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
앵거스 플레처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잉(Being)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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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발명되었다. 용기를 북돋우고, 사랑을 불지피고, 아픔을 치유하고, 절망을 떨쳐내고, 창의의 불꽃을 피워내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기원전 2300년경, 수메르의 사르곤 대왕의 딸 엔헤두안나 공주가 최초로 만들었다고 알려진 문학은 그때부터 인류에게 수없이 많은 기여를 해왔다. 사람들은 문학 작품 속에 숨겨진 발명품을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발굴하고 연구해 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소피스트들에게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자 앵거스 플레처는 우리에게 작품들 속에 숨겨진 문학적 테크놀로지 25개를 소개한다. 그 테크놀로지들은 우리가 문학을 읽는 동안 뇌의 특정 영역과 결합하여 우리에게 용기와 사랑과 안도와 희망과 연대감 등의 온갖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즉 문학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서 제기되는 의심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발명품˝이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뇌과학이 밝혀내기 전부터 문학적 테크놀로지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고 있었다.

이 책은 단테가 <신곡>에서 알레고리를 통해 우리의 정신을 자유롭게 했고,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고전 문학 뿐만 아니라 현대의 드라마, 영화, 심지어 만화나 게임에서도 이런 문학적 테크놀로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예시를 잔뜩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말이 전부 그럴듯하게 들리진 않는다. 앵거스 플레처는 자기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교묘한 수법을 쓰는데, 문학적 테크놀로지를 발명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실감나는 논픽션처럼 재구성한 것이다. 이 수법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뒤에 제시되는 주장의 논거가 잘 납득되지 않는 게 상당히 많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문학적 테크놀로지들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기 힘들다.

저자는 어쩌면 서문 대신 결어의 말들을 먼저 보여주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소피스트들이 철학자들에게 패배하여 사라진 후 이 문학적 테크놀로지는 잊혀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문학 속에서 심오한 주제와 우화적 상징을 찾기 위해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독법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 책은 문학을 분석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문학 속에 숨겨진 테크놀로지로 인해 유발되는 경이로움과 공감, 서스펜스 등의 감정을 통해 우리 인간이 어떻게 더 고양될 수 있는지, 치유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나온 시와 소설에 대한 해설을 달달 외우는 것보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향유하는 법을 배우는 게 더 낫다는 건 이 책에서 내가 동의하는 몇 안 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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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들 - 뇌의 사소한 결함이 몰고 온 기묘하고도 놀라운 이야기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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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킨은 <뇌과학자들>에서도 전작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와 비슷한 수법을 쓴다. 특정한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자기가 말하고 싶은 소재 -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에서는 그것이 유전자였고 <뇌과학자들>에서는 뇌였다 - 를 풀어내는 것 말이다. 탁월한 대중 과학 저술가로서, 그리고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샘 킨의 역량은 의심할 바 없다. 당신이 뇌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뇌를 부위별로 구분하고 각각이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를 설명하려 하지 않을까? 쉬운 방법이지만 그만큼 딱딱하고 지루한 설명이 될 것이다. 샘 킨의 에피소드 중심 서술은 마치 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여 독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대개 큰 불행을 안고 있다. 뇌과학의 역사는 곧 뇌 손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의 뇌 손상 환자들로 인해 두뇌에 대한 인류의 지식이 비약적으로 늘 수 있었다. 마상경기 중 부러진 창끝이 얼굴을 꿰뚫은 앙리 2세, 정신 이상으로 미 대통령을 암살한 찰스 기토와 리언 촐고시, 광산 폭발 사고로 쇠막대가 머리를 관통한 피니어스 게이지 등등. 그 외에도 익명으로만 알려진 다양한 환자들과 이를 연구한 뇌과학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뇌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여러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지,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저장되는지. 이 질문들은 고대부터 철학의 단골 주제였지만 뇌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언젠가는 밝혀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철학의 오랜 의문이 마침내 과학에 의해 풀리는 결말을 상상한다.

좋은 책이지만 물론 단점은 있다. 에피소드 중심이라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찾기 힘들다는 것. 읽는 동안엔 무척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과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말하기 어렵다. 사실 이 책의 아무 챕터나 펴서 읽어도 아무런 문제나 위화감이 없는 책이라 굳이 집중해서 읽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산만한 독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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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원정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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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엔 반드시 따라 붙는 평가가 있다. 간결하고 유려한, 라틴 고전 문학 최고 수준의 문장력이 담긴 책이라는 찬사. 정치적 재능 못지 않게 문재가 뛰어났던 카이사르 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게 바로 이 <갈리아 원정기>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그 평가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기대를 잔뜩 품고 읽어서 그런지, 군더더기 없다는 문장은 오히려 건조하고 메마르게 느껴진다. 라틴어 원문은 또 다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라틴 번역의 대가 천병희 선생조차 어쩔 수 없는 번역의 한계라면, 내가 이 책의 문학적 성취에 감탄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카이사르의 교묘한 역사 왜곡의 술책이다. 카이사르는 본인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주체를 ‘나‘가 아닌 3인칭 ‘카이사르‘로 설정하여 독자로 하여금 객관성을 담보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철저히 로마 제국주의, 카이사르의 패권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인데도 독자는 어느덧 갈리아 한복판에 떨어진 로마 군단을 응원하고 그들의 수적 열세를 뒤집는 전술에 열광하고 안도하게 된다. 가만히 보면 알프스 너머 갈리아 정복은 로마의 직접적인 국가 안보와는 거리가 먼 정복사업이다. 스페인이 남미를 침략하여 캐낸 어마어마한 은으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듯이,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은 식민지 확보를 위한 제국주의적 침공과 다르지 않다.

거칠고 어리석은 야만인인 갈리아 부족들이 로마에 저항하면 군단을 동원해 가차없이 분쇄하지만, 그들이 항복하면 카이사르의 한없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용서하고 화평을 맺는다는 루틴이 이 책 내내 반복된다. 이런 식이면 일제 강점기의 만행도 일제의 입장에서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겠다 싶다. 카이사르는 스스로 갈리아 족의 친구인 양 행세하고 갈리아의 저항세력은 제멋대로인 오합지졸로 묘사하지만, 이를 일제와 독립군으로 치환해 보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레토릭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인들이 갈리아 저항의 구심점 베르킹게토릭스를 레지스탕스의 상징적 인물로 떠받든 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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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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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나 두께 등 외형만 보고 만만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기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아니 간단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나 어려운 책이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 게 아니라, 마치 물 속에 들어가기 전 깊이 심호흡을 하고 준비를 하듯 마음을 가다듬고 글줄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저자가 인류학을 전공한 학자이지만 이 책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인류학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저자가 책 내내 뒤르켐, 고프먼 같은 사회학자와 루소, 푸코, 아렌트 등의 철학자들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을 아주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사람이 물리적 공간으로 존재하는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 받는 조건은 사회를 구성하는 타자들로부터 무조건적인 환대를 제공받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현대 사회는 우리가 잘살건 못살건 배웠건 못 배웠건 모두 사람으로서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사람행세를 하고 사람대접을 받는 데 물질적인 조건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핵심 메시지 자체는 지극히 당연하고 쉬워 보이나, 이 책의 진가는 저자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개되는 철학적 논증에 있다.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고. 하지만 책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고 논리 전개를 조심조심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부터 저자가 펼치는 굳세고 치열한 사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저자인 김현경은 위에서 언급한 쟁쟁한 사회학자나 철학자들의 언술에 숨어 있는 허점을 일일이 논박하고 자신의 주장을 찬란하게 피워 낸다.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큰 장점은 작금의 사회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훌륭한 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최근 벌어진 MBC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전장연 지하철 투쟁, 이태원 참사 분향소 설치 반대 등등의 사건이 갖는 의미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달리 보인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소외된 ˝사람˝들을 특정한 ˝장소˝에 들어오는 걸 ˝환대˝하지 않음으로서 공동체 성원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한다는 데 있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정권이 이 책의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정반대로만 행동하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어려운 책이지만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왜 공동체를 기반으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해야만 하는지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드는 멋진 책이다. 오랜만에 큰 자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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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대혁명 - 중국 인민의 역사 1962~1676 인민 3부작 3
프랑크 디쾨터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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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로 유명한 중국 작가 위화의 작품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바로 문화 대혁명이다. 그의 에세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도 그가 문화대혁명 시절 겪었던 수많은 일화와 그에 대한 단상이 기록되어 있다. ‘착취 계급의 모든 낡은 사고와 낡은 문화, 낡은 전통, 낡은 관습‘을 타파한다는 기조 아래 행해진 문화 대혁명으로 중국은 완전히 뒤집혔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고, 수없이 많은 문화 유산이 파괴되고, 공장 노동자들이 일손을 멈추고 혁명에 동원되었다. 위화의 책에도 그가 고등학생 시절, 문화 대혁명의 칼끝을 피하기 위해 선생이 위화에게 제발 자신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써붙여달라고 애걸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척이나 부조리하면서 우스꽝스러운, 그러면서도 참혹한 장면인데 이 책 <문화 대혁명>에서 발가벗겨진 혁명의 실체는 그보다 훨씬 심각했다.

마오쩌둥이 문화 대혁명을 기획하고 실행한 것은 앞서 대약진 운동의 처참한 실패로 말미암아 자신의 권력이 류사오치에게 넘어가는 것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류사오치를 비롯한 당내 지도부를 숙청하기 위해 마오쩌둥은 학생들을 이용했다. ‘사령부를 포격하라‘며 홍위병의 등장을 부추긴 것이다. 홍위병들은 고비 사막의 메뚜기떼 마냥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이들이 저지른 무시무시한 규모의 반달리즘은 문화와 예술 뿐만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정신까지 완전히 박살내버리고 말았다. 오늘날 중국인들의 부정적인 특질로 여겨지는 것들 - 무례하고 막무가내로 자기 이득만 취하고 타인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는 심성 - 은 거개가 이때 만들어졌으리라 짐작된다. 내 가족이, 내 이웃이 하루 아침에 ‘계급의 적‘으로 몰려 조리돌림 끝에 죽임을 당하는 상황이 10년 동안 반복되면 그 누가 내 주변을 돌볼 수 있으랴.

결국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앞세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세력을 전부 숙청하고 자신을 신격화 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홍위병들이 조반파와 보황파로 나뉘어 전국토를 준내전 상태로 만드는 등 통제가 힘들어지자, 마오쩌둥은 토사구팽을 결행한다. 인민해방군를 동원해 홍위병을 해산하고 그들을 농촌으로 추방해 버린다. 이것이 마오쩌둥의 하방(下放)운동이다. 농촌으로 쫓겨난 홍위병들은 빈곤한 환경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고 오랫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처럼 문화 대혁명은 중국 인민들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상흔을 남겼다. 문혁을 통해 권력을 다시 움켜쥔 마오쩌둥이 승리자인 것처럼 보였으나 그도 2인자 린뱌오의 배신에 충격을 받아 그 후 오래 살지 못했다. 인류 역사에서 한 인간의 권력욕이 비극을 불러온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마오쩌둥이 집권한 30여년 간의 중국 현대사만큼 광기로 가득 찬 재앙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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