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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24년 7월
평점 :
노회찬을 기억한다. 그의 소탈한 웃음을, 그의 통쾌한 은유를, 무엇보다 그의 민중에 대한 애정을. 2018년 무더웠던 여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그를 추모하러 갔던 연세대 집회에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하염없이 흘린 기억이 난다. 그는 2012년 10월 21일, 그 유명한 진보정의당 공동 대표 수락연설에서 해도 뜨기 전인 새벽 네 시에 6411번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말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투명인간‘들의 당으로 진보정의당을 세우는데 자기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넣겠노라던 그.
노회찬은 떠났지만, 그의 뜻을 잇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가 말한 ‘투명인간‘도 마찬가지다. 강남의 고층 빌딩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정리하지만 이름 조차 불리지 못하는 청소 노동자들,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가 농성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는 살인이다‘를 외치며 투쟁하다 죽어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이들 모두는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들이다. 고단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매일매일 부당한 대우를 목도해야만 하는 이들.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이들.
노회찬재단과 한겨레가 손잡고 지면에 연재해온 <6411의 목소리>를 책으로 엮은 게 바로 이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이다. 이 책에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물류센터 노동자, 도축 검사원, 폐지수집 노동자, 학교 급식 노동자, 독립 공연 기획자, 시설지원 노동자, 인디밴드 멤버, 요양보호사… 이밖에도 수많은 직업을 가진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매일같이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도 최저임금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계급 사회에서 차별과 천시를 받는 이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라는 단어는 저임금 블루 칼라를 의미한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낮은 임금과 위험한 환경, 불안한 지위와 더불어 사회가 내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기여가 없으면 우리의 일상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지만 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목소리를 지우고 소외시킨다. 이들이 투명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지면 칼럼의 한계로 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함과 고단함의 나열을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 노동을 존중해 달라고, 내 노동의 가치를 알아달라고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남다르다. 더불어 사는 사회, 노동이 비천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손석희의 추천사처럼 ”하나하나의 글들 속에서 노회찬을 발견한다. 글쓴이들이 모두 노회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