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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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 몬태그의 직업은 방화수(Fireman)다. Fireman을 소방수가 아니라 방화수라고 하는 이유는 이들이 불을 끄는 게 아니라 불을 지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는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누군가 집에 책을 갖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이 방화수들은 탱크에 물 대신 등유가 가득 든 트럭을 타고 방화서에서 출동한다.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거리를 질주하여 현장에 도착하면, 도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샅샅이 집을 뒤져 책을 찾아내고 등유의 불줄기로 남김없이 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 나라에서 책은 마약보다도 훨씬 위험한 물건 취급을 당한다.

몬태그의 아내 밀드레드는 하루 종일 벽면 TV에 붙어 산다. 그녀는 이미 거실 벽 3면을 TV로 만들어 놓고도 나머지 한 면 마저 TV로 채우자고 몬태그를 조른다. 밀드레드는 하루 종일 벽면 TV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영상을 시청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녀는 밤에 잘 때 마저 귀마개 라디오를 끼고 잔다. 그 부작용으로 하마터면 죽을 뻔 했는데도 그걸 자각하지 못한 채, 요즘 말로 하면 도파민에 중독되어 살고 있다. 그녀에게는 삶의 가치나 남편의 애정보다 벽면 TV가 백만배는 중요하다.

몬태그가 즐겁게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어느 날, 클라리세라는 소녀를 우연히 만난다. 소녀의 나이는 ‘미친’ 열일곱.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하고 그걸 말로 옮기는 소녀를 보며 몬태그는 두려움과 동시에 호기심이 생긴다. 적국과의 전쟁이 임박한 이 나라에서, 더구나 책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회에서 제거될 수 있는 이 나라에서는 클라리세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없으니까. 이 나라에 남은 건 밀드레드처럼 체제에 순응하여 머리를 텅 비우고 사는 사람들 뿐이다. 클라리세를 만난 몬태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이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책에 불을 지르는 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때처럼 현장에 출동한 몬태그는 그 집에서 책을 잔뜩 찾아내고 자기도 모르게 책 한 권을 방화복 안에 숨긴다. 집주인 노파는 책에 불을 지르려는 방화수들을 막아서고, 성냥을 꺼내어 스스로 불을 붙여 책과 함께 산화한다. “너희들은 내 책을 뺏어 갈 수 없어”라고 외치며. 큰 충격을 받은 몬태그의 마음 속 의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자신의 집에 책들을 숨기게 된다. 그의 상관인 서장 비티는 이를 눈치채고 몬태그의 집으로 찾아가 그에게 넌지시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한다. 하지만 책을 불태우는 방화서의 서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박식하고 교묘한 비티의 말재주 조차 확신이 되어 버린 몬태그의 의심을 잠재울 순 없다. 그는 파버라는 노교수를 찾아가 세상 모든 방화서를 없앨 계획을 논의한다. 하지만 방화서로 돌아간 그에게 급박한 출동 명령이 떨어지고, 숨가쁘게 달려 도착한 현장은 바로 몬태그의 집이었다. 집에 책을 숨긴 게 발각된 몬태그는 과연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 SF소설이 출간된 연도는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였다. 이 음울하고 칙칙하지만 현대 사회에 대한 어마어마한 통찰을 보여주는 책이 70년도 더 전에 쓰였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 밀드레드는 숏폼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사는 현대인 그 자체이다. 자극적이고 일화적인 정보와 영상에 열광하는 소설 속의 대중들은 인스타와 틱톡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쾌락에 빠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소설 속의 국가가 전체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국가가 독서를 금지했으리라 짐작하게 되지만, 사실 먼저 책을 거부한 건 대중들이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영화와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그리고 책들이 점점 단순하고 말초적으로 일회용 비슷하게 전락하기 시작”했다. 모든 정보가 압축되고 각색되어 한 줄 짜리 헤드라인으로 끝나는 세상에서 책은 ‘왜?’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위험한 물건이었다. 해석이 필요없는 정보를 잔뜩 주입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행복과 고양감을 느끼는데, “철학이니 사회학이니 하는 따위의 불안한 물건들”은 우울한 생각만 낳게 되니까.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은 그래서 대중에게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어 마침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전제적인 정부일수록 국민들이 책을 가까이하는 걸 두려워한다. 윤석열 정권은 독서 관련 예산을 10분의 1 토막냈고, 국민의힘 당적을 가진 마포구청장은 마포구의 작은도서관들을 폐쇄하여 스터디카페로 만들려 했으며 예산 삭감에 항의한 마포중앙도서관장을 파면해 버렸다. 국민들이 책을 통해 비판 의식을 갖는 것만큼 그들에게 위험한 건 없기 때문이리라. 최근 극우들이 인스타를 선동의 장으로 골라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마구 퍼뜨리는 것도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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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인간의 최후 - 세컨드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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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제6대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전임자들과 결이 많이 다른 인물이었다. 비밀경찰을 동원하여 정적들을 제거하려 들지 않았고, 인민들을 고압적으로 다루지도 않았다. 종종 영부인 라이사 여사와 손을 잡고 거니는 다정한 모습도 소련 인민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광경이었다. 그는 심지어 러시아인인데도 술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임자들과 달랐던 그의 행보는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 자본주의를 도입한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점진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소련의 체질을 개선하고자 했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의 의도대로 천천히 굴러가지 않았다. 그 이후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붉은 인간의 최후>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소련 붕괴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구소련 민중들을 만나 인터뷰한 그들의 삶이 담겨 있다. 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도입된 자본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다. 국영 기관에서 과학자로 근무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청소부로 일해야 했던 정도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소련 시절엔 모두가 가난했기에 오히려 결핍을 몰랐던 사람들이, 자유와 함께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 자본이라는 이름의 쓰나미에 휩쓸려 버렸다. 기회를 잡은 소수의 사람들은 큰 돈을 벌었지만 무법천지가 된 러시아에서 범죄의 타겟이 되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91년, 소련 공산당의 보수파들과 군이 뭉쳐 만든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실행했던 8월 쿠데타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십 수백만의 민중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작년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를 우리 국민들이 막아낸 빛의 혁명과 흡사하게, 러시아 민중들은 죽을 각오를 하면서도 한데 모여 평화를 노래하며 끝없이 행진했다. 그렇게 쿠데타를 막아낸 그들은 이제 곧 좋은 세상이 올거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등장한 것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인민의 몰락이었다. 소련의 이름 아래 모여 있던 공화국들이 독립하고, 잠재되어 있던 민족 갈등이 폭발하여 끔찍한 살육이 반복된다. 인민들의 생활 수준이 소련 시절과는 비할 수 없이 나빠져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지옥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사람은 먼지이고 티끌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터뷰이들의 성향도 그들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역시 러시아는 스탈린 같은 독재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사람들, 철지난 레닌주의는 청산해 마땅하다는 사람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사람들, 수용소와 대숙청의 시대가 당연하다는 사람들,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작가의 전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보다 훨씬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외부에서 보는 시선과 달리 푸틴의 장기 집권이 단지 그의 폭압적 독재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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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자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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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 벗어난 주인공과 ’본‘은 원래 있던 곳인 미국이 아니라 파리를 망명지로 택한다. LA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장군의 딸인 라나와 하룻밤을 보낸 걸 장군에게 들킨 이상, 주인공에게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프랑스인 신부와 베트남 소녀 사이에서 태어난 그에게 있어 프랑스는 아버지의 나라였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자애롭지도, 본받을만하지도 않았다. 주인공의 의형제 ‘만‘의 당고모 - 파리에 사는 공산주의자 지식인 - 는 프랑스를 주인공의 아버지에 빗대어 이렇게 일갈한다.

“네 아버지는 식민주의자이자 소아 성애자였어. 그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 식민지화는 소아 성애증이야. 아버지의 나라가 불운한 어린 학생들을 강간하고 성추행하지.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거룩하고 위선적인 미명하에 그 모든걸 자행해!”

주인공과 ‘본‘은 난민 수용소에서 연을 맺은 갱단 두목 ’보스‘를 찾아가 몸을 의탁한다. 주인공은 갱단의 일원이 되어 당고모의 살롱에서 알게 된 지식인들을 통해 해시시와 필로폰을 판매한다. 그는 위험천만한 갱단의 사업과, 지독한 반공주의자 친구 ‘본’과, 자본가가 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이중간첩 공산주의자였던 그가 파리 뒷골목 마약상으로 탈바꿈한 주인공의 삶은 대체 어디까지 흘러가는 걸까?

비엣 타인 응우옌이 전작인 <동조자>에서 베트남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두 이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허망한 실체를 다루었다면, <헌신자>에서는 베트남이 가진 모든 문제의 뿌리인 프랑스 식민주의를 직접 타격한다. 사회주의자입네 하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번드르르한 사상의 껍데기와, 그네들의 모순된 원초적 욕망과, 한꺼풀 벗기면 드러나는 인종주의로 가득한 속내를 말이다. 그들은 지독한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자유, 평등, 박애의 목소리로 프랑스가 베트남에 가한 끔찍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동조자>가 화창한 캘리포니아의 햇살 아래 펼쳐지는 스릴러였다면, <헌신자>는 잔뜩 흐린 파리의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느와르물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주인공의 수다는 여전히 유쾌하고 재기 넘치며, 전작에 버금가는 긴장된 분위기가 소설 전체를 지배한다. 하지만 <동조자>만큼의 걸작이라고 선뜻 말하기는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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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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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남베트남 패망 직전의 순간에서 시작한다. 북베트남군이 사이공 외곽까지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미군은 철수를 준비하고 남베트남인들은 어떻게든 나라를 탈출하려는 절망이 가득한 시간. 우리의 주인공은 남베트남군의 대위이자 CIA의 비밀요원이지만, 동시에 북베트남의 스파이이기도 하다. 그는 두 세계에 걸쳐 사는 남자이자 두 마음을 가진 남자인 것이다. 어릴 적 CIA 요원인 클로드에게 발탁되어 미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베트남으로 돌아와 남베트남군에서 스파이를 색출하고 취조하는 정보장교로 활동한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 가기 전에 이미 고등학교에서 의형제를 맺은 두 친구 중 한 명인 ‘만‘에게 감화받아 공산주의에 투신한 상태였다. 만은 주인공에게 미국 유학에서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을 배워 오라는 지령을 내리고, 주인공은 이에 따라 이중 스파이가 된 것이다.

주인공은 그가 모시던 장군 일행과 함께 미군 군용기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하여 LA에 정착한다. 모교 사무실에서 보잘것 없는 일자리를 얻어 의형제 두 친구 중 하나인 ‘본‘과 함께 사는 주인공. 본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인데 베트남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아이를 비참하게 잃었다. 한편 장군은 함께 망명한 부하들과 베트남을 되찾는 권토중래를 꿈꾼다. 미 하원의원과 클로드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 의용군을 모아 군사훈련을 한다. 장군은 망명자 내부의 첩자를 색출하려다 주인공 때문에 엉뚱한 부하를 살해하기도 하고, 주인공을 시켜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는 기자 소니 - 주인공의 대학 동기이자 연적이다 - 를 암살하기도 한다(이 둘은 유령이 되어 주인공을 따라다닌다). 급기야 장군은 ‘본‘을 비롯한 몇몇에게 태국에서 북베트남에 침투하려는 게릴라 조직을 도우라는 명령을 내리고, 주인공은 이 무모한 작전에 투입된 ‘본’을 구하기 위해 작전에 동행한다.

게릴라와 합류한 주인공 일행은 북베트남 땅에 발을 들이자마자 베트남군에 발각되어 격렬한 총격전 끝에 포로가 된다. 여기까지가 총 23장 중 18장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19장에 들어선 독자들은 깨닫는다. 18장까지는 주인공이 포로수용소 소장의 명령으로 써낸 자술서라는 걸. 주인공은 북베트남의 스파이로서 ‘만‘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지만 포로 신세가 된 그는 미국 문화에 물들었다는 이유로 사상을 의심받는다. 최인훈의 걸작 <광장>의 주인공 이명훈처럼, 두 세계 모두에 적을 두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동조자>는 무척이나 수다스러운 소설이다. 대개의 전후 소설이 무거운 분위기로 독자를 압도하지만, 이 소설은 말의 향연으로 독자를 짓누른다. 문단이 너무 길어서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 끝모를 유머러스함과 기막힌 묘사란! 가령 이런 문장들이 650페이지나 되는 이 책을 꽉 채우고 있다.

“내 두개골의 엑스레이를 찍었다면 햄스터 한 마리가 쳇바퀴에서 맹렬하게 달리며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였을 겁니다.”(p.106)

“나는 불쌍한 알레한드로나 압둘라나 아싱이 따끈따끈한 점심을 먹고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미국 아이들이 푼돈을 기탁하게 하려고 초등학교 주변에서 돌리는 우유팩들 중 하나에 인쇄된 제3세계 아이를 최선을 다해 흉내 내는 중이었습니다.”(p. 113)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동조자(The Sympathizer)’는 스파이를 의미한다. 끝까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주인공은 남베트남과 미국에 동조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또한 북베트남의 공산주의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이다. 그는 프랑스인 신부와 베트남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 새끼’이면서 미국 문화와 베트남 문화에 모두 공감하는(sympathize) 인물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둘로 갈라진 그는 외세에 의해 분단된 베트남을 상징하며, 두 체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베트남 국민들을 표상한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호치민의 유명한 경구, “독립과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Nothing is more precious than independence and freedom)”를 비틀어 “독립과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Nothing’ is more precious than independence and freedom)라고 말한다. 두 체제 모두 모순을 내포하고 있고 어느 것 하나 진실로 옳은 것이 없다는 깨달음.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주인공의 정체성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란 말에 들어 있다. 정체성도 없고 진실도 없다면, 그 ’아무것도 아닌 것’ 위에서 인간은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주인공에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속편인 <헌신자>에서 살펴볼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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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장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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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의 어느 봄날, 촨둥의 작은 마을에서 여인이 세찬 강물에 떠내려 온다. 정신을 잃고 급류에 휩쓸린 그녀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여인을 구한 마을 사람들은 근처 부대의 병원으로 그녀를 옮겨 치료를 받게 한다. 보름 남짓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던 그녀는 마침내 깨어났으나 자신의 이름을 비롯하여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한다. 억지로 기억을 되살리려 하면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몰려올 뿐이었다. 그녀를 치료한 우 의사는 무슨 사정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이름을 잃은 여인에게 딩쯔타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녀가 혼수상태일때 가끔 “딩쯔!”라고 외쳤고, 그녀가 병원에 있던 봄에 복사꽃이 막 필 때라 타오(桃)를 붙여서 지은 이름이었다.

안정을 찾은 딩쯔타오는 우 의사의 소개로 군관구 류 정치위원의 가정부로 들어가 일하게 된다. 딩쯔타오는 전근과 승진을 거듭한 류 정치위원과 그 가족을 따라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 어느 날, 전역한 우 의사가 과거 상사인 류 정치위원에게 인사를 오게 되고, 우 의사가 부인과 사별한 것을 안 류 정치위원이 딩쯔타오와 우 의사를 중매서게 된다. 결혼한 둘은 아들 하나를 낳고 아들의 이름을 칭린이라고 짓는다.

칭린이 아직 어릴 때 우 의사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생계가 막막해진 딩쯔타오는 다시 남의 집 가정부 일을 하게 되고, 열심히 일해 칭린을 대학까지 보낸다. 칭린 또한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취직 후 열과 성을 다해 출세길에 이른다. 마침내 장샤에 가정부와 기사가 딸린 근사한 저택을 마련한 칭린은 연로한 딩쯔타오를 모시고 와 아무 걱정없는 행복한 여생을 선사하려 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새 집으로 이사온 날 밤 딩쯔타오는 촨둥에서 구출되기 전의 기억이 담긴 끔찍한 악몽을 꾸고, 그 길로 식물인간처럼 외부의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않게 된다. 딩쯔타오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잘 짜여진 미스테리극처럼 보이는 이 소설에는 중국 현대사의 어둡기 그지 없는 역사가 숨어 있다. 마오쩌둥 치하 중국의 여러 사건 중 끔찍하기로는 문화대혁명이 첫손에 꼽히지만, 이 책의 소재인 토지 개혁 또한 만만치 않게 참혹했다. 프랑크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을 보면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본토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처음으로 시행한 게 토지 개혁이었다. 국민당을 쫓아내기는 했지만 공산당의 승리를 완성하고 중국 전 인민에게 사상을 주입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게 마오쩌둥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마오쩌둥은 대장정 이전 농민봉기로 촉발된 소작농들의 폭력성에 매료된 바 있었다. 친족 중심으로 똘똘 뭉친 중국의 농촌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을 지주와 소작농으로 나누어 전면적인 계급 투쟁으로 몰고 가야 했다. 농촌 각지에서 공작조가 결성되어 투쟁대회를 열어 지주를 비판하고 숙청하고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처형했다. 그것도 같은 마을에서 한가족처럼 지내던 이들이 말이다. 지주로 지목된 이들의 재산을 빼앗아 소작농들에게 나누어 주자 투쟁대회는 마녀사냥의 양상을 띠게 된다. 설령 재산이 많지 않더라도 지주로 지목된 이는 무조건 처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중간 쯤부터 딩쯔타오가 사실 지방 유력 가문인 루씨 집안의 며느리였다는 게 밝혀진다. 루씨 집안은 항일 투쟁을 지원하고 공산당의 정책에도 적극적으로 동조했지만 토지 개혁 앞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투쟁대회 전날 루씨 집안은 딩쯔타오 - 그녀의 원래 이름은 후다이윈이었다 - 와 그녀의 어린 아들 팅쯔를 제외한 전원이 치욕을 당하느니 자살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저택의 화원에 각자 묻힐 자리를 판 후 비상을 먹고 자리에 누워 죽음을 맞는다. 딩쯔타오는 슬픔에 겨운 채 그들 한 명 한 명을 흙으로 덮는다. 그리고 그녀는 배를 타고 도망치다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아들을 잃고 기억도 잃는다.

이 책의 제목 <연매장>은 이처럼 관 없이 맨땅에 묻히는 것을 의미한다. 연매장을 당하면 환생하지 못한다는 미신 때문에 당시 중국인들은 연매장을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체높은 가문의 사람들이 연매장을 선택할 정도로 공산당의 토지 개혁은 비인간적이었다. 폐쇄적인 체제가 얼마나 인간을 극단으로 몰고 갈 수 있는지를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중국 정부가 금서로 지정할만 하다.

서너 페이지의 짧은 챕터 70개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꽤 정교하다. 딩쯔타오와 우칭린, 류 정치위원의 시선이 시시각각 교차하고, 딩쯔타오가 시간을 거슬러가며 기억을 되찾아가는 기법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그 비극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우연에 의존하고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모호한 결말을 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앞서 읽은 김유태의 <나쁜 책>에 소개된 팡팡의 또 다른 작품 <우한일기>를 읽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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