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1 -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편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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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시민 선생을 좋아한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간명하게 꿰뚫는 놀라운 통찰, 적확하고 빈틈없는 논리로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그만의 논법. 젋었을 적의 시퍼렇게 날선 결기는 세월이 지나 유순해졌지만, 노년의 지식인이 갖출 수 있는 여유가 더해지면서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경지의 대중 지식인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작가‘라기 보다 ‘선생‘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어지러운 시대의 참된 선생.

그런데 이 <유럽 도시 기행 1>은 썩 마음에 드는 책은 아니었다. 유시민 선생에게 여행기라는 장르가 그닥 잘 맞지 않는 옷 같다는 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이었다. 여행기라 하면 무릇 여행지에 대한 정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여행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깨달음 같은 것들이 어우러지게 마련이다. 여행기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비중이 달라지겠지만. <유럽 도시 기행 1>에도 이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런데 그게 조화롭게 잘 섞여 있지 않은 게 문제다.

이 책에선 네 도시를 다룬다.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네 도시의 유명 관광지들을 소개하고 그 역사적 배경을 선생 특유의 ‘지식 소매상‘ 다운 필법으로 흥미롭게 펼쳐 보이는 대목들은 참으로 읽기에 즐거웠다. 이를테면 아테네 편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로마 편에서 공화정의 포로 로마노와 제정의 콜로세움이라는 장소가 갖는 정치적 상징성의 대비를 설파하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반짝거리는 건 거기까지였다. 선생이 도시를 여행한 동선이나 멋진 식당 등을 알려주고 명소에서 느낀 소회를 묘사하는 대목들은 지극히 평범했다. 유시민 다운 눈부신 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차라리 이런 부차적인 내용은 과감히 생략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연수 라면, 아니 여행기에 능하지 않은 김영하가 썼더라도 이것보다는 훨씬 나은 책이 되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유럽 도시 기행 1>을 읽고 나서도 이 책에 소개된 도시들에 가 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 않았다는 건, 이 책이 여행기로서의 매력이 크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여행기는 한여름밤의 꿈처럼 부푼 환상을 독자에게 심어주어야 하는데 유시민 선생은 그러기엔 너무 현실적이다. 그래서 소설가들의 여행기가 재미있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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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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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만큼 두루두루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잘 쓰는 작가는 흔치 않다. 특유의 해학적인 문체를 종횡무진 발휘해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풍자하고 통렬히 비판하는 그의 글에선 언뜻언뜻 루쉰의 모습이 비친다. 우리는 그의 소설 주인공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아Q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위화의 에세이도 마찬가지인데, 문혁 시절을 그리는 에세이를 읽고 있노라면 절로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하지만 이 책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은 여태까지 읽어 본 위화의 책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문학과 음악의 클래식에 대한 비평 모음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심오한 경지를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알고 있던 그 위트넘치는 위화가 맞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니까.

제목에 선율이 들어가기는 하나 번역 과정에서 대구를 맞추기 위한 것일 뿐, 이 책의 주된 재료는 ‘서술’이다. 위화는 소설가들의 작품 서술 기법과 그에 따른 차이를 비교 분석하고, 작곡가들이 음률로써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서술하는지를 말한다. 소설 파트에서는 포크너와 보르헤스, 체호프와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스탕달, 마르케스 등을 다루고, 음악 파트에서는 차이콥스키, 브람스, 쇼스타코비치, 멘델스존, 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을 비평한다. 이 중 백미는 2차대전 레닌그라드 전투 중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교향곡 7번>의 1악장과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의 서술을 비교하는 글이다. 두 작품 모두 ‘단일한 정서의 주제가 끊임없이 변주‘되면서 연약했던 서술이 크레셴도로 점점 강대하게 키워진다고 위화는 분석한다. ‘가장 천진하고 단순한 동시에 가장 강력한‘ 이런 서술 방식으로 인해 ‘최후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땐 인생의 무게와 운명의 광활함까지 드러낸다‘. 끊어질 듯 팽팽한 현처럼 긴장된 서술은 독자와 청자를 클라이맥스에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그렇게 격앙된 클라이맥스에서 돌연 이어지는 온화하고 차분한 감정의 해방은 격렬했던 서술에서 벗어나 독자 그리고 청자를 구원한다. 이 정도면 어떤 게 소설이고 어떤 게 음악인지 구분할 수 없는 비평의 경지가 아닐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칸딘스키의 그림,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소설에서 공감각적 색채 분석까지 끌어내는 글에 이르면 이 위화라는 사람에 대한 경탄을 넘어 두려움까지 든다.

해학의 장막으로 둘러싸여 있던 그의 진정한 대가로서의 풍모를 이 책이 아니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위화가 쌓은 만큼의 고전 소설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소양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위화가 말하는 바의 10분의 1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바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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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맨 -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고인류학자들의 끝없는 모험
커밋 패티슨 지음, 윤신영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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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최초의 인류 화석을 찾는 이들의 치열하면서 때로는 비열하고, 한없이 장렬하면서도 무척이나 격렬한 이야기.

팀 화이트라는 남자가 있다. 화석에 미친 남자이자 어마어마한 워커홀릭, 학계 전체를 상대로 싸움을 거는 걸 주저하지 않는 싸움꾼, 발굴 현장이 아닌 연구실에만 있는 학자들을 혐오하는 악담의 대가. 하지만 화석 발굴과 탐구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전문가.

근래 가장 유명한 고인류화석은 단연 ‘루시‘이다. 루시는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돈 조핸슨에 의해 발굴된, 당시로서는 가장 오래된 직립보행 인류 화석의 애칭이다. 이 조그만 몸집의 화석은 인류가 아프리카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진화의 뿌리의 증거로 널리 알려졌다. 아직까지도 그 명성은 녹슬지 않아 대중적인 고인류학 서적엔 대부분 루시가 메인 타이틀을 차지한다.

하지만 팀 화이트는 루시보다 오래된 화석이 있을거라 확신했다. 그는 발굴단을 꾸려 쿠데타와 독재로 인해 극도로 불안한 정치환경에 놓인 에티오피아의 미들 아와시 지역을 샅샅히 훑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싸운다. 에티오피아 고고유물국 관료, 대학 행정 당국, 학술지 에디터, 그리고 저명한 동료 과학자까지. 이렇게 싸워대는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연구비를 만들어 발굴단을 조직하여 루시보다 오래된, 인류와 유인원의 분기에 더욱 가까운 화석을 찾는 것이었다.

1992년, 팀 화이트의 발굴팀은 미들 아와시에서 마침내 뭔가 새로운 걸 찾아낸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이를 학계에 발표하지 않고 오랜 기간 화석을 복원하면서 이 화석에 숨겨진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견한 화석에 ‘아르디‘라는 이름을 붙인 채.

아르디 화석은 여러 모로 이상했다. 유인원처럼 다른 발가락과 마주 볼 수 있는 옆으로 퍼진 엄지발가락을 지녔지만(마치 인간의 엄지손가락처럼), 유인원과 달리 꼿꼿이 서서 직립보행을 할 수 있었다.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현생 유인원들은 직립 보행보다는 너클 보행(주먹을 쥐고 네 발로 땅을 디디며 걷는 보행)을 하기 때문에, 현생 유인원으로부터 우리 인류의 기원을 찾으려는 당시 학계의 풍조로는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옆으로 벌어진 엄지발가락을 가진 고인류가 직립 보행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원래 고인류는 직립보행을 했었고, 고인류와 갈라진 유인원은 나무를 타기 좋도록 쥐는 데 적합한 형태로 발을 진화시켰다. 아르디는 나무와 땅을 오가던 생활을 했으나, 루시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나무를 오르지 않고 땅에서만 살게 되었기에 엄지발가락이 지금의 인류와 같은 형태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침팬지의 엄지발가락은 아르디보다 몇 배나 더 길어서 나뭇가지를 발로 쥐기에 충분하다.

이 결론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고인류는 사족보행을 하던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와 직립보행을 하도록 진화했다는 기존의 이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르디에 대한 연구 결과는 발굴 후 15년이 지난 2007년에 공개되었지만, 팀 화이트와 그의 팀이 그동안 쌓아온 학계의 수많은 적들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차츰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힘든 증거가 발견되면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이 책은 말한다. 물론 아직도 가장 유명한 화석은 루시이지만.

이 책은 멋들어진 고인류학 대중서적이자 모험활극이며, 훌륭한 추리소설이면서 음험한 정치 다큐이다. 수많은 고인류학자들이 등장하여 암투를 벌이고, 아르디가 던지는 수천만년에 걸친 수수께끼의 베일을 흥미진진하게 벗겨낸다. 고인류학을 아예 접해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이상희 교수가 쓴 <인류의 기원> 같은 입문서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마침 <인류의 기원>의 공저자 윤신영이 이 책을 번역했기에 더욱 그렇다. 윤신영의 번역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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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30만부 기념 특별 리커버)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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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방일지‘일까.

주인공의 아버지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자수하여 긴 수감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전남 구례로 돌아간다. 그리고 같이 빨치산 활동을 한 아내와 딸 - 우리의 주인공 - 하나를 데리고 늙을 때까지 조용히, 그리고 서툴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치매끼가 돌기 시작할 무렵의 아버지는 어느 날 길을 가다 전봇대를 미처 못 보았는지 머리를 박고 죽어 버린다. 일세를 호령했던 빨치산 치고는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혁명에 실패하고, 남은 생도 성공하지 못한 아버지의 삶이 어떻게 해방과 연결될까.

머리가 커지면서부터 아버지의 좌파 사상을 비웃었던 딸.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과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에서 한 글자 씩을 따 ‘아리‘라는 어여쁜 이름을 가진 딸. 그러나 혁명가 아버지를 닮아 ‘소도 때려잡을 듯 강건한 육체를 지닌‘ 딸. 부모의 과거로 인해 장래도 막히고 혼사길도 막힌 딸. 딸은 그렇게 아버지를 미워했다.

하지만 딸이 보기에 허세만 가득찬, 보잘것없었던 아버지의 삶은 장례식장에서 서서히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독립한 후 대학 강사 자리를 전전하며 부모와 떨어져 살던 딸은 아버지가 구례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 차례로 모습을 나타내는 조문객들에게서, 그네들의 이야기를 통해 딸은 그녀가 미처 몰랐던 낯선 아버지와 만난다. 비록 아버지와 사상은 정반대였지만 매일같이 붙어다니며 허물없이 지내던 국민학교 동창, 아버지 덕분에 몸의 흠을 고치고 시집을 갈 수 있게 되었던 이웃집 동생, 여호와의 증인에 들어간 걸 들켜 다리몽뎅이가 뿌러질 뻔했다 아버지 말 한 마디에 살아난 오촌 조카, 미성년자이면서 아버지 담배 친구였던 베트남 혼혈 소녀까지. 아버지는 늘 마을의 머슴을 자처했고 이웃과 친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였다. 아버지의 지난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언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서서히 어릴 적의 아버지, 혁명엔 실패했지만 늘 민중을 믿었고 끊임없이 도우려했던 꼿꼿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복원된다.

그렇다. 아버지는 찰나의 혁명이 아닌 생활 속의 헌신을 통해 소소하게 본인의 신념을 관철시키고 전파해 온 것이었다. 그의 삶 전체가 하나의 해방일지였다.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는 본문의 문장처럼, 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아버지는 역사를 조금이나마 진보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구례마을에 바친 것이었다. ‘기이하고 오랜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인 작은 감옥‘ 구례에서 말이다. 그걸 알게 된 딸은 마침내 깨닫는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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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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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다. 저인망 어선 마냥 지구의 자원을 깡그리 수탈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폐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라 오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사실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송이버섯이 어떻게 생겨나고 채집되며 상품으로서 유통되고 소비되는지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에서 탈출할 수 있는 실마리를 슬쩍슬쩍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그렇게 보일 뿐이다).

저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지금부터는 애나 칭이라고 하겠다)은 인류학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인류학은 세계의 여러 문화를 비교연구하는 학문이지만, 사실 인류학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인류학이라는 게 인류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광범위한 학문이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애나 칭은 포스트휴머니즘에 기반한 문화인류학자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본주의, 즉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출발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문화란 인간과 비인간, 즉 동식물과 환경이 함께 구축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애나 칭은 인간이 아닌 송이버섯을 중심으로 이 책에서 논지를 전개한다.

그녀는 자본주의와 송이버섯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본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확장성은 다양성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확장성에서 비롯되었다. 작물(사탕수수)과 노동(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을 소외시키고 획일화하는 모델로 대규모의 농장 확대가 가능했고 이는 곧바로 산업혁명 이후 공장에 똑같은 형태로 이식되었다. 성공을 맛본 자본가들은 지구상의 모든 것을 이러한 확장을 통해 시장가치로 교환할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되었다.

반면 송이버섯을 채집하는 것은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송이버섯이 피어나는 숲에선 작물과 노동의 소외가 일어나지 않는다. 송이버섯은 소나무와 공생하면서 숲의 다양성에 기여한다. 또한 송이버섯 채집인은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처럼 틀에 맞춘 규격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즉, 소외되지 않는다. 애나 칭은 송이버섯 숲이 자본주의의 확장성에 의해 폐허화된 잔재에서 태어났다는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인간과 송이버섯, 소나무, 그 외의 다양한 생물과 무생물이 엮어내는 ‘다종의 세계 만들기‘는 서로 간의 협력과 관계맺음에 의해 유지된다. 인간은 활엽수를 벌목하고, 그 자리에 소나무가 들어서고, 소나무의 잔뿌리는 송이버섯 균류의 집이 되며, 송이버섯 균류는 땅의 양분을 소화하여 소나무에게 제공한다. 이렇게 번성한 소나무 숲은 인간과 그외의 동식물에게 다양한 먹거리와 거처를 제공한다. 송이버섯이 다종의 얽힘에 기반한 ‘공유지‘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앞서 말했듯 포스트휴머니즘에 기반한다. 따라서 인류를 작금의 위기에서 구원하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니 제시할 수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송이버섯의 공유지는 확장성이 없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애나 칭은 자본주의의 확장성 대신 송이버섯으로 대표되는 다양성을 주장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송이버섯 모델은 전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본주의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나면 자그마한 허탈과 가벼운 절망이 밀려온다.

이 책을 더욱 읽기 어렵게 하는 건 애나 칭 특유의 낯선 언술이다. 그녀는 오염, 교란, 번역, 구제 등의 용어를 원뜻과 아주 다르게 재정의하여 사용한다. 독자는 이 용어들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혼란스러운 숲길을 헤매야 한다. 인류학과 생물학의 언저리 어딘가 쯤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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