인원동원이나 자금의 흐름은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의 원리와 비교해보건대 가능함을 제시해 준다.  

비록 폼페이의 사창가를 기준으로 당시의 평범한 사람들의 성생활을 단정짓기에 무리가 있으나 로마인들이 생각했던 성에 대한 생각이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있는 계기가됬고 뭣보다 이런 쾌락의 진출이 브리튼 섬에서까지 받아들이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우리가 당시의 유적지와 유물을 볼 수있는 기회를 제공했단 점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금.은.동의 채굴과정은 지금의 지구 온난화와 대기오염을 유발시켰단 증거가 새삼 놀랍기만 했다.  

당시의 기준으로 알 수도 없었거니와 그럴 의도로 행하진 않았을 행동들이 지금의 지구가 앓고있는 병에 원조란 생각을 해 볼땐 미래의 또 다른 우리의 모습도 생각을 한 할수가없게 한다.  

 비록 당시의 쾌락이 기원후4세기 접어들면서 스토아 학파와 그리스도 정신을 받아들인 사람들에 의해 폄하되고 재평가를 받는 과정과 서서히 몰락해가는 로마의 시대상 어쩔 수없이 후퇴의 길을 걷게됬지만 현재도 여전히 당시의 사람들이 즐겼던 잔혹성이 지금도 답습되고 있다는 작가의 주장엔 씁씁함을 지울수가 없었다.  

 언제나 읽어도 궁금한 로마시대의 각종 책들은 지루함을 모르게 만드는 , 캐어도 캐어도 계속 솟아나는 물줄기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 책도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책으로,특히 간간이 책 속에 프레스코화 벽화와 다시금 방문지를 생각케하는 장소는 읽는 재미를 더욱 쏠쏠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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