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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동물
황희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 야행성 동물
글쓴이: 황희
펴낸 곳: 몽실북스
놈들이 쫓아온다. 소름 끼치는 괴성, 고약한 악취, 피를 갈구하며 번뜩이는 눈,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괴력까지. 저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저 피 냄새에 흥분한 좀비일 뿐. 녀석들을 제거하는 방법은 딱 하나, 머리를 쏘는 것! 당신에겐 총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이지만, 실수해서는 안 된다. 놈을 죽여야 당신이 산다. 깊은 심호흡과 함께 총을 겨눈 당신은 살점이 흘러내린 채 분노로 가득한 좀비와 눈이 마주친다. 어딘가 낯이 익은 존재. 이미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그 괴물이 우리의 가족, 친구 혹은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과연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
《월요일이 없는 소년》, 《부유하는 혼》, 《내일이 없는 소녀》, 《기린의 타자기》 등등, 특이한 소재와 열정 가득한 필력으로 다수의 팬을 보유한 황희 작가님이 이번엔 몽실북스와 손잡고 새로운 소설을 출간했다. 좀비를 소재로 한 사회파 SF 미스터리 『야행성 동물』에서 그녀는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새로운 좀비를 선보이며 그들을 제거의 대상이 아닌, 구해야 할 대상으로 피력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내디딘다.
과거 마약 중독자였던 한나는 약에서 벗어난 후, 엘파소 국경수비대원으로 일하고 있다. 의심스러운 차량에서 상당한 양의 마약을 찾아낸 어느 날, 한 미친 운전자가 날뛰며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한나가 머무는 도시에 마약성 좀비화가 창궐하자, 한나는 딸 러너와 함께 서둘러 귀국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과 강아지가 있는 한국, 흰섬.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한나는 평화로운 일상을 잠시 만끽하지만, 흰섬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든다. 물려서 죽은 자가 삽시간에 좀비로 부활하고 사람을 공격한다. 구조의 손길을 기다릴 새도 없어, 비릿한 피 냄새와 처절한 절망만이 가득한 이 흰섬에서 과연 한나는 살아남아 딸 러너는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

"마약은 원래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천연 진통제였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온 걸까요?"
"인간의 과욕 때문이겠죠."
- 《야행성 동물》, p78 중에서...
특별한 소재를 다룰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계관과 타당성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황희 작가는 인간이 좀비로 변이한 이유와 신종 좀비가 출현할 수밖에 없는 탄탄한 원인을 제시한다. 어딘가에서 뚝 떨어진 바이러스가 아닌 인간의 이기심과 나약함이 퍼트린 잿빛 질병.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눈앞에서 살벌하게 펼쳐지는 살육전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시원하게 머리를 박살 내며 제거하던 좀비가 차마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면... 거기서 느낄 절망감과 고통이 얼마나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황희 작가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좀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좀비 마니아인 내가 영화 '웜 바디스' 이후로 좀비에게 연민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인 듯. 《야행성 동물》을 영화화한다면, 여자 주인공 한나 역으로 이시영 배우를 강력 추천하고 싶다. 영화화를 간절히 바랄 만큼 생생하고 잔혹했던 이야기. 하지만 그 끝엔 가슴 뭉클한 인류애와 따스함이 있었다. 믿고 읽는 황희 작가님의 신작, 이번에도 대성공!