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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발견 (양장)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평점 :
평범하다 못해 고루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아주 독특하고 도전적이다. 케플러에서 시작하여 레이첼 카슨에 이르기까지 여러 위대한 인물들을 조명하지만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창적인 접근방법을 따른다. 이 책엔 천문학과 문학, 예술에 이르기 까지 10명의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그 중 남성은 단 세 명이며 차지하는 분량도 극히 적다. 반면 나머지 7명 외에도 빼어난 여성들이 수없이 등장하며 다들 시대를 거스르는 진취성을 뽐내고 있다. 페미니즘을 말하지 않지만 그 어떤 페미니즘 이론서보다도 페미니즘을 웅변하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멀찍이 떨어져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별들은 홀로 빛나지만 동시에 서로의 중력에 영향을 받듯이,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궤도를 따라 인생을 살면서도 서로의 빛에 이끌려 교류를 주고 받는다. 비단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어도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까지 이들의 영향력은 끝없이 이어진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구적인 여성들을 역사의 뒤켠에서 데려와 스포트라이트 가득한 무대에 올린 것도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이다. 미국 최초로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여성 회원이 된 마리아 미첼. ‘scientist‘라는 단어의 최초의 주인공 메리 서머빌. 영국 왕립천문학회에서 여성 최초로 금훈장을 받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천문학자 캐럴라인 허셜. 저자 마리아 포포바는 당대에 찬란히 빛났던 별들이지만 지금은 잊혀진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이 책이 다루는 인물들이 대부분 시인과 과학자들이란 것도 흥미롭다. 시와 과학은 어울리지 않는 한 쌍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시를 탐닉했던 과학자들이 많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시에 대한 사랑은 유명하고, 칼 세이건은 과학자보다 차라리 시인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괴테는 위대한 시인이었지만, 스스로를 시인이자 과학자라 생각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지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다. ‘시와 과학이 오랫동안 서로의 상상력을 어떻게 부추겨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이 책엔 수없이 등장한다.
지금도 유효하고 또한 씁쓸한 명제로 이 책의 서평을 마무리할까 한다. 1950년대는 과학이 자연을 압도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했던 시대였다. 레이첼 카슨은 과학의 오만이 탄생시킨 살충제로 인한 파국을 그 유명한 <침묵의 봄>을 통해 경고했고, 그로 인해 화학 회사의 후원을 받은 전문가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게 된다. <진리의 발견>에서 카슨을 다룬 챕터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카슨은 전문가들이 좁은 시야에 갇혀 상호 연결되어 있는 전체를 보지 못하는 시대, 자유 시장 방식이 이익의 제단에 진실을 희생하는 시대에 파편화와 상업화, 진실의 철저한 말소를 경고했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60년이 지났고 정보가 흐르는 파이프라인은 훨씬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세상엔 진실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으며 ‘거짓된 확신‘이 판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