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 원정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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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엔 반드시 따라 붙는 평가가 있다. 간결하고 유려한, 라틴 고전 문학 최고 수준의 문장력이 담긴 책이라는 찬사. 정치적 재능 못지 않게 문재가 뛰어났던 카이사르 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게 바로 이 <갈리아 원정기>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그 평가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기대를 잔뜩 품고 읽어서 그런지, 군더더기 없다는 문장은 오히려 건조하고 메마르게 느껴진다. 라틴어 원문은 또 다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라틴 번역의 대가 천병희 선생조차 어쩔 수 없는 번역의 한계라면, 내가 이 책의 문학적 성취에 감탄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카이사르의 교묘한 역사 왜곡의 술책이다. 카이사르는 본인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주체를 ‘나‘가 아닌 3인칭 ‘카이사르‘로 설정하여 독자로 하여금 객관성을 담보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철저히 로마 제국주의, 카이사르의 패권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인데도 독자는 어느덧 갈리아 한복판에 떨어진 로마 군단을 응원하고 그들의 수적 열세를 뒤집는 전술에 열광하고 안도하게 된다. 가만히 보면 알프스 너머 갈리아 정복은 로마의 직접적인 국가 안보와는 거리가 먼 정복사업이다. 스페인이 남미를 침략하여 캐낸 어마어마한 은으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듯이,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은 식민지 확보를 위한 제국주의적 침공과 다르지 않다.

거칠고 어리석은 야만인인 갈리아 부족들이 로마에 저항하면 군단을 동원해 가차없이 분쇄하지만, 그들이 항복하면 카이사르의 한없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용서하고 화평을 맺는다는 루틴이 이 책 내내 반복된다. 이런 식이면 일제 강점기의 만행도 일제의 입장에서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겠다 싶다. 카이사르는 스스로 갈리아 족의 친구인 양 행세하고 갈리아의 저항세력은 제멋대로인 오합지졸로 묘사하지만, 이를 일제와 독립군으로 치환해 보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레토릭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인들이 갈리아 저항의 구심점 베르킹게토릭스를 레지스탕스의 상징적 인물로 떠받든 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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