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회고록 -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이해찬 지음 / 돌베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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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이해찬이라는 정치인을 잘은 몰랐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라곤 박정희 때부터 학생운동을 했고, 김대중 아래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국민의 정부 때 교육부 장관을 지냈고, 참여정부 때는 국무총리를 했다는 정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레거시 미디어들에 의해 덧씌워진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도 한 몫 했다. 민주당의 노회한 정치인, 교육부 장관 때 입안한 입시제도 때문에 ‘해찬들 세대’의 학력이 떨어지게 만든 원흉, 선거기획의 달인이라는 껍데기 말이다.

그가 타계하고 몇몇 방송에서 그의 후배들이 회상하는 그는 이런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유시민이, 최민희가, 김어준이 기억하는 이해찬은 그렇게 단순한 이미지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책을 사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책표지에 떡하니 있는 근엄한 사진과는 달리 그의 회고록은 무척 재미나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한국 현대 정치사를 개괄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다. 그리고 이 양반 보기와는 다르게 좀 ‘깬다’. 진보 진영 거물 정치인의 당연한 스펙일 것 같은 빈농의 아들이 아니라는 점부터가 그렇다. 머리가 좋아서 명문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 보다는 영화, 연극, 야구를 보러 다니는 ‘문화생활’을 즐겼다. 서울대 공대를 갔는데도 단지 수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반수를 해서 서울대 사회학과를 들어가는 것도 남들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목표한 바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할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인데, 오히려 슬렁슬렁 여유롭게 살았달까. 하지만 그의 인생은 사회학과 입학 후 유신을 맞으면서 큰 변곡점을 맞는다. 학생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이다.

그의 비범한 선택에는 아버지의 말씀이 한몫 했다. 유신이 선포되고 학교가 문을 닫으니 이해찬은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보통의 부모라면 절대 학생운동 같은 데 기웃거리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겠지만, 이해찬의 아버지는 어느 날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4・19 일어난 지가 10년밖에 안 됐다. 이렇게 학생들이 다 사라지만 그 4・19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유신에 맞서 싸워야지 왜 집에 내려왔느냐는 일갈이었다.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이해찬은 그길로 서울로 올라가 학생운동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학생운동을 하며 경찰에 쫓기고, 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힘든 수감 생활을 하고… 참으로 암담하고 우울한 나날이었을테지만 그는 타고난 유머러스함 - 보기와는 다르게 - 을 곁들여 자신이 겪었던 사건들을 담담하게 구술한다. 이해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의 담대함과 끈질김에 놀라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지식인들과 달랐다. 아마 그가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마음에 깊이 새겼다는,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는 명제가 이해찬이라는 사람을 정의한 게 아닐까.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 체 게바라의 명언이라고 전해지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말 만큼이나 가슴을 울리고 뇌리를 강하게 때린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이상 만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뜻. 이상만 추구하다 교조주의로 빠지기 십상인 진보 진영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관직을 시작한 그에게 다시금 배울 점은 바로 ‘퍼블릭 마인드’다. 이해찬은 공사를 정확하고 엄격하게 구분해서 절대 공적 영역에 개인의 감정이나 이익을 개입시키지 않기로 유명했다. 조그마한 지위라도 가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렇게 칼같이 공사를 구분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해찬은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철저한 퍼블릭 마인드로 무장한 삶을 살았다. 고문으로 인해 건강을 해친 그가 말년에 편히 쉴 수 있었음에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직을 수행하기 위해 호치민까지 갔다가 별세한 것은 우리 사회를 위해 철저한 공인으로 살겠다는 신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이뿐만이 아니다. 그에겐 현실에서 찾은 방법으로 가치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었다. 초선 의원 시절, 아직도 서슬퍼렇던 안기부의 어마어마한 특활비를 끈질기게 추적해 만천하에 드러낸 성과나, 서울시 부시장 시절 모자란 예산을 은행과의 협상을 통해 마련한 일화나, 당대표로서 민주당을 온라인 국민정당으로 탈바꿈시켜 지금의 1인 1표제의 초석을 마련한 업적은 그의 탁월한 능력에서 기인한다. 그는 단지 ‘행동하는 지식인’이 아니었다. 미래를 읽는 혜안과 계획을 구현해 내는 추진력을 갖춘 거목이었다.

이해찬이 살아 있을 적에 그의 발자취를 좀 더 세밀히 좇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그러면서도 타고난 지략과 뚝심을 갖고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를 이제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말미에 그가 한 말, DJ가 했던 바로 그 말,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대로 그는 살았다. 이해찬은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운동을 하면서 실패는 해도 좌절하지는 않잖아요. 정치를 하다 보면 목표대로 성취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못한 것은 또 하면 돼요. 실패가 아니에요.”

그렇다. 이루지 못했다고 주저앉을 게 아니라 또 다시 도전하면 된다. 그렇게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고,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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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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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스럽게 던진 한 마디 농담이 개인의 삶을 처절하게 파괴한다.

주인공 루드비크는 가볍고 성마른 기질을 가진 대학생이었다. 방학 내내 당 교육 연수를 떠난 고지식한 여자 친구 마르케타에 대한 그리움에 지쳐, 그녀에게 보내는 엽서에 이런 농담을 적은 게 그의 인생을 망가뜨려 버렸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마르케타는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학의 당 사무국에 이 엽서를 신고한다. 개학 후 당 사무국에 호출된 루드비크는 호된 심문과 비난을 받는다. 너는 낙관주의 없이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류의 아편이라고 했는데, 너같은 트로츠키주의자에게 건설적 낙관주의는 아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지? 루드비크는 자기가 한 말이 그저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변명하지만, 그럴수록 간부들에게 말꼬리를 잡혀 궁지에 몰린다. 다른 건 몰라도 트로츠키를 언급한 건 스탈린주의가 만연했던 당시 1948년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었을 터다. 루드비크는 친구였던 조직의 위원장 제마네크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었으나, 제마네크는 그를 배신하고 루드비크를 당에서 축출하며 대학에서도 쫓아낸다는 엄혹한 처분을 내린다. 대학생 신분을 잃은 루드비크는 낯설고 먼 탄광부대로 배속된다.

사실상의 수용소로 끌려간 그는 자신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 혼자서 외출을 나갔다 극장에서 루치에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가 풍기는 우울과 쓸쓸함에 매혹된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루드비크는 더 이상 비탄의 구렁텅이에서 헤매지 않게 된다. 그는 루치에를 통해 구원받기를 원하나, 루치에는 루드비크의 부담스러운 구애를 견디지 못하고 관계는 파국에 이른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루드비크는 탄광부대에서 제대하고 우여곡절 끝에 한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헬레나라는 라디오 방송국 기자가 연구소에 대한 취재 차 인터뷰를 청하고, 루드비크는 헬레나와 대화하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친구 제마네크의 부인임을 알게 된다.

이 기막힌 우연 앞에서 루드비크는 헬레나를 정복함으로써 제마네크에게 처절한 패배감을 안기겠다는 복수를 꿈꾼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헬레나를 유혹한 끝에, 그의 고향 마을 모라비아의 축제에 헬레나를 초대한 루드비크는 과연 이 복수를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을까?

교조화된 이데올로기는 극단적인 폭력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소련의 대숙청이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바로 머리에 떠오르지만 비단 공산주의만 그런 게 아니다. 당장 ‘윤어게인’으로 대표되는 극우들이 보여주는 행태만 봐도 충분하지 않은가. 이 소설의 시발점은 이데올로기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지만, 그 길고도 험난한 세월을 지나 주인공이 맞닥뜨린 건 지독한 농담 같은 결말이었다. 내내 11월의 헐벗은 나무 같던 스산한 이 소설의 끝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밀란 쿤데라는 상술한 줄거리 외에도 여타 등장인물 - 야로슬라프, 코스트카 - 의 시선을 빌려 폭압적인 체제에 의해, 급변하는 시대에 의해, 신념과 욕망의 괴리에 의해 고통받는 군상들을 보여준다.

농담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루드비크가 진심으로 복수를 꾀했지만 그 결말이 한 편의 소극(笑劇)이 되어버린 걸 보면, 우리네 삶은 진지한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망각에 의한 풍화가 일생의 복수조차 결국엔 농담으로 만들어 버리는 아이러니가 곧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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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 사로잡힌 영혼들의 이야기
비비언 고닉 지음, 성원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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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체 믿기지 않겠지만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다. 그저 존재한다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1920~30년대 미국 공산당은 미국 내 노동운동과 사회 변혁의 주체였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억압받고 차별받는 약자들을 보호하고, 좀 더 진보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있는 미국인이 100만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자본주의에 저항하고자 하는 미국 시민들의 열망이 엄청났다는 걸 증명한다. 그들 중 수천 명의 공산당원들은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궁핍은 물론이고 수배와 재판, 투옥까지도 감내했던 열성당원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자본주의 세계의 중심이었던 미국에서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공산당 활동을 한 것일까.

비비언 고닉이 이 책을 낸 시점은 1977년이었다, 스탈린이 죽고 뒤를 이은 흐루쇼프가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스탈린이 저질렀던 잔혹한 대숙청과 학살을 폭로하면서 전세계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다. 안 그래도 2차대전 이후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광풍으로 인해 상당히 세가 꺾였던 미국공산당은 이 사건으로 인해 그야말로 붕괴되었다. 당의 중추를 이룬 핵심당원들이 줄줄이 당에서 탈퇴하면서 당을 이끌어갈 동력 자체를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 비비언 고닉은 당시 공산당을 위해 기꺼이 청춘을 바쳤던 이들을 미 전역을 돌며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글로 엮어 이 책을 낸다.

비비언 고닉은 이 책의 서두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미국 공산주의자들은 정확히 누구인가? 미국공산당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이상에 복무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바친 이들은 어떤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나? 이들은 정확히 어디서 왔나? 만일 실제로 그러하다면 이들은 미국 대륛에서 어떤 삶의 귀퉁이를 대변하는가? 시간, 장소, 사상과 조우하는 불꽃놀이 같은 순간에 감응하고 공산주의에 발을 담금으로써 열정을 품은 존재로 변신할 채비가 된 모든 인간 내부에 살아 있는 그 잠든 허기에 말을 건 것은 미국의 삶 중에서도 어떤 구체적인 조건들이었나?”

반공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공산주의자의 이미지는 악마 그 자체였다. 미국 공산주의의 전성기를 경험하지 못했던 고닉의 동세대에게도 미국공산당원들은 극악무도한 ‘바다 건너에서 온’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고닉이 만난 이들의 인종과 성격, 직업은 다양하지만, 딱 한 가지 그들 모두에게서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인생 어느 때도 겪어 보지 못한 희열에 가득 차서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공산당이 그들에게 불어넣은 열정이 너무나 커서 이 당원들은 보장된 미래와 재산은 물론, 가족까지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당 활동에 매진했다. 어떤 계기로든 공산주의를 접한 이들은 대오각성한 듯 항상 고양된 상태여서 어떤 어려움도 기꺼이 견딜 수 있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이들은 마치 예수 재림을 기다리듯 혁명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예수 재림은 현실이 아닌 종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당장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한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었는데도 미국 땅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들 마음 속에는 조금씩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이 식듯, 공산주의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서서히 때로는 급작스럽게 사그러들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가 아닐까 싶다.

중앙당(소련공산당)에 대한 무비판적인 복종, 툭하면 벌어지는 야만적인 당원 비판과 축출,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비인간적 행태. 이 모든 것들이 이들을 로맨스에서 깨어나게끔 한 요인들이었다. 당을 떠난 이들은 여전히 공산주의자로 남아 있거나, 페미니즘으로 경도되거나, 사회주의자(수정주의라고 비판받는)가 되거나, 극렬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이들 중 한 명은 자신이 몸담았던 공산당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 그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삶이었지. 난 공산당원으로서 우리 시대의 심장부를 겪었던 것 같아. 인류의 가장 문제적인 감각이 20세기 공산주의의 역사 안에 체현되어 있다고. 우리 시대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가장 치열하게 씨름할 수 있는 방법은 공산주의자가 되는거 였소. 4백 년 전에는 기독교 교리와 교회 정치를 통하는 거였지만 우리 시대에는 단연 마르크스주의와 공산당이었지. 내 생각에는 지금도 그렇고.”

즉 이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사명감을 갖고 세상을 변혁하는 수단으로 공산당을 골랐던 것이었다. 이는 미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시대에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겠다는 이들의 강렬한 감정의 분출이고 폭발이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는 지난 2년 간 내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보여준 헌신과 꺾이지 않는 의지에 지극한 감동을 느낀다. 시대가 지나고 세대를 건너도, 변혁을 향한 우리의 로맨스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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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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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 몬태그의 직업은 방화수(Fireman)다. Fireman을 소방수가 아니라 방화수라고 하는 이유는 이들이 불을 끄는 게 아니라 불을 지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는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누군가 집에 책을 갖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이 방화수들은 탱크에 물 대신 등유가 가득 든 트럭을 타고 방화서에서 출동한다.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거리를 질주하여 현장에 도착하면, 도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샅샅이 집을 뒤져 책을 찾아내고 등유의 불줄기로 남김없이 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 나라에서 책은 마약보다도 훨씬 위험한 물건 취급을 당한다.

몬태그의 아내 밀드레드는 하루 종일 벽면 TV에 붙어 산다. 그녀는 이미 거실 벽 3면을 TV로 만들어 놓고도 나머지 한 면 마저 TV로 채우자고 몬태그를 조른다. 밀드레드는 하루 종일 벽면 TV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영상을 시청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녀는 밤에 잘 때 마저 귀마개 라디오를 끼고 잔다. 그 부작용으로 하마터면 죽을 뻔 했는데도 그걸 자각하지 못한 채, 요즘 말로 하면 도파민에 중독되어 살고 있다. 그녀에게는 삶의 가치나 남편의 애정보다 벽면 TV가 백만배는 중요하다.

몬태그가 즐겁게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어느 날, 클라리세라는 소녀를 우연히 만난다. 소녀의 나이는 ‘미친’ 열일곱.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하고 그걸 말로 옮기는 소녀를 보며 몬태그는 두려움과 동시에 호기심이 생긴다. 적국과의 전쟁이 임박한 이 나라에서, 더구나 책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회에서 제거될 수 있는 이 나라에서는 클라리세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없으니까. 이 나라에 남은 건 밀드레드처럼 체제에 순응하여 머리를 텅 비우고 사는 사람들 뿐이다. 클라리세를 만난 몬태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이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책에 불을 지르는 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때처럼 현장에 출동한 몬태그는 그 집에서 책을 잔뜩 찾아내고 자기도 모르게 책 한 권을 방화복 안에 숨긴다. 집주인 노파는 책에 불을 지르려는 방화수들을 막아서고, 성냥을 꺼내어 스스로 불을 붙여 책과 함께 산화한다. “너희들은 내 책을 뺏어 갈 수 없어”라고 외치며. 큰 충격을 받은 몬태그의 마음 속 의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자신의 집에 책들을 숨기게 된다. 그의 상관인 서장 비티는 이를 눈치채고 몬태그의 집으로 찾아가 그에게 넌지시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한다. 하지만 책을 불태우는 방화서의 서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박식하고 교묘한 비티의 말재주 조차 확신이 되어 버린 몬태그의 의심을 잠재울 순 없다. 그는 파버라는 노교수를 찾아가 세상 모든 방화서를 없앨 계획을 논의한다. 하지만 방화서로 돌아간 그에게 급박한 출동 명령이 떨어지고, 숨가쁘게 달려 도착한 현장은 바로 몬태그의 집이었다. 집에 책을 숨긴 게 발각된 몬태그는 과연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 SF소설이 출간된 연도는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였다. 이 음울하고 칙칙하지만 현대 사회에 대한 어마어마한 통찰을 보여주는 책이 70년도 더 전에 쓰였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 밀드레드는 숏폼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사는 현대인 그 자체이다. 자극적이고 일화적인 정보와 영상에 열광하는 소설 속의 대중들은 인스타와 틱톡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쾌락에 빠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소설 속의 국가가 전체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국가가 독서를 금지했으리라 짐작하게 되지만, 사실 먼저 책을 거부한 건 대중들이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영화와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그리고 책들이 점점 단순하고 말초적으로 일회용 비슷하게 전락하기 시작”했다. 모든 정보가 압축되고 각색되어 한 줄 짜리 헤드라인으로 끝나는 세상에서 책은 ‘왜?’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위험한 물건이었다. 해석이 필요없는 정보를 잔뜩 주입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행복과 고양감을 느끼는데, “철학이니 사회학이니 하는 따위의 불안한 물건들”은 우울한 생각만 낳게 되니까.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은 그래서 대중에게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어 마침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전제적인 정부일수록 국민들이 책을 가까이하는 걸 두려워한다. 윤석열 정권은 독서 관련 예산을 10분의 1 토막냈고, 국민의힘 당적을 가진 마포구청장은 마포구의 작은도서관들을 폐쇄하여 스터디카페로 만들려 했으며 예산 삭감에 항의한 마포중앙도서관장을 파면해 버렸다. 국민들이 책을 통해 비판 의식을 갖는 것만큼 그들에게 위험한 건 없기 때문이리라. 최근 극우들이 인스타를 선동의 장으로 골라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마구 퍼뜨리는 것도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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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인간의 최후 - 세컨드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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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제6대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전임자들과 결이 많이 다른 인물이었다. 비밀경찰을 동원하여 정적들을 제거하려 들지 않았고, 인민들을 고압적으로 다루지도 않았다. 종종 영부인 라이사 여사와 손을 잡고 거니는 다정한 모습도 소련 인민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광경이었다. 그는 심지어 러시아인인데도 술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임자들과 달랐던 그의 행보는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 자본주의를 도입한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점진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소련의 체질을 개선하고자 했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의 의도대로 천천히 굴러가지 않았다. 그 이후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붉은 인간의 최후>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소련 붕괴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구소련 민중들을 만나 인터뷰한 그들의 삶이 담겨 있다. 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도입된 자본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다. 국영 기관에서 과학자로 근무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청소부로 일해야 했던 정도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소련 시절엔 모두가 가난했기에 오히려 결핍을 몰랐던 사람들이, 자유와 함께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 자본이라는 이름의 쓰나미에 휩쓸려 버렸다. 기회를 잡은 소수의 사람들은 큰 돈을 벌었지만 무법천지가 된 러시아에서 범죄의 타겟이 되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91년, 소련 공산당의 보수파들과 군이 뭉쳐 만든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실행했던 8월 쿠데타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십 수백만의 민중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작년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를 우리 국민들이 막아낸 빛의 혁명과 흡사하게, 러시아 민중들은 죽을 각오를 하면서도 한데 모여 평화를 노래하며 끝없이 행진했다. 그렇게 쿠데타를 막아낸 그들은 이제 곧 좋은 세상이 올거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등장한 것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인민의 몰락이었다. 소련의 이름 아래 모여 있던 공화국들이 독립하고, 잠재되어 있던 민족 갈등이 폭발하여 끔찍한 살육이 반복된다. 인민들의 생활 수준이 소련 시절과는 비할 수 없이 나빠져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지옥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사람은 먼지이고 티끌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터뷰이들의 성향도 그들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역시 러시아는 스탈린 같은 독재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사람들, 철지난 레닌주의는 청산해 마땅하다는 사람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사람들, 수용소와 대숙청의 시대가 당연하다는 사람들,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작가의 전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보다 훨씬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외부에서 보는 시선과 달리 푸틴의 장기 집권이 단지 그의 폭압적 독재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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