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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벌레, 헛간을 태우다, 그 밖의 단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길을 가다보면 어느 순간 빛의 서광처럼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지만, 여전히 미로에 빠져 포기해 버린 순간도 있으리라. 이 책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상실의 시대'나 '해변의 카프카'로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이 책은 명확하고, 분명한 깨달음과 이해보다는 환상과 몽환적 느낌으로 다가와 읽는 이에게 다소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만,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나의 모자람을 탓할 뿐이다.
이런 모자람속에서도 나 나름대로 해석이 되는 부분의 작품을 얘기해 보면, <개똥벌레>에서는 학생시절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자살해 버린 친구와 사귀었던 여자를 몇년이 지나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이것이 연유가 되어 계속되는 만남속에서 결국 사랑의 감정이 느끼지만, 그녀가 그에게 얻으려고 했던 일시적 사랑은 죽은 친구에 대한 아쉬움과 간절함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조적 대상에 대한 집착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어둠속 자취를 감춰버린 개똥벌레의 모습처럼 주인공 안에 내재되어 있는 친구의 흔적을 느끼려고 한 것은 아닌지?
<헛간을 태우다>에서는 비정상적 만남과 관계속에서 알게 된 그녀와 그녀의 애인. 한번의 어울림속에서 그가 헛간을 태우는 취미(?)가 있고, 주인공이 알고 있는 근처에서 또다른 방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고 된다. 주인공은 추리소설의 탐정처럼 그 방화지역을 나름대로 추적, 발견해 보려하지만 실패한다. 어떠한 헛간의 태움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헛간은 혹시 우리 내면에 늘 양면적으로 존재하는 악의적 행동과 생각의 발현이 아닐까? 아니면 15분간의 태움속에 사라지는 기억속 사념들의 청소가 아닐런지?
<춤추는 난쟁이>에서는 일상의 기계적 행동 반경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의 꿈속에서 나타난 춤추는 난쟁이. 그에게 무엇가의 격정적 변화와 시도를 요구하게 되고 그는 꿈의 실체를 현실속에서 찾게 되지만, 그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체제속에서 거부되거나 혁명적으로 보일 수 있는 변화이기에 시도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일시적 충동속에 시도한 춤은 그를 위기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것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자유스럽고, 거침없는 표현도 사회적 필터 과정과 억압속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에서의 사상적 자유스러움에 대한 아쉬움과 부적응을 표현한 것 같다. 이 이외에도 두편정도 단편들이 있지만 내용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다소는 힘들다. 앞서 소개한 세 편도 단순히 작품에 대한 나의 자의적 해석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내가 배워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많은 생각과 상황들이 있다는 자체가 호기심과 열정을 일으키지만, 이 책처럼 나의 무지함에 화가 나는 책도 없는 듯 싶다. 그래도 하루키 문학에 빠진 분들이라면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