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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마음속이 텅 비었을 때 우연히 읽게 된 책.
최근 집안에 큰일을 치러서인지, 계절상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무더위가 지나가고 그냥 바쁘게 지나갔던 가을의 끝 무렵쯤인 요즘.
원인모를 공허함에 마음속이 뻥 뚫린 것 같은데, 우울함과는 다른 기분을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나도 모르고, 주변인에게도 표현하기 난감한 상태를 만나서 왜 이럴까 고민할 무렵.
우연히 운명처럼 읽게 된 책,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처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울지 말고 견디어야 하는 것이 외로움인 것일지라도, 백영옥 작가님의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의 제목을 읽고 있으면 하루쯤은 실컷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란 안도감이 든다.

프롤로그에서 두 번은 없다는 저 문장들에 쿵 하고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기 힘든 상황에서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마음속에 스며드는 문장들 가운데서 "두 번은 없다"라는 저 문장이 왜 그렇게 크게 와닿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건 속상하고, 서운했던 마음속 공허함은 책을 읽으면서 점차 나아질 수 있었다.
읽으면서 공감 가는 문장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 차단되기 싫은 마음이라니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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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모르는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백영옥 작가님이 수집해놓은 문장들을 하나하나 읽고 있노라면 조금씩 따뜻해지고 기운이 나는 느낌이다.
아주 예전에 부산에서 회 정식을 먹었을 때, 마지막으로 맑은 생선 국을 먹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평범한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 기본을 지킨 맛 같은 문장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꾸준히 읽고 쓴다는 것.
꾸준히 읽고 쓴다면, 이런 멋진 문장들을 알아보고 저장하고, 창작할 수 있는 것일까.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꾸준히 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에 작가님의 인내와 고뇌도 느껴졌다.

좋은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 그것이 가장 기본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 갔던 문장이라면 역시,
최선을 다해 대충 살겠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에 어울리는 말이라며, 과정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는 '아니면 말고~'하는 유연함이 있어야, 이 불확실한 시대에 허우적대지 않고 헤엄치듯 살 수 있을 거라는 작가님의 말처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내기보다는 힘을 빼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어떤 것이든 기합을 잔뜩 넣고 절대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마음가짐보다는 일단 해보자는 식으로 가볍게 시작해보는 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많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변수는 늘 변화무쌍하기 마련이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된다.
한동안 나는 생기지도 않을 문제를 걱정하고, 돌발 상황을 전전긍긍 고민하느라 아무것도 못했던 시간들이 많았었다.

취향 저격의 일러스트까지, 백영옥 작가님의 글과 잘 어울리는 댄싱 스네일의 일러스트.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었고, 공허해진 마음속을 차곡차곡 채워나갈 수 있었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천천히 읽고 싶어진다.
아르테의 서평단 책 수집가의 첫 번째 책인데, 이름에 딱 걸맞은 취향 저격의 책이어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이 책은 백영옥 작가님이 수집한 문장들을 에세이집으로 엮어놓은 작품이다.
좋은 문장을 쓰고 접하려면, 좋아하는 작가가 읽는 책과 문장을 접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평소 백영옥 작가님의 책이나 문장이 좋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