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은 건 90년대 초였다. 고등학교 시절, 밤에 라디오를 틀면 늘상 <앵무새 죽이기>의 광고가 흘러나왔던 기억이 있다. 슬프면서 스산한 나레이션 때문에 당시엔 미스터리 공포 소설인 줄로만 알았었다.

이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스카웃 핀치라는 여섯 살 짜리 꼬마다. 메이콤이라는 미국 남부 시골 동네에서 변호사인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와 오빠 젬 핀치와 같이 사는 이 당돌한 말괄량이 소녀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성장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다.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하니 <빨간머리 앤>이나 <폴리아나> 같은 작품을 연상하기 쉽지만, 이 책은 오히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가까워 보인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조그만 아이의 시각에서 엄청난 사건과 모험이 벌어지는 평범한 아동 성장물의 흐름을 따라간다. 주인공 스카웃이 저자 하퍼 리의 자전적 인물이라면, 스카웃의 친구 딜은 실제 하퍼 리의 절친이었던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렇게 평탄할 것만 같던 이야기는 중반부 톰 로빈슨 사건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한다. 사실 전반부에도 메이콤의 평범하고 선량한 이웃들이 당연하다는 듯 인종차별적 언사를 일삼는 모습이 종종 비춰졌다. 그러나 후반부 들어 흑인 톰 로빈슨이 쓰레기 같은 삶을 사는 레드넥 집안의 딸 메이옐라를 강간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면서 흑백 갈등이 폭발한다. 누가 봐도 누명임이 분명한 사건이지만, 메이콤의 백인들은 선량한 톰 로빈슨이 단지 흑인라는 이유만으로 유죄임을 단정짓는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 근 70여년이 지난 시점임에도 자신들의 차별적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메이콤의 이웃들에게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마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비슷한 시대적 양상을 지닌다.

후반부의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톰 로빈슨의 재판은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인데,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의 뛰어난 변론이 경탄을 자아낸다. 애티커스는 지극히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무서울 정도의 침착함과 공평무사함을 지닌 인류애의 화신이다.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자신과 가족에 대한 테러 위협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는 담대한 인물이기도 하다. 애티커스가 빈틈없는 논리와 언변으로 메이옐라와 그 증인들을 궁지에 몰아붙였음에도, 결국 배심원단은 톰 로빈슨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백인으로만 이루어진 배심원단이 인종 차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의 원제는 <To Kill a Mockingbird> 이다. 모킹버드는 ‘흉내지빠귀’라는 새로 앵무새와는 다르지만, 번역 전부터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이 수입되어서 이렇게 굳어진 듯 하다. 애티커스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엽총을 사주면서 흉내지빠귀는 다른 새와 달리 노래만 할 뿐, 인간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 않으니 총으로 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보면 <앵무새 죽이기>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죄가 없어도 죽어야 하는 톰 로빈슨의 재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시대를 초월한 훌륭한 작품이지만, 번역의 질이 대단히 좋지 않다. 영문과 교수가 번역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퀄리티라 페이지를 넘기기가 거슬릴 정도다. 오래된 작품이라 재번역은 어렵겠지만, 만에 하나 제대로 다시 번역된다면 또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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