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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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낚시라는 게 있다. 살아있는 미끼가 아닌, 깃털과 실, 후크 등을 이용해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벌레를 모방해 만든 ‘플라이‘를 미끼로 쓰는 낚시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흐르는 강물처럼>의 그 유명한 포스터 - 어마어마하게 긴 낚싯줄이 멋진 곡선을 이루며 날아가는 장면 - 에 등장하는 게 바로 플라이 낚시다. 플라이 낚시로 잡는 어종은 주로 송어나 연어인데, 송어는 지역마다 또는 계절마다 먹이로 삼는 벌레가 다르기 때문에 최대한 벌레와 비슷한 모양으로 플라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연어는 송어와 생태가 달라서 연어의 눈길을 끌 수 있는 플라이라면 어떤 모양이든 상관 없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현 시대에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터이다. 그러나 진화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윈과 거의 동시에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개념을 창안한 생물학자인 그의 이름을 들어보았으리라. 아무런 접점도 없던 두 명이 독자적으로 동일한 이론을 발전시킨 이들의 사례가 과학사에서 워낙 독특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월리스는 8년 동안이나 말레이 군도에서 조류와 곤충을 채집하며 진화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 냈고, 전설의 새였던 극락조를 뉴기니에서 발견하기에 이른다.

빅토리아 시대, 유럽과 미국의 패션을 휩쓴 것은 단연 새의 깃털로 만든 모자였다. 당시의 이상적인 숙녀상은 바깥일을 하지 않는 흰 피부의 여성이었다. 그들은 하루에 몇 번씩 드레스를 갈아입고 모자를 바꿔써야 했다. 이런 기조는 폭발적인 모자 수요를 낳았고 이를 위해 천문학적 숫자의 조류 - 극락조, 앵무새, 큰부리새 등 - 가 희생되었다. 모자 열풍으로 인한 몇몇 종의 멸종은 뒤늦게나마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조류보호 및 깃털 교역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는 훗날 CITES 협약(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의 단초가 되었다.

다시 플라이 낚시로 돌아가자. 연어 낚시를 위한 플라이는 모양에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욱 더 화려하고 복잡한 색채와 형태를 추구하게 되었다.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귀족 계급이 아니면 강에 접근하기 힘들어졌고, 고급 어종인 연어 낚시도 귀족의 취미가 되면서 플라이 제작은 귀족적인 예술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멋들어진 플라이 제작에 필수적인 것은 다채로운 열대 조류의 깃털이었고, 마침 모자 유행과 맞물려 깃털을 수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깃털 교역 금지 법안이 제정되면서 모자의 유행이 사그러들었고 플라이를 만들기 위한 깃털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이제 현대의 플라이 타이어(플라이 제작자)들이 합법적으로 깃털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시골집 다락방에 잠들어 있던 빅토리아 시대의 모자 밖에 없었다.

물론 플라이를 멸종 위기 새의 깃털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합성 섬유나 염색한 일반 깃털로도 충분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플라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플라이 타이어들은 진짜 깃털로 플라이를 만들기를 갈망한다. 심지어 그렇게 만든 플라이를 낚시에 쓰지도 않는데! 이 위험한 욕망은 결국 사고를 일으킨다.

이제 에드윈 리스트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뉴욕 북쪽의 클레이버랙이라는 마을에서 플루트 신동으로 자라던 그는 열 살 때 플라이 타잉을 접하고는 푹 빠져버렸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을 발판으로 그는 어린 나이에 플라이 타잉의 미래라 불릴 정도로 성장한다. 그는 십대 후반에 플루트 전공으로 영국 왕립음악원에 합격, 영국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영국에서도 플라이 타잉에 대한 집착은 그대로였다. 항상 빅토리아 시대의 플라이를 재현하고 싶어 했던 그의 욕망은 결국 희귀 조류 표본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트링박물관에 침입하여 299 마리의 조류 표본을 훔치게 만든다. 그가 훔친 표본 중에는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말레이 군도에서 갖고 온 왕극락조도 있었다. 에드윈 리스트는 이렇게 훔친 표본의 깃털들을 떼어내 이베이를 통해 전 세계의 플라이 타이어들에게 판매한다. 플라이 타이어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힘입어 리스트는 많은 수익을 올렸으나, 경찰의 추적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체포되기에 이른다.

이 책의 장르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범죄 르포이면서 풍속사이기도 하고, 과학사이면서도 생태 서적이기도 하다. 법정 논픽션의 면모도 갖고 있지만, 결국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로 귀결된다. 이 모든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책에서 눈을 떼기 힘든 마력을 발휘하는 책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인류를 위한 지식의 보존과 탐미적인 예술의 욕망의 충돌이라는 주제를 어디서 볼 수 있으랴.

이 책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에드윈 리스트는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갔고, 그가 팔고 남은 깃털은 전 세계로 흩어져버려 결국 찾지 못했다.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열대 밀림을 헤치며 찾아온 인류의 유산이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너무나 씁쓸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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