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고요를 만나다 - 차(茶) 명상과 치유
정광주 지음, 임재율 사진 / 학지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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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광주는 대학 시절 심리학자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매료되었던 기억을 잊지 못해 결혼 후에 대학원에 입학했고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뒤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명상을 접하면서 이전에는 결코 접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됐다. 작가가 명상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0여 년 전쯤으로 갑자기 불어닥친 인생의 풍랑에 휘말려 허덕이던 때였는데 우연히 명상을 접하면서 삶을 정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우연하게 차를 접하게 되면서 차에 흠뻑 빠지게 됐고 차의 도움을 받아 명상이 더욱 풍부해지고 촉촉해졌다. 작가가 차를 만난 때는 쏟아지는 일 때문에 제정신으로 사는 게 힘들 정도로 바빴던 때로 새벽이면 늘 하던 명상과 기도도 시간 부족과 조급증에 떠밀려 하지 못하던 무렵이었다. 작가는 그 경험을 살려 대학원에서 상담심리 관련 전공과목을 강의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교원직무 연수 다도예절에서 '차명상'을, 차문화대학원에서는 '티 아트'를 강의하고 있다. 명상학회 교육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월간 '차의 세계' 및 격월간 '차문화'에 차명상에 관한 글을 연재 중이기도 하다. 작가의 번역서 또한 '명상심리치료입문'으로 자신의 전공인 심리치료와 명상을 주제로 한 책이다.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나뉜다. 첫 번째 장에서는 차명상의 시작을 다루는데 차명상이 무엇인지를 비롯해 차명상과 호흡을 통한 마음 길들이기, 잎차 명상, 찻잎 명상, 가루차 명상, 퇴수기 명상 등 차의 종류와 차에 사용된 물을 통해 하는 구체적인 명상법을 소개한다. 두 번째 장은 다양한 차에 대해서 알아보는 장인데 꽃차 명상과 향기 명상을 비롯해 다양한 차의 성품을 이해하는 법, 보이차, 다르질링 홍차, 기문 홍차, 우바 홍차 등에 대한 간단한 소개, 티 샤워라는 생소하지만 이름이 참 예쁜 차 즐기는 법을 소개한다. 세 번째 장은 명상 자체에 대한 내용이 주가 돼어 차에 대한 설명이 주가 되어던 앞의 두 장과는 약간의 차이를 둔다.

책에는 작가 정광주가 쓴 글뿐만이 아니라 임재율 씨라고 20여 년 전부터 취미삼아 사진을 시작한 분의 사진이 여기저기실려있는데 명상과 차라는 책 주제에 맞게 사진은 주로 자연풍경, 차밭, 차 마시는 사람의 모습, 차를 차린 모습 등 정적인 사진들이다.

개인적으로는 티 샤워라는 게 흥미로웠는데 차를 마시고 남은 잎을 모아 우린 뒤 샤워할 때 사용하는 건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종류의 차를 여러 가지 준비해 놓고 순서대로 차를 마시며 몸속을 씻어내는 법이었다. 혼자 해도 좋겠지만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 한둘과 같이 해보면 더 좋을 거 같다. 차와 함께 할 수 있는 간단한 요기거리를 차의 종류에 맞게 다양하게 준비한 다음, 차의 종류를 바꿔서 마실 때마다 함께 먹는 간단한 요기거리도 바꿔보는 거, 재미있지 않을까? 내 주변에도 차를 참 좋아하는 지인이 있는데 그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티 샤워라는 거에 솔깃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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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 해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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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호화 아파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1개월 전 휴지통에서 임신 테스트기의 포장지를 발견했는데 그녀는 아직도 말을 안 하고 있다. 오늘은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하려고 그는 벼르고 있다. 그때 그녀에게 전화가 왔는데 뭔가 이상하다. 그 순간 그의 집을 방문한 경찰관이 그녀가 교통사고 죽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방금 그녀랑 통화했는데 죽었다니. 이상하지 않나? 그녀 이름은 레오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얀 마이, 정신과 의사였다.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이라. 독일 최고의 범죄심리학자다. 그 일이 일어나던 날, 여자는 자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딸 사라가 자살한 후, 버틸만큼 버텼다고 버틴 후였다. 총으로 자살하려다 혹시라도 실패해 불구가 된 채로 살아남는 게 끔찍했던 여자는 디곡신을 먹고 죽기 위해 근처 가게로 레몬 맛 콜라 라이트를 사러 갔다. 그리고 그곳으로 선배 괴츠가 들이닥치더니 여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데리고 갔다.



여자가 선배에게 끌려가기 몇 시간 전, 베를린에서 가장 인기있는 라디오 방송국 101.5에는 손님이 있었다. 애청자로 뽑혀 방송국을 견학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맞이한 사람은 키티란 여자였다. 그리고 애청자 방문객 중에는 그 남자, 얀도 끼어 있었다. 물론 그 사건이 있은 후 8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정신과의사 면허를 정지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는 꼭 약혼녀 레오니를 찾아야 했다.



그와 여자가 인질범과 협상 전문가로 만났다. 그리고 이라는 몰랐지만 그 둘 사이에는 뭔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얼떨결에 인질극에 휘말린 키티는 자신의 둘째 딸이었고, 죽은 큰 딸 사라는 자신은 몰랐지만 얀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이라는 선배 괴츠, 베를린 경찰 특수부대 책임자인 슈토이어, FM 101.5 라디오 방송 편성제작국장 디젤 등과 일을 진행하면서 엄청난 사실들을 알게 된다. 얀의 사라진 약혼녀 레오니의 진짜 이름과 정체, 사라진 이유를 비롯해 경찰 내부에 숨은 첩자까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사라가 왜 자살했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체는 나에게 낯선 이름이다. 이 사람만 낯선 건 아니다. 현대 독일 작가 자체를 많이 접해보지 못 했으니까. 제바스티안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정신의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문학 및 영화를 넘나드는 방대한 지적 모험을 바탕으로, 인간 심리와 무의식 속에 깔린 극적 요소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작가로 유명한 사람답게 이 소설에서도 정신과의사와 범죄심리학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그런 그의 강점이 이 소설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주는 것 같다. 470쪽 정도 되는 분량이 결코 적은 편이 아닌데도 쉬지 않고 단숨에 읽게 만드는 문장력, 책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이야기 구성력, 조악하지 않은 인물 등 이 소설은 장르소설이 가져야 할 미덕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소설은 이미 영화화가 결정됐다고 하는데 원작이 워낙 탄탄한 만큼 어느 정도만 해도 완성도가 제법 높은 영화가 완성될 거 같다. 밤이 길어진 요즘, 한 자리에 앉아서 단숨에 읽어내릴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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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의 숨겨진 역사와 인류의 미래 우주인의 사랑 메시지
김대선.카르멘텔스 지음 / 수선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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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사람은 두 사람이다. 아니다, 한 명은 '사람'이라고 해는지 모르겠다. 김대선은 1975년생으로 사라진 고대문명이나 타임머신, UFO 등의 미스터리만 보면 가슴이 뛰는 남자다.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국과 소인국, 신화의 주인공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으며, 궁금한 것이 많아 '호기심 천국'으로 불린다고 한다. 특히 동이족에 관심이 많아 동이족의 역사에 대해 항상 궁금함을 가져왔었는데 명상을 하다가 우연히 카르멘텔스를 만나 동이족의 숨겨진 역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증이 좀 풀렸다고 한다. 이런 김대선과 같이 이 책을 쓴 다른 한 사람은 '우주인'이다. 6차원 별인 플레이아데스에서 기상학을 전공하고, 역사학을 부전공한 미모의 재원인데 곧 있을 지구 대변화와 동이족 역사의 비밀, 그리고 지구 대변화 시기의 동이족의 역할에 대해 전하기 위해 다른 우주인처럼 대화가 가능한 사람을 찾다
명상 중인 김대선과 만나게 됐다고 한다. 카르멘텔데스가 사는 별 플레아이데스는 황소자리에 있는 8.6 등급의 별로 황소자리는 7개 별로 돼 있으며 물질문명에서 정신문명으로 진화하여 지구가 차원 이동할 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별이라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우주는 1~10차원으로 돼 있으며 그 중에서 4차원 이하는 물질계의 원리로, 6차원 이상은 비물질계의 원리로 만들어져 있고, 그 중간에 위치한 5차원은 물질계와 비물질계를 이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데 지구는 3차원이라 물질계의 원리에 지배받는다고 한다.



책은 크게 7부로 구성돼 있다. 김대선이 묻고, 카르멘텔스가 대답하는 문답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시간의 흐름을 따라 동이쪽의 씨앗이 뿌려지는 걸로 시작해 환웅시대, 단군시대, 동이족의 문화유산, 동이족의 지류, 북한과 일본과의 관계, 동이족의 미래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책에 대한 사전 지식 전혀 없이 읽은 이 책은 개인적으로는 황당하게 느껴졌다. 물론 우연히 신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엮은 [신과 나눈 이야기] 시리즈를 읽기도 했지만 그 책을 읽었을 때는 적어도 황당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닐 도널드 월쉬가 진짜 신의 이야기를 받아 적은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고, 그 책을 통해 전달된 메세지가 분명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책은 진짜 우주인과 명상을 통해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의 진위 여부를 똑같이 따지지 않는다고 해도, 책을 통해 전달되는 메세지가 지나치게 국수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주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하면 '동이족의 후손인 우리 민족 만만세'로 읽혔기 때문이다. 동이족만이 특별하다는 선민의식 같은 메세지 대신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의식 상태에 대해 전했더라면 차라리 좋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읽고 나서 좋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쟁이로서 이 책은 절대 권하지는 않을 책이다. 누가 읽는다고 한다면? 글쎄다. 다만, 자연을 위해 재생지를 이용하고, 띠지와 양장본은 하지 않은 출판사 수선재의 선택만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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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수장룡의 날
이누이 로쿠로 지음, 김윤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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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했기 때문에 소설의 결과에 해당하는 대략적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나'는 만화가다. 만화 시장이 작아지면서 오래 연재한 작품을 갑자기 그만두게 됐다.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노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돈은 모아뒀다. 중견작가라는 소리다. 이름은 아마 가즈 아쓰미라고 하고 여자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 이혼하셨고, 엄마는 몇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도 없고, 당연히 아이도 없다. 남동생은 하나 있는데 이름은 고이치라고 한다. 동생은 지금 '세이쇼 코마 워크 센타'에 있다. 몇 년 전에 자살을 시도했고, 그 후 식물인간이 돼 이곳에 있다. 이곳에서는 '센싱'이라는 걸 할 수 있는데, SC 인터페이스라는 기계를 통해 혼수상태의 환자와 의사소통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그것 때문에 '나'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동생을 이곳에 뒀다. 지금까지 몇 번 센싱이 성공했지만 동생이 왜 자살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요즘에는 너무 자주 현실과 센싱 상태를 구분 못하고 있어서 염려스럽다. 일상생활을 하다 갑자기 동생 고이치가 나타나 당황하다 보면 늘 그러다 잠에서 깨거나 센싱에서 깨어나게 된다.



 '호접몽'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장자의 이야기에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꾼 꿈에 나비가 나왔는데 그 사람이 나비를 꿈꾸는 것인지, 나비의 꿈에 내가 나온 건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요즘 자꾸 그 이야기가 '나'는 생각난다. 동생 고이치 역시 "왜 자살했어?"라고 물었더니 "현실인지 알고 싶어서"라는 대답을 했다.



 그러다 문득 인정하게 됐다. 자살을 시도한 건 동생 고이치가 아니라 나였다. 처음 작가로 데뷔할 때 스기야마 씨란 편집자가 잘 돌봐줬는데 어느새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이미 결혼한 사람으로 아이도 있었고, '나'와 어떻게 해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몹시 술에 취했던 날, 딱 한 번 그 남자와 잤다. 그때가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며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임신이 됐고, 과로로 자연유산이 됐다. 만화가로서 한참 유명했던 '나'는 집에서 뛰어내렸고 식물인간이 되어 10년 넘게 누워 있었던 거다. 동생 고이치는 외할아버지가 사시는 섬에 놀러갔을 때, 붉은색 장대를 잡으려다 빠져 죽었는데. 그리고 그것 때문에 부모님도 결국 이혼했던 것인데. 그럼 '나'의 꿈에 등장했던 사람들은 다 누구였지?



 '나'는 식물인간 상태애서 기적적으로 깨어난 후 하나씩 알게 됐다. 고이치로 늘 등장했던 건 왕따를 당해 자살을 시도했던 '나'의 어린 팬 유타카가 나에게 '빙의'한 것이었음을. 그리고 유타카의 어머니 야스코로 나왔던 사람은 정신과 의사 아이하라 선생님이었음을.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센싱을 하다 보면 빙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자신 안에 있던 다른 인격이 들어나기도 한다는데 그런 게 아닐까.



 처음 책 제목과 겉 표지를 보고는 판타지 소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뭐지? 미스테리 소설인가? 기대와 다르면 어떤가. 책은 훌륭했다. 작가 이누이 로쿠로는 2010년 [사비노 외전]으로 아사히니치신문사가 주최하는 제2회 '아사히 시대소설대상'과 [완전한 수장룡의 날]로 제9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같은 해 두 개의 신인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고 하는데 괜히 그런 영광을 누린 게 아니었다. 300쪽 정도의 길지 않은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2시간 만에 단숨에 책을 읽게 만드는 흡입력과 책 마지막 쪽을 덮은 후 길게 길게 남은 여운은 일부러 시간을 내 책을 읽은 게 전혀 아깝지 않은 느낌을 들게 했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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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나 - 사랑의 여신
무라트 툰젤 지음, 오은경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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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의 작가 무라트 툰젤의 소설 [이난나]는 세계 최고의 문명 발상지인 수메르 땅에서 쇠퇴기에 접어든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오스만 제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대륙을 지배하면서 중세 이후 세계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19세기 전후로 제국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난나'는 수메르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인데 바로 아프로디테의 전신이다. 이난나를 그리스어로 아프로디테라고 하고 이후 로마 시대에서는 비너스로 불렸다. 신화 속 이난나는 자신의 남편인 두무지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구해내지만 남편 두무지는 자신을 사랑하는 누이 때문에 일 년 중 절반만을 지상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이난나 이야기는 수메르 신화가 전승된 경로를 따라 메소포타미아와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전해졌는데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전쟁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올림포스 열두 신 가운데 유일하게 동방에서 유입된 신으로 독립성을 가지고 제우스의 가부장적인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데 목숨을 걸고 저승길에 오른 여신의 강인함이 그렇게 드러나는 셈이다.



 소설은 두 명의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밀은 야르오스만의 시파히인데 시파리란 봉건 기사와 유사한 지방 영주로 전장에서 공훈을 세운 대가로 봉토를 받아 그 땅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하여 세입에 따라 일정 수의 군사를 양성할 수 있었다. 비록 봉토 안이 소작인들을 마음대로 추방하지 못하고, 술탄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 즉시 출병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파히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오스만 제국의 지방 호족이었고 궁성학교 출신들이 술탄의 노예였던 반면에 이들 시파히는 자유인에 속했다. 제밀은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인데 이교도인 아르메니아 호족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교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가문의 전통 때문에 가문에서 쫓겨나게 된다. 제밀은 아내들과 수하들을 거느리고 아버지의 영지를 떠나는데 혹독한 겨울을 지내며 새로운 여자들을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아이를 얻기도 하지만, 또한 아내를 잃기도 한다.



 또 한 명의 남자인 빌랄은 예니체리다. 예니체리란 16세기에 완비된 오스만 제국의 핵심 부대로 기독교도 소년을 강제징집해 무슬림으로 개종시킨 후 술탄의 노예로 훈련시켰다. 빌랄은 어머니가 불을 숭배하는 이교도라는 이유 때문에 군대에 강제징집당하는데 정식으로 예니체리가 되기도 전에 시야부쉬 장군의 집으로 보내져 감시 속에 살아간다. 그러다 뜻밖에도 시야부쉬 장군의 첩인 누르하얄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소설에서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두 남자는 모두 금지된 사랑을 한 사람들이다. 성주의 아들인 제밀은 이교도의 여인을 사랑했고, 노예 신분인 빌랄은 자신의 상사인 장군의 첩을 사랑했다. 이야기 전개의 중심에 남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제목이 사랑의 여신인 '이난나'인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훨씬 능동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밀의 첫 번째 부인인 술타나는 남편인 제밀이 쉬메이라를 비롯해 아름다운 여자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을 빼앗기고 사랑의 열병을 앓는 걸 보면서도 질투심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 보다는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으로 자신의 몫만으로 고마워하기 때문이다. 누르하얄 역시 장군의 첩임에도 불구하고 노예 신분인 빌랄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접근해 남자를 유혹한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면서도. 반면 남자들은 유약하고 우유부단하다. 특히 제밀이 그러한데 자신을 따라 기꺼이 성을 떠난 사람들을 잘 돌보고 이끌기 보다는 새로운 여자가 나타날 때마다 사랑 때문에 병에 시달리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접하기 어려운 터키의 소설인데다 소설의 배경이 현대가 아니고 잘 알지 못하는 오스만 제국 시대를 다룬데다 두 남자의 시점에서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내용 흐름을 잡기가 쉽지 않았고, 두 남자의 공통분모가 서서히 나타나기 전까지는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작가가 보여주는 인물에 공감도 잘 되지 않아 재미있는 읽기는 되지 못했지만 터키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라 약간 낯선 느낌은 좋았다. 다만 작가의 코드가 개인적으로 잘 맞는 거 같지는 않아서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읽게 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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