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평점 :
지금 시대에 ‘걷기’는 주로 건강을 위한 행위로 취급된다. 원시 인류가 이족보행으로 인해 지구를 뒤덮게 되었음을 생각해보면, 인간이 건강해지기 위해 걷는다는 게 굉장히 작위적이고 주객이 전도된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움베르토 에코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미국인들은 건강해지려고 조깅을 한다고 말하자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처럼, 걷는다는 것은 인간이 살기 위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그런데 지금은? 자동차 같은 교통수단에서 내려 목적지인 건물에 들어가는 짧은 순간에만 보행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미국에서는 말이다.
리베카 솔닛은 인간이 살기 위해 자연스럽게 행했던 ‘걷기’가 목적을 가진 행위 그 자체가 된 근대 이후의 ‘보행’ 문화를 다룬다. 그러면서 보행이 갖는 여러 가지 의미를 탐색한다. 이 책은 보행에 대한 통사(通史)이면서 문화사다.
사실 이 책은 문제가 좀 있다. 무척 인상적인 첫 장을 지나면, 중반부가 넘어 가기 까지 꽤 지루한 언설이 계속된다.(정확히는 루소와 키에르케고르가 등장하는 시점 부터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잘 아는데, 독자에게 잘 전달이 안 된다. 글의 흐름이 자꾸 끊겨서 집중이 힘들고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 와중에 진화론을 남성우월주의적이라고 공격하는 건 덤이다. 과학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인문학 작가들이 종종 보이는데 리베카 솔닛도 그 중 하나인가 싶다.
그렇지만 이 책은 분명 가치가 있다. 지루하지만 언뜻언뜻 눈앞이 확 밝아지는 통찰이 벼락처럼 내리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 중 하나, ‘걸음으로써 연대하고 저항하고 비판한다. 걷기는 곧 힘이다. 걷는다는 행위는 내가 살아가는 공간 전부를 연결한다.’는 명제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성미에 맞을 것 같다.
다음 구절은 광장에서의 보행이 민주주의를 지탱한다는 저자의 사상을 잘 보여준다.
“공공장소가 없어진다면 결국은 공공성도 없어진다. 개인이 시민, 즉 동료 시민들과 함께 경험하고 함께 행동에 나서는 존재가 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시민이 되려면 모르는 이들과 함께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토대는 모르는 이들에 대한 신뢰이잖은가. 공공장소란 바로 모르는 이들과 차별 없이 함께 하는 장소다. 공공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현실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공동체적 행사들을 통해서다.”
민중 봉기와 반란의 시대에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골목이 많은 시가지가 유리했다. 과거 혁명기의 파리가 그러했듯이.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한 후, 오스만 남작을 시켜 파리를 관통하는 드넓은 대로(군대의 진입은 수월하지만 시민 세력의 방어는 어려운)들을 뚫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가두 집회와 행진 등 비폭력 투쟁이 주류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이러한 대로와 광장이 민중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16년 촛불 혁명의 성공엔 광화문 광장의 존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걸음으로써 혁명이 시작되고 모임으로써 비로소 혁명이 완성된다.
이 책의 마지막 무대는 라스베이거스다. 미국에서 보행자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가 모든 것이 인위로 가득 찬 이 곳, 라스베이거스라는 점은 대단한 아이러니이면서 동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근대 유럽에서 태동한 보행 문화는 애초에 자연을 만끽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라스베이거스 같은 특수한 공간에서만 언제든 마음놓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은 안전하지 못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에서 보행은 유리병 속의 모형 범선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안전하지만, 서두에서 말했듯이 ‘보행’은 건강을 위한 행위로 서서히 박제되어 가고 있다. 한강변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입증한다. 물론 그 속에는 나도 있다.
이 책의 인상적인 구절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서평을 끝맺고자 한다.
-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하려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육체노동이라고 할까.”
- “보행을 중요한 행위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불순함이다. 보행이 풍경, 생각, 만남과 불순하게 뒤섞일 때, 걸음을 옮기는 육체는 마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그럴 때 세상이 마음에 스며든다.”
- “헬스장이라는 실내공간은 없어진 야외의 대체물이자 육체의 부식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다. 헬스장은 근육과 피트니스를 생산하는 공장이나 마찬가지이고, 대부분의 헬스장은 실제로 공장과 비슷하다. 기계로 가득한 삭막한 공간, 금속성 광택, 반복적 업무에 빠져 있는 고립된 사람들.(공장의 미학도 근육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산업혁명이 공장에서 노동을 제도화하고 파편화했다면, 지금 헬스장은 여가를 제도화하고 파편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