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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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는 42장이 끝이다. 43장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기독교이고, 세례는 받았지만 교회를 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사를 하면서 옮긴 동네 교회에서의 노골적인 정치공방, 원치 않는 맞선의 분위기 등등이 원인이었다. 
교회는 엄마 손에 이끌려서 함께 갔던 곳이고, 나의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회를 주말마다 갈 때 마음이 평온해졌던 건 사실이고, 기도를 하고 나면 속 시끄러운 고민들도 사라지곤 했다. 성가를 부르면 감기 때문에 잠겼던 목도 괜찮아지곤 해서 이게 바로 기적인 걸까 생각했던 어린 시절. 한때 언론에서 좋지 않은 질타를 받았던 몇몇 교회들은 유년 시절 맹목적으로 빠졌었던 믿음의 증거이기도 했다. 

늘 열심히 필기하며 듣는 엄마와 달리 머리가 점점 커지면서, 도무지 목사님 설교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결론이 항상 비슷했고, 상황이 이해가 안 가서였다. 
어릴 때야 시키는 대로 따라 했지만 성인이 되면서 인격이라는 게 생기니 삐딱선만 타게 된다. 
고난 주간이라고 금식하는 기간도 있고, 성경을 읽다 보면 의문만 생겼다.
도대체 왜?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그냥 하나님의 뜻이란다.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상황은 쌓여만 갔다.

어릴 때는 그림 성경으로 성경책을 접했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독파한 적이 없어서 욥기에 대한 내용을 떠올리는데 상당히 힘들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접하고 나서야, 아하.
그런데, 욥기는 42장까지만 있다. 43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강한 궁금증이 생겼던 제목이었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욥기를 읽다 보면 몸 안에 사리가 생길 것 같다. 왜 그런지는 한번 읽어보시라.



욥기의 내용은 단순하다. 늘 겸손하고 믿음이 충만한 욥이 있었다. 
어느 날 하나님 앞에 나타난 사탄의 도발에 하나님은 욥을 시험에 들게 한다.
그의 재산과 자손, 심지어는 그 자신의 몸조차 성하지 않게 병들게 만든다. 하지만 목숨을 빼앗지는 않는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나,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멋대로 해석을 하여 주제넘게 충고, 혹은 참견을 한다. 뭔가 죄를 저질러서일 테니, 용서를 구하라 같은 말들이 오고 간다.
욥은 하나님께 항의를 한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하나님에게 자신의 무지와 약함을 인정한다.
욥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처음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평화롭게 죽었다.

아주 예전에 읽었던 욥기의 내용을 떠올리다 보면 몸에서 사리가 생길 것 같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은 사내가 몸에 병까지 얻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오해만 살 뿐인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 나는 결백하다고 항의할 뿐이라니.
이 어찌 답답하지 아니할 수 있는가. 
오래전 읽은 답이 안 나오는 욥의 상황은 어제 본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등장인물들의 상황들과 왠지 비슷하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기구한 상황이고, 조국의 운명처럼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은 사람들이다. 
그 시절을 살아가던 조상들은 굴욕의 상황 속에서 종교를 믿었다면 한 번쯤은 자문했을 것 같다.
이것이 주의 뜻입니까? 



성경을 모티브로 구성한 방화사건 소설이라는 신박한 설정을 한 이기호 작가. 

마지 욥처럼 모든 것을 잃은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들.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는 참 특이한 소설이다. 
제목도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차례를 읽고 있노라면 도무지 어떻게 돌아갈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읽다 보면, 방화 사건에 얽힌 인물들을 차례로 심문하거나 조사하는 느낌인데, 등장인물들의 말투와 상황을 읽다 보면 그 사람과 대면하는 기분이다. 
동네 고등학생, 소방수, 식당 주인, 교회 관계자, 목사의 부인, 목사의 아버지인 장로 등등이 등장하는데, 각 인물들의 흘러가는 대화를 읽다 보면, 전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사건을 보면 각자의 시선과 자신이 본 것들, 아는 사실들을 말하는데, 모두 다른 입장이다.



등장인물에 따라 확연히 다른 말투와 사투리가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사건을 각각 다르게 보는 시선과 관점들. 

이야기는 화재에서 장로의 과거, 장로의 아들 목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상황으로 흘러간다.



처음에 화재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 지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점차 장로의 과거, 그리고 화재로 죽은 장로의 아들 목사인 요한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사건 조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추리소설 읽듯이 누가 방화한 것인지 추측하게 된다.
주어지는 자료로 추리하면서 추측하던 상황들은 과거 시절 장로의 간증과 함께 등장하는 하나님의 소환으로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목사 최요한의 부인의 이야기는 사건의 중심을 향해 가는 듯했다.


장로의 과거 간증으로 드러난 속마음. 

누군가의 아버지란 존재는 이렇게나 어려운 존재인 것인가.



장로 최근직, 마지 욥처럼 모든 걸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절망 속에서 화장 입어 짓무른 피부를 나뭇가지로 찌르면서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잔혹하신 하나님 아버지 보소서.
이제 다 되었나이까.
굽어서 나를 보소서. 침침한 골짜기와 흙덩이에 무릎 꿇은 나를 보소서.
당신께서 완력으로 핍박하신 내가 이제 여기에서 끝을 보고자 하나이다.
이것이 주의 뜻입니까.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그 뜻이 닿기 전에 내가 먼저 의지를 보이리다.
내 의지로 당신을 찾아가 그 이유를 물으리다.


과연 장로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일까.
주변 인물들이 방화사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시각, 이야기들은 결국 마지막엔 합쳐진다.
그리고 맨 처음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이 모든 게 과연 하나님의 뜻인 것일까. 
결국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장난이라면 차라리 낫겠으나, 실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는 변명이 아닐까.
대물림되듯 놀랍도록 닮은 상황의 연속 부자간의 갈등도, 아버지라는 존재의 어려움과 무거움.
하나님에게 내 목소리가 안 닿은 게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의 소리를 못 드는 건 아닌지.
불통을 마지막으로 소환한 하나님이 이야기한다.

이래도 안 들리냐?

이래도......?

이래도......?

너 혹시...... 너도 혹시 누군가의 아버지이더냐?


종교적인 소설이라 무겁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의외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생생한 등장인물들의 표현과 묘사, 역설적인 상황의 황당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이 소환되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다니, 이 얼마나 인간적인 상황인가.
두 번 정독하면서, 기억 안 나는 욥기를 다시 읽으면서 오래간만에 집중해서 읽은 소설이다.
소설적 발상에 목마른 분들 한 번 읽어보시라. 
무거운 주제라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감탄하실 수 있을 것이다.


진지 전능한 신을 인간적으로 그려놨던 영화 작품인 브루스 올마이티, 이웃집에 신이 산다. 너무 불평불만을 퍼붓지 말자, 

어느 순간 신이 그럼 너 한번 신 해봐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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