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을 공개합니다 - 하나의 지구, 서른 가족, 그리고 1787개의 소유 이야기
피터 멘젤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 [헝그리 플래닛]이란 책을 접하고 아이디어가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서른 가족이 일주일 동안 소비하는 식품 전체를 쌓아놓고 보여주다니! 예상대로 책은 재미있었다. 그 뒤, 80명의 지구인이 하루 동안 먹은 모든 음식을 찍은 [칼로리 플래닛]이 나온 걸 알고 '작가가 이 기획에 재미들였나 보네. 이건 다른 사람이 따라하지 못하게 특허라도 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고 아직 읽지는 못 했다. 이번에 나온 [우리 집을 소개합니다]도 기본 아이디어는 똑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이 먼저다. 유엔이 정한 세계 가족의 해를 맞아 1994년에 출간됐으니까. [헝그리 플래닛]이랑 비교하면 사진이 오래된 느낌이 팍 들 거다.

 

전 세계 30개국의 평균 가족을 찾아가 일주일간 함께 생활하며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물건 전부와 그 사람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담아낸 이 책은 피터 멘젤이 15명의 사진작가들과 함께 꼬박 2년의 시간을 갖고 제작한 걸로 UN과 공동 기획한 것이다. 주로 과학과 환경 문제를 다룬 국제적인 보도사진으로 유명해 전미 사진기자 협회로부터 '올해의 사진상'등을 수상하며 이름을 떨친 피터 멘젤은 극단적이고 선정적인 사진에만 환호하는 언론에 회의를 느끼고 사람들의 참모습을 보여 주고자 1992년부터 '일상에 파고드는 사진 찍기'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 책이 그 첫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작가는 30개국을 어떤 기준을 갖고 선택한 걸까? 진행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을까? 작가는 우선 유엔 회원국 중에서 세계의 모습을 잘 반영할 수 있는 국가를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서 선택한 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그 나라의 전형적인 마을들을 직접 방문해 협조를 구했다고 한다. 대상 가족이 선택되면 사진기자가 그 집에 들어가서, 혹은 그 집과 가까운 곳에 1주일을 머물며 66개의 질문을 토대로 해당 가족의 자료를 작성했다. 질문에는 전형적인 아침 식사를 묻는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 각 가족 구성원이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같은 진지한 질문도 있었다.

 

[헝그리 플래닛]을 보면서도 느꼈고, 굳이 그 책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가겠지만 잘 사는 나라의 가정일수록 소유물은 많았고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의 가정일수록 소유물은 단촐했다. 말리의 나모토 씨 가족의 소유물은 사진상으로 하나씩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던 반면 쿠웨이트의 압둘라 씨 가족의 소유물은 너무 많아서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소유의 양이 다른 만큼 그들의 삶 역시 달랐다. 에디오피아에 사는 게투 씨는 가난한 삶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원하는 것의 하나로 세계의 평화를 꼽았고, 늘 전쟁 속에서 살았던 이스라엘의 자크스 씨는 우선 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보스니아의 데미로비츠 씨 가족은 총구멍과 포탄이 가득한 집에서 살았고, 알바니아의 차코니 씨 가족은 직접 지은 집에 살았다. 다만 환경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된 문제였다. 인구가 많고 도시화가 진행된 유럽이나 북미 같은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환경이 척박해 나무를 베고, 화전을 해서 살아가는 곳에서도 기온 상승, 공기 오염, 자연 파괴, 자원 고갈의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참 다르고도 닮은 세상 같다.

 

외국에서 온 손님을 위해 일본어와 영어로 동시에 방송을 보여주는 바람에 결국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일본 가정 방문기에서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고, 큰 사진 촬영 후 바로 가장이 알지도 못 하는 사람에게 맞아 죽었다는 러시아 가정 방문기에서는 절로 마음이 아팠고, 아무리 가난해도 아이들만은 학교에 보내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해주는 부모들을 보면서는 배움의 중요성을 되새김하기도 했다. 이래서 뉴욕공립도서관 선정 '청소년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에 선정이 됐나 보다.

 

아무래도 아직 읽지 못한 피터 맨젤의 책 [칼로리 플래닛]까지 마저 읽어야겠다. 작가가 지금은 뭘 기획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 책도 분명히 재미있을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홍 - 彩虹 : 무지개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요사이 듣건대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이란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세종실록 1436년 10월 26일자)"

 

이 문장에서 말하는 봉씨는 조선의 5대 임금인 문종의 두 번째 부인이자 세종의 며느리인 순빈 봉씨다. 봉씨는 봉여의 딸로 훗날 문종이 되는 세자 향의 첫째 부인 휘빈 김씨가 폐출된 후 3개월 만에 세자빈으로 책봉됐다. 아버지인 세종을 꼭 닮아 명민하고 덕성스러운 반면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는 서툴렀던 세자 탓에 봉씨는 첫날밤부터 좌절을 해야 했다. 세자 향은 원래 여인에게 관심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봉씨는 지아비가 자신을 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갔고 술에 만취해 시간을 보내거나 세자가 아끼는 궁인을 죽을 정도로 때리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궁에서 일하는 나인 소쌍을 사랑하게 돼 동성애(대식ㆍ對食)자가 된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라 세자빈이 여인을 아낀다는 소문은 궁내에 퍼졌고 결국 시아버지인 세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고 만다. 세종은 세자빈에게 아이가 없고 투기를 하는 것 등을 이유로 삼아 1436년 10월 26일 봉씨한테서 세자빈의 책인을 빼앗아 본가로 쫓아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봉씨는 집안의 명예를 생각하는 오빠의 손에 의해 결국 죽고 만다.

 

김별아의 신간 [채홍]은 이런 봉씨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이다. 작가 김별아는 세종실록에 짧게 실린 글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세자빈 봉씨를 자신의 사랑과 욕망에 솔직한 여성상으로 그려낸다. 제목 '채홍'은 무지개를 의미하는데 전세계적으로 무지개가 동성애를 상징한다는 걸 안다면 제목만으로도 소설의 소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 배경이 조선시대이고 공간적 배경이 궐이다 보니 어휘들이 옛스럽다. 워낙 낯선 단어가 자주 나와서 뜻을 헤아리다 보니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인데도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문장이 휘휙 읽혀야 하는데 생소한 단어들에서 계속 브레이크가 걸려 읽기 불편한 면이 있다.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단어를 읽는 느낌이 들어 그 점이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를 품은 달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은 이훤. 스물세 살로 조선의 젊은 임금이다. 우연히 들린 곳에서 난향을 풍기는 무녀를 만났다. 미색에 지, 담대함을 겸비한 무녀에게 끌리지만 정작 무녀는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인연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제 마음대로 무녀에게 '월'이란 이름을 남기고 궁으로 돌아왔다. 심복을 시켜 무녀의 행방을 쫓지만 귀신이었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러자 오래 전 사라진 또다른 그녀가 생각난다. 왕에게 유일한 여자였던 그녀.

 

그런 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다. 이름은 김제운. 왕을 호위하는 '운검'이 그의 직책이다. 일반적으로 왕은 다섯 명의 운검을 두지만 이훤은 제운 딱 한 사람만 두었다. 혼자서도 운검 다섯 명의 몫을 하는 이가 제운이기 때문이다. 붉은색 운검과 검은색 별운검을 동시에 다루는 그는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딛고 운검이 됐을 정도로 무예 실력과 지적 수양, 체력, 병법 지력, 외모 모두 뛰어난 사람이었다. 신하인 동시에 왕의 동갑내기 벗이기도 하다.

 

왕의 유일한 여자였던 그녀의 이름은 허연우다. 선비의 향인 난향을 좋아하고, 바느질 대신 서책을 끼고 살았다. 왕의 여동생과 나이는 같지만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똑똑하로 현명한 여인으로 외척인 훈구파의 자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뛰어난 외모와 성품, 분별력으로 세자빈으로 간택됐다. 그런데 그렇게 건강하던 그녀가 며칠만에 알 수도 없는 병을 앓더니 갑자기 죽었다 한다.

 

왕이 허연우를 알게 된 건 자신의 스승 때문이었다. 이름은 허염. 왕보다 겨우 두 살이 많았지만 학식과 청렴함, 예를 갖춤이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천재였고, 선왕이 아들인 이훤이 왕이 됐을 때를 위해 아껴둔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훤조차 반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왕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다. 민화공주라고 나이는 허연우랑 같은데 하는 짓은 천지차이다. 아들들에게는 엄겼했던 선왕도 공주라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열다섯 살이 된 어느날 우연히 보게 된 허염의 아름다운 얼굴과 목소리에 반해버렸다. 허염에게 시집가고 싶어 아버지를 졸랐지만 허염을 세자를 위해 아껴두고 싶었떤 선왕은 거절했다. 공주의 부군이 되면 관직에 나갈 수 없는데 허염은 그렇게 썩힐 수 없는 인재였기 때문이다.

 

왕에게는 배다른 형이 있었다. 양명군이라고 그 자신도 왕이 될 자질을 갖춘 자였지만 어머니가 정비가 아니였기 때문에 늘 아버지인 선왕에게 찬밥 신세였다. 그래도 벗인 제운과 허염, 동생인 이훤이 있어 버텼다. 우연히 보게 된 허염의 동생에게 반해 아버지인 왕에게 처음으로 부탁이란 걸 했다. 허연우를 자신의 여자로 달라고. 하지만 그 부탁조차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월은 왕의 액받이 무녀다. 왕에게 뻗히는 살을 직접 몸으로 대신 받아주는 존재. 신모에게 신신당부를 받고 딱 한 달만 왕의 침소를 몰래 밤에 지키며 왕의 살을 대신 받기로 했다. 왕은 절대 몰라야 한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 월은 다시 귀신처럼 사라져야 한다.

 

또 다른 여자의 이름은 설이다. 사실 여자가 아니다, 노비지. 하지만 그런 설을 여인이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넘겨다 보는 것조차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 도련님의 흉내를 내다보니 자연스레 검을 들게 됐고, 학문에는 재주가 뛰어나지만 무예에는 영 젬병인 도련님보다 곁눈질로 배운 그녀의 무예실력이 훨씬 더 나았다. 처음엔 몰랐다. 나중에 자신이 그 도련님을 지키게 될 줄은.

 

그와 그녀들은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된 걸까? 그와 그녀들의 인연은 어떻게 얽혀 있고,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가?

 

작가 정은궐이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 이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새 소설을 발표했다. 전작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 이어 [해를 품은 달] 역시 드라마화 돼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여러모로 [성균과 유생들의 나날]과 겹쳐진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청춘을 다룬다는 점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성품과 관계까지 비슷하다. 전작을 하나라도 읽은 독자라면 쉽게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은궐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반듯함'이라고 생각한다. 맑은 물처럼 깨끗한 성품을 갖고 있다. 작가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로 맞춰지는 것도 그런 탓이 아닐까 싶다. 내가 소설가 정은궐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좋아하는 것도 그 반듯함 때문이다.

 

2권을 합하면 950쪽에 달하는 양이라 결코 적은 분량은 아니다. 하지만 다음이 궁금해 계속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어느새 2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2011년의 마지막 날과 2012년의 첫 날을 이 책으로 오버랩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만의 미드 & 스크린 영문법 트레이닝
이충훈 지음 / 투리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영어를 잘 하는 가수 S는 팝을 들으며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럼 미국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뭘로 영어 공부를 하면 좋을까? 그렇지!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와 영화로 영어 공부를 하면 된다. 그럼 영어 공부하는 교재는 정해졌고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방법이 문제인데...


작가 이충훈이 미국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국 드라마와 영화로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냈다. 이 책 전에도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이용해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책 [나만의 미드영어 동사 트레이닝], [미드&스크린 영어회화 표현사전] 등의 책을 낸 적이 있는데 그 시리즈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은 크게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문장 형식에 대한 것이다. 1형식부터 5형식까지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봤던 걸 되짚어 본다. 2장은 평서문과는 다른 명령문과 감탄문의 순서를 공부하는 장이다. 3장은 동사에 대해 공부하는데 현재시제, 현재진행시제, 우리 언어에는 없는 현재완료 시제를 다뤘다. 4장은 동사의 의미를 화려하게 변화시켜 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는 조동사에 대해 배운다. can, may, must와 have to, used to, shoud, have+p.p 등인데 머리에 약간 쥐가 날지도 모르겠다. 5장에서는 능동태와 수동태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우리 문장에는 수동태가 없는데 수동태 관용표현들도 배울 수 있다. 6장에서는 주어의 성질 및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를 다뤘는데 원급을 비롯해 비교급, 최상급에 대해 배운다. 7장에서는 to부정사와 동명사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to부정사의 세 가지 용법(명사적 용법, 형용사적 용법, 부사적 용법)을 여기서 다시 볼 수 있고 to부정사와 동명사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8장에서는 문장을 통째로 명사로 바꾸는 명사절 접속사들을 배운다. 9장에서는 동사를 형용사로 만드는 현재분사와 과거분사에 대해 배우는데 슬슬 어려워지면서 책을 덮고 싶은 유혹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10장에서는 관계대명사에 대해 배운다. 주격 관계대명사, 소유격 관계대명사, 목적격 관계대명사의 차이에 대해 배워보자. 11장에서는 부사절 접속사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으로 12장에서는 현재의 사실과 반대, 혹은 과거에 일어난 사실과 반대를 가정할 때 사용하는 가정법을 배운다.



예문으로 등장하는 문장들은 크게 어렵지 않다. 하긴 미국 드라마와 영어를 교재 삼아 배우는 책이니 크게 어려울 리가 없다. 우리나라의 드라마나 영화를 생각해 봐도 크게 어려운 말이 나오지는 않으니까. 다만 구성이 재미있지는 않다. 미국 드라마와 영어를 교재로 삼았다고는 해도 장면을 캡쳐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문장만 빼곡히 옮겨 놓은 상태라 혹시 내가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와 영화에 나왔던 문장이 나왔나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실망할 것이다. 이런 책들은 한자리 앉아 단숨에 읽는 책이 아니다. 가방에 넣고 다니든, 책상 위에 놓든 매일 한 챕터 정도 꾸준히 읽는 책이다. 한 해도 끝나가는데 영어 공부 계획만 세워둔 사람이라면 12월 한 달 동안 읽고 그래도 공부했다고 위안 삼아보는 것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대한민국 최초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사건 현장과 진실 규명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 / 알마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 최초 법의학자인 문국진을 인터뷰어 강창래가 인터뷰했다. (주)알마에서 시리즈로 발간하고 있는 인터뷰집 아홉 번째다.


문국진 박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해가 1955년인데, 그해에 국과수가 독립기관으로 출범했다. 문국진 박사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국과수라는 기간은 없었다. 법의학이나 법의관이라는 말조차 생소했을 그때, 문국진 박사는 어떻게 알고 졸업과 동시에 법의관이 된 걸까? 문국진 박사는 우연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청계천 근처에 있다 비가 많이 쏟아지길래 헌책방에 잠깐 들어가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그때 후루하다 다네모도가 쓴 [법의학 이야기]라는 책을 뒤적이다 발견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한다.




'사람에게 생명도 중요하지만, 권리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 법의학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발달된 민주국가에서만 발달한다. 따라서 법의학의 발달 정도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나 민주화 정도를 알 수 있다.'

이 문장에 홀딱 반한 문국진 박사는 법의학을 하기로 결심했지만 배울 곳도 마땅치 않았고, 스승인 장기려 박사 또한 그런 건 학문도 아니라고 화를 내셨다고 한다. 하지만 인연이 있었던지 졸업하는 그해 마침 국과수가 독립기관으로 발족하면서 법의관 한 사람이 필요했고, 문국진 박사가 뽑혔다고 하니 문국진 박사만 법의학에 반한 게 아니라 법의학도 문국진 박사에게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십 년간 법의학자로 살아온 여든 일곱의 문국진 박사는 '두벌죽음'을 극도로 기피하는 문화 때문에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책의 제목처럼 도끼에 맞아 죽을 뻔한 경우도 그 중 하나다. 남양주군에 사는 한 청년이 오랫동안 알고지낸 동네 아가씨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여자의 아버지에게 들켜 모진 소리를 듣고난 후 동네 뒷산에서 목을 매달아 죽은 시체로 발견이 된 사건이 발생했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밝히기 위해 문국진 박사가 부검의로 초대됐는데 청년의 할아버지가 '두벌죽음'이라며 펄펄 뛰다 부검 현장으로 도끼를 던진 사건이었다. 하마터면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가 비명횡사할 뻔한 순간이었다.



문국진 박사는 법의학이 발전하려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법의학에 대한 전문서적과 교양서적을 출판하는 건 모두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CSI]나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수사물을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법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국진 박사의 다른 책을 더 읽어보자. [최신 법의학]이나 [고금무원록] 같은 책은 전문서적이라 어렵다면, [새튼이]이나 [지상아] 같은 교양서적이 적당할 거 같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용서는 없다]에서 법의학자 강민호 교수를 연기한 설역구가 인용하는 사건이 바로 문국진 박사의 책 [새튼이]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명화와 의학의 만남], [미술과 범죄] 같은 책이 재미있을 것이다. 이 책의 3부에도 맛보기로 그림과 법의학을 연결시킨 설명이 나오는데 아주 흥미롭다.



49권의 책을 낸 문국진 박사는 현재 [예술작품의 후각적 감상(가제)]이란 책을 집필 중이다. 문국진 박사 스스로가 생애 마지막 저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역시 아무 흥미로울 거 같다. 그림과 법의학이라, 아주 새롭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