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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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즐겨 하는 사람이라면 부엌 주변에 요리책 한두 권 쯤 두고 있는 게 당연한 상식이었다. 요즘엔 블로그나 유튜브로 정리된 레시피를 보는 경우가 많으니 요리책을 사는 사람이 많이 줄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요리책에 실린 사진을 보며 완성된 요리를 상상하고, 레시피를 충실히 따라가서 상상했던 맛을 비슷하게 구현해냈을 때 얻는 풍요로운 만족감이 우리가 요리책을 사는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이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에서 줄리언 반스가 말하는 바는 이런 요리책의 이상과 거리가 좀 있다. 스스로를 ‘부엌의 현학자‘(The pedant in the kitchen. 이 책의 영어 원제이기도 하다.)라고 칭하는 줄리언 반스는 요리책에서 늘어놓는 레시피에 대단히 불만이 많다. 레시피의 부정확한 계량, 애매모호한 표현, 레시피를 따라가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요리 등등.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책이지만 줄리언 반스는 내내 요리책과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pedant를 왜 ‘현학자‘라고 번역했는지 슬슬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영한사전에 실린 의미로는 현학자가 맞지만, 이 책에서의 줄리언 반스는 지혜로운 현학자가 아니라 grumpy한 불평쟁이에 가깝기 때문이다. 요리책의 저자, 식료품점의 점원, 각종 요리 도구, 프랑스 요리, 집에 초대한 손님, 심지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투덜거리는 저자를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기보다는 더불어 짜증이 차오른다.

음식은 기분좋게, 맛있게 먹어야 한다.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영혼을 위로하는 안온하고 즐거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책도 마찬가지. 우리는 맛있는 음식이 주는 안락하고 유쾌한 이미지나 소박한 음식이 주는 아련한 기억을 불러오길 원하지, 이렇게 먹다가 체할 것 같은 불평투성이의 글을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영국식 유머라 치부하기엔 좀 고약하지 않나 싶다. 아무리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의 에세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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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서관 -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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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고요하다. 아침의 분주함도, 한낮의 나른함도, 저녁의 한가로움도 사라진 시간. 대기를 떠돌던 소음이 가라앉고 양감을 가진 어둠이 주위를 휘감을 때, 우리는 이제 책 속으로 잠수할 시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다. 마치 비좁은 심해 탐사 잠수함에 탑승한 것처럼, 조그만 의자에 푹 파묻혀 라이트를 켜고 책이라는 깊은 바다의 페이지 곳곳을 항행하는 독서가들. 알베르토 망구엘은 이들을 위해 도서관의 기원과 역사, 철학, 건축,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방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한 그만의 박학다식함을 가지고.

지금, 도서관을 말하는데 알베르토 망구엘 만큼 적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세계 최고의 독서가‘, ‘책의 수호자‘라 불리는 이답게 그가 이 책에서 풀어내는 도서관 이야기들은 어디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그의 다른 책 <독서의 역사>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대체 얼마나 책을 읽어야 이 정도의 지식을 쌓을 수 있을런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흔히들 ‘구글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알베르토 망구엘이 평생을 꼭꼭 씹어 소화해낸 지식들은 웹을 아무리 뒤져 봐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그가 머릿 속에 쌓아 올린 지식의 바벨탑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싶을 지경이다.

그가 이 <밤의 도서관>을 쓰게 된 건 프랑스 시골 마을의 조그만 사제관을 사들여 개인 도서관으로 개축하면서부터다. 반세기 동안 수집한 책들을 한데 모아 도서관을 꾸미면서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그는 신화, 정리, 공간, 힘, 그림자, 형상, 우연, 일터, 정신, 섬, 생존, 망각, 상상, 정체성, 집이라는 상이한 열 다섯 개의 주제로 도서관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수없이 많은 사상가들, 작가들,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말이 인용된다. 이를테면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학자와 독서가의 차이가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학자는 앉아서 집중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자신이 열망하는 특별한 진리의 씨앗을 찾아 책을 열성적으로 뒤적거린다. 책을 읽는 재미에 빠지면 그가 얻으려는 소득이 줄어들고, 힘들게 얻은 것마저 부지불식간에 빠져나간다. 반면에 독서가는 처음부터 뭔가를 배우려는 욕심을 억눌러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지식이 어쩔 수 없이 더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식을 계속 추구하고 체계적으로 독서하며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려 한다면, 순수하고 사심 없는 독서를 향한 한층 인간적인 열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은 사라지기 십상이다.‘

망구엘은 말한다. 모든 서재는 궁극적으로 에우테미아를 갈망한다고. 세네카에 따르면 에우테미아는 ‘영혼의 행복‘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에우테미아는 방해받지 않는 기억이며, 글을 읽는 시간의 편안함이다. 고요한 밤, 우리는 각자의 도서관에 앉아 에우테미아를 좇으며, 책이 제시하는 무수한 통찰의 순간을 찾으며 활자들 사이를 조용히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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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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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테드 창처럼 중국계 SF 작가라는 것만으로 작품 스타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림짐작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 책 <종이 동물원>을 읽어 보니 둘은 꽤 성향이 다른 작가였다. 테드 창은 무척이나 철학적이고 톱니바퀴처럼 정밀한 플롯을 구사하는 작가이지만, 켄 리우의 단편들은 SF 답지 않게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바가 크다. 또 테드 창은 그의 작품만 읽어서는 중국계라는 걸 전혀 알 수 없지만, 켄 리우는 중국인, 나아가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다수의 단편 주인공 이름이 중국계라는 걸 넘어 근대 동아시아의 어두운 역사를 작품의 소재로 활용한다. 켄 리우를 소개할 때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하버드 법학 전문 대학원을 졸업한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는 독특한 이력을 강조하는데, 막상 그의 작품들을 읽어 보면 직업적 경험이 소설 속에 녹아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켄 리우 작품의 독특한 점으로 꼽고 싶은 것은 소재 조합의 의외성이다. <즐거운 사냥을 하길>에서는 동양의 고전적인 구미호 이야기와 서구 산업혁명의 스팀 펑크를 기묘하게 결합하고, <파(波)>에서는 영생을 통해 진화와 신(神)의 개념을 진지하게 고찰한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에서는 양자역학과 역사 실증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조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단편집의 가장 큰 미덕은 단순한 SF에서 그치지 않고 비극적인 동아시아 역사를 주제로 긴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는데 있다. 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에서는 글자를 따라 읽는 것조차 괴로운 731 부대의 만행을 생생하게 재연하는데, 중일 전쟁 당시의 난징대학살을 다룬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을 연상케 한다(아이리스 장은 이 논픽션을 내고 일본 극우 세력의 집요한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파자점술사>에서는 국공내전 패배 후 대만으로 건너간 장제스 정부가 미국과 합작하여 본성인(명·청 시대에 대만에 정착한 중국인)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역사의 비극을 다룬다.

‘만약 1930년 런던해군군축조약이 발효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일본 군부가 자극 받지 않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대공황을 미국과 일본이 합작하여 태평양 횡단 터널을 뚫는 것으로 해결했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출발한 대체역사,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略史)>에서는 얼핏 평화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계에서도 일본 군부는 수없이 많은 아시아인들의 인권을 유린한다. 중국 공산당과의 전쟁을 통해 얻은 포로에게 비참한 강제 노역을 시키고, 인부들을 위해 조선인 위안부를 동원한다.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가 눈앞에 어른거릴 수밖에.

이 밖의 단편들에서도 켄 리우 특유의 빼어난 창의력을 흠뻑 만끽할 수 있다.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것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새로운 현실을 꿈꿀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게 SF의 역할이자 매력이라고 한다면, 켄 리우의 작품만큼 그 역할에 충실한 SF가 또 있을까 싶다. 그의 작품을 오래오래 잔뜩 읽고 싶은 소망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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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연대기 - 유인원에서 도시인까지, 몸과 문명의 진화 이야기
대니얼 리버먼 지음, 김명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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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건강한 생활방식을 선택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이 한 문장이 바로 이 책이 독자에게 내미는 화두라 볼 수 있겠다. 현대인이 겪는 수많은 질병들의 원인을 지금까지의 의학적 관점이 아니라 진화론적 관점에서 추적하려는 게 이 책의 목표다. 저자 대니얼 리버먼은 2형 당뇨병, 골다공증, 심장병, 뇌졸중, 알레르기, 요통, 족저근막염, 근시, 관절염 등의 질환을 불일치 질환이라 칭한다. 최근까지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성 질환 - 천연두, 장티푸스, 말라리아, 소아마비 등 - 들은 의학 기술과 약학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거의가 정복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불일치 질환들은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 변화한 우리의 생활 습관과 우리 몸의 진화적 특성이 맞지 않아서 생기는 병이다. 생물학적 진화의 속도는 무척 느리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여전히 수백만년 전 인류의 신체에서 그다지 변한 게 없다. 하지만 인간의 문화적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 옛날 아프리카의 사바나에 살던 우리의 조상과 지금의 우리의 삶은 한 점의 비슷한 구석도 없지만, 신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질병들을 이해하려면 인류 역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서 대니얼 리버먼은 이 책의 거진 3분의 1을 인간이 유인원에서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수백만년의 과정을 개관하는데 할애한다. 호미닌 - 침팬지 등 여타 유인원들보다 현생 인류에 가까운 모든 종 - 에서 출발하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한 네안데르탈인들의 생태와 신체적 진화를 추적하고 세밀히 탐구한다. 인간은 어떻게 직립 보행을 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열대 우림에서 과일을 먹던 유인원이 사바나를 달리는 호모 사피엔스로 탈바꿈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뇌와 골격, 장기들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살핀다.

진화를 거칠게 요약하면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아 자신의 형질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불일치 질환은 진화를 거스르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생존에 불리한 불일치 질환을 가진 개체가 의학 발달에 힘입어 생명을 연장하고 자손을 가져 불일치 질환의 요인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니까. 수렵채집 시대였다면 족저근막염을 앓는 것 만으로도 생존에 큰 위협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조금 불편한 질환일 뿐이다. 충치도 마찬가지. 저자는 이런 현상을 ‘역진화‘라고 칭한다. 문화적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를 거스르는 것이다. 문제는 이 역진화가 점점 가속된다는 점이다. 비만을 야기하는 고칼로리 식단과 신체 활동 부족을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의학이 생명을 연장해 주기 때문에,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저자는 말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건강한 생활 방식을 선택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일치 질환에 걸리기 쉬운 환경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많이들 들어보았을 이야기지만 미국의 빈곤층은 신선한 채소보다 가공식품이, 물보다 콜라가 싼 환경에 살기를 강요받고 있다. 차가 없으면 살 수 없으니 하루에 걷는 거리가 1km도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하다. 이런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나이가 들어 만성질환에 걸리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물과 값비싼 기술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만들어낸 이 환경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역진화의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 환경을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공 교육을 강화하고 저렴하지만 건강에 해로운 식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 몸은 생물학적 진화 과정을 거쳐왔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문화적 진화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우리 몸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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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스푼 - 주기율표에 얽힌 광기와 사랑, 그리고 세계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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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에세이스트 샘 킨의 데뷔작. 번역은 믿고 보는 이충호. 여느 샘 킨의 저작과 마찬가지로 과학사의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책은 원소 주기율표를 소재로 하는데, 샘 킨의 다른 책들에 비해 특이한 점이라면 주기율표 상 비슷한 성격의 원소들을 묶어서 챕터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연(Zn), 금(Au), 텔루륨(Te), 유로퓸(Eu), 알루미늄(Al)을 한데 묶어 ‘돈으로 쓰이는 원소들‘이라는 챕터를 만드는 식이다.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원소가 너무 많으니 이런 형식을 택한 게 아닌가 싶은데, 주기율표 순서대로 차례차례 서술하는 것보다 훨씬 다채롭게 읽힌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같은 제목을 갖고 있지만, ‘사라진 스푼‘은 과학자들이 즐겨 하는 장난을 지칭하는 말이다. 갈륨은 실온에서 고체로 존재하지만 녹는점이 29.8℃로 낮은 편이다. 그래서 손님에게 뜨거운 차와 함께 갈륨으로 만든 찻숟가락을 내놓고, 찻숟가락이 차에 녹아서 사라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손님을 보며 즐거워한다는 이야기다. 원소의 특성을 이용한 경쾌한 트릭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 이 책의 성격을 잘 나타내준다 하겠다.

<사라진 스푼>은 주기율표의 원소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는데 하나같이 흥미롭고 기이하다. 원소들이 인류의 역사와 경제, 문화, 전쟁, 심지어 철학에 미친 영향을 읽고 있으면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기율표의 산물인 셈이다˝라는 책 속의 글귀가 실감된다. 에피소드 하나를 살펴보자. 영국은 인도를 식민통치하면서 소금에 8.2 퍼센트의 높은 세금을 부과한다. 간디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소금 행진‘을 벌이며 인도 국민들에게 스스로 소금을 만들어 세금을 내지 말라고 촉구한다. 이로 인해 인도에서는 주민들이 집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드는 소위 보통 소금이 널리 퍼진다. 문제는 이 보통 소금에는 요오드가 거의 들어 있지 않다는 것. 서구 국가들은 건강에 아주 중요한 원소인 요오드를 소금에 반드시 첨가하도록 법제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도는 독립 이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요오드가 없는 보통 소금이 주류였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주 정부들이 보통 소금을 금지하려 했지만 큰 저항에 부딪힌다. 요오드를 섭취하지 않으면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고, 갑상선은 여러 호르몬의 생산과 분비를 조절하기 때문에 신체와 정신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심지어 정신 지체를 유발하기도 한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 역사적 사실을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증거로 들었다. 러셀은 말한다. ˝생각하는 데 쓰는 에너지는 화학적 기원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요오드 결핍은 똑똑한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정신적 현상은 물질적 구조에 속박돼 있는 것 같다.˝ 즉, 인간의 이성과 감정과 기억이 뇌 속에 있는 물질적 조건에 의존한다고 본 것이다.

주기율표의 순서는 해당 원소 원자핵의 양성자 수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주기율표 아래로 가면 방사성 원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원소 연구의 주체가 화학에서 물리학으로 옮겨가는 것이 곧 19~20세기 과학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마리 퀴리가 노벨 화학상과 노벨 물리학상을 차례로 수상한 진기록을 남긴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책의 구성상 이 역사가 잘 정리되지 않은 채로 책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점은 못내 아쉽다.

사실 이 책의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할지 좀 난감했는데, 책이 온통 원소에 얽힌 자잘한 에피소드와 이에 딸린 소소한 지식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주기율표라는 소재만 있을 뿐, 책을 관통하는 확실한 주제가 있는 게 아니라 감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원소에 대한 과학적 트리비아 덩어리인 이 책이야말로 내 지적 허영을 가뿐히 채워 줄 수 있었지 싶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 머릿속이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 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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