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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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이 텅 비었을 때 우연히 읽게 된 책.


최근 집안에 큰일을 치러서인지, 계절상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무더위가 지나가고 그냥 바쁘게 지나갔던 가을의 끝 무렵쯤인 요즘.
원인모를 공허함에 마음속이 뻥 뚫린 것 같은데, 우울함과는 다른 기분을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나도 모르고, 주변인에게도 표현하기 난감한 상태를 만나서 왜 이럴까 고민할 무렵.
우연히 운명처럼 읽게 된 책,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처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울지 말고 견디어야 하는 것이 외로움인 것일지라도, 백영옥 작가님의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의 제목을 읽고 있으면 하루쯤은 실컷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란 안도감이 든다.


프롤로그에서 두 번은 없다는 저 문장들에 쿵 하고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기 힘든 상황에서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마음속에 스며드는 문장들 가운데서 "두 번은 없다"라는 저 문장이 왜 그렇게 크게 와닿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건 속상하고, 서운했던 마음속 공허함은 책을 읽으면서 점차 나아질 수 있었다.
읽으면서 공감 가는 문장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 차단되기 싫은 마음이라니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아리아나 허핑턴이 사용한다는 "폰 베드" 중 "SNS 중독에서 벗어나는 열 가지 방법"


딱히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모르는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백영옥 작가님이 수집해놓은 문장들을 하나하나 읽고 있노라면 조금씩 따뜻해지고 기운이 나는 느낌이다.
아주 예전에 부산에서 회 정식을 먹었을 때, 마지막으로 맑은 생선 국을 먹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평범한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 기본을 지킨 맛 같은 문장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꾸준히 읽고 쓴다는 것.


꾸준히 읽고 쓴다면, 이런 멋진 문장들을 알아보고 저장하고, 창작할 수 있는 것일까.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꾸준히 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에 작가님의 인내와 고뇌도 느껴졌다.


좋은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 그것이 가장 기본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 갔던 문장이라면 역시,

최선을 다해 대충 살겠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에 어울리는 말이라며, 과정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는 '아니면 말고~'하는 유연함이 있어야, 이 불확실한 시대에 허우적대지 않고 헤엄치듯 살 수 있을 거라는 작가님의 말처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내기보다는 힘을 빼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어떤 것이든 기합을 잔뜩 넣고 절대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마음가짐보다는 일단 해보자는 식으로 가볍게 시작해보는 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많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변수는 늘 변화무쌍하기 마련이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된다.
한동안 나는 생기지도 않을 문제를 걱정하고, 돌발 상황을 전전긍긍 고민하느라 아무것도 못했던 시간들이 많았었다.


취향 저격의 일러스트까지, 백영옥 작가님의 글과 잘 어울리는 댄싱 스네일의 일러스트.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었고, 공허해진 마음속을 차곡차곡 채워나갈 수 있었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천천히 읽고 싶어진다.
아르테의 서평단 책 수집가의 첫 번째 책인데, 이름에 딱 걸맞은 취향 저격의 책이어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이 책은 백영옥 작가님이 수집한 문장들을 에세이집으로 엮어놓은 작품이다.
좋은 문장을 쓰고 접하려면, 좋아하는 작가가 읽는 책과 문장을 접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평소 백영옥 작가님의 책이나 문장이 좋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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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그림 하나 - 오늘을 그리며 내일을 생각해
529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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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차 한 잔과 책 읽기는 좋은 힐링 시간이다.


그림일기를 생각하면, 초등학교 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숙제로 썼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무성의하게 쓰기도 했고, 방학기간에는 밀려서 한꺼번에 작성하느라고 기억을 더듬거나 때로는 그냥 반복적으로 썼었었다. 
철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에는 점차 본심을 적지 않게 되고, 따로 쓰는 일기장이 생기기도 했다. 그때 썼던 감성이 궁금해서 일기장 내용이 궁금하곤 한데, 이사 다니면서 다 버려서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냥 쓰는 일기 자체도 이제는 SNS로 바뀐 요즘.
어찌 보면 아날로그 정서를 자극하기도 하고 예전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하루 그림 하나>.

하루를 기억하게 위해 쓰기 시작한 일기를 책으로 엮어서 출판하게 된 작가


늘 업무일지는 꼬박꼬박 썼으면서도 내가 뭘 했는지에 대해서 SNS 기록이 아닌 일기장에 손으로 적어본 기억이 없다. 요즘 SNS는 1년 전 내가 뭘 했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날의 감성 상태를 적절하게 적어놓기에 내밀한 공간이 아니기에 제대로 된 기록이라고 하기에 힘들다.
마치 어린 시절 숙제로 제출하던 일기처럼 남들 보라고 적는 공간에 내 깊은 속 마음까지 털어놓는다는 건 쉽지 않다. 그렇기에 작가의 서문을 보면서 많이 공감 갔다.

메시지는 간결하게, 글보다 그림이 전달하는 힘은 크다. 
그렇기에 굳이 메시지를 보지 않아도 그림만으로도 작가의 생각이 확 와닿는다.
1년 365일을 1월 1일부터 12월 마지막 날까지 단순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따뜻해지는 색감과 그림으로 적어내려간 마음속 순간들.
작가의 취향과 내밀한 생각들을 알아가는 게 살짝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읽으면서 공감 가는 구절도, 장면도 많았던 책이었다.

영화를 좋아하기에 개인적으로 영화 관련 글과 그림이 가장 맘에 들었다.

짧은 명언과 함께 그림을 곁들이기도 하는데, 그때그때의 상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게 맘에 들었다.


작가의 직업이 일러스트레이트인 만큼 문화, 예술 쪽 분야에 관심이 많고, 거기에서 받는 영감이 많은 것도 느껴진다. 같은 걸 봐도 감성이 풍부한 분들은 이런 걸 볼 수 있다고 감탄했다.
굳이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어도 이 책을 보면서 나도 그리고 싶다고 생각되는 건 작가의 단순하지만 사랑스러운 그림체에 이끌려서이다.
물론 그 단순한 그림체 스타일을 찾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셨을 것이라는 걸 아는 이유는, 한때 그림을 그렸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직업적인 것은 아니지만 유년기의 대부분을 놀기보다 그림 그리는데 쏟아부었다.) 몇 번을 그려도 만족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려서 속상하기도, 원하는 색감을 표현할 수 없을 때 절망적이었지만. 그림 그리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혼자여서 좋았었다.

책 속에서 가장 공감 갔던 장면과 구절들. 

특히 강아지와 고양이가 살쪄도 귀여워서 좋겠다는 말은 너무 공감 갔다.

작가의 내적 고민이 돋보이는 문장들.


책을 읽다 보면, 프리랜서로 일하는 작가의 상황을 엿볼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힘들어 보이는 부분이 보인다. 
작업하다가 막혀서 힘들어하거나, 또 금세 반려동물이나 주변의 작은 것들로부터 위안을 얻고 에너지를 얻는 걸 보면서 소확행 이란 무엇인가 잠시 생각하게 한다.

워라벨을 꿈꾸고 싶어도 프리랜서의 경우에 균형 맞추기가 더 힘든 거 같다.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난 부분.


읽다 보면, 따뜻한 작가의 그림이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다.
마치 옥상달빛의 노래처럼 "수고했어 오늘도"의 가사가 떠오르는 그림일기 책이다.
괜찮아요. 잘하고 있어요. 
오늘 아침을 시작하면서 나를 위한 한마디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어제는 속상하고 답답했어도 오늘은, 내일은 다를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함께 그림일기 그리고 싶어지는 책이다.
도구는 많이 구비해놨으면서, 쓰지 않고 있기에 이 기회에 시작해볼까 한다.
나만을 위한 그림일기, 이 책을 읽으면서 시작해보시길.
오늘을 그리며, 내일을 생각하는 하루 그림 하나. 마음이 허한 날 읽어보시길 바란다.

집에 그림 그리고 싶어서 샀던 수채색연필, 물통이 딸려서 그러데이션 효과 내기 좋은 붓 펜 등. 도구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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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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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는 42장이 끝이다. 43장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기독교이고, 세례는 받았지만 교회를 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사를 하면서 옮긴 동네 교회에서의 노골적인 정치공방, 원치 않는 맞선의 분위기 등등이 원인이었다. 
교회는 엄마 손에 이끌려서 함께 갔던 곳이고, 나의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회를 주말마다 갈 때 마음이 평온해졌던 건 사실이고, 기도를 하고 나면 속 시끄러운 고민들도 사라지곤 했다. 성가를 부르면 감기 때문에 잠겼던 목도 괜찮아지곤 해서 이게 바로 기적인 걸까 생각했던 어린 시절. 한때 언론에서 좋지 않은 질타를 받았던 몇몇 교회들은 유년 시절 맹목적으로 빠졌었던 믿음의 증거이기도 했다. 

늘 열심히 필기하며 듣는 엄마와 달리 머리가 점점 커지면서, 도무지 목사님 설교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결론이 항상 비슷했고, 상황이 이해가 안 가서였다. 
어릴 때야 시키는 대로 따라 했지만 성인이 되면서 인격이라는 게 생기니 삐딱선만 타게 된다. 
고난 주간이라고 금식하는 기간도 있고, 성경을 읽다 보면 의문만 생겼다.
도대체 왜?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그냥 하나님의 뜻이란다.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상황은 쌓여만 갔다.

어릴 때는 그림 성경으로 성경책을 접했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독파한 적이 없어서 욥기에 대한 내용을 떠올리는데 상당히 힘들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접하고 나서야, 아하.
그런데, 욥기는 42장까지만 있다. 43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강한 궁금증이 생겼던 제목이었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욥기를 읽다 보면 몸 안에 사리가 생길 것 같다. 왜 그런지는 한번 읽어보시라.



욥기의 내용은 단순하다. 늘 겸손하고 믿음이 충만한 욥이 있었다. 
어느 날 하나님 앞에 나타난 사탄의 도발에 하나님은 욥을 시험에 들게 한다.
그의 재산과 자손, 심지어는 그 자신의 몸조차 성하지 않게 병들게 만든다. 하지만 목숨을 빼앗지는 않는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나,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멋대로 해석을 하여 주제넘게 충고, 혹은 참견을 한다. 뭔가 죄를 저질러서일 테니, 용서를 구하라 같은 말들이 오고 간다.
욥은 하나님께 항의를 한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하나님에게 자신의 무지와 약함을 인정한다.
욥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처음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평화롭게 죽었다.

아주 예전에 읽었던 욥기의 내용을 떠올리다 보면 몸에서 사리가 생길 것 같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은 사내가 몸에 병까지 얻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오해만 살 뿐인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 나는 결백하다고 항의할 뿐이라니.
이 어찌 답답하지 아니할 수 있는가. 
오래전 읽은 답이 안 나오는 욥의 상황은 어제 본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등장인물들의 상황들과 왠지 비슷하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기구한 상황이고, 조국의 운명처럼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은 사람들이다. 
그 시절을 살아가던 조상들은 굴욕의 상황 속에서 종교를 믿었다면 한 번쯤은 자문했을 것 같다.
이것이 주의 뜻입니까? 



성경을 모티브로 구성한 방화사건 소설이라는 신박한 설정을 한 이기호 작가. 

마지 욥처럼 모든 것을 잃은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들.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는 참 특이한 소설이다. 
제목도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차례를 읽고 있노라면 도무지 어떻게 돌아갈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읽다 보면, 방화 사건에 얽힌 인물들을 차례로 심문하거나 조사하는 느낌인데, 등장인물들의 말투와 상황을 읽다 보면 그 사람과 대면하는 기분이다. 
동네 고등학생, 소방수, 식당 주인, 교회 관계자, 목사의 부인, 목사의 아버지인 장로 등등이 등장하는데, 각 인물들의 흘러가는 대화를 읽다 보면, 전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사건을 보면 각자의 시선과 자신이 본 것들, 아는 사실들을 말하는데, 모두 다른 입장이다.



등장인물에 따라 확연히 다른 말투와 사투리가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사건을 각각 다르게 보는 시선과 관점들. 

이야기는 화재에서 장로의 과거, 장로의 아들 목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상황으로 흘러간다.



처음에 화재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 지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점차 장로의 과거, 그리고 화재로 죽은 장로의 아들 목사인 요한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사건 조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추리소설 읽듯이 누가 방화한 것인지 추측하게 된다.
주어지는 자료로 추리하면서 추측하던 상황들은 과거 시절 장로의 간증과 함께 등장하는 하나님의 소환으로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목사 최요한의 부인의 이야기는 사건의 중심을 향해 가는 듯했다.


장로의 과거 간증으로 드러난 속마음. 

누군가의 아버지란 존재는 이렇게나 어려운 존재인 것인가.



장로 최근직, 마지 욥처럼 모든 걸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절망 속에서 화장 입어 짓무른 피부를 나뭇가지로 찌르면서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잔혹하신 하나님 아버지 보소서.
이제 다 되었나이까.
굽어서 나를 보소서. 침침한 골짜기와 흙덩이에 무릎 꿇은 나를 보소서.
당신께서 완력으로 핍박하신 내가 이제 여기에서 끝을 보고자 하나이다.
이것이 주의 뜻입니까.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그 뜻이 닿기 전에 내가 먼저 의지를 보이리다.
내 의지로 당신을 찾아가 그 이유를 물으리다.


과연 장로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일까.
주변 인물들이 방화사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시각, 이야기들은 결국 마지막엔 합쳐진다.
그리고 맨 처음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이 모든 게 과연 하나님의 뜻인 것일까. 
결국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장난이라면 차라리 낫겠으나, 실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는 변명이 아닐까.
대물림되듯 놀랍도록 닮은 상황의 연속 부자간의 갈등도, 아버지라는 존재의 어려움과 무거움.
하나님에게 내 목소리가 안 닿은 게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의 소리를 못 드는 건 아닌지.
불통을 마지막으로 소환한 하나님이 이야기한다.

이래도 안 들리냐?

이래도......?

이래도......?

너 혹시...... 너도 혹시 누군가의 아버지이더냐?


종교적인 소설이라 무겁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의외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생생한 등장인물들의 표현과 묘사, 역설적인 상황의 황당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이 소환되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다니, 이 얼마나 인간적인 상황인가.
두 번 정독하면서, 기억 안 나는 욥기를 다시 읽으면서 오래간만에 집중해서 읽은 소설이다.
소설적 발상에 목마른 분들 한 번 읽어보시라. 
무거운 주제라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감탄하실 수 있을 것이다.


진지 전능한 신을 인간적으로 그려놨던 영화 작품인 브루스 올마이티, 이웃집에 신이 산다. 너무 불평불만을 퍼붓지 말자, 

어느 순간 신이 그럼 너 한번 신 해봐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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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 마음속 때를 벗기는 마음 클리닝 에세이
가오리.유카리 지음, 박선형 옮김, 하라다 스스무 감수 / 북폴리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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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일러스트를 보면서 내 마음 같다고 생각한 책은 처음이다.



살면서 가장 힘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에겐 인간관계였다. 
가뜩이나 좁은 인간관계지만, 나름 유지한다고 많은 에너지를 썼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며, 곁에 두고 싶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무리를 한 경우도 많았다. 
내 안의 에너지가 충만할 때는 상대방에게 살짝 섭섭함이 느껴져도 그냥 잠시 속상해하다가 쉽게 날릴 수 있었는데, 내 상태가 좋지 않으니 그게 쉽지 않았다. 상태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보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한동안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지만, 상태는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쉬었다가 만나도 같은 상황은 계속되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우울함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날들이 지속될 때 몇몇 책과 영상의 도움을 받았는데, 잠깐 동안만 효과가 있을 뿐 좋지 않은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보게 된 영상 중 정용실 아나운서의 "왜 저 사람은 나한테만 딴지를 걸지?"(대화할 때 감정이 중요한 이유)였는데, 이 영상에서 중요한 점은 먼저 내 감정을 먼저 잘 들여다본 뒤에 타인과의 갈등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상대방에게 화가 났을 때, 정말 그 감정이 화가 난 것인지, 다른 감정이 있는 것인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실은 진짜 문제는 상대가 아닌 내 감정이나, 내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책 제목을 보고, 문장을 읽은 순간부터 마음이 살짝 가벼워졌다.
누구나 다 한 번쯤 생각하는 문장이기도 하고, 그러기를 바라기도 하니까.



어떤 일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한없이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



책 서문에 나와있는 문장처럼,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속상해도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 책 자체가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의 인지 감정 행동요법 중 ABC 이론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책이다. 



앨버트 엘리스의 ABC 이론을 쉽게 풀어놓은 책.



처음에 책을 읽을 땐,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앞섰다는 게 사실이다.
말처럼 그게 과연 간단할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책 자체에 의문이 들었었다. 
우울증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방치하기도 한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털어놓기 힘든 문제들을 SNS나 잘 모르는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올리면서 마음을 다독이기도 한다. 
그냥 방치하기 보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문제 해결에 좀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은 생각보다 빨리 읽혔고, 한 번 읽었을 때보다 반복해서 읽을수록 더 마음에 와닿았다.



누구 때문에 침울한 게 아니라 실은 그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마음에 정말 와닿는 문장들.



책은 4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마다 핵심적인 포인트를 잡아서 다시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처음에 읽을 땐 잘 모르다가, 의외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알 수 있다. 
정말 화나는 일이 있을 때, 차분하게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리고, 내 마음 깊은 속 생각이 어떤지 살펴보고 공책에 옮겨 적어보기를 바란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습관처럼 굳어진 생각의 선택과 기준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우울하다고 한심한 건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우울한 건 아니니까.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바꿀 수 있다는 힘을 주는 책이었다.
첫 번째 읽었을 땐, 말로는 참 쉽지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해간다.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의 문장이 마지막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가능하면 훌륭하게 사고 싶다,
가능하면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
가능하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



인간관계에 너무나 지치고 힘들 때,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 아무 생각 없이 맘 편히 살고 싶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맘 편히 살고 싶다.



마음속 안경의 묵은 때를 닦듯이 내 마음도 깨끗하게 닦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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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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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안부 소설 그 두 번째 작품 "흐르는 편지", 

작가의 전작 "한 명"이 살아돌아온 할머니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15살 소녀가 위안부로 하루하루 생존하는 이야기다.


 얼마 전 본 맘마미아 2에서 딸이 어머니를 가장 가깝게 느끼는 순간이 새 생명을 잉태했을 때라는데, 영화의 모든 스토리 중 가장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다른 스토리가 아무리 막장이어도 그 스토리만큼은 감동적이었는데, 오늘 소개할 책은 새 생명을 잉태했지만 너무나 불안하고 슬픈 15세 소녀의 이야기이다. 아기를 가졌지만, 그 아기는 소녀를 강제로 범한 수많은 일본군 중 하나. 소녀는 강가에서 싯쿠(콘돔)와 몸을 씻으면서, 엄마에게 전해지지 않을 편지를 강가에 쓰면서 흘려보낸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본 위안부 관련 영화와 책들이 등장하고 있다.
알고 있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루는 책과 영화가 많아진다는 건 너무나 좋은 현상이다. 실제로도 아래에 소개하는 영화들을 극장에서 어린 학생들이 많이 보고 있어서 엄청나게 뿌듯했다.
위안부 할머니가 실은 나와 가까운 이웃의 문제일 수도 있고, 더 이상 침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대중적으로 이야기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학창시절쯤 TV로 나왔었던 관부 재판의 실화를 다룬 "허스토리".
그리고 어쩌면 흐르는 편지와 가장 비슷한 입장에 있는 영화 "귀향" 시리즈.
실은 귀향의 경우에는 보고 난 뒤의 후폭풍이 두려워서 극장에서 차마 보지 못했다.
영화가 실제 상황과 비교했을 때 매우 순화된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너무나 많은 걸 함축하는 장면들이 모든 걸 설명해주는 영화였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영화들. 대중성을 살려 만든 작품, 실화 사건을 토대로 한 작품, 

소녀들의 상황을 그린 작품 다양하다.


귀향을 보면서 그대로 전달되었던 소녀들의 불안한 마음이 텍스트로 옮겨온 느낌이다.
돈 벌면서 공부가 하고 싶어서, 혹은 어려운 집안 형편상 팔리듯이, 노래를 할 수 있다길래, 길 가다가 그냥 잡혀온 소녀들의 나이는 적게는 13살에서 많게는 20살 남짓 되었다.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 아닌, 이미 죽은 소녀의 이름으로 불리거나, 이미 죽은 소녀의 방과 옷을 입고 죽지 못해 사는 소녀 금자가 바라보는 위안소에서의 일상은 정말인지 처참하다.
한참 꽃피울 나이에 그녀들은 어쩌다 이런 곳에서 보내게 되었을까.


아기가 생겼지만, 아기가 죽어버렸으면 하는 소녀의 불안. 

엄마가 그립지만, 오카상과 오지상에게 감시당하는 15세 금자


아기를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긴 아기의 존재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처참히 범하는 짐승 같은 일본군 중 한 사람의 아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주변에 이미 아기를 낳은 상황들을 보면서, 혹여라도 장애가 있는 아기를 낳거나, 사산하면 어떡하나 불안해한다. 아기가 그냥 죽었으면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나날이 커가는 아기의 생명을 느끼기도 한다.
임신한 상태를 들키면 아기집 드러낼까 봐, 조심스럽게 숨기기도 하는 소녀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소설이다.


아기가 죽기를 바라면서도 또 무사하길 바라는 소녀의 불안한 심정을 절절히 그려냈다.


아기를 가졌지만, 여전히 짐승 같은 일본군은 금자를 범한다.


 고향집에 되돌아가고 싶어도 버릴 대로 버린 몸이라 되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엄마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지만, 영원히 전달되지 않을 편지를 강가에서 쓰면서 흘려보내며 하루를 견딘다.
소녀들의 상황이 너무나 처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시적으로 쓰인 금자의 편지와 속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작가 김숨의 일본군 위안부 소설 전작인 "한 명"은 살아남은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다. 이번 소설은 15세 소녀의 시점으로 위안부 생활을 그렸다.


 작가의 전작은 위안소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한 명"이라는 소설이라는데, 아직 읽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이 아마도 할머니나 함께했던 분들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할머니나 고모님들 시대에 흔했다던 조혼 풍습(19세에 시집가셨다고 한다. 나이 많은 상대나, 재혼, 나이 어린 상대에게)이 나오기도 한다. 할머니의 이름이 항상 남자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엄마에게 들어보니 당시 창시 개명을 해야 해서 ~자 돌림의 이름이 너무 싫어서 그렇게 지으셨다고 한다.
아마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기억하시리라. 그때, 그 시절을.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하며,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꽃다운 소녀들에게 벌어졌던 만행과 슬픈 기억을.
소녀가 느꼈을 한없는 불안을.


동네 공원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늘 갈 때마다 소녀들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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